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미투 詩에 문학계 발칵
"En은 젊은 여자만 보면.."
정상혁 기자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시인 최영미(57)씨가 원로 유명 시인을 사실상 실명 비판하는 시(詩)를 발표해 문단이 술렁이고 있다. 최씨가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총 7연 27행의 시 ‘괴물’이 여성 후배의 몸을 함부로 만지는 등의 추행을 저지른 비판 대상을 ‘En선생’으로 칭하고, ‘100권의 시집을 펴낸’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를 함의하는 ‘노털상 후보’라는 수식어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편집부 관계자는 “처음 원고를 받고 어조가 너무 강해 그대로 실을지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시는 지난해 12월 나왔지만 최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문 폭로 이후 확산된 미투(Me too) 운동 바람을 타고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최씨는 6일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풍자한 시”라며 “문학작품으로만 봐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출처> 2018. 2. 6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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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미투' 폭로에 동조·반발.. 발칵 뒤집힌 문학계
김인구 기자
입장따라 서로 다른 반응 보여 “위선·비겁으로 감싸면 안돼”
“문단 성추행 집단 인식 불편” 영화계서도 파문 잇단 확산, 음악·미술계까지 번질 조짐, 남성혐오·인신공격 우려도
해묵은 ‘성폭력’ 논란이 또다시 문화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풍자 시 속에서 국내 대표적 시인의 성희롱 행태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충격을 준 뒤, 문학계 내에서 이에 반발하거나 동조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2016년 10월 SNS에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촉발된 이 문제는 잠시 수그러지는 듯하다가 재점화하고 있다. 나아가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음악·미술계 등 문화 전 분야로 더욱 더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영미 시인 폭로, 이승철 시인 반박
최영미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의 지난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6일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면서 충격을 줬다.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원로 시인의 성희롱을 고발했는데, 문학계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최 시인은 이날 밤엔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원로 시인은 상습범”이라며 “(문단 내) 성희롱 피해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거듭 폭로했다.
이에 7일 인터넷 상에는 최 시인을 반박하거나 응원하는 문인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을 지낸 이승철 시인은 “최 시인 인터뷰를 보는 동안 한국 문단이 성추행 집단으로 인식되도록 주지되었기에 몹시 불편했다”면서 “‘미투(Me Too)’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류근 시인은 “그의 온갖 비도덕적인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 지금 무엇 하고 있나.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 나는 선배들에게 늘 이렇게 듣고 배웠다. 최 시인의 새삼스럽지도 않은 고발에 편승해서 다시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인들이여”라고 한탄했다.
이 와중에 한국시인협회는 새로 뽑은 회장의 과거 성추문 전력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시인협회는 지난달 23일 평의원 회의에서 감태준 시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감 시인이 중앙대 교수로 있던 2007년 제자 성추행 추문에 휘말렸던 전력이 불거지면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감 시인은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처신이 문제시되면서 학교에서 해임된 후 복직하지 못했다. 시인협회 관계자들은 “평의원들이 안이하게 판단했다. 어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영화계, 이현주 감독의 성폭행 혐의
6일엔 문학계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잇따라 성폭력과 관련한 파문이 번졌다. 동성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거론됐던 이현주 감독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입장문을 발표했고, 피해자 A씨는 크게 반발했다. 이 감독은 혐의에 대해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A씨는 “명백한 거짓말”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성추행 혐의로 상대 여배우에게 소송당한 배우 조덕제도 ‘미투’ 운동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미투 운동은 옳고 그름이 아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당한 운동”이라며 “다만 미투 운동이 무조건 여성은 피해자라는 강박관념에만 사로잡혀 남성 혐오를 유발하는 성 문제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문화계 성폭력 사태가 극단적인 ‘남성혐오’나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성폭력이 결국 남성인 가해자와 여성인 피해자의 이분법을 넘어 권력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것에 문제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 미술계도 재점화… 어디까지
2년 만에 재점화한 ‘문단 내 성폭력’ 사태는 영화계는 물론 음악, 미술 등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내 클래식계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SNS에 ‘클래식계 성폭력’을 검색하면 교수와 제자 간의 부적절한 행위를 고발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술계 역시 성추문 파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년전부터 ‘미술계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국립미술관은 물론 독립 예술 공간 등의 큐레이터가 여성 작가나 여대생 등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이야기들이 온라인상에 쏟아졌다. 한 신인 여성작가는 “여성 작가들은 분노하고 답답해한다. 대부분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공론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출처> 2018. 2. 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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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문단의 거목이란 사실이 면죄부 될 순 없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 출처='황해문화' 제공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는 첫 행부터 짐작 가는 익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3행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 En선생의 상습 성추행을 고발하고, 이어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따위 시구가 En선생의 정체와 문단의 침묵을 폭로한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의 수십년 성추문 파문은 문단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문단 내 성폭력을 증언하는 ‘미투(나도 피해자)’가 잇따랐다. ‘괴물’을 실은 계간 《황해문화》의 주간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사진)에게 저간의 사정을 물었다. 김 교수는 이해관계에 얽혀 수준 이하 작품을 칭찬하는 ‘주례사 비평’을 비롯한 문단 내 폐습과 권력관계를 비판해온 문학평론가다.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감안하자는 일각의 옹호론에 대해, 김 교수는 “그가 거목이란 사실이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며 각을 세웠다. 지난 9일 인하대 서호관 연구실로 찾아가 진행한 인터뷰는 ‘문단 해체’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 ‘괴물’ 게재를 결정하면서 논란이 될 것을 직감했겠다.
