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고령산 보광사
영조의 지극한 효심이 깃든 산사를 찾아
글, 사진 : 문일식(여행작가)
조선의 임금 가운데 효심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정조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조 외에도 재위 내내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전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다.
무수리로 궁에 들어가 내명부 정1품인 숙빈에까지 오른 숙빈 최씨가 바로 영조의 어머니이자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동이다. 보광사는 숙빈 최씨가 잠들어 있는 소령원의 원찰로 왕실의 시주가 구한말까지 이어진 큰 사찰이다. 영조의 효심과 볼거리 많은 보광사를 찾아가 본다.
‘동이’ 숙빈 최씨의 원찰, 고령산 보광사
파주에는 유난히 묘지가 많다. 죽은 자들의 편안한 안식처이자 산 자들의 그리움이 사무치는 곳이다. 으슥도 하지만 왠지 숙연해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숙빈 최씨가 잠들어 있는 소령원의 원찰인 보광사를 찾아가는 길 역시 이 길을 지난다.
고양시 고양동은 파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보광사로 가기 위해서는 됫박고개라는 거친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됫박처럼 생긴 고개라 해서 이름 붙여진 됫박고개는 일명 ‘파주의 한계령’이라 불릴 정도로 꽤나 가파르다.
됫박고개를 넘자마자 오른쪽으로 보광사 일주문을 스치듯이 지난다. 보광사로 오르는 호젓한 숲길이다. 보광사가 깃들어 있는 고령산은 신령스러운 이름을 가진 산이다. 보광사도 원래 고령사로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보광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광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비보사찰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불타긴 했지만, 대웅보전을 위시한 전각들과 왕실의 손길이 머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보광사 대웅보전의 용머리 공포 장식
숙빈 최씨는 원래 숙종의 왕비였던 인현왕후를 모시던 무수리였다. 1689년 인현왕후가 폐비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희빈 장씨가 왕비가 되자 인현왕후를 모시던 그녀는 모진 구박을 받았다. 날마다 인현왕후의 복위를 기도했는데, 어느 날 숙종의 승은을 입은 후 숙원을 거쳐 내명부 정1품인 빈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녀의 아들인 영조가 훗날 숙종과 경종에 이어 조선 21대 왕이 되었지만, 그녀는 왕비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희빈 장씨의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될 것을 두려워한 숙종이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조는 오랜 재위 기간 동안 어머니 숙빈 최씨를 왕비로 추승하려고 노력했으며, 숙빈의 묘호를 육상궁, 숙빈묘를 소령원으로 격상시켰다. 보광사가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영조는 보광사를 소령원의 원찰로 삼고 대웅보전과 만세루 등을 중수했다. 그리고 매월 초 됫박고개를 넘어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이 고개가 모자를 갈라놓는 것 같아 영조가 고개를 더 낮춰 파라고 하여 ‘더파기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보광사에서 만나는 특별한 볼거리들
보광사는 영조의 지극한 효심이 스며 있는 사찰이다. 영조의 효심이 전해지는 것은 어실각과 그 앞에 서 있는 향나무다. 어실각은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아담한 전각이다. 정면과 측면 모두 1칸 규모에 지붕선이 가운데로 몰리는 사모지붕을 얹었다. 어실각 앞에는 제법 우람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 300년이 넘은 이 향나무는 영조가 어실각을 조성할 때 함께 심은 나무라고 한다. 멀리 한양에 있는 자기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지켜주길 바랐던 것일까? 어실각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망토를 두른 장군 같다.
이밖에도 영조의 흔적을 보광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조는 보광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등을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대웅보전 현판에 자신의 글씨를 새겼다. 현재 걸려 있는 대웅보전 현판이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대웅보전과 만세루는 영조가 중수한 이후 한국전쟁 때도 불타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영조의 손길이 묻어 있는 특별한 흔적이라 할 만하다.
