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인문학박물관
시의 향기와 철학적 사색이 숨 쉬는 공간
글·사진 남상학
양구에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과 ‘안병욱. 김형석 철학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언젠가 양구에 가면 꼭 방문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해인 시인의 시는 신앙을 가지고 경건하게 사는 영혼의 소리여서 좋고, 안병욱·김형석 두 교수는 내 삶에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양구 여행길에 그 꿈을 이루고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도착한 곳은 양구 인문학박물관이었다.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진 인문학박물관 건물은 비교적 단출한 느낌이었으나 건물 2층 벽면에 ‘시 & 철학’이라 써 붙인 글씨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최전방 지방도시에 시와 철학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놀라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해인 시인의 문학적 향기와 두 교수의 철학적 사색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구로 들어섰다.
: 시(詩)가 있는 공간
박물관 1층은 ‘시가 있는 공간’, 2층은 ‘철학이 있는 공간’, 3층은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박물관에 입장하여 먼저 1층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해인 시인과 관련된 전시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서정주, 조지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10명의 현대 시인에 대한 전시물만 가득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본래 1층은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이었으나 가톨릭 수녀회에서 이해인 시인 관련 전시물을 철거해 가는 바람에 부랴부랴 그 자리에 한국을 대표하는 10명의 현대 시인의 관련 자료를 전시했다고 했다.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양구군에서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을 꾸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해인 시인은 이곳 양구읍 동수리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구군은 재빠르게 그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인정하고 그의 고향에 건물을 지어 지역 출신 인물을 홍보할 겸 이해인 시인의 시 문학을 널리 알리려고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과 함께 ‘안병욱. 김형석 철학의 집’을 설치 운영할 생각이었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이해인의 유물과 작품은 간 데 없고
이곳 출신의 이해인 수녀는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발표한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그의 시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맑은 영혼을 불어넣어 주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뒤에 발표한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써내려간 산문집으로 그 반응이 매우 높았다. 그 책 속에는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이 보이는 것처럼,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을 깨달으며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시인의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참으로 이해인 수녀는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수녀였다.
그래서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에는 그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품을 비롯해 원고와 사진, 작품집이 전시됐다. 이해인 수녀 역시, 자신의 시 문학 공간의 마련에 부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청소년이 시를 많이 읽으면 자살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시가 정서를 맑고 밝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피력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해인 시 문학의 공간’은 시인 이해인 수녀의 시와 삶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큰 몫을 담당했다.
그런데, 왜 수녀회에서는 이해인 수녀의 유품을 비롯해 원고와 사진, 작품집 등을 모두 회수해 갔을까? 아무리 세상 명리와는 초연해야 하는 것이 수녀의 삶이라 해도, 맑고 고운 아름다운 시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주는 그의 작품과는 별개의 것이어야 하고, 종교 역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의 문학적 업적은 길이 보존되어야 옳지 않을까? 이 유물들이 부산에 있는 모 수녀원에 방치되다시피 보관되어 있다는 이곳 담당자의 말을 듣고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1층의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1층 전시실에는 서정주, 정지용, 박목월,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박두진, 백석, 김영랑, 조지훈의 작품과 시집, 사진 자료들로 채웠다. 모두 1900년대 한국 시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인들이다. 시적 경향이나 특별한 기준 없이 우리에게 많이 애송되던 시를 소개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인문학박물관 앞뜰에 '이해인 시 문학관 공간'이란 돌비를 세웠으면서도 실제로 전시실에는에는 이해인 시인의 전시물은 전무하다.
• 서정주(徐廷柱, 1915 ~ 2000)
전북 고창 출신으로 호는 미당(未當). 1936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 <귀촉도>,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등이 있다.
• 정지용(鄭芝溶, 1902 ~ 미상)
충북 옥천 출신으로, 섬세한 이미지 구사와 언어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보여준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향수>, <비>, <인동차> 등이 있다.
• 박목월(朴木月, 1915 ~ 1978)
경북 경주 출생으로 본명 박영종이다. 1939년 <문장>에 ‘길처럼’, ‘연륜’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향토성이 강한 서정에서 출발하여 만년에는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시 세계를 보였다. 시집으로 <청록집>(공저), <산도화>, <구름의 서정>, <경상도의 가랑잎>, <토요일의 밤거리> 등이 있다.
• 김소월(金素月, 1902 ~ 1934)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이다.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민족적인 정서로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 눈물, 정한 등을 주제로 하여 일상적이면서 독특하고 울림이 있는 시를 창작했다. 시집으로 <진달래꽃>이 있다.
