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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서 화가들의 예술적 혼(魂)을 탐하다.

by 혜강(惠江) 2017. 11. 4.

 

박수근 미술관

朴壽根美術館, Park Soo Keun Museum

 

박수근미술관에서 화가들의 예술적 혼(魂)을 탐하다.

 

 

·사진 남상학

 

 

 

 

 

  박수근미술관은 그의 고향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131-1에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미술관이라기보다 하나의 넓은 박수근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미술관 본관, 기획전시관인 박수근파빌리온, 숲과 연못, 산책로,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 중 박수근미술관은 2002년 10월 25일에 개관했다. 미술관 건축을 맡은 이종호는 박수근미술관 건축으로 2002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초대작가가 되었다. 탁 트인 공간 위에 박수근미술관이 자리한다. 그만큼 건축적으로 독특한 미관을 자랑한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본관 꼭대기 모습

 

박수근미술관 파빌리온으로 가는 길

 

미술관 부속건물 창작 스튜디오

 

화강암 성벽 같은 미술관 

 

웅장한 화강암 담벼락으로 둘러쌓은 미술관 본관은 마치 성벽과도 같다. 공원 입구에서 잠깐 한눈을 팔면 정작 미술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지나친다. 돌아앉았기 때문에 본관 앞은 아늑하다. 마치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우측으로 건물을 돌아 들어가면, 마당을 감싸 안고 있는 본관 정면이 나온다.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미술관 뒷마당에 들어가 본다. 뒷마당이라지만, 실제로는 미술관 앞마당이다. 본관 앞마당에서는 짧은 산책이 가능하다. 그곳에 박수근 동상이 고무신을 신은 채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다. 옆에는 금방이라도 그림을 그리려는 듯 스케치북 한 권과 연필 한 자루가 놓여있다.

 

 

박수근미술관 본관 뒷뜰(삼층삭탑과 동상)

 

 

 박수근미술관은 기념전시실, 중정과 함께 3개의 기획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기념전시실에서는 박수근의 작품과 함께 안경·연적 등의 유품과 사진, 편지, 메모, 스크랩북, 자녀들을 위해 직접 그린 동화책 등 다양한 소장품이 영상 및 연표 자료와 함께 전시되고 있다.

 

 박수근 연보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

1932년 독학으로 선전 입선

1932년 평안남도청 근무(1944년까지), 평양에서 <주호회> 창립

1945년 금성여중 미술교사

1950년 전쟁 중 월남

1953년-64년 <국전>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특선, <국전> 추천 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195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서미술전> 초대 출품

1958년 <한국회화전>(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초대 출품

1959년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작가전> 초대 출품

1965년 5월 6일 별세

1980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추서

1985년 20주기 기념전(현대화랑)

 

 

“빛과 소금, 박수근의 삽화와 스케치” 전  

 

 

미술관 입장티켓 구매(미술관 관람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2017 박수근미술관 특별기회전으로 “빛과 소금, 박수근의 삽화와 스케치” (2017.5.2~2018. 4.15)가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는 수근 가족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던 트로잉, 삽화, 판화, 스케치 등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이미지는 신문이나 잡지에 글과 함께 실리는 장식적인 의미의 컷(cut)이나 유화의 밑그림으로서의 단순한 스케치라기보다는 하나의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중에는 소설가 박완서로부터 <나목>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작품인 ‘나무와 여인’(1956년 작)의 스케치 원작, 2017년 박수근미술관 신소장품인 <닭과 병아리>를 공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 2월 마이옥션에서 9천만 원에 낙찰 받은 것인데,  <닭과 병아리>는 박수근 유족에 의하면, 1962~63년경 창신동시절에 그린 수채화 작품이라고 한다. 목련이 드리워진 마당에 가족을 연상시키는 닭과 병아리를 그림으로써 봄날의 따스함과 가족애를 연상시키고 있다.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친근하면서도 서글프다. 그림 속 인물들은 박수근의 가족이거나 이웃이다. 모두가 어렵게 사는 서민이지만 그렇다고 나약한 사람들은 아니다. 강인한 삶을 살았던 민중이라고 할 수 있다. 본관 기념전시실에서는 생전에 찍은 사진과 직접 쓰고 받은 엽서, 스크랩북, 안경, 연적 등을 전시 중이다. 눈에 띄는 유품은 외국에서 온 편지들이다. 박수근은 외국에서 먼저 알려졌다. 때로는 외국에서 그림 도구를 구입해 보내주기도 했다. 눈여겨볼 것은 본관 곳곳에 새겨진 박수근의 말과 글이다. 그의 예술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화가 박수근의 인간적인 면모

 

 

 