“당연히. En선생이라는 이름부터 그랬다.”
- 최영미 시인도 실릴지 반신반의했다고.
“《황해문화》 편집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게재를 결정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집위원들의 뜻을 물으니 물은 내가 부끄럽게도 만장일치로 “와이 낫?”이었다’고 경위를 적었다.)
- En선생이 누군지 최영미 시인에게 직접 들었나.
“그렇지는 않다. 직관적으로 알았다. 누구나 알 수밖에 없다. (고은 시인의) 젊은 시절부터 워낙 소문이 자자했으니.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 우문일지 모르겠으나,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건가.
“뼈아픈 얘기다. 누군가는 나서 그만두라고 한 마디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결코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문단의 젠더(gender) 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방증한 것이다. 근래로 오면서는 고은 선생이 워낙 거목이 되었다. 안이했다. 저를 포함해 모든 공범자 혹은 방조자는 반성해야 한다.”
- 직접 목격했나.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최근 고은 선생을 만난 적은 없다. 20~30년 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흔히 ‘너 참 곱구나, 어디 이리 와봐라’ 같은 말을 한다든지. ‘아이고, 고와라’ 하면서 손을 주무른다든지. 어디에서든 젊은 여성이 자리하지 않으면 흥미 없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듯하다.”
김 교수는 페이스북에 당시를 이렇게 전했다. “그가 젊고 예쁜 여성들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이쁘다느니 어떻다느니 희롱하고 또 이리 와봐라 저리 가봐라 하면서 손을 잡고 더듬고 하는 일은 나처럼 이런저런 행사에 잘 끼지 않는 사람도 직접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그것은 전설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파다한 문단의 일상 같은 일이었다.” “문단이건 다른 문화 예술판이건 젠더 감수성, 일상적 인권 감수성은 거의 제로라서 어딜 가든 크고 작은 En선생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고은 시인이 왜 그랬다고 보나.
“일종의 예술가의 일탈의 특권? 면죄부? 같은 느낌이랄까. 괴테, 피카소 같은 해외 예술인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예술가연 하며 현실의 윤리의식을 초탈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는 윤리적·도덕적 잣대로 예술을 재단할 순 없다는 문단의 나이브(naive)함도 섞였을 터이다. 실은 노추(老醜)다.”
- 결코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고은 선생의 행위를 떠올려보면 묘한 느낌이 있다. 막 음탕하다거나 더럽다기보다 응석받이마냥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혹자는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까칠하다 여길 만한…. 물론,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엄밀히 말해 성추행이다. 일탈 특권, 면죄부 따위의 내적 논리가 우선할 수는 없다.”
- 예술가에게 규범·질서를 들이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론 아닌가.
“동의한다. 그러나 마지노선은 있어야 한다. 모든 작가적 행위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범죄까지 용인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건 명백한 범죄다. 한편으로 질타하며 한편으로 즐기는 우리사회의 이중적 성의식 반영 아닌가 싶다.”
- 고은 시인의 제대로 된 입장 표명이 안 나온 것 같은데.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본인이 정확히 시인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 격려 차원이었다는 정도의 사과로는 미흡하다.”
-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문인인 만큼 대중의 실망이 크다.