•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호는 만해(萬海). 시인·승려·독립 운동가이다. 충남 홍성 출생으로 1918년 불교 잡지 <유심(唯心)>에 시 '심(心)'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고,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가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종교적 연기풍의 시를 주로 썼다. 작품으로는 시집 <님의 침묵> 외에 <조선 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불교 대전> 등이 있다.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북간도 출생이다.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 박두진(朴斗鎭, 1916 ~ 1998)
경기 안성 출생으로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향현’, ‘묘지송’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역사나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품을 썼고, 후기에는 기독교적 신앙 체험을 고백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시집으로 <청록집>(공저), <오도>, <포옹무한> 등이 있다.
• 백석(白石, 1912 ~ 1996)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 김영랑(金永郞, 1903~1950)
전남 강진 출생. 본명 윤식(允植)이다.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을 간행,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하며 잘 다듬어진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데 힘썼다. 시집으로 <영랑 시집>, <영랑 시선> 등이 있다.
• 조지훈(趙芝薰, 1920 ~ 1968)
경북 영양 출생으로 본명 동탁(東卓)이다. 1939년 <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동양의 회고적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에의 향수, 민족의 한(恨)을 고전적 운율로 노래하였으며, 박두진, 박목월 등과 <청록집>을 간행하였다. 시집으로 <청록집>(공저), <풀잎 단장>, <역사 앞에서>, <여운> 등이 있다.
‘10인 시인’의 선정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10분 시인에 관한 전시물을 둘러보고 10인의 시인을 선정할 때 무슨 기준을 적용했는지 묻고 싶었다. 백석 시인을 포함시키면서 유치환 시인을 누락시킨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시와 시인들"이라면, '청포도'의 시인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은 그 누구에 못지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유치환은 생명에 대한 열정을 강렬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인 의지도 보인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인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하는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그의 시집 <청마시초>, <생명의 서> <울릉도>,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보병과 더불어> 등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인 ‘바위’ ‘깃발’ ‘청포도’ ‘절정’ ‘울릉도’ 등 주옥같은 시들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 않는가?
차제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박물관 안내 팸플릿에 “10人의 時人(시인)”, “時(시)가 있는 공간”이라고 표기한 것은 단순한 오기인가, 무지의 결과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시(詩), 시인(詩人'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인데, 특히 공공기관이 팸플릿을 제작할 때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글로만 써도 될 일이 문제가 되었다.
: 철학(哲學)이 숨 쉬는 공간
2층은 안병욱 교수과 김형석 교수, 두 철학자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두 철학자의 고향은 양구가 아니라 북한이지만 양구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후학을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이 만들어졌다. 두 철학자는 김태길(2009년 타계) 전 서울대 교수와 더불어 1960~70년대 철학자이자 수필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70년대 중반, 나는 설흔 다섯을 훨씬 넘은 나이에 김형석 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크리스챤이었던 나는 허무와 죽음, 고독과 절망, 그리고 좌절감 속에서 몸부림치며 방황할 때 그의 수필에서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어렴풋이 찾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김형석 교수는 대학시절,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가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한 신앙강좌에 단골 초청연사이기도 했다.
1970~80년대 '철학계 삼총사'로 불린 안병욱·김태길·김형석 교수(왼쪽부터)
• 안병욱 코너
철학자 안병욱의 인생과 철학을 재조명하는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192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출생한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부터 10년간 《사상계》 편집위원과 주간을 맡으며 비판적이고 참여적인 언론 활동을 했고, 1959녀부터 1985년까지 평생 숭실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63년부터는 흥사단 아카데미를 창설하고, 1992년 도산아카데미연구원 대표를 역임하는 등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알리는 계몽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2000년 한국 NGO지도자 총연합 고문을 맡았다.
전시실에는 동양의 고전 철학을 담은 《철학의 즐거움》을 비롯해 수십 권의 저서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과 그가 남긴 어록들을 둘러보면 평생 우리에게 철학을 전파하고자 노력했던 그의 향기로운 삶이 느껴진다.
안병욱의 인생관인 "생즉도(生卽道), 생즉학(生卽學), 생즉수(生卽修), 생즉동(生卽動)"이란 말에도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산다는 것은 자기 길을 가는 것이요, 죽는 날까지 배우는 일이요, 자기의 재능과 인격을 갈고 닦는 것, 가치 창조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뜻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인생은 수학(修業), 수학(修學), 수덕(修德)의 삼수(三修) 도장이다.