<사진>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어실각
영조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수령 300년 된 향나무
영조의 친필로 알려진 대웅보전 현판
돌을 쌓아올린 축대 위에 올라앉은 대웅보전은 고령산의 산세와 참 잘 어울린다. 보광사 대웅보전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외벽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문을 낸 정면을 빼고는 석회를 바른 회벽이 대부분인데, 보광사 대웅보전은 나무로 만든 판벽이 좌우, 뒷면을 감싸고 있다. 게다가 10개의 판벽에는 불교 회화와 민화풍 그림이 적절히 섞인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간다는 반야용선을 비롯해 흰 옷을 입은 수월관음과 동자가 앉아 있는 커다란 바위를 세 사람이 지고 가는 모습, 화사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불보살들, 부처를 수호하는 신장과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민화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백호도 눈에 띈다. 벽화를 둘러보는 것이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 전시회를 보는 것 같다.
보광사 대웅보전 판벽에 그려진 반야용선
보광사 대웅보전 판벽에 그려진 코끼리
만세루에 걸려 있는 목어도 빼놓을 수 없다. 목어는 범종, 법고, 운판과 함께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사물 중 하나다. 보광사의 목어는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서 유심히 볼 수 있는 목어가 아닐까 싶다. 머리는 용, 꼬리는 물고기 모양이다. 한마디로 어변성룡의 목어로 용이 되어 승천을 하려는 듯하다. 색이 바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만세루에 걸린 목어
만세루 전경
죽은 자들의 동산을 바라보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고양동에서 보광사로 가는 길 외에 혜음령을 넘어 파주 용미리로 가는 길이 있다. 혜음령을 넘기 전에는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들어오기 전에 하루를 묵었던 곳이자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군대가 왜군에 대패했던 벽제관이 있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과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은 고려시대 윤관 장군의 묘도 차례로 만난다.
<사진>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암사 동쪽 산기슭에 서 있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우람하고 장중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불로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거대한 천연 암벽에 마애 기법으로 몸을 새기고 목과 머리, 갓을 따로 만들어 올려놓은 독특한 불상이다. 커다란 돌을 옮겨다가 천연 암벽 위에 얹고 부처의 얼굴을 새겼으니 석불을 만든 공력이 대단한 듯싶다. 왼편의 석불은 둥근 갓을 쓰고 연꽃을 들고 있으며, 오른편의 석불은 네모난 갓을 쓰고 합장을 한 경건한 모습이다. 고려 13대 왕인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가 꿈에 나타난 고승의 부탁을 들어주고 한산후 왕윤을 낳았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석불이다.
<사진> 천연 암벽에 목과 머리, 갓을 따로 올렸다.
두 부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건너편 용미리시립공원묘지를 바라보고 있다. 석불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지만 지금은 마치 죽은 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리는 듯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여행정보
보광사주소 : 경기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4번길 87 / 문의 : 031-948-7700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 외곽순환도로 통일로IC → 문산 방면 → 대자삼거리에서 고양동 방면 우회전 → 고양2교 → 고양동 → 보광사 방면 367번 지방도로 우회전 → 됫박고개 → 보광사
* 대중교통 :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333번 버스 이용, 보광사 앞에서 하차
2.주변 음식점
시골보리밥집 : 산채정식 /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1번길 32-22 / 031-948-7169
보리고개 : 보리밥 /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51 / 031-948-1012
은진식당 : 백반 / 파주시 광탄면 기산로 36 / 031-948-5241
3.숙소
유일레저타운 :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 877 / 031-948-6161 / 굿스테이
팔레스오브드림호텔 :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600번길 48 / 031-949-5120 / 굿스테이/
하루정원펜션 :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64 / 031-959-8853
<출처> 2014. 2. 3 / 한국관광공사
'국내여행기 및 정보 > - 인천. 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초지문화수목원, 어느 아름다운 봄날 튜울립과 함께 (0) | 2014.05.06 |
---|---|
쁘띠프랑스, 한국 안의 작은 프랑스마을 (0) | 2014.03.17 |
바람 맞으며 걷는 강화 나들길 (0) | 2014.01.15 |
시화호의 변신, 바다가 육지라면 (0) | 2014.01.14 |
맛과 멋이 풍성한 양평~가평 나들이 (0) | 2013.06.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