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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겨울 산길을 걷다.

by 혜강(惠江) 2017. 12. 4.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겨울 산길을 걷다.

 

글․사진 남상학

 

 

 

▲ 강원도를 상징하는 설악산국립공원의 '반달곰' 상

 

 

설악산은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산이다. 북쪽을 제외하고 동쪽, 서쪽, 남쪽 그 어느 쪽에서 탐방을 해도 이만한 산이 없다. 398.237㎢에 이르는 우리나라 제일의 암석지형으로 경관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대한 면적에 수많은 동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어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서, 1982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되었다. 

 

'설악'이란 이름은 주봉인 대청봉(1,708m)이 1년 중 5~6개월 동안 눈에 덮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설악산은 길게 이어진 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 남쪽은 남설악으로 불린다. 내설악은 백담계곡,수렴동계곡,가야동계곡,용아장성,백운동계곡,귀때기골,십이선녀탕,장수대,대승폭포, 옥녀탕 등의 경승지가 있고 외설악은 천불동계곡, 울산바위, 토왕성폭포, 비선대, 금강굴, 귀면암, 오련폭포 등이 대표적인 경관이다. 또 남설악은 오색약수와 온천, 주전골, 용소폭포, 십이폭포, 여신폭포 등이 대표적인 경관을 이룬다.

 

등산 애호가들은 최고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의 마등령,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설악산맥, 서쪽의 귀때기청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 북동쪽의 화채봉,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을 즐겨 탄다.

 

 

 

 

 

설악산 소공원

 

한국의 최고 명산인 설악산은 지역이 방대하여 속초시와 양양군·인제군·고성군에 걸쳐 있다. 이들 도시 중에서 설악산의 경관을 쉽게, 그리고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이점을 갖추고 있는 곳은 외설악에 속하는 속초라고 할 수 있다. 이곳 설악동에는 설악산국립공원 소공원이 자라잡고 있다. 설악동에서 출발해 설악산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이며,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마등령)으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설악산국립공원의 소공원에는 편의시설들이 집중돼 있어 설악산국립공원의 여러 구역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다.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건립된 ‘曺溪禪風始原道場雪嶽山門(조계선풍시원도량설악산문)은 높이 14m, 길이 17m의 목조 산문으로 그 규모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그 문을 들어서면 입구에 매표소가 있고, 강원도를 상징하는 '반달곰' 상이 마주한다. 그 주변에 설악산탐방지원센터. 휴게소, 식당, 카페 등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비룡폭포, 토왕성폭포전망대, 똑바로 가면 신흥사와 비선대, 흔들바위, 울산바위가 나온다. 그 밖에 소공원에서 권금성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는데, 1.2㎞에 6분 정도 걸린다. 등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주변 시설을 둘러보는데도 최소 2,3일은 족히 걸린다.

 

또 소공원을 통해 등산을 하려면 소공원에서 출발해 설악산 대청봉(1707.9m)을 오르는 데는 2개의 코스가 있다. 하나는 천불동계곡 코스로, 소공원에서 출발해 비선대·귀면암·양폭산장·희운각대피소·소청삼거리·중청봉을 거쳐 대청봉에 이른다. 보통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다른 하나는 공룡능선 코스로, 소공원에서 출발해 비선대·금강굴·마등령·1275봉·희운각대피소·소청삼거리·중청봉을 거쳐 대청봉에 이른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소공원 광장에는 통일염원사리탑과 푸른 기상을 뽑내는 두 그루의 금강소나무가  설악산의 풍치를 자아낸다. 설악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소나무는 금강형소나무인데 금상산에서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에 금강소나무 또는 강송이라고 불린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황적색인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질좋은 목재를 생산한다. 

 

 

 

설악산 소공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통일염원사리탑과 금강소나무 모습

 

 

 또, 소공원 안에는 산악인을 추모하는 추모비 '산악인의 문' 이 서있다. 이 추모비는 1969년 2월 14일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산악회가 추진한 제1기 에베레스트원정대가 동계 등반 훈련기간에 대청봉 죽음의 계곡의 막영지에서 취침 중 눈사태를 당하여 원정대원 10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기억하는 추모비다. 노산  이은상의 조사 '산악인의 불꽃'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쓸어 안으니 차가운 몸들/ 내 체온을 가르고 싶다

    숨소리가 왜 없나/ 내 호흡을 불어 넣으며

    그대를 흔들어 보다 못해/ 눈 쌓인 산만 바라본다.

