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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탈리아

바티칸, 이탈리아 로마 안의 또 하나의 국가

by 혜강(惠江) 2018. 5. 31.

 

이탈리아(16) : 바티칸

 

이탈리아 로마 안의 또 하나의 국가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및 산 피에트로 성당

 

 

 

글 · 사진 남상학 

 

 

 

 

 

▲바티칸 건물 배치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인 바티칸(Vatican)을 가기 위에 비교적 서둘러 일찍 갔는데도 바티칸 박물관 입장객들이 입구에서부터 꽤 길게 서 있다. 바티칸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 증거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바티칸 시티, 또한 교황청이라고도 하는 바티칸 시티는 둘레가 5km, 면적이 0.44㎢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다. 이곳은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미켈란젤로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등 훌륭한 예술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의 총본산 바티칸

 

 

▲바티칸 시국 전경

 

바티칸 시국 전경, 그 뒤로 로마 시내가 보인다.

 

 

 

  전 세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총 본산으로 베드로를 상징적인 초대 교황으로 하고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궁, 바티칸 정원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이지만, 그 영향력은 전 세계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다.

 

  바티칸 시티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 테베레 강 서안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그리이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에 기증한 땅인 라테라노 지역에 있었으나, 1305년부터 1377년까지는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하였으며, 로마로 다시 되돌아 와 자리를 잡았다.

 

  1450년 교황 니콜라스 5세는 바티칸을 교황청 소재지와 교황 거주지로 정하고, 기존의 성베드로 대성당 옆에 새로운 바티칸 궁을 세우기 시작했고 베드로 성당을 새롭게 복구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바티칸 시티는 로마의 7개 언덕 중의 하나인 북서부 언덕에 예언자(바티)와 점쟁이들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에 붙어졌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본 바티칸 궁의 정원의 모습

 

 

 

  1870년 외세 하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이탈리아가 통일이 되는데, 이 때 교황청은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 사이에 불화가 계속되다가, 1929년 교황 피우스 11세와 뭇솔리니 간에 체결된 라테란 협약 즉 정교화약(政敎和約 : 콩코르다트)에 의하여 바티칸 시국(市國, Vatican City State)이라는 국명으로 하나의 독립국가로 승인 받게 되었다.

 

  현재 바티칸 시티에는 바티칸 궁전, 바티칸 박물관,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 등이 있다. 이들 건물은 그것 자체로서 이탈리아 문화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고, 또 바티칸 궁전의 일부를 차지하는 미술관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많은 소장품들을 간직하고 있다.

 

 

 

 

바티칸을 경비하는 스위스 용병

 

 

 

  바티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국심사를 따로 한다. 길게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서다. 우린 단체여서 안내원이 입국심사를 대행하여 쉽게 끝났다.

 

  오늘 우리는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성당이 오늘 관람의 초점이다.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이라는 성스러운 곳에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등 명작을 직접 감상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바티칸 박물관 출입구로 입장했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 입장하기 위하여 몰려든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솔방울 정원 (삐냐정원)

 

 

 

 

 

솔방울 뒤에 기둥이 있는 건물은 브라초 누오보 궁전

 

 

  바티칸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거대한 나선형 계단실이 눈에 띈다. 계단실을 나오면, 솔방울 정원(삐냐정원, Cortile della Pigna)이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이곳밖에 없다.

 

  정원에는 거대한 청동솔방울 조각상이 있다. 4m높이의 거대한 청동솔방울은 고대 로마 분수의 일부였으며, 한때는 옛 성 베드로 성당의 안뜰에 있었는데, 정원으로 내다 놓았다. 대부분은 브라만테가 설계했으나 솔방울 자리는 1562년 피로리고리오가 만들었다.  솔방울 뒤에 기둥이 있는 브라초 누오보 궁전이다.  