 

   "나는 강원도 양구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지 않게 살며 보통학교엘 입학했는데 미술시간이 어찌나 좋았는지 몰라요. 제일 처음 선생님께서 크레용 그림을 보여주실 때 즐거웠던 마음은 지금껏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님 사업이 실패하고 어머님은 신병으로 돌아가시니 공부는커녕 어머님을 대신해서 아버님과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우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들어와야 했고 망(맷돌)에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했지요.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고 틈틈이 그렸습니다. 혼자서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림 그리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빚값으로 한 채 남은 집마저 팔아버리고 온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살 수 밖에 없게 되어 이후로 나는 춘천으로 평양으로 봉급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한때는 초상화를 그려 경제적 뒷받침을 하기도 했지요.”  

 

 박수근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아내 김복순과 자녀들은 작품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특히 자녀들을 위해 직접 그리고 만든 『낙랑공주』, 『광개토대왕』,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등의 그림책은 유명하다. 본관 전시실 곳곳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내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결혼 전 한 여인(나중에 아내가 됨)에게 보낸 편지가 이를 말해준다.

 

“복순씨에게

일전에 당신이 우리 어머니와 빨래하러 같이 가셨을 때 어머니 점심을 가져간다는 핑계로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자세히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렛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귀여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꿈꾸어오던 내 아내에 대한 여성상은 당신과 같이 소박하고 순진하고 고전미를 지닌 여성이었는데 당신을 꼭 나의 배필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나는 나 혼자 당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나의 이 숨김없는 고백을 들으시고 당신과 당신의 심정을 솔직히 적어 보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박수근”

 

 작품 속 박수근은 언제든 그림을 그리려는 듯 붓을 손에 쥔 채 아내와 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내는 아들을 무릎에 앉힌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아들은 천진하게 웃고 있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다.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할 뿐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를 가장 즐겨 그린다.”

 

 

 

아내와 자녀를 소재로 그린 작품(아내 김복순 여사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박수근의 작품세계 

 

 

 박수근은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화가다. 그의 그림에는 꾸밈없는 생활 속의 시골사람들이 등장한다. 행상이나 빨래터 또는 절구질하는 아낙네들이 주로 등장하고 담소를 즐기는 노인들이나 놀이에 빠진 어린이들도 즐겨 그렸다. 이 같은 인물들은 거짓 없는 한국인의 한 전형으로 화면에 묘사되었다.상당수의 화가들이 서구적 분위기의 귀부인이나 유한(有閑) 취미 속의 고급스런 인물을 선택할 때 그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다. 그러나 작품의 주인공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들이었다. 그래서 한국화가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가 그린 자연도 양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裸木)이기 십상이었다. 특히 공간감을 무시하고 대상을 평면화시켜 이 소재들은 극도로 단순명료한 형태로 응축되었다. 절제의 미를 체질적으로 화면에 옮겨 민족정서를 그려냈다.  박수근은 화강암처럼 거친 질감 위에 인물을 그렸다. 특히 화면 바탕의 처리방식이 독특하여 두툼한 질감을 느끼게 했다.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의 표면처럼 우툴두툴한 효과를 냈다. 또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을 기조색으로 삼고 있어 한결 깊이 있고 무게가 있다. 화려함보다는 질박한 색채와 표면질감으로 견고함을 이루어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가졌다. 이 때문에 이중섭(李仲燮)과 쌍벽을 이룬 1950년대 이후 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중섭이 분방한 선묘에 다양한 색채를 구사했다면, 박수근은 반대로 최대한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 둘 다 민족회화의 구현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했지만, 박수근은 보다 규모 있는 대작으로 일관된 조형논리를 전개시킨 특징을 보인다. 대표작으로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할아버지와 손자〉(1964)·〈소와 유동(遊童)〉(1962) 등을 꼽을 수 있다.  

 

 관람이 끝난 후에는 매표소 옆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은 미술관 전체를 볼 수 있는 산책로이자, '박수근파빌리온'까지 가는 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경사진 산책로를 따라가면 '전망대'다. 이곳에서는 양구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기 업은 소녀

절구질하는 여인


소녀

 

나물 캐는 여인

 

 

노상의 사람들

 

귀로

 

판화 : 토끼

 

 

 전망대를 지나면 나오는 길은 일종의 '추모의 길'이다. 길 끝에 박수근과 그의 아내 김복순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살아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떠난 후에도 다정하게 곁에 머물며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이 단풍잎에 반짝이는 길을 걸어 파빌리온으로 향했다.

