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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비금도(飛禽島), 하트 해변, 명사십리 등 아름다운 해변 일품

by 혜강(惠江) 2019. 10. 7.

 

비금도(飛禽島)

하트 해변, 명사십리 등 아름다운 해변 일품

- 천일염․섬초, 이세돌의 고장 -

 

 

글·사진 남상학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돼 비금도 여행이 보다 편해졌다. 암태도(중부권 환승터미널)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고 여기서 카페리로 40분 가면 비금도에 닿기 때문이다.

 

 우리 여행팀은 7개의 섬을 2박 3일에 걸쳐 둘러보는 계획을 세우고, 압해도를 거쳐 천사대교를 통해 갈 수 있는 암태도로 들어가 먼저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 카페리를 이용하여 비금도로 가서 1박을 하며 비금도, 도초도를 둘러보고, 다시 배편으로 나와 1박을 하며 연도교로 이어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와 암태도 등 5개의 섬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비금도 가는 방법

 

 

▲암태남강여객터미널 (출처 : 라이프바이클)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간다면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를 차례로 타고 가다 함평분기점에서 무안광주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북무안나들목에서 내리는 것이 편하다. 77번 국도를 이용해 신안대교를 건너 압해읍으로 간 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2번 국도를 따라가면 천사대교에 닿는다.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차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도 하루 6차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목포 시외버스도 20~40분 간격으로 중부권 환승터미널까지 운행한다. 중부권 환승터미널 바로 옆에는 비금도를 잇는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이 있다.  

 

 

▲암태남강여객터미널, 비금도행 카페리를 타기 앞서

 

▲암태남강여객터미널 부두에 비금행 대흥고속카페리가 대기하고 있다.

 

 암태도(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 비금도(비금가산여객선터미널)까지 가는 페리는 하루 15차례 운항한다. 주간에는 오전 5시50분, 7시, 8시, 8시30분, 9시, 10시30분, 11시30분, 낮 12시40분, 오후 2시, 2시30분, 4시, 5시 등 12차례 있다. 야간에는 저녁 6시30분, 8시10분, 밤 10시에 있다. 소요시간은 약 40분, 요금 6.000원, 차랑 24,000원이다.

 

 우리 여행팀은 7시 40분 서울에서 산타페를 이용, 신안대교를 건너 압해도를 거쳐 다시 천사대교로 타고 암태도로 들어갔다. 비금도로 출발하는 카페리를 타는 암태여객터미널까지 4시간 30분이 걸렸다.

 

 비금도까지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으나 비금도에 사시는 분이 비금도․도초도 관광을 맡아주기로 하여 우리 차는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 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카페리를 탔다.

 

◎천사대교를 지나

 

 

 

  서울에서 천사대교로 가는 길은 까마득히 멀다. 고속도로 북무안나들목에서 내려 77번 국도를 이용해 신안대교를 건너 압해읍에 든 다음 다시 섬 서쪽 끄트머리까지 15㎞를 더 달려야 천사대교에 닿는다.

 

 그러나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에서 천사대교에 들어서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싹 가신다. 천사대교의 위용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왕복 2차선으로 총연장 10.8㎞, 너비 11.5m에 달한다. 교량 구간 7.22km로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길고, 주탑 높이는 195m의 사장교 형식이다. 국내 4번째 규모의 복합 교량이다.

 

 천사(1004)대교는 당초 새천년대교로 불렸으나 공모에 의해 신안군에 섬이 1004개 있다는 뜻으로 지어졌다. 전남 신안군에는 모두 1,025개의 섬이 있으나 나무가 없는 섬을 제외하면 1,00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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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천사대교 덕택에 암태도는 뭍과 연결됐다. 암태도뿐이 아니다. 암태도 북쪽의 자은도(자은-암태, 은암대교), 남쪽의 팔금도(암태-팔금, 중앙대교), 안좌도(팔금-안좌, 신안1교), 자라도(팔금-자라, 신의2교)는 자동차로 떠날 섬여행 명소가 더될 전망이다. 되었다.