 

 

 

솔방울 정원 내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이 정원의 가운데는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현대조각이 빙글 돌고 있는데, 이는 병들어 가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정원을 거쳐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한다. 입구에는 시스티나 성당과 박물관 내부의 모습을 걸어놓은 입간판이 있다.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 사진이 붙어있는 입간판이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안내자들은 그 사진들을 짚어가며 각국의 언어로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우리 역시 그 유명한 그림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입장했다.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건물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 은 바티칸 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지다. 관광객들이 바티칸 시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대부분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 미술품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이 주로 강대 제국일 때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해 온 것임에 비해 바티칸 박물관은 줄리우스 2세, 이노첸트 8세, 식스투스 4세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을 위한 궁전에 교황들이 수집한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2세는 바티칸으로 화가, 조각가등 수많은 예술가를 초빙했는데 그 중에는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도 있었다. 이런 당대 최고의 예술가에게 건축과 조각, 그림을 맡겨 오늘날 박물관의 기초를 닦았고 그 후 600년간 여러 교황들이 전 세계의 명작들을 수집하여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만들었다.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고문서·자료를 수장(收藏)하고, 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에 의한 내부의 벽화·장식으로 유명하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몇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루어져 l,400여 개의 방들이 있으며 15세기 초 이래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바타칸박물관 배치 및 이동 경로

 

 

  바타칸 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있다. 1층에는 각종 그림을 모아놓은 회화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이집트 박물관, 도서관(일반인 미공개), 키아라몬티 박물관, 시스티나 예배당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에트루리아 미술관, 지도 갤러리, 라파엘로의 방, 라파엘로의 복도가 있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모든 전시관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 된 작품 중에서 주요 작품은 고대조각에 <아포크슈오메노스> <벨베데레의 아폴로> <벨베데레의 토르소> <라오콘>, 고대 회화에 <오디세우스 이야기> <아르드브란디니가(家)의 혼례도>, 중세 회화에 <웨르기리우스사본(寫本)> <여호수아기(記)>, 그리고 르네상스 회화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그리스도의 변용>,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聖)히에로니무스>, 카라바지오의 <그리스도의 매장> 등과 역사적인 고문서·공문서류 등이다.

 

  소장된 유물만 며칠 동안 봐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바티칸 박물관 유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시간적 여유를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단체관광인 우리는 회화관을 건너뛰고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으로 안내되었다.

 

  먼저 벨베데레의 궁전 뜰이다.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의 소장품들 중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4 세기의 청동조각인 <벨레데레의 아폴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조각군 <라오콘>, 그리고 프락시스 텔레스의 원작을 복사한 <헤르메스> 등을 꼽을 수 있다.

 

  15세기 말 교황 인노센트 8세의 지시로 브라만테(Bramante)가 만든 벨베데레(Belvedere)궁의 8각형 안뜰 주위에 전시된 조각상들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서양 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뜰에 있는 <라오콘>을 보기 위해 몰려온다.

 

 

 

 

 

벨베데레(Belvedere)궁의 뜰, 여기서부터 조각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벨베데레의 아폴로(Belvedere Apollo)였다. 벨베데레의 아폴로(Belvedere Apollo)는 기원전 320년에 제작된 그리스 아티카 출신의 한 작가가 만든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모방한 작품으로 태양의 신 아폴로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전양식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활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등에 맨 화살 통에서 뽑은 신의 상징인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름다운 옷의 주름과 샌들의 세부 묘사가 정교하고, 남자이지만 여성의 몸매를 모델로 한 듯하다.  이 아폴로 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의 얼굴을 그릴 때 이 아폴로 상을 모델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티그리스의 조각상>

 

   그 다음으로 눈에 띠는 작품이 티구리스의 조각상. 벨베데레 정원에서 볼 수 있는 티그리스의 조각상은 물을 지키는 물의 신이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머리, 오른팔, 왼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는데, 미켈란젤로가 복구했다고 한다.

 

 

물의 신, 티그리스의 조각상

 

 

<라오쿤>

 

 

  벨베데레의 작품을 지나치면 그 유먕한 라오쿤이다.  라오쿤(The Laocoon)은 로마의 에스퀼레스 언덕 네로의 황금집 폐허에서 1506년 발견된 작품으로 작자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 등 3명이라고 전해지며, 제작연대는 기원전 150~기원전 50년경으로 짐작된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쿤과 그의 아들들이 두 뱀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올림푸스 신들이 무력한 인간들에게 행하는 무정하고 잔인한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라오쿤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사제이다. 트로이전쟁 때 그의 동포들에게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있는 목마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트로이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이 좌절되는 것을 본 신들의 노여움을 사,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졸려 죽었다.  신들의 저주로 물뱀에 물려 죽는 중앙의 라오쿤을 왼쪽의 차남은 외면하고 있고, 오른쪽의 장남은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쿤과 그의 아들들이 두 뱀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토르소>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작품, 토르소.르네상스 시대에 발굴된 고전 조각상은 팔다리가 없는 채로 발견되었지만, 불완전한 몸체만으로도 절대적인 명성을 얻었다. 토르소는 인체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형태로 간주되어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 작품은 기원 전 1세기 경 아테네의 조각가인 아폴로니의 작품이란다.

