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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대문구 안산자락길, 보행 약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서울의 명품 숲길

by 혜강(惠江) 2014. 7. 7.

  

서대문구 안산자락길


보행 약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서울의 명품 숲길

 

 

·사진 남상학

 



 

  안산은 경기도 아닌 서울에도 있다. 서울의 산을 이야기할 때 남산, 북악산, 인왕산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서울 서대문에 있는 안산(鞍山, 296m)은 잘 알지 못한다.  서을 남산(262m)보다 약간 높다. 서대문구에 자리한 안산은 무악산, 길마재로도 불리며 정상엔 봉수대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서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다.

  최근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을 중히 여기면서 안산에도 북한산둘레길과 같은 안산자락길이 생겨 큰 호응을 받고 있다. 2014년 3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안산자락길을 3월의 추천길로 선정됐다. 그만큼 품격 있는 길로 인정한 것이다.

  2013년 11월 개통된 안산자락길은 총연장 7km로 계속 거닐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고 보행약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순환형 숲길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폭 2m, 경사도 9% 미만으로 만들어져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평평한 목재데크나 친환경 마사토, 굵은 모래 등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휠체어 교차에 불편이 없도록 50~100m마다 폭 3~4.5m 쉼터도 만들었다. 숲길 한 바퀴를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밀며 걸어서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또 이 길에서는 소나무 외에 메타세쿼이아, 아까시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을 즐길 수 있으며 흔들바위 너와집쉼터, 북카페, 숲속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만날 수 있다. 또 자락길 어디서나 오를 수 있는 정상의 봉수대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북한산,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안산자락길은 독립공원, 서대문구청, 연희숲속쉼터, 한성과학고, 금화터널 상부, 봉원사, 연세대학교 등에서 쉽게 숲길로 들어갈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접근 경로가 다양한 만큼 출발지에 따라 느낌도 확연히 다르다. 출입구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출입구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먼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중교통의 접근성으로 보아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하여 서대문 독립공원이나 한성과학고에서 시작하는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은 서울의 서쪽 관문인 독립문역 5번출구로 나와 무악재 쪽으로 오르다가 한성과학고 입구를 지나 안산자락길을 우측으로 돌기로 하였다.  (한성과학고↔한성과학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출발

  우리의 출발점에는 서대문독립공원이 있다. 이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7년 일제가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으며 이후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8년부터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해서 1992년에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이름 지었다.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1998년 11월 개관하였다.


  이곳에는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독방 등의 옥중생활실 등이 있다. 이밖에 사형장 옆에 시신을 몰래 버리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복원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아래에 있는 한옥은 독립관이다. 우리 민족의 나라 잃은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독립관은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은 영빈관으로서 초기 이름은 모화루였다. 1429년(세종 11년) 확장 개축하면서 ‘모화관(慕華館)’으로 불렸다. 그후  1894년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세우면서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순종이 ‘독립관’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해 독립협회 사무실 겸 집회소로 사용했다.


  현재 독립관은 일제 침략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항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2835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고 안내해 놓았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3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대문독립공원을 끼고 무악재 못 미쳐 좌회전, 한성과학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올라 인 안산자락길로 접어들었다.

 

 


완만한 데크로 이루어진 안산자락길

  안산의 ‘안(鞍)’은 ‘안장 안’으로 되어 있다. 안내지도를 보니 산의 형세가 소나 말의 안장처럼 되어있다. 안산자락길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7km 구간의 원점 회귀 코스다. 간혹 흙길을 걷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데크로 되어 있다. 노란색 화살표나 파란색 화살표 중 한 방향을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길을 걷는 내내 같은 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안산자락길을 한 바퀴 돈다.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니 처음부터 데크길이다. 경사가 심하거나 길이 없는 곳에 만들어 완만하다. 푸른 숲에 덮인 길도 지나고 하늘이 열린 길도 지난다. 그렇게 걷다가 처음 만난 곳이 숲속에서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다. 책을 보관하는 곳 옆에 정자와 테이블이 있다. 책을 읽기보다는 걷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마당인 셈이다.

