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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구암공원, 허준(許浚) 선생 기념공원 탐방

by 혜강(惠江) 2014. 12. 30.

구암공원(허준 기념공원)

허준(許浚) 선생 기념공원 탐방

글·사진 남상학




  구암공원은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구암(龜巖) 허준(許浚) 선생의 기념공원이다.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1471번지에 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출생지이자 생을 마친 가양동에 공원을 조성하고 허준의 아호를 따서 '구암 공원'이라 이름 지었다. 허준근린공원으로도 불린다.

  양천구
의 중심지는 현재의 강서구 가양동이었다, 백제·고구려 때는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라 불렸고, 통일신라 때는 공암현(孔巖縣)으로 불렸다. 제차파의(齊次巴衣)는 이두식표기이고 공암(孔巖縣)은 그 한자표기이다. ‘암(巖)’과 대응되는 ‘파의(巴衣)’는 그대로 현대어의 바위로 이어지는 말임이 확실하지만, 앞의 제차(齊次)의 뜻은 미상으로 확실치 않은데다 공자(孔자)와 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공암이라는 한자표기만 좇아 ‘구멍바위’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인데 가양동에 있는 허가바위라는 바위굴 때문이다.

  이 공원 안에는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의 인자한 허준 동상이 있고, 허가바위(서울기념물 11), 광주바위, 호수, 정자, 놀이시설 등이 있다. 허준 동상은 조선 시대의 의학자 구암 허준(1539-1615)을 기리기 위해 대한한의사협회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성금으로 1993년 10월 31일 세워졌다. 허준이 《동의보감》의 저술을 완성하고 또 최후를 마쳤다는 허가바위(서울시기념물 제11호) 옆의 구암공원 호수 북쪽 언덕에 있다.

 

 


  허준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그 유명한 《동의보감》을 저술하였다는 허가바위는 어른 남자 2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로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난리 때마다 사람들의 피신처로 쓰였다. 이 일대 최초의 지명인 제차파의(齊次巴衣:구멍바위, 동굴바위라는 뜻)의 유래지이기도 하며,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이 이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양천허씨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양화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한강 하류를 건너는 공암(孔巖)나루터였고 그 옆에는 장정 20여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허가바위라는 동굴 바위가 있어 여러 차례 정변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가깝게는 6.25동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피신하였다 한다. 광주바위와 그 옆의 허가바위는 이 일대의 역사적 최초의 지명인 ‘제차파의(齊次巴衣, 경기도 양천(陽川)의 옛 지명)- 한성백제 때 토지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드리던 바위라는 뜻" 의 진원지이기도하다.

 

 



  공원의 호수는 재미있는 전설이 담겨있는 고색창연하고 구멍이 뚫려있는 자색의 광주바위가 있다. 예전에는 한강에 있던 바위섬이었으며, 탑산(塔山)이라는 낮은 봉우리 옆에 자리했다. 1982~1986년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바위 주변을 비롯한 한강 일부가 메워짐으로써 지금의 구암공원(龜巖公園) 연못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 경기도 광주(廣州)로부터 떠내려 온 바위라 하여 ‘광주바위’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는 12m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호수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서울특별시 강서구는 매년 10월 허준축제를 진행하며 동상 앞에서 전통적인 유교 제례 절차에 따라 허준 추모제례를 진행한다. 구암공원 바로 옆에 허준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 건물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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