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洗美苑)
연꽃·수생식물 세상
물과 꽃을 보면서 마음을 씻고 아름답게 가꾸라 하네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 전화 031-775-1834)
글·사진 남상학
세미원(洗美苑)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에 있는 자연정화공원이다. 6번 국도 신양평대교가 다릿발을 내리고 지나가는 팔당호변 습지에 세미원이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 옆이다. 세미원은 물과 꽃을 주제로 한 정원으로, 희고 붉고, 크고 작은 연꽃류 감상은 물론, 연꽃과 관련된 역사·문화, 연꽃을 이용한 음식까지 두루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세미원 들머리 연꽃박물관에선 연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연을 이용한 장식품, 연 관련 전통음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가 탐방할 때는 연꽃과 섬유의 만남 ‘박수주 천연염색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세미원은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면서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라)에서 따온 말. 말 그대로 마음을 씻고 가꿀 만한 장소로 손색이 없다. 잡초로 덮이고 홍수 땐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던 곳을, 2004년부터 경기도가 조금씩 친환경 체험학습장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설과 조형물이 우리 민족의 역사·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이어서 거니는 동안 역사공부까지 곁들이게 된다.
또한 세미원은 대표적인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으로서, 경기도로부터 약 100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조성하였다. 면적 18만㎡ 규모에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놓고 6개의 연못을 거쳐간 한강물은 중금속과 부유물질이 거의 제거된 뒤 팔당댐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구성하였다.
빨래판 물길 따라 조성된 벽화·유물들
태극무늬가 그려진 세미원 정문 이름은 불이문(不二門)이다. <유마경>의 ‘불이법문’(진리는 하나다)에서 따온 말로, 여기에선 ‘자연과 인간은 하나’란 뜻을 담았다. 문을 들고 날 때, 팔괘를 새긴 담에 전시한 태극기·기와편·자물통 등 일제강점기 유물과, 단군신화를 묘사한 벽화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을 들어서면 울창한 숲 사이로 돌다리가 깔린 시냇물이 흐른다. 조성해놓은 숲과 물길인데도, 천연림 못지않게 울창하고 운치 있어 거닐 만하다. 이름과 걸맞게 세미원은 흐르는 한강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모든 길을 빨래판으로 조성하였고, 수련과 연꽃들을 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장소가 되길 바라면서 선조들이 연꽃을 보고 마음에 느낀 바를 읊은 시와 그림들을 함께 전시하였다.
신석정 시인의 <서정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신석정 시인은 목가적인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자신의 모습을 낙화에 의지하여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담담하게 그려내어 자연과 인생을 명상하고 있다. 절망을 부정하고 현실을 긍정하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미원의 분위기에 걸맞다.
흰 복사꽃이 진다기로서니
빗날같이 뚜욱 뚝 진다기로서니
아예 눈물짓지 마라 눈물짓지 마라....
너와 나의 푸른 봄도
강물로 흘렀거니
그지없이 흘렸거니
흰 복사꽃이 날린다 기로 서니
낙엽처럼 휘날린다 하기로서니
서러울 리 없다. 서러울 리 없어.....
너와 나는 봄도 없는 흰 복사꽃이여
빛날같이 지다가 낙엽처럼 날려서
강물로 강물로 흘러가 버리는......
잠시 멈춰 서서 시 한 편을 읽으면 나도 자연 속에 동화되어 한 폭의 그림 속에 낙화의 모습을 닮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물과 꽃이 어우러진 세미원에서 서정적인 시를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시인의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다. 이 시는 나중에 《영랑시선》에 수록하면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로 제목이 수정된 작품이다. 여기서 강물은 근원적인 생명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요, ‘강물이 흐르네’는 마음의 벅찬 환희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이 이렇듯 환희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물길 건너편에는 광개토대왕비를 닮은 돌이 세워져 있다. 뒤쪽에 한반도 모양의 아담한 연못을 조성하고, 만주 땅이 되는 지점에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담은 이 돌을 세웠다. 백두산 지점엔 바윗돌을 이용해 천지 모형을 만들고 물이 고였다가 흐르도록 했다.
이씨는 “백두산 주변에서 가져온 돌로 천지 모형을 만들고, 주변엔 천지 주변에서 자라는 고산식물들을 심었다”고 말했다. 못엔 백의민족의 뜻을 담은 흰 수련을 심었고, 주변엔 무궁화를 심었다. 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이 한반도 모형을 보며 ‘나는 이렇게 국토를 가꿔나가겠다’는 내용의 논술문을 작성하는 곳이라고 한다.
기도하는 여인 모습의 바위를 중심으로 전시된 수많은 항아리 분수들이 눈길을 끈다.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을 위해 비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항아리 365개를 이용했다. 분수대 옆에는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 ‘삼천리 강산을 금상첨화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확대해 세워놓았다. 국내 첫 환경 관련 담화문이다. 그런데 ‘금상첨화(錦上添花)’란 말을 어법에 맞지 않게 사용하여 좀 어색하다.
세미원에는 100여 종의 수련을 심어놓은 세계수련원·수생식물의 환경정화 능력을 실험하고 현상을 교육하는 환경교육장소·수련과 연꽃의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여 실험하는 시험재배단지 등이 있다.
