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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발칸반도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세계문화유산 오흐리드에 반하다.

by 혜강(惠江) 2016. 4. 26.

발칸여행(11)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세계문화유산 오흐리드(Ohrid) 에 반하다.

 

 

 글·사진 남상학

 

 

 

   마케도니아 남서부에 있는 도시 오흐리드는 유럽 남동부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국경선에 걸쳐 있다. 키릴문자를 창제한 키릴 형제의 고향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케도니아의 유명한 휴양지다. 518년 엄청난 지진을 겪었으며, 그 후 로마인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구시가지는 우뚝 솟은 험한 바위 위에 있는데 바위에 해당하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인 흐리드(hrid)에서 이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다. 이 바위의 정상에는 대략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지어졌던 요새의 잔해가 남아 있으며, 이 당시 이 도시는 불가리아 차르의 수도였다.

 

 

                             

 * 카네오 성 요한성당 내부에 걸린 프레스코화 *

 

 

  오흐리드 타운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거주지역의 하나이며, 7-19세기에 걸쳐 고대 슬라브족의 수도원과 800여 개의 비잔틴풍의 성상, 365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어 ‘마케도니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교회들로는 11~14세기의 프레스코가 있는 성 소피아 교회와 1950년 대에 발견된 중세시대의 프레스코가 있는 성 클레멘스 교회(1295)가 있다.

 

 

중세 성 소피아 교회

 

   호수 인근의 오흐리드 산 기슭에 있는 성 소피아 교회(Cathedral church of St Sophia)는 오흐리드(Ohrid)의 대표적인 중세 종교 건축물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에 대한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이 성당이 11세기에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건물의 기초 위에 건축되었고, 레오(Leo) 대주교 시절(1037~1056)에 재건축되었음이 밝혀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 모스크(이슬람교 사원)로 쓰이면서 교회 내부 프레스코화가 석고로 가려졌는데, 덕분에 11~13세기 비잔틴 양식 프레스코를 잘 보존할 수 있었다. 14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인 테오라니우스(Theoranius)의 이름이 성 소피아 성당 1층의 <다윗의 회개(Repentance of David)>라는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천사장의 칼(archangel's sword)’에서 발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회와 프레스코를 복원하였다.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매년 오흐리드 여름 축제(Ohrid Summer Festival)를 주최한다.  

 

 

 

 

 

 

 

  그리스 시대의 고대극장 

 

  또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는 그리스 시대의 고대극장이 남아 있다. 기원전 20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는 고대 극장은 마케도니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의 극장이다.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오늘날 오흐리드 여름 축제(Ohrid Summer Festival) 등 여러 행사와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극장 아랫부분만이 남아있어, 수용 인원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작은 언덕 두 개가 극장을 둘러싸고 바람을 막아줘서 음향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성 클레멘스 성당과 판텔레이몬 수도원 

 

 

  또 근처 언덕 꼭대기에는 터키의 모스크이자 여관인 4각형 건물 이마레트가 있다. 이 건물은 이 도시 최초의 슬라브인 주교였던 성 클레멘스와 관계가 있던 스베티 판텔레이몬 수도원(9세기)이 있던 터에 세워졌다. 성 판텔레이몬 수도원은 5세기경 바실리카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글리골 문자를 가르쳤기에 유럽의 대학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성 클레멘스는 최초의 슬라브계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슬라브 문학의 초기 작품들을 집필했고 성 나움과 함께 그리스어 성경을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성 클레멘트는 이 도시의 수호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886년부터 916년까지 30여 년간 그의 노력으로 클레멘트 슬라브대학이 설립되었다.  

 

 

 

 

 

 

 

   성 클레멘트가 플라오슈니크(Plaosnik)에 세운 고대 슬라브 수도원인 성 판텔레이몬 수도원은 2002년 8월 11일에 다시 축성(祝聖)되었는데 이날은 최초의 슬라브인 주교(893)이자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개척자였던 성 클레멘트의 유물이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이 사원에 반환된 날이다. 이 주변 지역에선 유믈 발굴이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중세의 성곽, 사무엘 요새

  

  오흐리드에 있는 다른 기념물들로는 중세 성곽의 구조를 지닌 사무엘 요새(Samuel's Fortress])가 있따. 10세기 말부터 11기 초 무렵, 불가리아의 황제 사무엘이 축성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

 

 

   오흐리드(Ochrida)가 마케도니아의 유명한 휴양지로 꼽히는 것은 오흐리드 호수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흐리드는 호수면적 약 348㎢. 최대수심 약 285m. 호면은 남북으로 길며, 발칸 반도에서 가장 깊어 바다로 착각할 만하다. 4백만~1천만 년 전에 형성된 오흐리드 호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수심이 가장 깊은 호수로서 1년 내내 얼음이 얼지 않는다.