“그럴 수밖에. 과거의 업적을 넘어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향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전언을 들어보면 고은 선생은 최근까지도 그랬다고 한다. 그건 문제다. 바뀐 젠더 의식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다는 거니까. ‘과거에 그런 적 있다, 당시엔 잘못인 줄 몰랐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 현재적 의미가 중요하다는 거구나.
“그걸 생략하면 그동안 쌓아온 것은 사상누각이 된다. 민주화운동 경험을 특권화해 도덕적 헤게모니를 쥐고 현재의 잘못이나 불성실을 은폐하려는 ‘86세대’가 비판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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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문단이 해체될 때가 됐다"고 했다..
그에게 고은 시인은 ‘애증의 대상’이다. 다시 페이스북 글을 인용하면 김 교수는 “여전히 그 En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 쪽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피안감성〉에서 〈새벽길〉을 거쳐 〈만인보〉에 이르는 그의 시적 여정 한 땀 한 땀을 늘 아끼고 좋아해 왔으며, 무엇보다 70~80년대의 헌신적 투쟁 과정 속에서 만난 그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무명 시절 고은 시인이 결혼식 주례를 맡아준 개인적 인연이 겹쳤다.
- 시인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정확히는 ‘애증’이지. 고은 선생에 대한 글을 썼다가 페이스북에 반성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그보다 더한 사례도 많았다. 등단이나 작품 게재를 미끼로 갖가지 성폭력을 저지른 자도 적지 않다.”
- 적어도 고은 시인은 그러진 않았다?
“분명히 하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은 선생은 잘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고은 선생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사자후, 거침없이 직진하는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가 그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반면 어떤 과잉 자의식, 노벨상에 대한 것이라든지 빵점인 젠더 의식 같은 부분은 싫었지. 그런 면에서의 애증이다.”
- 더한 이들이 문단에 많았다는 건데.
“고은 선생의 행위는 만인 환시중에 일어난 일이다. 더 악랄한 이들은 폐쇄적 공간으로 따로 불러내 대가를 바라고 음습한 짓을 저질렀다. 고은 선생의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경중은 있을 수 없으되 감춰진 더 많은 성폭력이 문단에서 일어났다는 얘기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문단의 남성 중심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인네가 젊은 여성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겠나. 그런 풍토 자체가 권력관계다. 다만 배경에 그런 권력관계가 깔려있는 것과, 권력관계 자체를 구체적 거래조건으로 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거다.”
이번 사태를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는 지난해 발표한 〈죽은 시인의 사회- 작가의 윤리와 도덕〉에서 문제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문단 밥을 먹고 살아온 모든 남성 작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부 ‘잠재적 용의자’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하나의 기득권 제도이자 비즈니스의 세계가 되어 각종의 미시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있는 현재의 한국 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의 결론은 이랬다. “이 ‘문단’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제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질문을 해야겠다. 시인의 행적과 문학적 성취는 별개로 봐야 하는가?
“발표된 작품은 작가 소유라기보다는 공적인 것이다. ‘저런 성범죄자의 작품’ 식의 매도나 ‘작품은 좋으니 별개다’ 식의 접근 같은, 양극단을 넘어선 역사주의적 평가가 있어야 한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고은 시의 남근주의적 울림이 어디서 온 것이냐. 초기에는 버림받은 자의 감성, 퇴폐적 초월성 같은 것이 보인다. 독재 정권과 싸우는 투쟁기를 거치면서 과도한 남성성이 더해진다. 독재 정권의 강력한 가부장주의와 민족주의에 저항하는 또 다른 가부장주의와 민족주의의 표출로 볼 수 있다. ‘강 대 강’의 오랜 충돌 속에 남성적인 동질 의식을 형성했고, 그게 여성을 수없이 대상화하는 고은 시의 표현들로 드러난 것 아니겠나.”
- 예전 문학작품 속엔 그런 요소가 상당히 많다.
“80년대만 해도 소설의 거의 모든 여성 등장인물에 대한 표현이 성적 대상화 범주에 들어간다. 예컨대 주인공이 다방에 앉아있는데 여성 ‘레지’의 육체를 묘사한다든지. 플롯(구성)상 개연성도 없는데 말이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만 보는 이분법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할까. 평론가로서 더 문제로 보는 건 ‘무(無)여성의 세계’다. 양성이 사는 게 아니라 여성 없이 존립하는 세계처럼 보이는 작품. 예컨대 김훈 선생 작품이 그렇다. 〈남한산성〉 같은 남성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나 호오와 별개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 작품들을 다 갈아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검열해서 다 고치자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또 다른 파시즘이 될 수 있다. 단 작가들이 지금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
- 동의하면서, ‘문단 해체’ 주장은 어떤 맥락인가.
