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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스페인. 포르투갈

마드리드, 고야의 작품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 탐방

by 혜강(惠江) 2019. 4. 11.

 

스페인(4) : 마드리드

 

고야의 작품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 탐방 

 

 

글•사진 남상학

 

 

 

 

 

 

 여행을 떠난온 지 아흐레가 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둘러볼 차례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 중앙에 위치한 카스티아 지방의 대표도시이자 스페인 교통의 중심지이다. 인천공항에서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까지 매주 월•수•목 직항편이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12~14시간이다. 경유 항공편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이 있는데 보통 파리나 로마를 통하여 경유한다.

 

 마드리드는 16세기부터 펠리페 2세가 왕궁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스페인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스페인의 정치, 경제의 중심 역할을 맡아 왔다. 1936년부터 3년간 치러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마드리드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이 되면서 마드리드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볼거리

 

 

 마드리드 솔 광장의 곰 조각상

 

 

 

 왕실에서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들을 전시하여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라도 미술관이 마드리드에 자리 잡고,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소피아 왕립 미술센터에 전시되면서 마드리드는 세계적인 미술의 도시가 되었다.

 

 마드리드의 볼거리로는 국립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하여 푸에르타 델 솔 광장, 마요르 광장, 마드리드 왕궁, 알무데나 대성당, 산 미구엘 전통시장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마드리드 여행은 곰 동상이 자라하고 있는 솔 광장에서 시작한다. 중앙광장인 마요르광장을 지나 산 마구엘 시장, 왕궁지역을 지나 세르반데스 서거 300주년 기념비가 서있는 스페인 광장에 다다르면 번화가인 그란비아 거리거 시작된다. 스페인 회화의 보고인 프라다미술관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리엔트 광장

 

 왕궁 뒤에 있는 오리엔트 광장, 오리엔트 광장 중앙 양쪽으로는 스페인을 지배했던 20명 왕들의 조각상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광장 중앙에는 펠리페 4세(Felipe IV)의 동상이 있다. 마요르 광장 중앙에 있는 펠리페 3세의 아들이다. 그런데 펠리페 3세는 정치를 등한시하고 사치를 일삼는 등 스페인의 전성기를 끝내기 시작했고 펠리페 4세는 30년간의 전쟁에서 패하는 등 그리 존경 받을만한 인물들이 아님에도 이들이 마드리드의 중심지에 있는 것이 이들도 스페인 역사의 분명한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마상은 17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피에트로 타카(Pietro Tacca)의 작품이다. 기마상 주변으로는 네 귀퉁이에 청동 사자상이 있고 우화를 기반으로 한 조각들과 분수가 있는데 19세기에 추가 된 것이라 한다.  

 

 

 

 

 

 

 

마드리드 왕궁

 

 

 우리가 먼저 찾은 곳은 마드리드 왕궁이다. 마요르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북쪽으로 난 바일렌 거리에 밝은 회색의 건물이 나타난다. 회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었을 당시 그들의 성채가 있었던 곳이다.

 

 무슬림이 물러난 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요새를 궁전으로 사용했으나 1734년 크리스마스 밤에 대형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후 프랑스 부르봉 왕조 출신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펠리페 5세가 이 자리에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왕궁을 건립하라는 명에 따라 이탈리아 건축가였던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a)가 설계를 끝내고 착공 전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사게티가 승계 받아 사바티니, 로드리게스와 함께 1764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하였다.

 

 전체길이 131m의 웅장한 신 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은 유럽의 수 많은 궁전 중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답다. 널찍한 광장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건물은 보는 것 만으로도 힘이 넘친다. 스페인 왕의 공식 거처이지만 현재는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실제 거주하지는 않는다.

 

 사방 150m의 왕궁 안에는 2,800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50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을 모방해서 만든 ‘옥좌의 방’, 건축가 유바라가 설계한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정교함과 화려함이 더해져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스파리니 방’, 벽 전체가 황금 비단으로 꾸며져 있는 ‘황금의 방’, 145명이 한꺼번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식탁이 자리한 ‘연회장’에서 스페인의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보안상 관광객 개인의 관람은 금지하고 있으며, 다만 가이드 투어는 가능하나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우리는 내부 관람은 하지 못하고 외양을 보는 것을 만족해야 했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

 

 

 마요르 광장 역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광장으로, 중세에는 시장으로 사용되던 장소였는데, 펠리페 3세 때인 1619년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건설된 후에는 왕의 취임식, 종교 의식, 투우 경기, 교수형 등이 치러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커다란 4층 건물이 반듯한 직사각형을 이루며 광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데, 9개의 아치 문이 광장으로 통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든 광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광장 가운데에서 기품 있게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은 바로 펠리페 3세이다. 광장 주위를 둘러싼 건물의 1층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9개의 아치문 중 하나인 광장 남서쪽의 쿠치예로스 문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메손과 바르가 늘어서 있는 카바 데 산 미구엘(Cava de San Miguel) 거리와 만나게 된다. 마요르 광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래된 우표를 판매하는 우표 벼룩시장이 열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시장도 열린다.