 

◎비금도는 어떤 섬인가?

 

 

 비금도 여행의 기점인 비금가산여객터미널에 들어서면 비금을 상징하는 독수리상 조형물이 있다.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9개를 거느린 비금도(飛禽島)는 여기저기 흩어진 섬들이 날아다니는 새 떼를 닮았다 하여 비금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목포에서 58km 떨어진 서쪽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비금도는 동쪽으로는 암태, 팔금, 안좌면 그리고 서쪽으로는 흑산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자은면, 남쪽으로는 연도교(서남문대교)로 이어진 도초면과 이웃하고 있다.

 

▲비금도와 도초도

 

 면적 48.490km2 비금도의 선왕산(255m)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전국 최초로 도서 등산로가 안전하고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숲과 암벽, 능선이 적절히 조화되어 오르는 재미가 있어 인기가 많다.

 

 산 정상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 하얀 염전과 잔잔한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선왕산의 기맥이 동남쪽 그림산(254m)으로 이어지는데 만만히 봤다가는 오산이다.   

 

 

선왕산(255m)의 위용

 

 

 또 비금도는 깨끗한 바다와 아름다운 기암절벽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기암절벽들이 바다로부터 섬을 감싸며 곳곳에 빼어난 풍광을 자아낸다. 명사십리해수욕장, 하누넘 전망대, 하트해변, 원평해수욕장 등 볼거리가 많다.

 

 더구나 시금치가 자라는 넓은 평야지대와 대동염전(등록문화재 362호),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청아한 자연이 서로 대비를 이뤄 매혹적이다. 이 외에도 비금도에는 이세돌 바둑기념관, 최치원 우물, 내월리 석장승, 내촌마을 옛 돌담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하트 해변’으로 알려진 하누넘해변

 

 

▲하누넘전망대에 세운 안내판

 

 비금도 서남쪽 해안, 절경을 끼고 있는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해변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선왕산(255m)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가야 한다. 길이 좁고 커브가 심한 경사여서 현지 지형에 익숙한 안내인의 차량이 아니었다면 어려울 정도였다.

 

 

▲하누넘해변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한 만큼 산세가 아름답다.

 

 아슬아슬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 하트 모양의 탁 트인 해변이 펼쳐진다. 북쪽의 원평해수욕장, 비금해수욕장과 더불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하누넘해수욕장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지역으로 산과 섬들에 둘러싸여 있다. 아늑하기 그지없고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사시사철 물결이 고요해 가족 단위의 휴양코스로 좋은 곳이다.

 

 KBS 드라마 ‘봄의 왈츠’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변이 하트모양을 닮은 하트해수욕장으로도 알려져 있어 연인과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고 있다.

 

 

 

 

 하트 모양은 하누넘해변을 품은 선왕산 중턱의 전망대에서 잘 보인다.  전망대에는 하트 모양의 포토 존과 함께 우편함이 있다. 알록달록한 포토 존은 남녀의 얼굴 형태로 된 하트 모양으로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옆 안내판에 ‘비금도 하트 해변 사랑의 마법’이란 타이틀 아래 전설과 함께 의미가 새겨져 있다. 연인들이 추억 남기기에 제격이다.

 

 섬주민의 말에 의하면, 하누넘은 북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하누넘은 ‘하누’와 ‘네미’의 합성어로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변의 모양도 아름답지만 코발트 블루의 바닷물 빛도 환상적이다.

 

 

 한편 이곳에는 배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너미, 하지만 하누는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데 너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다리다가 지쳐서 지금도 하트해변에 누워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는 하누와 너미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트해변 끝자락을 자세히 보면 하누를 기다리는 너미의 누워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중교통과 숙박, 음식점 등이 들어설 수 없기에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방풍용으로 쌓은 ‘내월우실’

 

 

 

 

 하누넘전망대에서 선왕산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해풍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을 볼 수 있다. 내월우실이다.