 

 

 

 

     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

 

 

 <원형의 방>

 

  뮤즈의 방을 지나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아주 큰 세숫대야 모양의 붉은 조각품(네로황제의 욕조)이 있다. 1700년대 네로의 황금 궁전에서 옮겨왔다.

 

 

 

 

원형의 방에 있는 네로 황제의 욕조 

 

 이 방이 유명한 이유는 판테온에서 영향을 받아 1780년대에 올린 천장의 돔 때문이다. 이 돔의 크기는 21.60m나 된다. 이 방의 좌우에는 주피터, 안토니우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헤라, 주노의 상들이 있다.

  

 

 

 

   그러나 볼만 한 것은 2세기경에 만든 금박의 헬라클래스 상이다. 또한 바닥의 오밀조밀한 모자이크 역시 아름다운데 아무리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모자이크를 밟아도 돌이 워낙 깊숙이 박혀 있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석관> 

 

 

  피오 클레멘티노관의 마지막 방인 그리스 십자가의 방(Sala a Croce Greca)은 그리스 십자가 모양으로 디자인된 방이다. 이 방에는 4세기경의 찬란한 2개의 석관이 전시되어 있다. 전투장면이 조각되어 있는 붉은 색의 석관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의 것이며 다른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딸 코스탄자의 석관이다. 포도 수확의 장면이 아름답게 부조되어 있다. 이 전시실의 바닥 중앙에는 3세기경 로마제국 시대의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의 석관

 

 

그리스 십자가의 방바닥의 모자이크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복도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려면 복도를 지나가야 하는데, 복도마다 이름이 있다. 촛대의 복도, 아라찌의 복도, 지도의 복도 등을 지나 소비에스키 방을 거치면, ‘라파엘로의 방’에 가게 된다. 

 

  촛대의 복도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치형의 중간중간 문마다 영 옆에 촛대모양의 조각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복도를 지날 때는 반드시 천장의 천장화를 봐야 한다. 입체감이 뛰어나 아래에서 보면 원근감이 뚜렷한 조각 장식처럼 보인다. 

 

 

 

 

촛대의 방, 사진 양옆에 촛대가 보인다. 

 

 

 

  아라찌의 복도는 벽걸이 융단이 가득 찬 복도로 벽에는 각종 카펫으로 가득차 있다. 이들 카펫은 원래 시스티나 성당에 있던 것을 옮겨 왔으니 내용은 당연히 성화다. 길이가 100m가 넘는 지도의 복도는 바티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이 복도 양 벽에는 이탈리아의 전역을 그린 지도가 장식되어 있다.

 

 

 

 

 

촛대의 복도에서 볼 수 있는 다산의 여신상

 

 

지도의 방의 천장과 벽면을 장식한 이탈리아 지도

 

 

 

  한편 라파엘로의 방에는 콘스탄티누스 홀, 엘리오두루스의 방, 세냐투라의 방, 보르고의 화재의 방 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곳에는 라파엘로의 제자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한 10개의 훌륭한 작품이 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아테네 학당〉이 있다. 중앙에 손가락을 위로 가르키며 나오는 사람이 플라톤인데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이다. 바로 옆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손바닥은 수평이다. 플라톤은 이상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론을 뜻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보르고 화재의 방, 이 방은 율리오 2세가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의 접견 장소로 사용하다 레오 10세 시절부터 식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 방은 1514년부터 1517년까지 라파엘로가 제자들과 함께 벽화 장식을 담당했다.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서기까지는 마음이 경건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소 성당인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은 천정과 벽면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 바티칸 박물관을 거쳐야 하며 입구는 아담하나, 곧 엄청난 규모의 건축과 역사적 유물에 놀라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가 열린다.