“글쓰기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소설·시·평론 등의 글쓰기를 특권화해 문인이 어떤 보호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낡은 것이다. 좀 더 발본적인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 그러나 문단의 힘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힘은 문학 출판자본에서 나온다. 소위 좋은 작가와 명작을 발굴하는 메커니즘의 작동 장(場)으로서 문단이 유효한 건데, 지금은 폐쇄적으로 변했다. 그 장에서 배제된 작가들, 지면을 못 얻어 개점휴업인 신춘문예 등단자가 너무 많다. 몇몇 출판자본의 포섭망에서 빠지면 등단 안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 ‘낡은 카르텔’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재하며 댓글 피드백을 동력으로 글을 썼다는 공장노동자 출신 김동식 작가의 최근 소설집 《회색인간》이 주목 받는다. 과연 문단이 김동식 작가를 품을 수 있을까?
“간신히 붙들고 있는 어떤 자격증인 셈이다. 촘촘한 서열과 특권의 권력관계로 유지되는 문단이란 환상 위에 성범죄가 독버섯처럼 자라난 거다. 글 쓰는 사람에게 위계가 있을 수 있나? 등단 50년 된 이나 막 첫 작품을 쓴 이나 글은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 어린애 취급하고, 먼저 와서 인사해야 하는 굉장히 봉건적인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계급장 떼고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문단이란 뭔가. 본질적으로 예술가 모임, 동호인 집단 아닌가. 문단이 존재한다 해도 일종의 작가 동업조합이 돼야 한다. 자유로운 주체들의 자발적 결사체라면 존속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직이 아니라, 미적 근대성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가 문단에게 중요하다.”
- 전체 문단을 매도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계로 확산되는 '미투 바람'… '성추문 전력' 시인협회장 사퇴 요구 비등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이너서클’에 속해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사태를 맞아 꼬리도 못 자르겠다고 버티면 결국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안으로 문단 해체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되었다.” 한때 국문학도였던 기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출처> 2018. 2. 13 / 한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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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이윤택·김기덕… 비주류 예술가를 모독하다
[魚友 야담]
자신이 지닌 문화 권력을 성폭력의 지렛대로 삼았다는 만행 이외에, 이들의 공통점은 비주류 아웃사이더의 예술적 성공을 상징하는 한국적 사례였다는 점입니다. '무학(無學)의 신화'였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불편합니다.
시인 고은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6·25 때문이었죠.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노년의 영광이 청·장년기 소음을 덮었지만, 젊은 날의 시인은 가출과 자살 기도, 입산과 방랑, 허장성세와 기행, 폭언과 폭주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 역시 초등학교 졸업장이 학벌의 전부입니다. 10대 대부분은 청계천의 공장 노동자였죠. 실망을 넘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연극연출가는 고졸이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2년제 시절의 방송통신대를 나온 뒤, 그는 '가방끈 짧음'을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10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우리 사회의 학력 위조 사건이 터졌을 때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높였죠. "이번 사건은 한국의 지식 사회가 무너졌다는 증거다. 예술가들은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교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맞습니다. 예술 은 그럴듯한 프로필이 아니라 재능과 열정으로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들의 추문과 만행은 자신의 분노와 열등감을 예술적 에너지로만 승화시켜온 수많은 비주류 예술가들을 모독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한다고, 죗값 치르면 되잖냐고 이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의 타기(唾器)이자 침 뱉은 우물이 된 문화 예술계는 이제 어떻게 독자와 관객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요.
