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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여행(3) : 사치스러움이 묻어나는 카이딘 왕릉

by 혜강(惠江) 2019. 2. 7.

 

후에 여행(3)

 

호화의 극치, 사치스러움이 묻어나는 카이딘 왕릉

 

 

·사진 남상학

 

 

 

▲카이딘왕릉 계단의 용 조각

 

 

  카이딘 왕릉(Tomb of Khai Dinh , Lang Khai Dinh)은 '후에'시에서 흐엉 강을 따라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있다. 카이딘 왕은 응우엔 왕조의 후기인 1916년(31세)에 12대 황제로 등극하여 1925년(40세) 까지 9년간 황제로 재임하였다. 

 

  카이딘 왕릉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지 4년이 된 1920년에 시작하여 카이딘 왕의 사후 6년이 지난 1931년까지 12년에 걸친 오랜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이 왕릉은 중국식으로 조성된 다른 왕릉과는 달리 베트남과 유럽풍의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섞인 특이한 구조를 가진 왕릉이다. 콩크리트 구조물이지만 얼핏 석제 건물처럼 보이며, 서구식 건축에 우아한 예술적 멋을 풍기고 있다.

 

 

 

 

▲카이딘왕릉의 안내도

 

 

  왕릉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유럽 고딕 양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용이 새겨진 난간 사이로 36계단을 오르면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기마, 코끼리 석상이 세워진 뜰에 다다른다. 이 뜰안에는 황제의 위업을 기리는 비석(공덕비)도 서 있다. 이 공덕비는 응우엔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아버지 카이딘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거기서 다시 26계단을 오르면 3개의 홀로 나눠진 떼인 딘(Thein Dinh)이라는 건물에 도착한다. 중앙에는 황제의 위업을 기리는 2층짜리 팔각형의 사당이 있다. 옥좌에 청동에 금박을 입힌 1톤 무게의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이 있고, 그 아래 지하 80m 위치에 황제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기마 석상

 

 

▲용 조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비각 안에 세운 비석(공덕비)

 

 

 

 

 

▲황제의 위패를 모신 계성전

 

 

 

옥좌에 설치한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

 

 

 

  일반 궁전이나 다름없이, 벽과 제단이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에 용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찬란하다. 전체적으로 서양 건물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정교하고, 감각적이다. 유럽과 청나라, 힌두교 사원의 양식 중 화려한 것들은 모두 담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서 가능했던 모든 건축기술을 동원한 왕릉이니만큼 규모나 화려함에서 다른 유적에 비해 압도적이다.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된 벽면

 

 

▲용의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진 천정

 

 

 

  30대 젊은 황제가 취임 4년 후에 자신의 묘부터 이처럼 거창하게 만들었으니 비판을 들어마땅했다. 그러나 관광객의 입장에선 이 젊은 황제의 능을 통해서 찬란한 베트남 궁중 문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으니, 이러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후에성 응우엔 왕궁에서 전란으로 파괴되어 찾을 수 없던 찬란한 유품들을 이곳 무덤에서 찾게 되다니.

 

 

 

 

 

▲전시된 유물들

 

 

 그러나 카이딘 황제의 꿈과 욕심은 40세의 젋은 나이에 죽음과 함께 끝났다. 물론 왕위도 끝났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친 프랑스 정책으로 일관하여 프랑스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였다.

 

  이름뿐인 군주로서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치와 방탕에 열중하여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런 가운데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 위하여 국고를 탕진하고 무고한 백성에게 땀과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정작 카이딘 황제 본인은 왕릉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계성전에 걸린 카이딘황제의 초상

 

 

  그의 유해는 죽은 지 6년 후, 그의 아들 비오다이(제13대) 황제에 의해 왕릉 내부, 옥좌 아래 깊은 땅속에 묻혔다. 그런데 그 아들 황제마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호지민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설립함으로써 궁전에서 퇴위를 선언하고, 응우엔 왕조는 베트남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카이딘 황제와 아들 바오다이 황제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나라 고종 황제와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연상되어 어딘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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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추억의 사진 여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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