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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 명상자료

(명상)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5~10)

by 혜강(惠江) 2020. 1. 31.





명상노트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5~10)



                                                                                     남상학



         6

오늘은 당신 앞에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입은 열리지 않고 달삭거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간신히 연 입으로는 마음속에 사려 둔 간절한 사연들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눌한 말씨, 더듬거리는 눌변에 스스로 분통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당신은 나에게 너무나 큰 존재입니다.
그 크신 당신 앞에 서면 나는 나이가 들어도 말문이 막히는 철부지입니다.

         7

목마른 갈증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왠지 끈적거리고 짜증 나는 기분으로 온종일을 허송하며 보냈습니다. 요즘 부쩍 땀을 흘리며 질척거리는 기분인 것은 분명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욕심과 이기심으로 시야가 가리워져 당신을 향한 문이 활짝 열리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았을 때의 곤혹스러움이라 할까요?
무엇보다도 당신을 향한 이 녹슨 창문을 곧 닦아야 하겠습니다.

         8

오늘은 하루종일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일시에 휩쓸려 나갔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퍼붓는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열리고, 갈증이 해소되고, 축 늘어지던 몸에 생기가 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나를 위한 하늘의 세례의식(洗禮儀式)이었습니다.

         9

당신의 말은 청아한 바람입니다.
여름 대낮의 고갯길을 올라 정상에 설 때 갑자기 불어와 땀을 식혀 주는 바람처럼 당신의 말은 무덥고 긴 사막길을 가는 순례자에게는 청량제(淸凉劑)와 같습니다.
영혼이 지쳐서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는 이여, 무거운 짐을 진 내 곁에 늘 청아한 바람으로 머물러 주십시오.

         10

계곡에 밤 이슬이 내립니다.
여름밤 깊은 골짜기의 밤 이슬은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는 촉매제입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오늘따라 나의 정신을 새롭게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도의 문이 열리려나 봅니다.
나 이대로 바위에 엎드려 그 날 겟세마네의 당신처럼 피땀 어린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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