 

 

 매년 내월리 마을에는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재냉기(재 너머에서 부는 바람) 바람으로 농사를 망치곤 하였다.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길이 40m 높이 3m 폭 1.5m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돌로 담고 쌓고 바람을 막았다. ‘우실’의 어원은 '울실'로서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실의 종류로는 나무우실 돌담우실 등으로 나뉘는 등 다양하다. 신안군 우실은 바닷물이나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작물을 보호하며 풍수적으로 마을의 약한 부분을 보강해주고 마을의 안과 밖을 경계하는 구실을 담당했다. 방풍림의 역할 뿐 아니라 지역과 마을 특성에 따라 마을 공동체의 신이 좌정하고 있는 신성지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내촌마을 옛 담장

 

 

 

 내월우실 유적 아랫마을 내촌에는 30여 가구의 모든 울타리가 돌담이다. 완도 청산도의 명품마을인 상서 돌담마을을 연상케 한다.

 

 

 

 내촌마을은 대략 400년 전 형성된 마을로 약 3,000m에 이르는 옛 담장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조형미도 일품인 돌담은 2006년 대한민국등록문화재(283호)로 지정됐다. 내촌마을의 담장은 돌의 형태가 둥글지 않고 전반적으로 길쭉하면서 날카롭다.

 

 

 

 

 대체로 담장높이는 1.5m 내외로 일정하며 가옥 부속채가 담장 역할을 한 곳도 있다. 대개 마을 뒤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이진 막돌을 사용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다.

 

 돌담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폭은 40~60㎝ 내외이다. 이 마을 돌담은 막돌을 메쌓기한 것, 막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 올린 것, 시멘트 몰탈을 사용하여 돌담을 쌓은 것 등 여러 형식이 있다.

 

 

 

 도로와 주택 개량 공사로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던 새마을운동 때에도 이 돌담길을 지켜낸 마을사람들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새로 쌓은 듯한 돌담에는 돌 틈바구니에 예쁜 꽃을 심어 단장했다. 특히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다육식물이 돌의 무채색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잘 보존된 마을 돌담(길이 3㎞)과 뒤쪽 바위산, 넓게 형성된 들판이 서로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은 나에게만이 아닐 것이다.

 

◎월포마을 석장승

 

 

 

 내촌마을에서 멀지않은 월포마을회관 옆에 세운 대장군 장승이 있다. 1955년에 세워진 대장군석장승은 1950년대 어느 해 마을의 젊은이들이 원인 모르게 사망하는 등 마을에 액이 겹쳤다.

 

 

▲월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석장승을 세웠다.

 

 이언 액운이 겹치자 풍수지리에 밝은 이 마을 주민 전남균 씨가 선왕산 숭애봉의 세찬 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숭애봉과 마주 보는 장승을 세우도록 주장해서 세워진 석장승이다. 주민들은 장승이 앞산의 기를 꺾어 액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길이 4.3km, 명사십리 해변

 

▲명사십리 해변의 우측 모습 

 

 비금면 지당리에 있는 명사십리해변은 비금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손꼽힌다. 길이가 4.3km 폭이 30m인 백사장은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다. 먼 바다에서 거품을 물고 달려오는 파도는 어머니 품 같은 넓은 가슴으로 달려와 유순한 자세로 엎드린다. 이럴 때, 박경숙이 쓴 시 <비금도의 하루>가 떠오른다.

 

‘원시의 바닷가/ 모로 누워/ 찰방이는 파도에/ 삶의 응어리를 씻는다/ 바람도 누웠다/ 가느다란 실배암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숲의 노래/ 인적이 끊기고/ 뱃길 끊어져/ 꿈틀거리는 머언 외로움/ 차갑게 쓸어갔다 밀어 넣는/ 거기/ 낯선 이방인의 탈을 벗고/ 별빛보다 먼저/ 태초의 아담을 만난다’

 

 호젓하기만한 백사장에 서서 허공을 우러러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본다. 지금까지 낯선 탈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감췄던 날들이 얼마인가를. 원시의 모습 앞에서 이제 그 옷을 벗어던지고 싶다.   

