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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낙성대 공원,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 기념공원

by 혜강(惠江) 2017. 11. 1.

 

낙성대 공원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 기념공원

 

 

 

글 사진 = 남상학

 

 

 

 

 

 낙성대는 고려시대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서울특별시 관악구봉천동 산48. 이곳에 낙성대를 보존하고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을 기리기 위해 낙성대 공원이 조성되었다.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하여오고 있는 공원의 총면적은 3만 1350㎡이며, 이 가운데 성역화 된 곳은 1만 1550㎡이다.

 

 서울시에서는 강감찬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1973년에서 1974년까지 2년간에 걸쳐서 이곳을 정화하면서 사괴석(四塊石)으로 409m의 담장을 쌓고 사당 안국사(安國祠)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낙성대이다. 공원 경내에 5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 입구에 큰 연못을 파서 구름다리를 놓았으며 성역화 경내에도 낙성교가 있다. 1974년부터 기념공원을 조성한 이후로 꾸준히 관리가 잘 되어 사당 내의 조경이 볼만하다. 안국사가 완공되자 서울시에서는 그 날짜로 공원으로 지정하여 유료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낙성공원 안에는 강감찬 장군의 기마청동상,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 삼층석탑, 내삼문, 강감찬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역사와 문화, 자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강감찬 장군의 사당, 안국사

 

 고려시대 강감찬의 사당인 안국사는 강감찬 장군이 거란 군을 물리치고 받은 ‘추충협모 안국공신’ 이라는 호를 따 안국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안국사의 면적은 237.6㎡이다. 강감찬의 사당인 안국사는 외삼문인 맞배지붕의 안국문(安國門)을 거쳐 내삼문 안에 건축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사당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강감찬 장군의 탄생과 업적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 때의 장군으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은 물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대한민국 오천 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낙성대는 바로 그런 위대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장소다. 고려 정종 3년(948), 봉천동에서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감찬 장군의 어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품속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 강감찬이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는 그의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성현(成俔, 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강감찬이 몸집이 작고 귀도 조그마했다고 전하면서 강감찬의 관상은 귀인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기록에는 송나라 사신과 관련하여 전하길,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선비를 관리 복장을 하게하고 강감찬은 허름한 옷을 입고 그 뒤에 섰는데, 사신은 한눈에 강감찬을 알아봤다고 한다. 송나라의 사신이 가난한 선비를 보고, “용모는 비록 크고 위엄이 있으나 귀에 성곽(城郭)이 없으니, 필연코 가난한 선비다.” 하고, 강감찬을 보고는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절하며, “염정성(廉貞星)이 오랫동안 중국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 동방(東方)에 있습니다.”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고려사》는 강감찬을 가리켜 문곡성의 화신이라 했고, 《용재총화》는 염정성의 화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구전되는 설화이라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일화에 등장하는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로 문운(文運)을 주관하고 다섯 번째 별인 염정성은 형살(刑殺)을 주관한다는데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의 맨 앞별에서부터 차례로 탐랑성∙거문성∙녹존성∙문곡성∙염정성∙무곡성∙파군성으로 붙여져 있다.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신이면서도 거란을 물리친 무장의 재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문곡성∙염정성이 등장한 것 같다. 중국에서는 문곡성의 화신을 판관 포청천으로 봤고 문곡성이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왔으니 송나라의 사신이 큰 절을 올렸던 것이다. 이 외에도 강감찬 장군에 관한 여러 설화는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고려 최고의 명재상이자 명장인 강감찬은 최고사령관인 상원수(上元帥)로서 뛰어난 전술로 흥화진에서 적을 무찔렀으며, 이어 그 뒤로 쫓겨 가는 적을 귀주에서 궤멸시켰다. 우리가 잘 아는 ‘귀주대첩’이다.

 

 

 

 

낙성대 안의 삼층석탑

 

이곳 안국사 앞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13세기 고려 백성들이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탑의 높이는 4.48m이다.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탑의 양식은 단층기단 위의 삼층탑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기단석은 각 면에 한 장의 면석이 둘러 면마다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새겨져 있다. 한 장의 돌로 된 갑석 한가운데에 옥신받침이 있다. 탑신의 옥신석에는 각기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층급(層級)은 2단으로 매우 간결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어 정기를 줄이고 탑 안에 있던 보물을 훔쳐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탑 주위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모두 부수고,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탑에 연유하여 옛날에는 주변 마을을 탑골이라고 하였다. 이 탑은 원래 강감찬이 태어난 집터에 있던 것을 1973∼1974년 정화사업을 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강감찬 전시관

 

 강감찬전시관은 2017년 5월 31일, 기존 낙성대공원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하여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장군의 넋을 기리는 안국사 입구에 개관했다. 규모 125㎡다.

 

 강감찬 전시관은 ‘별의 탄생’ ‘별빛의 영웅’ ‘별이 비춘 세상’ 등 3개 테마로 구성된 전시실과 영상실로 구성, 강감찬 장군의 탄생설화부터 유적, 전투, 사서와 신화 등 강감찬 장군과 당시 역사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영상실에서는 고려의 역사 중 거란의 1차~3차 침입을 통해 명장 강감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감찬 생가터

 

 강감찬 생가터는 지금의 낙성공원에서 내려온 곳, 관악구 봉천동 218-4에 위치한다. 이곳 주택 사이의 정원수가 우거진 공터가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다. 그 동안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리탑식 3층 석탑을 세우고 후세에 전하여 왔으나, 1973년 낙성대를 정비하면서 이 석탑을 안국사의 경내로 옮겼다. 대신 그 자리에는 1974년 따로 높이 2m의 유허비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강감찬 축제

 

고려 명장 강감찬(948~1031)의 호국정신과 위업을 기리는 2017년 강감찬 축제가 10월 20일~21일 낙성대 공원 일대에서 열린다는 홍보 휘장이 곳곳에서 나부꼈다. 이번 축제는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인 문곡성을 타고 태어난 강감찬 장군의 설화를 바탕으로 낙성대공원 일대를 ‘7개의 별’ 테마로 나누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가족 모두가 볼거리와 체험거리에 동참해 한껏 즐길 수 있다고 했다.  20일에는 안국사에서 강감찬 장군 추모제향을 재래식으로 봉행하고 기념식도 거행한단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서울대 후문 방향으로 도보 10분. 마을버스 관악02번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탐방일자 : 2017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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