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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겸재정선미술관 탐방,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의 자취를 찾아가다

by 혜강(惠江) 2014. 12. 29.

겸재정선미술관 (강서구 가양동)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의 자취를 찾아가다

 

 

·사진 남상학

 

 

 


  
겸재정선미술관은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겸재 정선(1676-1759)의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하여 그가 재임했던 양천현(강서구 가양동 239) 일대 궁산 자락에 2009년 4월 23일 개관하였다.

 
대지면적 3,561.00㎡에 연면적이 3,305.29㎡인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지상 1층에는 다양한 장르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기획전시실과 졈재 정선이 5년간 재임하였던 양천현아의 축소 모형을 전시하였다. 

 

 


  

  1층은 양천현아실로 꾸몄고,  2층에는 상설전시실인 겸재기념실과 진경문화체험실이 있다. 겸재기념실은 겸재 정선의 생애를 조명하고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전시관이다. 그리고 정선이 여행한 곳과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장소의 현재와 과거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다.

  여기서 겸재 정선의 생애와 작품을 살펴보자. 겸재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그의 아버지는 시익(時翊)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서 2남 1녀 중 맏아들이다. 그의 선세(先世)는 전라남도 광산·나주 지방에서 세거한 사대부 집안이었다. 뒤에 경기도 광주로 옮기고, 고조부 연(演) 때 서울 서쪽西郊〕으로 다시 옮겨 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주변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위수(衛率: 왕세자를 따라 호위하는 직책)라는 벼슬을 비롯하여, 한성부주부, 청하현감을 지냈다. 또 자연·하양의 현감을 거쳐 훈련도감낭청(訓練都監郎廳), 양천의 현령을 지냈다. 그 뒤 약 10년 동안은 활동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754년에 사도시첨정(司寺僉正), 1755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그리고 1756년에는 화가로서는 파격적인 가선대부 지중추부사(嘉善大夫知中樞府事)라는 종2품에 제수되기까지 하였다.

 


 
 작품 활동을 보면, 그림에 재주가 있던 그는 30세 전후의 금강산 그림 등을 그렸다. 마침 중국에서 밀려 들어오는 남종화법(南宗畫法) 등을 통해 새로운 산수화 기법에 접하게 되었고, 또 당시 유행하게 된 시서화(詩書畵)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교양을 높이거나 창작하는 계기를 얻었고, 자기 회화 세계에 대한 창의력을 넓히고 일상적 생활의 주제를 회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받았다. 

  우리나라 자연을 다룬 그의 화제들은 당시 기행문의 소재였던 금강산, 관동지방의 명승 그리고 서울에서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접할 수 있는 명소들과 그가 실제 지방 수령으로 근무하던 여가에 묘사한 것들이다. 그 밖에도 자기 집과 가까웠던 서울 장안의 사철의 경치들, 특히 인왕산 동북 일대의 계곡과 산등성이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문인지우(文人知友)들과 관련되는 여러 곳의 명소나 특수한 고장들의 자연을 다루기도 하였다.

 

  특히 겸재 정선은 그의 진경산수화풍이 절정기로 치닫던 시기인 65세(1740)부터 70세(1745)까지 양천현(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현령(현재의 구청장)으로 재직하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연강임술첩’ 등 걸작의 진경산수 작품을 남겼고, 특히 한강 변의 옛 강서 모습인 이수정(二水亭), 소요정, 개화사, 양천 현아, 종해청조, 공암층탑, 설평기려, 소악후월, 소악루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정선이 그린 그림 중에는 18세기 한양과 그 주변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돋보인다. 인왕산에 있던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한 <인곡유거(仁谷幽居)>와 이곳에서 쉬고 있는 정선 자신의 모습을 그린 <독서여가(讀書餘暇)>를 비롯하여, <백악산(白岳山)>, <대은암(大隱巖)>, <청송당(聽松堂)>, <자하동(紫霞洞)>, <창의문(彰義門)>, <백운동(白雲洞)>, <필운대(弼雲臺)>, <경복궁(景福宮)>, <동소문(東小門)>, <세검정(洗劍亭)> 등은 300년 전 서울의 풍경화 그 자체이다.

 

 <청송당>의 그림에 그려진 큰 바위는 현재 경기상고 안에 그대로 남겨져 있고, <필운대>의 그림과 배화여고 건물 뒷 편에 위치한 현재 필운대의 모습을 비교하면 정선의 그림이 진경산수화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최근에 인왕산에 세운 아파트가 철거되고 이 지역을 원형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정선의 그림에 그려진 <수성동(水聲洞)>의 계곡과 다리의 모습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 겸재의  ‘수성동’ 그림(당시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던 장동, 현 효자·청운동 일대의 명승지 8곳을 진경산수화풍으로  그린 ‘장동팔경첩’ 중의 하나. 기린교 인근에는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의 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회화 기법상으로는 전통적 수묵화법(水墨畫法)이나 채색화(彩色畫)의 맥을 이어받기도 하지만, 자연미의 특성을 깊이 관찰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필묵법(筆墨法)을 개발하였다. 또  삼성미술관 소장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에서는 인왕산의 둥근 바위 봉우리 형태를 전연 새로운 기법으로 나타내었다. 즉, 바위의 중량감을 널찍한 쉬운 붓으로 여러 번 짙은 먹을 칠하여 적묵법(積墨法)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의 「통천문암도(通川門巖圖)」에서는 동해안 바위 구조를 굵직한 수직선으로 처리하여 세밀한 붓놀림이나 채색·명암 등 효과를 무시하면서도 물체의 외형적 특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두드러진 붓 쓰임의 한 예는 서울 근교나 해금강은 물론 우리 나라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의 묘사법이다. 몇 개의 짧은 횡선과 하나의 굵게 내려긋는 사선(斜線)으로 소나무의 생김새를 간략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렸다.
 