    아까운 그대들이라/ 거치른 세상에 오래 안 두고

    깨끗한 그대들이라/ 흙먼지 속에 차마 못 묻어

    하늘이 설악 명산을 골라/ 흰눈속에 감추시던가

    이 밤에 그대들을 그려/ 산아래 홀로 섯노라니

    천봉 만학이/ 달도 희고 눈도 흰데

    어디서 귀익은 목소리/ 들리는 것만 같다

    못다 푼 그 의욕/ 다 못 태운 그 정열

    젊은 동지들/ ' 얏호 ' 소리 들리거든

    그 속에 같이 섞여서/ 마저 풀고 태우게

    눈속에 꿈을 묻은 채/ 깨지 못한 영혼이라

    산에 들에 눈이 내리면/ 그 모습 떠 올라 어이할꼬

    이 산에 눈이 쌓일제/ 비들어 눈 쓸어 돌아오마

   우리는 그대를 잃고/ 통곡으로 목이 메어도

   그대들은 이 산에서/ 산꽃처럼 산새처럼

   즐거이 웃으며 노래하며/ 어깨 겼고 노나니

   어제는 우리 동지/ 오늘은 설악 천사들

   수 많은 산악인들/ 이 산 뒤에 밟을 적에

   발앞을 이끌어 주는/ 수호신이 되소서

 

그들 산악인들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수많은 산악인들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그들의 발걸음을 지켜주는 듯하다.

 

 

▲ 에베레스트원정대 사망자의 추모비 '산악인의 문'과 이은상의 조사  

 

 

소공원 경내에 있는 고찰, 신흥사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 (652년)에 자장율사가 세워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 사리탑을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다. 그러나 향성사는 698년 불타 버린 뒤 3년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701년에 의상(義湘)이 자리를 능인암터로 옮겨서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 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다.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하였으나 1642년(인조 20)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린 것을 조선 16대 인조 22년(1644년)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의 세 스님이 똑같은 꿈을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했다. 최근 ‘神興寺’를 ‘新興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절에는 창건 당시 주조한 1400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시루, 극락보전, 경판, 보제루, 향성사지 3층석탑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1644년에 세운 건물로 중앙의 공포(拱包: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들)와 단청이 지극히 아름답다. 또 최근에 문을 연 유물전시관도 있다. 부속 암자로는 선정사의 옛터에 세워진 내원암과 655년에 건립한 계조암, 1785년(정조 9)에 창건한 안양암 등이 있다.

 

특히, 신흥사에서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일주문 앞에 세운 세계 최대의 청동불좌상이다. 높이 14.6m의 청동대불은 1997년 10월, 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것으로 일명 ‘통일대불’로도 부른다.

 

 

신흥사 경내와 세계 최대의 청돌불 좌상(높이 14.6m)

 

 

비선대 코스에 들어서다.

 

신흥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설악산 탐방 코스가 이어지는데 오른쪽으로는 흔들바위, 울산바위로 향하는 길이고, 왼쪽으로는 계곡을 끼고 비선대로 오른 길이다. 나는 비선대, 금강굴을 왕복하는 탐방코스로 가본다. 시작점인 소공원에서 신흥사를 거쳐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이 길은 천불동계곡이 시작되는 길이지만 초입은 완만한 길이다. 천불동계곡은 외설악을 대표하는 절승의 계곡으로, 대청봉의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에 있다. 하지만 비선대까지의 코스는 막바지 계단을 제외하고는 어린이나 노약자도 탐방할 수 있으며, 비선대 자연관찰로가 있어서 3분의 1지점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도 휠체어로 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산불조심 기간에도 탐방 가능하다.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약 3km에 이르는 이 길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 서 있는 숲길이다. 미끈한 금강소나무를 비롯한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치 산소의 강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나무들은 광합성을 통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산가스를 들어 마시고, 대신 신선한 산소를 만들어 우리를 숨 쉬게 한다. 비선대로 가는 길은 키 큰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꽉 들어차 있어 천연 공기정화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이다. 길을 걷는데 저절로 심호흡이 되며 산소가 폐부 깊숙이 들어간다.

