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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탈리아

피렌체, 생동감 넘치는 르네상스의 발원지

by 혜강(惠江) 2018. 6. 1.

 

이탈리아(18) : 피렌체 

생동감 넘치는 르네상스의 발원지

 

 

 

글·사진 남상학

 

 

 

 

 

  피렌체는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다. 중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도시인 피렌체는 낭만이 가득한 이탈리아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렌체(Firenze)는 예술 문화재를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의 보고이다.

 

 

 

 

  피렌체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미켈란제로, 지오토, 레오나르드다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의 걸작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꽃의 도시’라고 불리는 피렌체는 이탈리아 어인 ‘Fiore'가 꽃이라는 뜻인 어원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 도시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바로 백합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BC 10세기 정도에 에트루리아 인들이 기초를 세웠다. 1125년에 이르러 자치 도시의 선언으로 독립국가가 된 후 모직과 귀금속 산업을 발전시켰고, 14~16세기에는 상업·금융·학문을 비롯하여 예술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 당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와 메디치 가문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되었다. 현재 피렌체는 유네스코에 의해 도시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피렌체는 사철 관광객이 몰려든다.

 

 

<피렌체의 두오모>

 

 

  먼저 피렌체의 역사적인 역사적인 종교 중심지인 두오모 성당을 찾았다. 피렌체를 설명할 때 두오모를 빼고 설명할 수없는 중요한 곳이다. 이곳 두오모 성당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곳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두오모는 ‘꽃의 산타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피렌체 공화국과 길드가 함께 지은 것으로 1292년에 착공, 1446년에 이르러 완공된 피렌체의 상징물이다.

 

  106m의 높이인 대원개(돔)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되었는데 3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이다. 두오모의 정문은 1587년에 무너져 현재의 정문은 1887년도 작품이다. 두오모 내부로 들어가면 여러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은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당 왼쪽 입구에서 463계단을 올라가 대원개의 옥상에서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두오모애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관광객들

 

 

두오모 내부와 천장의 프레스코화

 

▲대원개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463계단  

 

 <시뇨리아 광장>

 

 

 두오모를 보고 난 후 칼치아이울리 길(Via de Calziaiuoli)을 따라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찾았다.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지금까지 피렌체의 행정의 중심지다. 피렌체 공국 시절 시민들의 토론장이었고 피렌체를 무대로 활동하던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옥외 미술관 로지아 데이 란치를 볼 수 있다. 궁 옆에는 <넵튠의 분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등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회화걸작들을 모아 놓은 우미치 미술관과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기오가 있다. 

 

 

시뇨리아 광장, 중앙에 <넵튠의 분수>과 왼쪽으로 말을 탄 모습은 <코지모>의 기마상이다. 

 

기마상

 

메디치 가문이 살았던 궁전

 

 

 

 

유명한 조각상 뒤로 총 6인의 고대 로마 부인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말 마차와 거리 풍경

 

 

▲커피 맛이 좋다는 질리(Gilli)에서 커피 한 잔  

  

<단테 생가>

 

 

 두오모에서 도보 5분이면 단테 생가에 닿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1265~1391)가 태어난 집을 복원해 놓았다. 원래 단테가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피렌체 시가 단테가 살았던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단테 기념관으로 지은 곳이다.

 

 이 기념관은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처음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일곱 개의 방에 걸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그의 행적을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특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 전편을 인쇄한 것을 계단 벽에 걸어 두었고, 한국어를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단테의 〈신곡〉을 볼 수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신곡〉의 삽화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단테는 1265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드란데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후에 단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35세 때 정치적인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의 4대 시인으로 손꼽히며 피렌체에서 인정받는 시인이지만, 예술가의 쓸쓸한 최후는 안타깝다. 지금도 라벤나의 단테의 무덤 앞에는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있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의 선구자로 불릴 뿐만 아니라 현대 이탈리아어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또한 그의 명작인 〈신곡〉은 후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의 세계를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상당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베아트리체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시를 지었다.

 

 

 

 

 

 

 

 <베키오 다리>

 

 

 

 

 

  단테가 아홉 살 때 그의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다리, 베키오 다리. 아름다운 소녀를 본 단테는 이때부터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찬미의 마음을 간직한다. 그리고 9년 후 우연하게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서 만난 그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정중한 그녀의 인사에 지극한 행복을 느낀 단테. 18세에 결혼해 1290년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그녀를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으로 옮겨 온다. 베아트리체의 집이 단테의 집에서 50여m 떨어진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1345년에 건설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원래 이 자리에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홍수로 휩쓸려가자 새로 건설한 것이다. 다리의 설계는 지오토의 제자인 타데오 가디가 맡았으며, 아르노 강의 가장 좁은 곳에 세워졌다. 다리 가운데에 있는 흉상은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금 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이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르노 강의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가, 세기의 연인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곳이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다리와 주변에는 자물쇠가 많이 채워져 있다. 사랑의 징표인 자물쇠를 열쇠로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져 버리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테가 베키오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상상도)

 

 

<미켈란젤로 언덕>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는 두오모와 지오토 종탑, 베키오 다리 등 피렌체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광장 중앙에는 다비드상 복제품이 서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피렌체 도심을 한 눈에 감상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는다. 길거리 음악가의 연주를 들으며 석양이 지는 피렌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 선 다비드 상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피렌체 시가지

 

 

<몬테카티니>

 

 

  피렌체를 둘러본 우리는 피사에서 60㎞ 떨어진 고풍스런 산성(山城) 마을인 몬테카티니로 이동하여 짐을 풀었다. 내일 피사를 관광하기 위해서다.

 

  몬테카티니는 이탈리아의 북서부 토스카나 주의 피스토이아(Pistoia) 지방에 속한 작은 도시이다. 몬테커티니는 16세기에 온천이 개발된 ‘물 좋은 스파 휴양지’이다.  1530년경부터 온천장 건설과 리조트가 조성되었다. 

 

  약 200여 곳이 넘는 호텔들이 있으며 온천을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도시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는 그로타마오나(Grotta Maona)라고 불리는 종유석 동굴이 있다.  ARISTON HOTEL에 짐을 풀고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휴양하기 젛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몬테카티니 호텔 주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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