  삼성미술관 소장의 1734년 작 「금강전도(金剛全圖)」(130.7×95㎝)는 금강내산(金剛內山)을 하나의 큰 원형 구도로 묶어서 그렸다. 이는 기법상 천하도(天下圖)라는 전통적인 지도 제작 기법에 근거하며, 금강내산을 한 떨기 연꽃 또는 한 묶음의 보석 다발로 보는 종래의 자연 묘사시에서 조형적 원리(造形的原理)를 따오는 기발한 착상이다.

 

*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 가운데 최고로 평가되는 <금강전도(金剛全圖)>. 항공촬영을 하듯 위에서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를 장대하게 담아낸 걸작이다. *

 

 

   우선, 원형을 대강 오른쪽의 골산(骨山: 금강내산의 화강암 바위로 된 삐쭉삐쭉한 모습)과 왼쪽의 토산(土山: 금강내산의 수림이 자라는 둥근 멧부리)으로 구분하되, 골산은 예리한 윤곽선으로, 토산은 그의 독특한 침엽수법(針葉樹法)과 미점(米點)으로 묘사한다. 그다음 이 원형 외곽을 엷은 청색으로 둘러 여타 공간을 생략함으로써 산 자체만을 돋보이게 하였다. 이 그림은 실제의 자연을 새로 해석하여 조형화한 좋은 예이며, 오른편 위쪽에 쓴 제시(題詩)의 내용과 형태가 일치한다.
 
   정선의 회화 기법은 다른 화가들에 비하여 아주 다양하여 정밀 묘사법에서부터 간결하고 활달한 사의화(寫意畫: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창작가의 의도에 따라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까지 있어, 자연에서 얻은 인상을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과감성과 회화의 원리를 발전시키는 등 여러 단계의 작품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특히, 우리 주위에서 친숙하게 대할 수 있는 구체적 자연을 특징짓는 기법이 독창적인 면이다.
 
   이렇듯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진경산수화와 남종문인화의 새 바람을 일으킨 선비 화가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독서여가도(讀書餘暇圖)>와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인곡정사도(仁谷精舍圖)>는 정선이 자신이 살던 집과 주위 경치를 그린 작품으로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화가들이 흔히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성격과 개성,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을 기록하곤 하였다. 


* 화가로서의 겸재 정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독서여가(讀書餘暇> * 

 

 
 중년에 그린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는 인왕산이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 자리 잡은 정선의 집과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이 묘사되어 있다. 조그만 기와집의 열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선비가 아마 정선이리라. 간결한 구성과 단아한 필묘, 고운 담채, 조용하고 편안한 경치를 보면 정선이 온화하고 정취를 즐기는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정선이 남긴 400여 점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왕제색도>. 1751(영조 27)년에 그린 것으로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순간을 포착하여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 



  그러나 정선이 만년(69세)에 자신의 집을 그린 <인곡정사도(仁谷精舍圖)>에서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경물들은 울울창창한 기세를 나타내고, 빠른 붓놀림과 짙고 윤택한 먹은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한 거장의 내면처럼 강인하고도 꾸밈없이 수수하다. 정선은 이처럼 생애 내내 진경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섬세한 필선과 고운 색깔로 그린 이 그림은 선비로서의 자부심과 화가로서의 자의식, 그리고 18세기 한양의 세련된 선비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로 볼 때, 정선은 선비나 직업 화가를 막론하고 크게 영향을 주어 겸재파 화법(謙齋派畫法)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진경산수화의 흐름을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 이어갔다.

  겸재기념실에서 겸재 정선의 작품을 섭렵하느라 관람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다시 발길을 옮기면 진경문화체험실이다. 진경문화체험실은 진경산수화에 대한 쉽고 친근한 접근을 위한 디지털 체험공간이다

  3층에는 카페테리아, 뮤지엄 숍, 다목적실, 수유실이 있어서 관람객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다목적실은 영상시청, 강의 및 세미나, 전시가 모두 가능하며 대관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강서구는 앞으로 인근의 양천고성지-소악루-양천향교로 연결되는 역사ㆍ문화 투어 공간을 만들어 진경산수화의 산실로써 한국화를 세계화 거점으로 만들어 가는 공간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정보>


<주소> 강서구 양천로 47길 36(가양1동 243-1) / 전화 : 02-2659-2206, 2207
<교통> 지하철 |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출구 400m직진, SK주유소 끼고 우측으로
 100m / 버스 | 6631, 6712, 6633, 9602, 강서 06
<관람> 하절기(3~10월) 평일 10시~18시, 동절기(11~2월) 평일 10시~17시
토/일요일 10시~17시(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휴관
<맛집> 용대리 황태세상 : 건간보양식 효종갱 / 양천로49길 20(가양동 154-5, 양천향교
역 2번 출구, 전화 02-3661-01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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