<출처> 2018.02.24 03:02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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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女대학원생 성추행하며 신체 주요부위 노출"
(입력 2018.02.27)
26일 40대 문인 A 씨에 따르면 2008년 4월 고 시인은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했다. 행사 후 뒤풀이 성격의 술자리가 열렸다. 고 시인과 문인 출신인 다른 대학의 교수(60), 여성 대학원생 3명 그리고 A 씨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고 시인은 옆에 앉은 20대 여성 대학원생에게 “이름이 뭐냐” “손 좀 줘봐라”고 말하며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만졌다. 누구도 이를 말리지 못했다. 급기야 술에 취한 고 시인은 노래를 부르다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고 한다. 한 여성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A 씨는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추태를 보고도 제지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 시인이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 출판사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50대 문인 B 씨에 따르면 사건은 2000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일어났다. 고 시인은 여성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일부를 더듬었다. B 씨와 출판사 대표 등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침묵했다. B 씨는 “여직원은 출판 계약이 잘못될까 봐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리를 피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고은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최영미 시인은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1993년 제가 목격한 괴물 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따로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십 년을 이어온 추태가 드러나지 않은 건 고 시인의 위상 때문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이고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그는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고 시인의 추태를 오히려 ‘시인다움’으로 떠받들고 그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작품성을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문단 내 ‘카르텔’이 공고했다.
50대 여성 시인 D 씨는 “여성 문인 사이에선 ‘고은 옆자리에 가지 마라’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온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그의 기행을 ‘시인다움’ ‘천재성’으로 합리화하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문인이라면 한평생 돌아보고 자기로 인해 고통받은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출처> 2018. 2. 28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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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고은 시인, 술집서 바지 지퍼 내리고 만져달라고…”
동아일보 이지훈 기자 / 입력 2018-02-28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미투]24년전 성추행 목격담 본보 보내와
“탑골공원 근처서 문인들과 술자리… 의자에 누워 나와 女시인에 추태
동석한 사람 중 누구도 제지안해”
“2012년 광주 노래방서도 노출”… 20대 작가지망생도 폭로
작품을 통해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처음 세상에 알린 최영미 시인(57·사진)이 다시 글을 썼다.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고 한 사건을 마침내 폭로한 것이다.
최 시인에 따르면 사건은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일어났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이었다.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한다. 최 시인은 선후배 문인과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때 ‘원로시인 En(고은)’이 들어왔다. 그가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잠시 후 그는 최 시인과 다른 젊은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동석한 문인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집에 일행 말고 다른 손님도 있었지만 함께한 남성 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최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최 시인은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 침묵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비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미
(2018. 3.2, 조선일보)
전효진 기자
고은은 지난달 초 시인 최영미(57)씨의 시 ‘괴물’로 성추문이 불거진 뒤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공개 기자 회견이나 국내 언론을 통해서는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아 왔다. 이런 가운데 외신을 통해 ‘우회적으로’ 입장을 밝히면서 상습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고은은 성명서에서 "최근에 제기된 의혹들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나는 일부 인사들이 나에 대해 제기하는 상습적인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고은은 “지금 나는 단지 한국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해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실과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외국인 친구들에게 ‘나는 나의 아내와 나 자신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단언한다”고 했다.
고은은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명예를 유지하면서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슬리씨에 따르면 고은은 지난달 종양 치료를 위해 입원했으며, 현재 회복 중이지만 수술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상태다.
고은의 성추행 의혹은 최영미가 지난해 12월 발행된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총 7연 27행의 시 ‘괴물’을 통해 제기됐다. 이 시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문을 폭로한 뒤 확산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바람을 타고 지난달 초 뒤늦게 주목받았다.
'괴물'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최영미가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En선생'으로 칭하고, 노벨문학상을 뜻하는 '노털상 후보'라는 표현이 나와 고은을 사실상 실명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이혜미 시인 등이 "나는 'En 시인'과 함께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의 여러 우스운 만행을 접했다"며 추가 고발에 동참했다.
최영미는 지난달 말 한 일간지에 보낸 기고문에서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에서 선후배 문인과 가진 술자리에서 ‘원로시인 En(고은)’이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운 뒤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잠시 후 그는 나와 다른 젊은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명령하듯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I regret that my name has been brought up in the recent allegations. I have already expressed regret for any unintended pain that my behaviour may have caused. However, I flatly deny charges of habitual misconduct that some individuals have brought up against me”. “In Korea I would simply wait for the passage of time to bring the truth to light and settle the controversy. However, to my foreign friends, to whom facts and contexts are not readily available, I must affir m that I have done nothing which might bring shame on my wife or myself. All I can say at the moment is that I believe that my writing will continue, with my honour as a person and a poet maintained.”