 

▲멀리 은빛 기둥이 풍력발전기

 

 명사십리 해변은 모래가 고울뿐더러 모래가 단단해 차를 타고 달려도 바퀴 자국이 거의 패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에 ‘명사십리‘라는 이름을 가진 해변이 여러 곳이 있지만 규모와 풍경, 분위기 면에서 비금도의 명사십리가 가장 압도적이다. 

 

 

▲한적한 명사십리 해변에 서다.

 

 

 철 지난 아침이어선지 이 끝을 모르는 해변에는 우리 일행 밖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은다. 아침 옅은 안개에 휩싸인 바다는 몽환적인 분위마저 풍긴다. 왼쪽으로 멀리 친환경 청정에너지인 풍력발전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 경고문 표지판에 “이곳은 수심과 유속이 불규칙하고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은 곳으로서 일체의 수영 및 물놀이를 금지합니다”라고 써 있는 것과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해수욕장으로 이용하기보다 대자연을 그대로 만끽하기 에 좋은 해변이다.

 

 

▲명사십리 해변의 굴과 조개껍질

 

 

 썰물로 드러나는 바다를 거닐다 돌라오는 길에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침인사를 건네며 “어디가시느냐”고 불으니 굴을 따라 가신다고 했다. 해안 오른쪽 바위에 하얗게 드러난 굴 껍질이 유난히 돋보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논드래미 해수욕장

 

 

 

 논드래미 해수욕장은 명사십리 해변으로부터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곳인데 도고마을 이정표를 보고 마을 안쪽 길로 쭉 올라가다보면 닿을 수 있다.

 

 원평이나 명사십리보다는 자그마한 해변이지만, 해변의 모양이 곡선형으로 움푹 패여 있고, 바다 암석이 해변 가장 자리에 있어서 조금 더 아기자기한 느낌을 갖게 되는 곳이다.

 

 

▲논드래미 해수욕장 앞의 펜션

 

 

 

 모래사장을 걸다보면 작은 게들이 모래 구멍을 파면서 물어낸 모래가 마치 예쁜 그림을 그린 듯하여 정겨웠다. 이곳 논드래미 해수욕장은 후리질을 하기에도 적당하여 가족 단위로 체험하기에도 즐기기에 좋을 듯.

 

◎이세돌바둑기념관

 

 

 신안 비금도는 한국바둑을 이끈 천재 기사 이세돌이 태어난 곳이다. 신안군은 이세돌이 태어난 곳이다. 천재 기사 이세돌은 세계대회 15회 우승, 2012년 3월 국내 랭킹 25개월 연속 1위 질주로 연속 랭킹 1위 신기록 작성한 인물이다.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신안군이 낳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08년 12월 26일 개관했다. 입구에는 알파고와 대결하는 이세돌의 대국 장면 조형물을 만들어놓았다.

 

▲이세돌바둑기념관 입구의 구조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하는 장면

 

▲이세돌바둑기념관 전경, 폐교를 리모델링한 것이어서 운동장 잔디가 짙푸르다.

 

▲기념관 앞에선 유재영, 우남일, 남상학, 이광수, 김종기 선생님 (좌로부터)

 

 

 이 광경을 보면서 알파고와 연속적으로 이어진 3번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허점을 찌르는 '신의 한수'로 180수만에 알파고가 'resign'이란 팝업창을 띄우게 만들었돈 장면을 떠올렸다. 이로써 이세돌 9단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그의 승리에 전 인류가 환호했다.

 

 기념관의 전체면적은 798㎡이며, 2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전시실과 바둑 대국장이며 2층은 외부 손님들이 사용할 숙소로 꾸몄다. 전시실은 이세돌이 바둑에 입문한 과정과 각종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의 전시물

▲이세돌의 모형 앞에서 대국하는 장면 연출(홍보관)

 

 이세돌은 바둑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수오 씨는 아마추어 5단이다. 광주교대 졸업 후 목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10년 정도 재직하다가 비금도로 귀향해서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에게 바둑 가르치면서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

 

 

▲비금도의 이세돌 생가, 지나가는 차창을 통해 찍었다.