  완만한 데크길을 따라가면서 주변의 꽃과 나무를 보면서 식물공부를 하는 것도 큰 재미다. 우거진 아카시 나무로부터 길따라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산딸기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걷다보면 곳곳에 휴게데크가 설치되어 잠깐 쉬었다 갈 수 있고, 푸른 숲을 지나 하늘이 열린 곳에 이르면 인왕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지가 나온다. 전망지에서는 아파트 숲 뒤로 병풍처럼 둘러친 산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지에는‘안산에서 바라본 서울’이란 안내판을 설치하여 탐방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전망지에서는 아파트 숲 뒤로 병풍처럼 둘러친 인왕산과 북한산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너와집 쉼터와 박두진 시비

  다음으로 만나는 것이 너와집쉼터다. 길 위로 80m 거리에 너와집이 있다는 표지판 안내를 따라 돌을 깔아 만든 길을 오른다. 원추리 꽃이 반기는 숲속에 보물처럼 너와집이 있다. 언젠가 울릉도 여행길에서 그리고 강원도 삼척 도계에서 보았던 너와집이다. 너와집은 소나무 널빤지를 잘라 만든 너와를 기와처럼 지붕에 얹은 집이다. 전통적인 너와집은 고정용 통나무를 올리는 것이 보통인데 없는 것을 보면 못질로 고정했거나 방부목 너와를 사용한 것같이 보인다. 창문을 빼놓고 벽도 모두 나무로 처리해 놓았다.

  나무로 된 문은 닫혀 있는데 닫힌 문에는 ‘불이문(不二門)’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불이문’은 무심수행을 닦으면 불이(不二)의 경지를 얻어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절에서나 사용하는 글자인데 이곳에 불교 수행자가 살고 있다는 얘기인가?  헛간에 장작이 쌓여 있고, 장독대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 텃밭에 갖가지 채소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 상주하고 있는 듯했다. 너와집 바로 옆에 너와를 얹은 쉼터가 따로 있는데, 한 무더기의 여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너와집쉼터에서 나와 또 하나의 전망지를 지나면 길옆에 박두진시비가 있다. 이 시비는 ‘푸른 숲에서’라는 한 작품을 높이 2m 10cm, 폭 1m 20cm 크기의 세 개의 돌비에 새겼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읽어본다.

 

  찬란한 아침 이슬을 차며

  나는 풀숲 길을 간다
  영롱한 이슬들이 내 가벼운

  발치에 부서지고
  불어오는 아침 바람 - 산뜻한

  풀 냄새에 가슴이 트인다 
 
  들장미 해당꽃
시새워 피고
  꾀꼬리랑 모두 호사스런 산새들이

  자꾸 나를 따라오며 울어준다
  머언 산엔 아물아물

  뻐꾹새가 울고 -

  - 금으로 만든 날갯죽지,

  나는 이런 풀숲에 떨어졌을
  금날갯죽지를 생각하며

  옛날 어릴 적 동화가 그립다

 

  - 쫒겨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
  떨기 고운 들장미를 꺾어

  나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아본다
  흐르는 물소리와

  산드러운 바람결
  가도 가도 싫지 않은
푸른 숲길
  아무도 나를 알아 찾아주지 않아도

  내사 이제 새삼 외로울 리 없어

  오월의 하늘은
가을보다도 맑고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청산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하늘이로세 
                     
   - 박두진의 ‘푸른 숲에서’ 전문


  박두진은 서대문구와 관련이 깊은 시인이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교수를 지내고 연희동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서대문 토박이로 그는 아마도 안산을 오르며 자연의 오묘함과 자연의 신비함을 노래했을 것이다.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로 잘 알려진 박두진은 60여 년간 자연, 인간, 사회를 노래하며 한국 시단의 거목 역할을 했다. 시비 건너편에는 장수정(長壽亭)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박두진의 시비가 있는 길 맞은편 정자 옆에는 나무판에 쓴 박노해 시인의 시 '나의 하늘을 보아'란 시가 걸려있다. 잠시 발길 멈추고 시를 읽어본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다시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의 시 '너의 하늘을 보아' 전문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보아'. 꿈을 이루기위해 지금 겪는 시련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시련을 겪을 때 가슴에 품은 꿈을 생각해 보고 용기 있게 일어서는 것이 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메타세쿼이아 숲길과 숲속 무대

  얼마를 걷다 보면 소나무 숲길, 잣나무 숲길,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이어진다. 전남 담양이나 남이섬, 그리고 서울에서는 양재천 북길, 양재 시민의 숲, 하늘공원 아래의 월드컵공원에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이처럼 길가나 공원에 심은 것은 가끔 보았어도 산기슭에 군집하여 자라고 있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안산자락길은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인다.

