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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발칸반도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마더 테레사 수녀의 고향

by 혜강(惠江) 2016. 4. 26.

 

발칸여행(10)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마더 테레사 수녀의 고향 

 

 

글·사진 남상학

 

 

 

 

▲스코페 광장의 알렉산더 청동기마상

 

 

   여행 엿새가 되는 날, 마케도니아를 살펴볼 차례다. 마케도니아는 발칸지역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다. 알렉산더대왕의 고향이며, 최근 몇 년간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으로 몇 차례 뉴스에 오르내렸던 것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면적이라야 약 2만 5천㎢로 한반도의 0.1배를 조금 웃도는 작은 나라다. 인구도 약 209만 명으로 서울 인구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북쪽은 코소보·세르비아, 동쪽은 불가리아, 남쪽은 그리스, 서쪽은 알바니아와 경계를 이룬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가 발칸전쟁으로 종결된 후 마케도니아는 1913년 세르비아에 할양되었고, 1919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결성될 때 그 일부가 되었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가 분할될 때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 전역을 차지했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 하나가 되었으나 연방이 붕괴되면서 1991년 12월 19일 유고연방에서 독립했다. 발칸 반도 남쪽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마케도니아의 수도는 스코페다.  

 

 

                

 

  

  국민 대다수는 동방정교회를 믿는 슬라브족이지만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 등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한 나라다. 한적하고 잘 정돈된 거리에는 오래된 시장과 중세 수도원, 성당, 상가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테레사 수녀의 출생지안 스코페(Skoplje)는 산악지대를 흐르는 바르다르 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63년 대지진으로 성장이 주춤하였으나 오늘날은 다양한 문화를 보유한 근대도시로 성장해 왔다. 옛 시가지는 고대의 요새가 있는 계단식 강가에 있으며 그 북쪽에는 로마 시대의 송수로가 있다. 근처에는 12세기의 프레스코를 소장한 네레지 수도원을 비롯한 중세의 수도원들이 있다. 그 밖의 유명한 건물로는 중세 투르크 여관인 쿠르슘리한을 비롯한 몇 개의 모스크가 있다.

 

 

알렉산더 청동 기마상 

 

  오늘은 마케도니아의 아담한 수도 스코페 광장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이 우뚝 있다. 높이 15m의 청동상이다. 동상의 정식 이름은 ‘말을 탄 전사’이며, 동상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그리스와 주변 국가는 물론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마케도니아의 영웅이다.  

 

  마케도니와 왕국의 어느 정권이나 그 정권의 통치자들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하고 정권 안정을 위해 위대한 옛 선조를 내세워 통치의 당위성을 얻고자 한다. 마케도니아 역시 수도인 스코페 중앙 광장에 300년경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을 전면에 내세웠다. 광장에는 거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 외에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동상도 건립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을 국가 상징처럼 내세워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던 마케도니아에 종주국을 자처하는 그리스가 격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알렉산더가 태어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북부지역과 현 마케도니아 지역을 포괄하기 때문에 그리스가 마케도니아 국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터키식 돌다리

 

 

   광장에서 이어지는 곳에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해주는 터키식 돌다리가 있다. 마케도니아 광장과 스코페 재래시장을 이으며 아래로는 바르다르 강이 흐른다. 다리 북쪽에는 1466년에 지었다는 다우트 파샤(Daud Pasha) 목욕탕이 있는데 한때 발칸반도 최대의 터키탕이었단다. 비잔틴 양식의 웅대한 건물은 돔 형태의 6개의 방이 있고, 내부는 인테리아가 아름답다. 현재는 미술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 키릴문자를 만든 키릴로스와 형 메토니오스 *

 

 

* 키릴로스의 두 제자 *

 

 

* 다리 건너에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 동상이 있다. 사실상 알렉산더가 젊은 나이에 대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인 필립이 닦아 놓은 터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태생이 아닌데도 그래도 이렇게 자랑스럽게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 다우트파샤 목욕탕 *

 

 

 

 

 스코페의 옛날시장인  동방시장

 

 

  또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의 동방시장은 유럽 시장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옛날 시장으로서 갖가지 기념품과 과일 농산물 그리고 향신료 등을 팔고 있어 우리의 재래시장을 연상케 한다. 5유로를 건네니 견과류를 듬뿍 담아준다.  

 

 

 

 

 

 

 

 

 

 더 테레사 수녀의 고향

 

 

 * 미더 테레사 수녀의 생가터 표지석 *

 

 

   또한, 스코페는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에게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Agnes Gonxha Bojaxhiu)로 1910년 8월 스코페에서 태어났으며, 열두 살 소녀 시절에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살기를 결심하고, 열여덟 살 때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나 인도의 캘커타(지금의 콜카타) 아일랜드 수녀 공동체에 들어가 1937년 수녀로서 최종 종신서원을 했다.

 

  1946년 결핵에 걸린 그녀는 요양을 위해 인도 북동부의 다르질링으로 가던 중에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빈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 가운데 계신 그분을 섬기기 위해 그분을 따라 빈민가로 들어가라"는 소명을 들었다. 얼마간의 의학적 훈련을 마친 그녀는 1950년 캘커타에 '사랑의 선교회(the Order of Missionaries of Charity)'를 설립하고, 2년 후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Home for the Dying Poor)' 또는 '순결한 마음의 장소(Place of Pure Heart, 벵골어 Nirmal Hriday의 번역)'로 불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개설하고, 다시 1년 후에는 고아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부랑자들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 무렵부터 이곳 아이들은 그녀를 어머니 테레사 혹은 그냥 '어머니'라고 불렀다.

 

  왜소한 신장에 허약 체질인 그녀는 만년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활동을 지속했다. 테레사 수녀는 그해 9월 5일 향년 87세로 캘커타에서 선종(旋踵)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다.”는 명언을 남긴 테레사 수녀는 성직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는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녀의 고향답게 스코페에는 테레사 수녀를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태어난 장소에 기념교회와 박물관을 지었고, 기념관에는 그녀가 직접 쓴 편지와 각종 인증서류, 사진 등이 보관돼 있어 그의 헌신적인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 정교회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 성상이 있는 스베티 스파스교회 등도 스코페의 볼거리다. 구시가지 재래시장 근처 칼리요새 아래에 있다. 오스만 지배를 받던 16세기경 이스람을 제외한 모든 교회는 높이를 제한하여 반지하 상태로 지었기 때문에 교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돔 형태의 둥글둥글한 모양이 이색적이다. 이 교회에는 1824년에 정밀하게 조각된 그리스정교회 성상이 있다. 

 

  또 이곳 스코페를 둘러싸고 있는 보노드 산 위에는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는 스코페에 살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내 어느 곳에서도 조망할 수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보노드산 위의 십자가를 조망하는 것으로 스코페 관광을 마친 우리는 다시 전용버스를 타고 약 3시간을 달려 유럽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오흐리드로 이동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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