 

 

 큰누나 이상희(이대 국문과 졸)는 아마 5단이며, 큰형 이상훈은 프로 9단으로 하호정 4단과 결혼하여 프로기사 2호 부부가 되었다. 작은누나 이세나(이대 국문과 졸)는 아마 6단으로 현재 월간바둑 편집장이다. 모두 바둑 고수다.

 

 이세돌 9단 형과 누나들의 바둑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버지가 다섯 자식 모두에게 어릴 때부터 바둑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동생인 이세돌 9단에게 바둑실력이 추월당하면서 공부로 방향을 튼 형 이차돌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세돌의 형 이차돌바둑기념관 관장(중앙)과 함께 기념사진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전국 바둑 동호인들이 끊임없이 방문해 이세돌 생가와 함께 비금도의 관광명소가 됐다. 기념관 뒤편 대나무 숲으로 이뤄진 망각의 길을 지나면 명사십리해수욕장이 나타난다.

 

 

◎ 천일염과 섬초(시금치)의 고장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수차, 지금은 모터가 대신히고 있다. 

 

 비금도의 입구인 가산여객터미널 대합실 옆 독수리상과 함께 수리차를 돌리는 염부의 형상이 있다. 수리차는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수차인데, 비금도가 품질 좋은 천일염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전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수리차를 돌리는 염부의 형상은 비금도에 천일제염법을 최초로 도입한 박삼만이라는 사람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에 위치한 주을염전으로 징용을 갔던 그는 해방이 되어 고향인 신안으로 돌아오자마자 갯벌을 막고 피나는 노력 끝에 구림염전을 만들어냈다. 비금도를 소금의 섬으로 바꾸어놓는 기적을 일궜다.

 

 

▲대동염전, 멀리 버티고 선 떡메산이 인상적이다.

 

 박상만 씨와 박삼만 씨의 기술을 바탕으로 천일 염전조성을 시도한 '손봉훈' 씨는 7명 내외의 조합을 구성하여 1946년 3월에 수림리 앞의 갯벌을 막아 시험염전 축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최초의 천일염전을 성공시켰다. 천일염 생산에 성공하자 1948년 무렵 4,50세대의 비금주민들의 염전조합을 결성하고 1백여 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이것이 '대동염전' (등록문화재 제362호)이다.

 

 특히, 인근 떡매산에서 바라본 대동염전은 넓은 염전지대의 저수지,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 해주(海宙, 鹹水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천일염전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인문적 경관 가치가 뛰어난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비금도의 먹거리였던 소금염전은 1990년대 후반 소금시장이 개방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중국산 값싼 소금이 엄청난 물량공세로 밀고 들어오면서 비금도 천일염의 유명세도 밀리고 말았다. 염전이 불황을 겪고 쇠퇴하게 되자 섬 주민들은 새로운 일에 주목했다. 바로 시금치 재배다.비금도에서 시금치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부터라고 하는데, 죽림리에 사는 최남산이란 사람이 종자를 사들여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가능성이 타진되었다.

 

 

염전의 불황으로 재배하게 된 비금도 시금치 재배지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그 재배가 더욱 활발해져서 재배면적이 넓어졌고 생산량이 확대되었다. 지금은 비금도 전체 1,880 가구 중 1,000여 농가가 780여 ha에 시금치 ‘섬초’를 재배하고 있다. 지금은 비금도 전체의 절반 농가가 780여ha에 시금치 ‘섬초’를 재배하고 있다. 비금도에서 나는 시금치는 서울 사람들이 석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에 이른다고 한다.

 

 비금도 시금치는 게르마늄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서 비타민 성분이 많으며 잎이 두텁고 신선도가 좋기로 유명하여 시금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시금치 농사가 고된 작업이지만 소득원으로서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셈이다.