 

  이 호수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직후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에는 영양분이 많지 않은데도 비교적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안정적인 조건 덕분에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종이 많이 발견되었다.

 

  오흐리드 호수의 물은 대부분 지상과 지하에 있는 수많은 샘물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호수를 독특하다고 여긴다. 지상의 샘들은 대부분 남쪽 호숫가에 몰려 있는데 마케도니아 쪽의 성 나움 수도원 근처이다. 알바니아의 강 23개와 마케도니아의 강 17개, 총 40개의 강줄기와 샘의 물이 오흐리드 호수로 유입된다.

 

  호수는 여러 군데에서 물이 유입됨에도 투명도가 뛰어나게 높아 최대 20m에 달한다. 경관이 뛰어나고 희귀한 수생동물들이 살고 있어 오흐리드 지방의 역사건축물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호리드 호수 절벽위의 카네오 성 요한교회

 

 

  호숫가 절벽 위, 카네오(Kaneo)에 있는 복음 전도자 성 요한(St John the Evangelist, ‘Theologian) 성당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호수의 조망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예수의 제자이며 요한복음의 저자인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13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복원 작업을 통해서 14세기의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어서 오흐리드에 있는 중세 기념물들을 연구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 성당은 비잔틴 문화와 아르메니아(Armenia) 문화의 요소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제51회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Before The Rain' 촬영 장소이기에 더욱 의미를 갖게 한다.

 

  요한 카네오 성당에서 호숫가로 이어지는 길에는 예쁘게 핀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잔잔한 호숫가에서는 오리떼가 사람의 접근을 의식하지 않은 채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도 한가롭다.  

 

 

 

 

 

 

 

 

키릴 브라더스외 그의 제자 클레멘트 동상

 

 

  오흐리드 중앙공원에는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를 창제한 키릴 브라더스 동상과 그의 제자 클레멘트의 동상이 서 있다. 키릴문자는 9세기에 그리스 데살로니카 출신의 키릴로스(Kyrillos)가 그의 형 메토디오스(Methodios)와 함께 선교를 위해 모라비아 지방에 파견되었다가 그곳 슬라브족에게 적합한 문자를 고안하여 만들게 되었다.   9세기의 그리스 언셜체 문자에 바탕을 둔 키릴 문자는 슬라브족에게 파견된 사도인 그리스의 두 형제,  키릴 문자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성 키릴루스(또는 콘스탄티누스)와 성 메토디우스가 만든 글라골 문자(Glagol文字)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편, 키릴 형제가 키릴문자를 만들었다면, 그 문자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은 이들의 수제자 클레멘트와 나움이다. 두 성인은 이곳에서 교육 사업을 통해서 포교활동을 했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선 키릴보다 포교활동에 전념했던 클레멘트를 오히려 더 크게 추앙하고 있다. 그의 동상이 있는 이곳, 가장 번화한 거리는 클레멘트 거리로 명명되었으며, 동상이 있는 중앙공원이 오흐리드 투어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또 크레멘트에게 봉헌된 페리블렙타 교회도 이곳에 있다.

 

  이 문자는 그리스 정교가 포교되면서 함께 전파되었는데 10세기경 러시아에 전파되어 현재 러시아 문자의 모체가 되었고, 현재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많은 나라에서 쓰이고 있다.  슬라브어는 음운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원래는 43개의 자모가 만들어졌다. 이 자모들은 그리스 자모에서 유래했거나 그리스 자모들을 결합하여 만들었으며, ‘ts, sh, ch, shch’ 등을 표기하는 키릴 자모의 경우 히브리어에 바탕을 둔 자모도 있었다. 키릴 문자로 씌어진 최초의 문헌은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 형제가 9세기에 번역한 성서와 다양한 교회 문서였다.

 

  근대 키릴 문자인 러시아 문자, 우크라이나 문자, 불가리아 문자, 세르비아 문자 등은 원래의 문자를 변화시킨 것인데, 대체로 쓸모없는 자모를 없앤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근대 러시아 문자는 32개의 자모를 갖고 있으며, 불가리아·세르비아 문자는 30개 자모, 우크라이나 문자는 33개 자모를 갖고 있다. 근대 러시아 문자는 또한 슬라브어가 아닌 옛 소련의 많은 언어에 적절히 변형되었으며, 근대 러시아 문자에 특별한 자모를 추가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오흐리드의 보물은 드넓은 호수. 이미 수백만 전부터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호수. 거기다 호숫가 전망이 좋은 지대엔 유럽풍과 오스만투르크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버무려진 근사한 레스토랑과 예쁜 카페가 지천이다.

 

 

 

 

 

 

 

 

 

 

  이제 얼마 지나면 오흐리드 호수도 저녁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물들 것인데, 오흐리드를 그냥 두고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쉽다. 아쉬운 발길을 뒤로하고 마케도니아 스코페와 오흐리드 관광을 마친 우리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뭄을 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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