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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낙산 성곽길, 서울 시민이 즐겨찾는 산책길

by 혜강(惠江) 2015. 2. 6.

                                                                                     낙산 성곽길

 

                                                        서울 시민이 즐겨찾는 산책길

 

·사진 남상학

 

 

 

  동대문에 인접한 낙산(駱山)은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높이는 약 125m이다. 이 산은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동대문구 창신동, 신설동, 보문동, 성북구 삼선동에 걸쳐 있다. 산 전체가 노출된 화강암(花崗岩)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의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하는데, 타락산(駝駱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야트막한 낙산은 오래전부터 숲이 우거지고 산책길로 많이 이용되었다.

  조선 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능선을 따라 성곽을 쌓았다.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동서(東西)로 마주 대치하는 산으로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을 둘러싼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산 북쪽에 있었던 홍화문(弘化門:東小門)은 없어졌으나, 남쪽에 있는 흥인지문(興仁之門, 東大門)은 남대문과 함께 서울의 상징이 되고 있다.

  낙산 아래에 수없이 많은 명사가 살았다. 좌의정을 지냈던 박은, 한성부판사를 지낸 이석형(李石亨, 1415~1477), 태종의 외손이었던 남이(南怡, 1441∼1468) 그리고 좌찬성을 지낸 신광한(申光漢, 1484년~1555년)과 동서분당의 주역인 김효원(金孝元, 1542년~1590) 등이 낙산 기슭에서 살았고,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명사들이 이렇게 대를 이어 살았던 것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이 쌍계동 바위에 낙산의 경관을 상징하는 '홍천취벽(紅泉翠壁)'이라는 글자를 새긴 것만 보더라도 그만큼 풍광이 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 낙산 아래 위치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萬)의 집인 이화장(梨花莊)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찰로는 고려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청룡사(靑龍寺)와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가 있다. 미타사는 여승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 담진국사에 의해 창건된 보문사(普門寺)가 있다. 근래에는 한때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지만, 공원녹지확충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철거되고 성곽이 복원되었으며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낙산 낙산에 오르는 길로 들어서면 성벽 아래 늘어선 집들이 마치 1980년대와 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다. 20여 년 전의 풍경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지금은 산책길로 인기가 좋고, 이화벽화마을에서 낙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아 수리하는 집들이 늘었다.

 

 



  정상 가까이 숲 속에 낙산정이 있다. 고풍스러운 정자에 오르면 이곳이 어수선하고 복잡한 서울인지 모를 정도로 고요하고 한적하다. 옛적 낙산 아래 살던 고관들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을 법하다. 정상에는 깔끔하게 정리하여 동네 사람들이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시설과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 낙산정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전망대에 서면 멀리 북한산, 인왕산, 남산, 아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중종 때의 문장가인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1539∼1583)이 낙산의 뛰어난 경관을 묘사한 「동산인가시(東山人家詩)」를 떠올리며 성벽에 걸터앉아서 성 밖을 보면 아스라하게 성저십리에 자리한 아차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동쪽 봉우리에 구름 안개 자욱이 아침 햇무리를 가리고       
  깊은 숲 속에 깃든 날짐승들 새벽인데도 날지 않는구나.        
  이끼 낀 오래된 집 외로이 문은 닫혔어도        
  맑은 이슬 가득한 뜰엔 장미꽃 뒤섞여 어우러졌네.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보이는데 인왕산 남쪽에 있는 재가 무악재다. 인왕산 남쪽에 북악산이 있고, 그 아래쪽에 청와대와 경복궁이 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도성 안에서 조선은 오백 년 사직을 일구었다.  낙산 동쪽에 자리한 봉우리는 동망봉(東望峯)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난, 비운의 임금인 단종(端宗)의 부인 정순왕후(定順王后)가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간 남편을 향해 아침저녁으로 제를 올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단종비 정순왕후는 단종과 이별하고 폐서인되어 낙산 아래 청룡사의 승려가 되었고 창신동 골짜기에서 비단에 자색 물을 들여 시장에 내다 팔며 살았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 샘물이 있던 곳에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는 암각자가 남아있다. ‘자지(紫芝)’는 자주색 염료로 쓰이는 식물로 그 뿌리를 채취하여 옷감에 물을 들였다고 하여 이 샘을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고 부른다.

 

 

- 낙산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미세먼지 '나쁨'이어서 시계가 최악이다 -

 

 

- 단종비 정순왕후가 염색을 했다는 자지동천(紫芝洞泉) 암각자와 샘물터 -

 

 

- 정상 부근 나무 위의 까치집이 인상적이다 -
  

 

 

  낙산공원에서 암문을 지나 내려가면 한성대입구역이 나오고, 지하도를 건너서 5번 출구로 나가자 보이는 성문이 혜화문이다. 혜화문에서 경신중학교를 지나 최순우의 옛집을 지나는 길의 성곽은 끊어져 있다가 서울과학고등학교 부근에서 다시 나타난다. 길은 와룡공원 쪽으로 이어지고, 여기서부터는 계속 오르막인 북악산 등산로다.

  

 - 혜화문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멀리 삼한신아파트 숲이 보인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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