 

 

 

◎천년의 샘 ‘최치원 우물’

 

 

 

 

 비금도 남단에 최치원의 우물이라는 ‘고운정’이 자리 잡고 있다. 큰 길에서 계단으로 오르면 정자가 있고, 그 옆길로 한참을 오르면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최치원의 호를 따서 '고운정(孤雲井)'이라고도 불린다.

 

 

 

 

 이 우물에는 전해지는 설화가 있다. 고운선생이 중국을 가기 위해 배에 올랐는데, 배안에 있던 식수가 바닥이 났다. 마침 비금도의 수도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마을 뒷산 봉우리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 하여 배를 정박하고 선원들이 그곳을 팠더니 과연 물이 솟아올랐다. 그 후로 이 우물을 ‘고운정’이라 부르게 됐다.

 

 또 하나는 비금도 선왕산 기우제 설화인데, 마을 뒤편에서 고운정 우물에서 물이 솟아올랐다는 소식에 가뭄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던 비금도 주민들이 고운 선생을 모셔다가 기우제를 지냈더니 곧장 비가 내려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운 최치원 선생(857~?)은 869년 13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874년 과거에 급제했다. 여러 벼슬을 거친 후 879년 황소의 난 때는 고변의 종사관으로서 <토황소격문>을 작성하여 저명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신라를 떠나 2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지만 신라의 어지럽고 문란한 국정을 개혁하기 위해 시무10조를 진성여왕에 올린 후 지방현감으로 떠돌다가 해인사에 들어간 이후 여생을 마쳤다.

 

 

 

 

 그의 비극적인 생애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는 최치원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신이한 능력을 담은 설화들이 남겨졌다. 특히 전북 고군산군도, 비금도, 우이도, 흑산도 등 서남해안 일대에는 그의 입당항로를 따라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최치원의 우물은 풀숲 덮개에 덮혀 있었다. 관리 소홀이 아쉬웠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언덕에 올라 찾아간 곳에는 표지판만 덩그렇게 세워두었을 뿐 정작 우물은 함석철판으로 덮인 채 관리가 되지 않아 초라한 모습이었다. 해당 관청에서 문화재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금도 먹을 곳, 잠잘 곳

 

 비금도의 식당은 가산횟집 (061-275-6336, 회), 한우나라 (061-275-5758, 백반), 백년가든 (061-275-0188, 오리탕·백숙), 정든집 (061-275-1835, 삼겹살·갈비), 오란다횟집 (061-275-4620생선회, 매운탕), 신선식당 (061-275-5377, 중화요리)이 있고, 섬마을집밥이 제공되는 명우당한옥펜션(061-275-5513, 010-9668-5513)이 있다.

 

 잠잘 곳으로는 명우당한옥펜션 (비금면 지당리 166, 061-261-3333, 010-9668-5513), 비금도한옥펜션 (비금면 지당리 203-4, 061-275-6666), 비금도바닷가펜션 (비금면 신원리 593-73, 061-261-0001), 동백한옥펜션(061-275-7891), 향주민박(061-275-3375), 빨간집 모텔(061-275-4900)이 있다.

 

 

 

▲명우당한옥펜션(대표 최향순, 061-261-3333)과 우리들의 숙소 '우산경로당

 

 

 우리 여행팀은 비금면 지당리에 있는 한옥으로 지어진 명우당한옥펜션에서 묵으려 했으나 마침 정약전의 <자산어보> 영화 촬영팀이 펜션 전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명우당한옥펜션을 운영하는 최향순 씨의 알선으로 우산경로당을 이용했다. 그리고 저녁 한 끼 식사는 도초도에 있는 보광식당(도초면 발매리 9-5, 061-275-2136)에서 우럭매운탕, 간재미무침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

 

▲간재미 무침으로 이름난 보광식당 (안내를 맡아준 최향순 씨의 소개)

 

 

비금도 도초도 여행을 마치면서, 1박 2일 비금도와 도초도 여행의 전 일정을 자신의 차량으로 안내하며 해설해 주신 최향순(명가소금·섬초 / 명우당 한옥펜션 대표, 010-9668-5513)님께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사진의 가운데가 최향순 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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