 

묘소에서 내려오면 박수근파빌리온으로 향하는 길이다. 박수근파빌리온’은 박수근기념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가는 길 중간에 박수근 부부의 묘소도 있다. 합장한 봉분과 비석, 상석, 그리고 돌에 새긴 박수근의 그림 한 점이 놓여있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긴 오솔길을 보며 오롯이 미술 하나만 보고 살아온 작가의 삶을 떠올려본다. 언덕 아래에 있는 ‘파빌리온’은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 중 하나로 지은 건축물이다.  2014년 개관한 박수근파빌리온은 주변 산을 닮아 지붕이 뾰족하다. 거친 화강암과 금속으로 마감한 외벽은 박수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박수근파빌리온으로 걸어가는 길의 난간에는 작은 토기작품들이 도열해 있다.

 

반 고흐 인사이드(VAN GOCH INSIDE)

 

 

 

 

   이곳 박수근미술관 파빌리온에서는 박수근미술관 특별전으로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반 고흐 인사이드(VINCENT VAN GOCH INSIDE)를 열고 있었다.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는 그의 명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하여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스크린에 퍼지는 엷은 파스텔 톤 색채들은 당시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했던 빛과 대기를 형상화 한다.  그의 화려한 작품을 미디어 프로젝션과 감각적 사운드로 줄기는 고흐의 화려한 색채들을 빛과 음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고흐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푸른 밀밭,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벽면 가득 펼쳐질 때는 가슴 벅찬 감흥이 몰려왔다. 특히 단순한 감상에서 나아가 고흐의 작품 속으로 들어거 직접 체험하고 변형하면서 명작을 재구성해 보는 코너도 만들어 놓았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과 프랑스를 떠돌면서 책방 점원과 선교사 등을 지냈다. 1880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천직임을 깨닫고 습작에 열중했다. 네덜란드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한 후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면서 당시의 아카데미즘이나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관을 정립해가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했던 화가이다. 그는 독특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형태와 색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개성적인 화풍을 확립하여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10년이라는 짧은 화가 생활 동안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스케치를 남겼다. 숱한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자신 만의 굳은 신념으로 작업에 몰두했고, 그 결과 야수파와 추상주의, 표현주의에 걸쳐 20세기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록 그의 생은 37세로 짧았으나 생동감 넘치는 필치와 풍부한 빛과 색채, 그의 삶 그대로가 녹아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남아있다. 주요작품은 <자화상>과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에>. 그는 현대회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지금 아를의 강가에 앉아 하늘을 밝히는 별을 새고 있다네. 문단 소리 없이 빛나는 별들은 그 밝음 속에 문단 얼마나 아픈 절망과 고통을 감추고 있는 걸까. 문단 별들은 나를 향해 절망과 고통을 얘기한다네. 

                                 

                                                                                             -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파빌리온으로 향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파빌리온 입구

 

 

 

 

황재형 작가전

 

 또, 박수근미술관 파밀리온 2관에서는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황제형의 작가전이 열리고 있었다. 박수근미술관은 별도의 창작스튜디오를 갖추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창작공간과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공모를 통해 지원이 확정된 작가들은 창작 스튜디오에서 1년간 창작 활동을 하고, 개인전 개최의 혜택도 주어진다. 바로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재형의 작가전이 그것이다.

 

  ‘검은 울음’, ‘탄천의 노을’, ‘귀가’, ‘사망진단서’, ‘아랫목’, ‘이른 장마’, ‘광부초상’, ‘어머니’ ‘아버지’ 같은 그림들을 그렸다. 그가 그려낸 탄광 막장 속 광부들의 삶에는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숭고함과 감동이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는 동안 가슴 저리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광부 화가 황재형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먹먹해진다.

 

 

황재형 작품의 소재는 주로 탄광촌과 광부들이다.

 

 

 황재형은 전남 보성 사람이다. 1952년 태어나 중앙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대에 이미 명성을 얻어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돌연 태백 탄광촌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다. 광부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캄캄한 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캤다. 그러면서 광부들의 삶과 탄광촌이 쇠락하는 모습, 태백의 자연을 캔버스에 그렸다. 30여년을 광부 화가로 살았다. 전시된 작품에 집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커다란 유리에 비친 바깥 풍경을 작품처럼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단풍 든 바깥 풍경이 환상적으로 비쳐진다. 

 

 전시관에서 나와 넓은 잔디밭을 걸었다. 쉼터의 대리석 벤치에도 그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저녁 햇살을 받아 단풍이 반짝이는 공원을 거닐다 나오면 처음 들어가던 입구에 당도한다. 주차장 앞뜰에 ‘수군수군카페’ 간판이 보인다. 퍽 인상적이다. 차 한 잔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감상한 미술 작품에 대한 여운만 안고 돌아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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