 

  시스타나 성당은 성모 승천에 바쳐진 바티칸 궁의 거대한 소성당으로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의 명에 의해 1475년경 피렌체 건축가 죠반니 데 돌치(Giovanni de'Dolci)가 설계한 것으로 1483년에 완공되었다. 길이는 40.23m, 폭은 13.40m, 높이는 20.70m로 고대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파괴한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크기다.

 

  ‘시스티나’라는 말은 이 성당을 만든 식스투스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예술적인 면 뿐 아니라, 종교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범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제로의 <천지창조>이며, 제단화는 <최후의 심판>이다. 화려하면서도 성스럽다.

 

 

 

  그러나 시스티나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와 제단 위에 위치한 벽화인 <최후의 심판>을 비롯한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수많은 벽화 때문이다.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했으며, 천장에 그려져 있는 <천지 창조>라는 작품을 봤을 땐 어떤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져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없다.

 

  <천지창조>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받은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그의 조수들과 함께 그렸는데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었고, 다시 34개의 면으로 나누었다. 제단 쪽에서부터 ‘창세기’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그릴 작정이었는데 그의 첫 그림은 입구 쪽에 있는 ‘술 취한 노아’였다.

 

  전체 그림의 주제는 천장 중앙은 ‘창세기’, 그 주변은 ‘12인의 무녀와 예언자’, 삼각형 형태의 벽과 반월형 벽면은 ‘그리스도의 조상’, 그리고 네 모퉁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려 넣었다. 800㎡ 넓이의 천장화 가운데에 창세기는 ‘어둠과 빛의 구별’ ‘해와 달의 창조’ ‘바다와 육지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 ‘노아의 제사’ ‘홍수’ ‘술 취한 노아’ 등으로 구성하였다. 그 주위에는 ‘그리스도의 조상(彫像)’과 이스라엘의 역사 속의 예언자들로 꾸며져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미켈란제로의 <천지창조> 

 

 

 

  천치창조 화 중 아담의 창조 부분은 지금이라도 서로 맞닿을 것 같은 손가락이 관전 포인트다. 오른쪽의 손가락은 생명력에 넘치는 힘찬 손가락이고, 왼쪽의 손가락은 힘없이 쳐져 있다.

 

  각각의 손가락에서 팔과 어깨를 더듬어 올라가면 신의 위엄 있는 얼굴과 지금 막 깨어난 듯한 청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육체 속에 영혼을 불어 넣으려는 야훼의 손길이 막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부분 

 

 

 

  제단화인 <최후의 만찬>은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린 뒤 1536년 바오로 3세의 명으로 그리기 시작하여 1541년 완성했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 혼자 그렸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61세의 고령이었다. 226㎡에 달하는 성전의 제단 벽면을 차지하는 이 프레스코 벽화는 상하 4층으로 나누어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작품 한 가운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가 서있고, 어떤 사람들은 천국으로 들림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작가는 그 옆에다 성 바돌로매의 벗겨진 껍질의 모습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모두 391명의 인물이 그려진 이 그림에는 사람의 모든 동작을 표현했으며 같은 모양이 없다.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화인 미켈란제로의 <최후의 심판>, 기독교인들은 이 그림 앞에서 미래에 자신이 처할 자리가 어디일지 심각하게 돌아보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처음에 그렸을 때는 그림이 모두 나체였으나 그 후 약간씩 옷을 입혔다고 한다. 그러나 해부학적으로 표현한 근육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고개를 쳐들고 그저 무언의 탄성을 지를 뿐이다.

 

  성당 안의 여러 개의 방을 거치면서 너무나 많은 그림을 보자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한참을 멍하니 그렇게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관람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성 베드로 성당 쪽으로 나왔다.

 

 

 

 

 산 피에트로 성당

 

 

 

 

 

 

 

  보통 성 베드로대성당(San Pietro Basilica)으로 부르는 이 성당은 가톨릭교회의 본산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단순히 규모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세계최대라 할 수 있다.거대한 반구형 돔이 인상적인 성 베드로성당은 로마르네상스 시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성베드로대성당, 한가운데에 문처럼 있는 것은 발다키노

 

 

 

  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베드로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서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 성당이 처음 세워졌다. 서기 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것을 헐고 새로운 성당을 지었다가 16세기에 와서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구상부터 시작된 공사는 총 120년간 이어져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의 돔은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 118m(40층 높이)에 달한다. 이 돔은 1564년 그가 죽은 뒤,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을 이어받아 1590년 완성되었다.