 

이 구간에 자연관찰과 학습을 할 수 있는 설악산 자연학습 탐방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공원에서 군량장까지 1.8㎞ 구간에 걸쳐 왕복로 형식으로 펼쳐진 비선대 자연학습 탐방로와 또 하나는 비룡폭포까지 2.4㎞ 구간의 비룡폭포 자연학습 탐방로가 있다.

 

 

 

 

 

 

 

 

신흥사 지나서 계곡을 끼고 비선대 방향으로 접어들다.

 

자연학습탐방로의 조릿대

 

 

이름 모를 자유용사의 비

 

숲길을 30여 분 정도 걸어가니 흰 탑이 하나 보였다. 안내문을 보니 '이름모를자유용사의비'라고 적혀있다. 푸른 숲 속에 하얀 탑이 무명용사의 혼령처럼 보였다.

 

이 비는 6·25전쟁 당시 설악산 전투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수도군단, 11사단, 5사단 장병들과 군번 없이 참전한 유격군, 학도결사대, 호림부대 등 젊은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애국 충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1965년에 세운 탑이다. 탑 밑에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는 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은 자유의 땅 여기 님들이 고이 쉬는 설악에 영광의 탑은 높이 섰나니 아아 붉은 원수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던 날 조국의 이름으로 최후까지 싸우다가 꽃잎처럼 흩어진 수많은 영들 호국의 신이여 님들의 이름도 계급도 군번도 누구 하나 아는 이 없어도 그 불멸의 충혼은 겨레의 가슴깊이 새겨져 길이 빛나리라 천추에 부를 님들의 만세여 언제나 푸른 동해물처럼 영영 무궁할 지어다. 一九六五년 十월三十일"

 

이렇게 조국을 위해 순국한 이름도 모르는 무명용사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아름다운 설악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위령탑에 잠시 추모의 묵념을 하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 길은 설악산 쌍천이 나란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설악산의 기암괴석도 조금씩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자유용사의 비와 비문

 

 

선녀가 놀았다는 와선대(臥仙臺)

 

신흥사로부터 약 2㎞ 지점. 천불동계곡 첫머리에 와선대라고 하는 너럭바위가 있다. 옛날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누워서 감상하였다고 하여 와선대라 한다. 수림이 울창하고 기이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천불동은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모습과 유사하여 생긴 이름이다. 또는 계곡 일대에 펼쳐진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이한 경관을 구현한 것 같다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천불동은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에 크고 작은 폭포나 소가 발달해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폭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계곡을 따라서는 급경사의 단애가 발달되어 있다.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다는 와선

 

 

와선대에 세운 이정표,  300m 지나면 비선대 

 

 

계곡미의 절경, 비선대(飛仙臺)

 

와선대에서 계류를 따라 올라가면 게곡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아래 계곡은 바위들의 천국이다.  오랜 세월 계곡의 낙석으로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져 물에 씻겨 마모된 것들이다. 그런데 큰 바위에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앙징맞게 자라고 있다. 단단한 바위에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의 생명력이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바윗덩어리에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의 생명력이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와선대에서 계류를 따라 커다란 암반인 비선대에 이르는 약300m의 구간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비선대는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널직한 암반 위로 흘러 몇 번이나 꺾여 폭포를 이룬다. 연속된 바위에 폭포를 이루는 광경은 흡사 우의(羽衣) 자락이 펄럭이는 것 같으며, 아래 쪽 와선대(臥仙臺)에서 노닐던 마고선녀(麻姑仙女)가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하는 전설에 따라 비선대라 하였다.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는 편도 3.0km, 1시간 20분 소요되었다.

 

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계곡 반석을 따라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금강산의 만폭동에 견줄 만하다는 말이 수긍이 간다. 예로부터 이곳을 찾은 많은 시인묵객들이 자연의 이치를 감상하면서 이 너럭바위에 자기의 직책과 이름을 새기곤 하였다. 특히『양양읍지』에 조선시대 서예가 윤순(尹淳)이 쓴 것으로 알려진 ‘飛仙臺(비선대)’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초서로 쓴 것인데, 글자 하나의 지름이 약 1m 정도이다. 고종 대에 갑신정변의 3일 천하로 유명한 김옥균(金玉均)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설악에서 많은 시를 남긴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설악일기(雪岳日記)』에 “瓊臺俯金潭 右扇排靑峰 融時備衆妙 豈惟勢奇壯”라는 시를 남겼다. 

