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페 더 뮤직', 양평 그곳에 가면
그동안 몰랐던 음악과 소리의 감동을 만날 수 있다.
글·사진 남상학
우리 부부가가깝게 지내는 김 교장 내외의 초대를 받고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안내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에 있는 ‘명달리 맑은산채나물’집. 양평과 가평의 경계에 펼쳐진 통방산 자락 삼태봉 계곡,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찾아오기 힘든 곳에 있었다. 이 식당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산나물과 유기농 채소로 정갈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집이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일행은 근처 '까르페 더 뮤직(Carpe the Music)'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현대식으로 잘 지은 2층 건물이다. 길가 입구의 팻말을 보니 ‘전문음악감상실’이란다.
사람의 통행도 별로 없고 가옥도 띄엄띄엄한 이곳 오지(奧地)에 음악감상실이라니, 누가 이곳까지 음악을 감상하기 위하여 온단 말인가? 궁금증에 사로잡혀 돌계단을 오르니 문밖에 앙증스러운 소품들이 즐비하다.
문에는 ‘입장료 만원, 매주 일요일 정기휴일, 월요일 사전연락, Open 10시 Close 8시'라고 쓴 팻말이 달려 있다. 만원을 내고 입장하면 차를 들고 음악감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니 중년의 여주인이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은 천정과 벽, 바닥 일체를 원목으로 처리했고, 테이블과 의자 역시 원목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벽을 이용하여 책과 소품들이 가득하여 아늑했다. 손님이 없는 홀 안은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선율로 가득찬 느낌이다.
자리에 앉아 뽕잎차와 감잎차를 주문해 놓고 집구경을 할 겸 2층 계단을 올라가니 아래층보다는 넓고 전망이 확 트여 시원한 느낌을 주는 홀과 방이 있다. 이곳에서도 차를 마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창문을 통해선 주변 잔디공원과 박 사장 부부가 거처하는 아담한 한옥이 정겹게 자리잡은 것이 보인다. 또 주변 계곡의 경치도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자리에 앉아 궁금증이 작용하여 '까르페 더 뮤직'의 'Carpe'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까르페(Carpe)’는 희랍어로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렇다면, '음악을 즐겨라, 음악을 잡아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문득 피터 위어 감독,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8)가 떠올랐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시의 한 구절인 '까르페 디엠'은 '현재를 잡아라'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이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영국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시를 쓰고 연극을 하게 이끈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음악감상실이 궁금했다.
'까르페 더 뮤직‘은 음악에 몰입하기 위해 카페와 음악감상실을 분리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음악감상실은 홀에서 문을 열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음악감상실에 들어서면 전면에 오디오기기(앰프와 소스기기 등)와 스피커를 중앙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배치했고, 50여 명이 편히 앉을 수 있는 안락의자, 피아노, 선곡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등을 구비했다.
그리고 별실에 수만 장의 LP와 CD가 가지런히 꽂혀있다. 음악에 관한 한 나는 문외한이지만, 문외한의 눈으로 대충 보더라도 '까르페 디엠'의 앰프와 CDP, 스피커 등을 모두 합치면 아파트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카르페 더 뮤직'은 손님이 돈을 쓰는 공간보다 음악을 듣는 공간이 훨씬 크고 호사스럽다. 돈 벌기는 애초에 무관심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 오지에 거금을 들여 건물을 짓고, 엄청난 가격의 음악기기들을 들여놓고 전문음악감상실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한 터에 차를 끓여내는 안주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질문에 한 마디로 ‘한 남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름은 '까르페 더 뮤직(Carpe the Music)'의 박상호 대표(55),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한 음악다방을 드나들면서 다양한 음악의 매력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 시절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었다.
광고회사에 취직하면서 음악을 향한 열망은 더 커졌다. 다양한 광고를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즐겨 들었던 음악은 큰 재산이었다. 촉망받는 CF 감독이었던 박 대표는 결국 괜찮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와 명성을 뿌리치고 마음속에 늘 꿈꿔왔던 열망을 이루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꿈을 이루기까지 그가 겪은 숱한 경제적 어려움도 결국 그 열정을 꺾진 못했다.
10여 명이 입장한 감상실에서 일행은 최고 음질의 음악을 감상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실내악 작품인 현악 4중주 1번 제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에서부터 루치아노 파바라치가 부른 ‘마이 웨이’, 비틀즈의 ‘Letitbe’, 장사익의 ‘찔레꽃’,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이야기’ 등 10여 곡을 산속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 원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음악감상실을 나오며 하루 평균 몇 명이 입장하느냐고 질문해 보았다. 어느 때는 10~15명의 단체 손님이 오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10여 명 남짓일 때도 있다고 했다. 투자한 금액에 비하면 본전 건지기는 애당초 틀려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룬 것에 뿌듯하고, 좋은 음악을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공유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그의 길을 갈 것이다.
음악감상실 바로 아래 흙벽돌 한옥집이 그의 거처란다. 그리고 잔디정원에 있는 한옥 한 채는 게스트하우스, 4명이 이용할 수 있는 방 2개가 고작이다. 음악이 좋아 이곳에 머물기를 희망하는 이들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잔디정원 한켠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들의 군무를 바라보는 재미 또한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움이었다.
'까르페 더 뮤직', 이곳에는 그동안 몰랐던 음악과 소리의 감동을 만날 수 있다. 녹음 우거진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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