 

 

 

 

 

성베드로성당의 지붕과 돔 내부

 

   대리석 기둥 사이로 5개의 문,  그 입구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 바닥과 콘스탄티누스 대제(274-337)의 기마상이 서 있다. 머리가 서쪽이고 동쪽으로 길쭉한 십자가형으로 된 성당 내부의 웅장한 공간에 위압당한다. 내부 길이 약207m, 폭은 넓은 곳이 98m, 좁은 곳이 41m라고 한다.

 

  성당의 내부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건축양식으로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구석 유리창 뒤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 만든 이 작품은 그가 젊었을 때의 대표작이며, 두 인물 성모마리아와 예수가 완벽한 미를 이루고 있고 성모 마리아의 슬픔에 잠긴 성스러운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서명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미켈란젤로의 팬들이 이 작품을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 오인하자 그가 아무도 없는 밤에 성모의 가슴부분 옷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성당 가운데 둥글게 솟은 돔 위에 있는, 작은 탑처럼 뾰족 솟은 첨탑이 바로 큐폴라(Cupola)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이 첨탑에서 돔 내부에 햇살이 들어오게 구멍이 하얗게 나있다. 커다란 돔 위에 작은 창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빛이 들어오고 있다.

 

  돔 밑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베르니니의 작품 <천개>이다. 돔 아래 제단의 검은색 청동 기둥이 구불구불 솟아 있고, 그 뒤쪽 십자가 정점부가 되는 구석에 성 베드로의 교황좌(St. Peter's Throne)가 있다. 5층 높이에 해당되는 이 작품은 중앙대 제대를 덮고 있는데, 교황만이 이 제대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제대와 천개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돔의 바로 앞에 있는 좌상이 청동제의 성 베드로 상이다. 이 좌상의 발을 만지거나 키스를 하며 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 때문에 신자들의 끝없는 입맞춤으로 청동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발가락 부분이 많이 닳아져 있다. 이 중앙대 제대 바로 밑 지하에는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베드로 좌상

 

 

  대성당 좌우 벽면으로는 소성당이 여러 개 있다. 제법 큰 성당 10개  정도를 하나로 결합하여 대성당으로 건축한 셈이다. 가는 곳마다 교황과 성인들의 동상이 무수히 서있다. 건물 내부가 아니라 유적이 밀집한 도시의 중심 골목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입장할 때에는 반바지나 팔이 없는 상의 같은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는 입장하지 못한다는 점에 유의 하자. 성당의 경건미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위반하면 시국을 경비하는 스위스 용병이 출입을 금지시킨다. 그들은 파랑, 노랑, 빨강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데, 이 제복 또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것이다.

 

 

 

성 베드로 광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매주 일요일 정오가 되면 교황이 바티칸 궁전에서 창문을 열고 시민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그때마다 교황의 모습을 보려는 신도와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찬다.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베르니니(Bernini)가 1667년에 완성한 광장 한 가운데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25.5m 높이의 기원전 오벨리스크가 서있다. 이 오벨리스크와 분수를 연결하는 바로 중간점에서 서서 주변의 주랑을 보면 4중으로 된 기둥들이 일렬로 보인다. 베르니니는 주랑을 두 개의 원 중심을 향해 방사상으로 늘어서게 한 것이다.

 

  284개의 도리아 식 원주가 늘어선 반원형 회랑의 지붕 끝에는 140명의 성인상(聖人像)이 장관을 이루며 서있다.  거대한 광장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의 10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120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베드로 광장으로 나가니 갑자기 몰려온 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네렸다. 관광객들이원주가 서있는 복도로 와 잠시 비를 피하고 있다. 

 

 

 

 

 

  한 미디로, 바티칸 박물관을 비롯한 성당 모두가 규모나 내용 면에서 너무나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았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그들의 작품은 너무나 황홀했다. 어떻게 저토록 강렬한 예술혼(藝術魂)을 불태울 수 있을까?  신이 내리는 영감(靈感)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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