 

 

 

 

 

 

 

 

▲마요르광장과 주변 상점

 

 

 

마드리드 중심지, 관광의 거점, 푸에르타 델 솔 광장

 

 

 ‘푸에르타 델 솔’ 이란 '태양의 문'이란 뜻으로 16세기에 화려했던 스페인의 영광을 상징하는 성문이 이곳에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08년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군에게 세계 최초로 대항한 장소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스페인의 게릴라 전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 광장은 마드리드의 중심이며 관광의 시초가 되는 지점이자 스페인의 정점이 는 곳이다. 현재 스페인의 모든 도로가 이 곳을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대부분의 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하며 메트로도 3개의 노선이 이곳에서 환승하도록 되어다. 

 

 그냥 '솔(Sol)'이라고 불리는 이 광장은 20세기 초 그란비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쇼핑의 중심지로 유서 깊은 상점도 많이 있고 주변에 상가, 레스토랑, 은행, 백화점 등이 많이 있어 곳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만남의 거리이기도

하다. 솔 광장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마요르 광장이다.

 

 

 

 

 

 

 

 

 

 

고야의 작품이 있는 국립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거리 건너편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원래 자연사 박물관으로 지어졌다가 페르난도 7세에의해 1819년 현재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프라도 미술관 

 

 

 처음에는 왕가의 순수 회화 작품만 소장했으나 이후 귀족과 성당, 수도원 등이 소유하고 있던 여러 작품을 함께 소장하게 되었고, 1868년 혁명 후 미술관은 국유화가 되었다. 현재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작가의 작품을 비롯하여 tm페인과 관련된 작품, 외국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실제로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에 관해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프라도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고야의 작품이다. 스페인 동북부 출신인 고야는 유럽의 미술이 르네상스라는 출발점에서 바로크라는 종착지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던 시대 '근대 미술'로의 전환을 이끌어 낸 화가였다. 고야는 궁정화가로 있으면서 수많은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이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다.

 

 

 

▲고야의 걸작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1년에 완성한 이 작품에서 왕실 가족들은 빛이 나는 화려한 의복과 여러 개의 왕실 훈장이 달린 어깨띠를 하고 있다. 화려함과 광휘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자연스러운 묘사 방식을 채택하여 인물 개개인의 특성을 포착하였다. 그 결과 어떤 비평가가 지적하듯 각각의 인물은 집단 초상화에서 요구되는 통일성을 저해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 인물은 중앙에 위치한 마리아 루이사 왕비이다. 그녀가 왕 대신 정사를 돌보았으며 왕의 총애를 받던 마누엘 고도이와 불륜의 관계에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들의 손을 잡고 딸의 어깨를 안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부드러운 면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이 외에도 프라도미술관에는 고야의 작품으로 '옷을 입은 마하', '마녀의 집회' 등 100점이 넘는 유화와 수백 점의 소묘가 소장되어 있다.  엘 그레코의 '부활', '삼위일체', 벨라스케스의 '바커스 승리', '시녀들' 등과 보시의  '쾌락의 뜰', 루벤스의 '사랑의 뜰'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프라도 미술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드리드에 온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로비에는 전시한 조각 작품을 제외하고는 실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으며 관람자들은 지나가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이어폰으로 듣는 것으로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프라도미술관 앞의 고야 동상과 입구

 

 

▲입장권  

 

 

 

▲미술괸 로비에 전시된 조각 작품

 

 

 

영화 <고야의 유령> 감상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마드리드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레리다로 이동했다. 다음날 몬세라트 수도원과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는 몬세라트에 가까운 곳에서 숙박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리라.

 

 마드리드에서 레리다까지는 동북쪽으로 무려 5시간 거리. 가는 동안 우리는 지루한 시간을 달랠 겸 화가 고야의 작품을 다시 음미할 겸 버스에서 <고야의 유령>을 감상했다.

 

 ‘고야의 유령’은 프랑스 혁명과 종교재판으로 광기에 휩쓸린 당대의 역사를, 고야의 시선으로 고발한 영화다.화면에는 폭력과 야만의 시대의 희생양인 ‘이네스’가 등장한다. 이네스는 단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재판소에 끌려가고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신이 비밀 유대교도임을 거짓 실토한다. 이는 신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명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침해했던 유럽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간 이성의 잔인함과 오만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18~19세기 시대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움의 손을 뻗었던 신부 로렌즈에게 이네스는 겁탈까지 당한다. 자신의 욕망과 고문이라는 공포 속에 신앙마저 저버린 로렌즈를 통해 추악한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감독 밀로스 포먼은 21세기 자본주의 맹신 속에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없이 살아가는 현 시대가 영화 ‘고아의 유령’속 스페인 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스텔란 스카스가드(고야 역), 나탈리 포트먼(이네스), 하비에르 바르뎀(로렌조 신부)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 한편을 감상하는 동안 버스는 레리다로 접어들고 있었다. 마치 농사를 주로 하는 시골 모습이다. 레리다는 주로 농업에 의존하며 소·농산물·과일이 유명하다고 했다. 레리다의 숙소인 호텔 카사노바(Hotel Casanova)는 12일간의 여행 중 최악이었다. 무엇보다 불결했다. 잠을 잘 수가 없을 만큼 베개에서 심한 냄새가 날 정도였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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