그는 또 인생이 "운명과 자유의 조우"라고 역설한다. 운명과 자유가 서로 만나서 다양한 드라마를 전개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칼과 같다. 칼을 잘 쓸 줄 알아야 손을 베지 않는 것처럼 자유도 도덕과 양심, 정의가 있는 자유를 잘 구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교육을 위한 강연과 에세이, 철학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현대인의 타락하고 혼탁한 정신생활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현대 지성의 방향과 모럴을 제시해왔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자기 상실로부터 자기 회복과 각성이라는 휴머니즘과 자유, 그리고 민족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주요 논문에〈실존주의의 사상적 계보〉, 〈러셀과의 대화〉, 〈죽음의 철학〉, 〈지와 미의 향연〉, 〈실용주의 철학〉, 〈칼의 힘과 펜의 힘〉, 〈러셀의 인간과 사상〉등이 있다. 수필집에는 <현대사상>, <마음의 창문을 열고>, <행복의 미학>, <인생은 예술처럼>, <아름다운 창조>, <도산사상>,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삶의 길목에서>, <이 아름다운 생명을>, <인생 그 순간에서 영원까지>, <산다는 것>, <안병욱 희망론>, <안병욱 명상록>, <빛과 생명의 안식처> 등이 있다.
전시실 곳곳을 장식한 명언과 마음에 새겨두면 좋을 어록들이 향기로운 공명을 일으켜 관람하는 동안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이고, 제일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이란 무엇이냐 하면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또 성실이란 참이고, 거짓이 없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은 성실이다. 성실은 우리가 딛고 설 인생이고, 생활의 반석이다.”
청정심 청무성(淸淨心, 聽無聲).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야 하며, 그러면 무성(소리 없음)을 들을 수 있다. 진리의 소리는 원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유, 사랑, 진리, 신의 말씀 등은 원래 소리가 없지 않은가. 이 여섯 글자는 안병욱의 돌판 묘에도 그의 글씨체인 이당체(물흐르듯한 자유로움의 본인이 명명한 글씨체)오 새겨져 있다.
• 김형석 코너
김형석 교수는 가나하고 힘들었던 시절,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에세이로 지친 영혼을 위로해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멘토였다. 양구가 제2의 고향인 연세대 김형석는 1920년 평남 대동군에서 태어나 평창 숭실중학 재학(신사참배 거부로 폐교) 후 제3 공립중을 거쳐 1943년 일 상지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 하버드대 및 시카고대 연구교수,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인문과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1985년 명예교수가 됐다.
저서로 〈철학입문〉·〈철학개론〉등이 있고 수필집으로 <영원과 사랑의 대화>, <오늘을 사는 지혜>, <현대인과 그 과제>, 〈아름다운 사색〉,〈이성의 피안〉,〈고독이라는 병〉,〈당신은 무엇을 믿는가〉,〈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등이 있다.
그는 말한다. “안병욱 선생과 나는 같은 해, 같은 고장에서, 같은 일로 90평생을 함께 보냈습니다. 겨레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제자들을 키웠습니다. 빈 마음들을 채워주기 위해 많은 글을 썼습니다. 강연과 방송을 통해 반세기동안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뒤따라오는 이들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소원한 김형석 교수는 동료인 안병욱을 앞세우고 그의 몫까지 대신하며 강연과 집필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한국 나이 98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죽음을 앞둔 정적인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 요즘도 일주일에 몇 번은 강연회를 다니고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김 명예교수는 현재 양구 인문학박물관에서 ‘양구인문대학’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 양구 근현대사박물관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580여 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2017년에는 제12회 ‘유일한상’을 수상했다. 유일한상 심사위원회는 “김 교수는 평생 학자와 교육자적 투철한 사명을 바탕으로 철학을 통해 한국의 교육과 문화 발전에 헌신해 온 선각자이자 철학계의 아버지”라며 “그 정신은 이 시대의 등불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표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일상생활을 통찰하고 세상을 달관한 시각으로 조명하면서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폭넓고 깊은 사색을 펼치고 있다.
철학의 집에는 김형석, 안병욱 두 철학자의 서재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김형석 교수의 서재는 창밖으로 파로호 상류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안병욱 교수의 서재에는 '혼', '청정심'같이 명상을 유도하는 글귀가 새겨진 목각이 있다.
안병욱 교수의 서재
김형석 교수의 서재
: 휴식이 있는 공간
3층은 휴식이 있는 공간이다. 청춘관은 각종 세미나와 강연이 열리는 곳. 인문학 강의가 수시로 열린다. 특히 이곳에서는 파로호, 봉화산, 사명산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대가 꾸며져 있어 사철 변화하는 아름다운 주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양구 인문학박물관을 나오는 나에게 두 철학자는 ‘진리란 무엇인가’를 묻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생활의 진리이고 철학과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 남겨진 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가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늦가을 저녁 해가 가을의 대지에 내리고 있다. 문득 이해인 시인의 <새해를 맞이하며>라는 시가 떠오른다.
"산천에 내 마음에 희게 희게 쌓이렴 /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되렴 / 이유를 묻지 말고 그냥그냥 내리는 환한 축복이 되렴 / 아이가 되어 / 눈밭을 뒹굴고 싶은 내 마음에도 / 하얀 레이스를 달아주렴 /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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