 

    경대 같은 맑은 물 굽어보니

    부채 같은 청봉이 그 곳에 펼쳐졌네

    이곳이 생길 때에 묘리를 갖추었던가

    그 세가 어찌하여 이리도 기장한가

 

김몽화(金夢華)도 『유설악록(遊雪嶽錄)』에서 설악산 비선대 주변의 경관을 극찬하였다. 물가에 앉아 올려다보면 미륵봉 중간쯤에 금강굴이 보인다. 과거에는 이곳에 비선대 휴게소가 있어서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감상하며 한 잔의 따끈한 차를 마시던 곳인데 자취를 감추었고, 계곡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보강공사가 한창이다.  

 

 

 

▲ 비선대와 비선대에 쓴 금석문

 

 

▲ 비선대에서 올려다 본 우람한 봉우리들

 

 

절벽에 뚫린 자연 석굴, 금강굴

 

비선대에서 금강굴까지는 600m, 시간은 약 40분이 소요된다. 입구에 있는 탐방안내소의 안내인이 “금강굴까지는 가파른 길이어서 힘들고, 금강굴 이상 고지대 전탐방로의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계단이 많아서 초보 행자들은 힘들다. 비선대 위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면 탐방안내소, 금강굴로 가는 길목이다. 탐방안내소 옆에 탐방로 안내판과 금강굴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금강굴에 대한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 입구에 세워놓은 탐방로와 금강굴 표지판 

 

 

“미륵봉 금강굴은 자연동굴로 1300여 년 전 원효대사(신라시대 617~686)가 수행 기도하셨던 곳으로 민중교화승인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금강 삼매경론의 머리를 따라 금강굴이라 합니다.

설악8기 중에 하나인 이곳 금강굴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외설악 비경으로 공룡능선과 천화대 능선 및 화채능선 사이로 계곡이 펼쳐 보이며, 계곡 양쪽으로 솟은 봉우리들은 각기 모습이 다른 천분의 부처님 형상을 새겨놓은 듯하여 천불동이라 부릅니다.

그 외에도 설악의 산악미를 한데 모은 듯한 경승지인 토막골, 만경대, 죽음의 계곡, 칠형제봉, 평제폭포, 유선대, 소청봉, 중천봉, 대청봉이 한눈에 보이며 봉우리 곳곳에 부처님 형상이 펼쳐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애로부터 금강굴에서 부처님께 일념으로 기도드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각지각처에서 많은 불자님들이 다녀가시는 성지입니다. 불자님들께서는 기도 수행하시어 소원성취하시길 발원합니다.   - 조계종 3교구 신흥사 금강굴 암주 합장”

 

 

비선대에서 금강굴까지는 석산인 장군봉(미륵봉)을 오를 수 있도록 설치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야 한다. 약간은 좁은 탐방로를 돌길로 통해서 오르다가 코스의 중간쯤에서 철 계단으로 오른다. 완만한 경사로 시작해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이동하는데 주의를 필요하다. 경사가 급해서 굴까지는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콘크리트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장군봉에 설치된 계단을 따라 금강굴에 오르다 보면 천불동계곡의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가쁜 숨을 내쉬며 도착한 금강굴은 장군봉(또는 미륵봉) 중턱에 있는 자연 석굴로서 길이는 18m, 면적은 23.1㎡이다.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元曉)가 수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굴속의 토기 등 생활용구와 석불좌상으로 보아 고승이 도를 닦던 곳으로 짐작된다. 계곡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귀면암은 바위의 형상이 귀신을 닮았으며,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으로도 불렸다. 설악산소공원에서 와선대와 비선대를 거쳐 금강굴에 이르는 금강굴코스는 3.6㎞ 거리에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왕복으로 약 7.2km(소요시간 3시간 20분)이며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어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

 

 

 

금강굴 모습

 

 

우리 일행은 초보 보행자들이 많아 금강굴까지 오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 하산했다. 본격적인 천불동 계곡의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발길이 아쉽기는 했지만 비선대 반석 위로 몇 번이나 꺾여 내리는 폭포를 보았다는 기쁨으로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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