  메타세쿼이아 숲속으로 난 데크길에 숲이 햇살을 가린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싱그러운 공기가 살갗을 감싸는 느낌이다. 줄기가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면 숲속무대가 나온다.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쉼터다. 제법 넓은 무대여서 공연도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안산자락길 숲속에서 이란 무대를 만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 쉬고 있다.
  
  숲속무대를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하늘을 가린 숲에 햇살이 비치면 푸른 나뭇잎이 빛난다. 나뭇잎을 통과한 햇살이 형광 초록색으로 변해 숲에 은은하게 퍼진다. 하늘이 열리는 구간에서는 바람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기분이다. 숲속 무대를 지나면 무악정 팻말이 보인다. 잠시 자락길을 벗어나 무악정에 올라 볼 수 있다.

 


조선 궁궐의 후보지 봉원사  

  안산자락길 제2의만남의 광장을 지나 안산헬스 아래로 봉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원사의 역사는 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도선국사가 현재 연세대 터에 창건하고 반야사라고 이름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영조 24년(1748)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영조의 친필 현판이 소실됐다.  

  안산 자락 신촌 일대는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궁궐이 들어설 후보지 중 한 곳이었다. 당시 정도전, 무학대사, 하륜 등이 궁궐터를 물색했는데 하륜이 안산을 주산으로 하고 현재 연세대를 비롯한 신촌 일대에 궁궐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궁궐이 들어섰다.  봉원사 경내에 있는 명부전 편액은 조선의 기틀을 세우고 문을 연 삼봉 정도전의 글씨다. 또 이곳은 1908년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가 창립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공덕동 별장 건물 부재를 그대로 옮겨와서 지은 건물도 보인다.  

  봉원사를 둘러보고 안산자락길로 올라와 능안정, 전망지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출발점에 도착한다. 자락길을 완주하고 이제 남은 일은 안산봉수대로 올라가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차례다.

 

 


서울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정상

  안산자락길을 걷다 보면 안산 정상(봉수대)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길이 아니라 일반 등산로다. 흙길, 바윗길이 섞여 있다. 오르막길에 계단도 있다. 안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시야가 훤하게 열린다. 현재 봉수대가 있는 곳이 '무악산동봉수대터'다. 조선시대에는 동쪽과 서쪽 두 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대에 올라서서 서울을 내려다 보면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용산, 여의도, 목동 등 서울 남부 지역의 빌딩숲이 펼쳐진다. 멀리 관악산 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남산이 보이고, 명동과 종로의 빌딩 숲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종로에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바로 앞에 서울성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인왕산이 보인다. 멀리 뒤쪽에는 북한산 줄기가 흐른다. 눈을 아래로 돌리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장난감처럼 작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고 산을 내려간다. 

  산에서  능안정으로 내려와 다시 자락길의 막바지 길을 걷는다. 안산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안산자락길에는 능안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놓았는데 그 유래를 적은 글에는 ‘陵安亭(능안정)의 由來(유래)’라 적어 놓았으니 안(內) 쪽 마을을 편안한(安) 마을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능안마을 끝 안산 자락에는 예부터 복주물(福注물?, 안내판에는 福主우물이라 써 있음)이라는 훌륭한 약수가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복지물’이라 불렀고 뒷산 안산도 동봉과 서봉 사이가 말의 안장 같이 생겼기에 ‘말락바위’라 불렀다.

 

 

마지막 들러 빈 배를 채울 겸 영천시장을 둘러보자. 언제 찾아도 우리 전통시장은 정겹고 반갑다. 구경삼아 긴 시장 통로를 걸으면 우리네 삶의 정이 물씬 묻어난다. 이곳 석교식당(02-363-2803)의 순대국은 제법 이름이 나 있다. 장관이나 시장의 친필 사인도 붙어 있다. 여기서 시장기를 채우니 천하가 내 세상인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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