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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촌 탐방(10) - 인왕산 기슭에 옛 모습으로 복원된 수성동(水聲洞) 계곡

by 혜강(惠江) 2014. 6. 20.

서촌 탐방(10) - 수성동 계곡

인왕산 기슭에 옛 모습으로 복원된 수성동 계곡

(종로구 옥인동 185 일대)

 

·사진 남상학

 

 

 

 

 옥류동천길은 인왕산 기슭, 수정동계곡 입구에 다다르면서 끝이 난다. 계곡의 물소리가 크고 맑아 동네 이름이 조선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고, 수성동 계곡 입구에서는 현재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보존된 돌다리인 기린교를 만날 수 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2011년 옥인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그림을 바탕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옛 수성동 계곡처럼 암석 지형을 회복시켜 옥류동의 원형을 되찾고,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그림 속에는 기린교를 막 건넌 듯한 세 선비와 동자가 수성동 안쪽으로 행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있고, 가벼운 붓놀림으로 이끼 낀 바위와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가뭄이 심한 데도 멋진 조경과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풍류를 아는 왕자 안평대군이 집((匪懈堂=비해당)을 짓고 살았고, 겸재 정선도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담은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담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장동팔경첩> 중 화폭의 하나가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다. 겸재는 인왕산 아래에 살면서 이 일대 아름다운 곳을 화폭에 담아 수성동 계곡의 풍경도 한 폭에 담았다. <인왕제색도, 仁旺霽色圖〉등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그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토대로 발전한 것으로,  우리의 산천을 주자학적(朱子學的) 자연관과 접목시키고자 했던 문인사대부들의 자연친화적 풍류의식의 확산에 의한 탐승유력(探勝遊歷) 풍조의 성행과 주자학의 조선화(朝鮮化)에 따른 문화적 고유색의 만연 및 자주의식의 팽배 등도 진경산수화의 발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화풍은 실경산수화 전통에 18세기에 이르러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 남종화법(南宗畵法)을 가미하여 형성되었으며 정선(鄭敾)에 의해 대성되었다. 계곡 중간에 있는 전통정자인 4각의 사모정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면 그들이 이곳을 사랑했던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앞 안내판에 겸재 정선이 수성동 계곡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새겨져 있는데,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길을 우산을 받쳐 들고 수성동 계곡을 거닐다 보니,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의 글이 생각난다.

 

수성동에서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고 심설(沁雪)의 운(韻)을 빌린다.       
골짜기 들어오니 몇 무 안 되고, 나막신 아래로 물소리 우렁차다.      
푸르름 물들어 몸을 싸는 듯 대낮에 가는데도 밤인 것 같네.  

 


  이 시에는 계곡에 대한 찬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는 박윤목 등 중인층을 중심으로 저명한 시사(詩社)가 결정되는 등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학이 사회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든 조선 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 ; 골목문학, 중인들의 문학)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수성동 계곡에서 인왕산의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윤동주 문학관까지의 코스는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짧은 거리로 최고의 산책코스로 꼽힌다. (약 15분 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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