출처 : 2018. 2. 3 / 조선닷컴
최영미 시인 "부끄러운 짓 안했다? 내 말과 글은 사실"
뉴시스(2018. 3. 4)
4일 오후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입니다"라며 "나중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습니다"라는 입장을 올렸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괴물'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괴물'의 대상인 'En선생'을 가리키며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통해 'En선생'의 성폭력을 거침없이 폭로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이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켰지만 당사자인 고은은 공식적인 반응없이 침묵했다. 이에 최 시인은 'En선생'의 과거 행위를 구체적으로 추가 폭로했다.
지난달 27일자 동아일보에 최영미 시인은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에 원로시인 En이 들어와 의자 위에 누워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추태를 벌였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며 고은의 성추행 행각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 시인은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 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고 했다.
이 글은 다시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탑골공원 근처 문인들의 단골 주점 전 여주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영미의 글은 있을 수 없는 가공의 소설"이라며 "삭제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녀는 "그분(고은)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자신이 말했다는 “아유 선생님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며 “그 시대 그 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은 시인은 지난 2일자 영국 가디언에 "나는 최근 의혹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유감이며, 나는 이미 내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habitual misconduct) 비난은 단호하게(flatly) 부인한다"고 공식 성명을 냈다.
고 시인은 또 "지금 내가 이 순간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지닌 명예와 함께 내 글쓰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예술가니까 그 정도는" .. 제대로 처벌 안 해 '괴물' 키웠다
문단, 최영미 폭로에 "왜 들추나"
성추행보다 조직 망신 되레 걱정
'입시·콩쿠르' 계파 나눠먹기 철옹성
미투 용기 내려면 "인생 건 도박"
━ 미투, 이제 시작이다 <중>
◆방치·묵인·봉합=대학로 극단 대표 K는 요즘 “6년 전에 터졌기에 망정이지…”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2012년, 극단 조연출이 술자리에서 신입을 추행했다. 일회적인 실수였고 조연출도 사과했다. 대표도 그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여자 단원 2명이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퇴출을 요구했다. 대표가 말렸지만 단원들은 강경했다. K는 “그때 수업료를 지불한 덕분에 극단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투 터지고 나서 ‘너희 덕에 (우리 극단이) 살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태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성폭력 응징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꼽는다. 조직 내에서 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개-조사-규명-(가해자) 처벌을 거치기보다 묵인-방치-봉합-(피해자) 인내의 과정을 경험하며 “부끄럽지만 관행일 뿐”이란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 미투의 전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가 있었고, 2015~16년 문학과 미술·영화계에서 ‘#문화계_성폭력’ 운동이 일어났지만 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스승과의 예속 관계=2년 전 ‘#문단_내_성폭력’ 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가해 남성이 피해 여성에게 빈번하게 던졌던 말은 “도덕의 벽을 깨라”였다고 한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예술가에게 허용되는 표현의 자유를 위계질서에 의한 성폭력의 빌미로 악용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 예술계에선 “미투를 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건강하다는 증표”라는 말도 나온다. 스승과의 예속 관계가 체화된 분야에선 성(性)을 운운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전통춤 관계자는 “입시, 콩쿠르, 국공립 단체 입단, 무형문화재 전수 등이 계파별로 나눠 먹으며 철옹성처럼 얽혀 있다. 거기에 균열을 가한다는 건 인생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상화된 성폭력은 결국 빈곤한 민주주의의 증거라는 진단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1987년 이후 30여 년간 겉으로 보이는 제도적 민주화는 진척됐을지 몰라도, ‘삶의 민주화’는 여전히 구시대적이고 폭력적이었음을 미투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존엄을 환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이지영·최민우·노진호·최규진·홍지유 기자 jylee@joongang.co.kr
술집 여주인의 반격…"최영미 시인, 소설 그만 써라"
한 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늦게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려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8월 31일 조계사 농성 현장에서 만난 김성동 작가(왼쪽)와 한복희 씨]
그는 이어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며 "그 시대 그시 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횡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 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처벌을 하는 건 심한 것 같다"고 반박했다.
한 씨는 특히 최영미 시인의 폭로 글에 등장한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최 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아유 선생님두'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고 꼬집었다.
한 씨는 또 "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면서도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 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 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한 씨는 이어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 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길"이라며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 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라고 강조했다.
한 씨는 이와 함께 본인에 대해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라며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한 씨가 올린 글과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보낸 글의 전문이다.
▲ 한복희씨의 글
성추문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끓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 30년전 그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것 같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 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젊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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