세미원은 연꽃·수생식물 세상
‘삼세계효지가’(삼대를 이은 효자의 집) 현판을 단 정자 안엔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앞에 펼쳐진 ‘페리 기념 연못’의 백련을 감상하고 있다. 이 연못의 연꽃은 다른 연꽃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세계적인 연 연구가인 미국의 페리 슬로컴이 자신이 개발한 연 21종과 수련 47종을 보내와 심어놓은 곳이라고 한다. 드넓은 대지에 피어 하늘 향해 꽃을 피우는 연꽃을 바라보며 정호승 시인이 쓴 <연꽃 구경>을 읽어본다.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을 생각한다.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세속에 묻혀 자연에 흠뻑 동화되지 못하고 유독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닌가. ‘페리 기념 연못’ 정자 옆엔 김정희 선생이 71살 때 쓴 ‘대팽두부과갱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 같은 것들이요, 가장 귀한 모임은 부부와 자녀·손자가 함께하는 것이다) 글을 확대해 세워놓았다.
백련·홍련은 8월초 절정기를 지나 시들어가지만, 중순까지 일부 연꽃을 볼 수 있다. 연꽃이 아니더라도 열매 맺은 연밥들과 부들, 개구리밥, 부처꽃·물옥잠·물억새 등 다양한 수생식물이 장관을 이룬다.
연못 곳곳엔 선인들의 지혜를 더듬어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항아리 모양의 분수대인 한강 청정 기원제단·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관란대(觀瀾臺)·프랑스 화가 모네의 흔적을 담은 ‘모네의 정원’·풍류가 있는 전통 정원시설을 재현한 유상곡수(流觴曲水)·‘수표(水標)’를 복원한 분수대·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기후관측기구인 풍기대 등도 있다.
가을 물에 뒤집히는
저 연꽃 송이들
보아라.
어느 방짜 유깃간 놋쇠 항아리
두들기는 소리가 나는구나
내 몸에서도 물에 젖은 향가가 나
그 향기 하나로 천 리 밖까지 날아가서
너의 숨결에 닿고
옥황상제의 집 열두 대문을 밀고 들어가
댓돌 위의 가지런한 신발도 만나고
한밤중 불 밝힌 방 안
우레라 속삭이는 40년 전 누이의 목소리
청아, 청아, 청아, 청아.......
월컥 눈물이라도 쏟고 싶은 날
가을 물에 뒤집히는
저 연꽃 송이들
보아라.
수련이 예쁘게 얼굴을 들어내고 있는 연못가에서 송수권 시인의 <수련>을 읊어본다. 연잎, 연꽃에 스치는 바람소리, 물향기 담아가 삶을 다독이는 저 상상의 나래에 나 역시 무한 상상의 세계 속으로 몰입한다. 연못 위로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기후관측기구인 풍기대가 오늘 따라 왜 이리 높이만 보이는지. 높아만 가는 하늘로 솟아오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배다리 건너 두물머리는 한 폭의 풍경화
6번 국도가 지나는 신양수대교 밑 그늘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쉼터다. 그늘을 따라 여러개의 탁자와 의자를 마련해놓았다. 이곳에서 세심원과 두물머리 쪽을 잇는 250m 길이의 배다리가 금년에 놓였다. 정조가 수원 화성에 행차할 때, 한강 노량진에 여러 척의 배를 잇대어 만들었던 다리의 일종이다. 배다리를 건너면 바로 석창원에 닿는다.
석창포 온실인 석창원은 선인들이 가꾸고 즐기던 전통정원 모습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재현해놓은 조선시대 궁중온실인 창순루와 세종 때 전순의가 설계한 온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설계한 바퀴 달린 정자(사륜정) 등이 기다린다. 조상들이 자연환경을 지혜롭게 이용하였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400년 넘게 두물머리를 지키고 선 거대한 느티나무 그늘 밑에 서면 주변이 모두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늘에 앉아 이 그림을 화폭에 옮기는 이들이 많다.
◎ 체험행사 | 가족·단체를 대상으로 연잎밥 만들어 가져가기 체험을 진행한다. 5000원. 단체로 온 학생들에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국토를 어떻게 가꿀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내거나(중고생), 그림을 그려서 내야(어린이) 한다. 연 무늬 탁본, 연을 이용한 한강물 정화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이상 무료. 세미원 안은 금연지역이고,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세미원 (031)775-1835.
개장시간은 3월~11월은 오전 9시~오후6시, 12월~2월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요금은 개인 4,000원(우대 2,000원), 단체 3,500원(우대 1,500원). 그런데 흥미로운 건 입장료로 낸 4000원을, 지역주민이 재배한 친환경 작물로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다는 점이다. 세미원을 둘러본 뒤 입장권을 농산물판매장에 제시하면 그 값어치의 쌀·야채 등으로 교환해준다. 한강변을 친환경 체험교육장으로 만들면서, 그 혜택은 지역주민에게 돌리자는 취지인 것이다.
◎ 가는 길 | 중앙선 전철로 양수역까지 간다. 용산에서 출발해 지상 청량리역, 구리·덕소·팔당 거쳐 양수역으로 간다. 용산에서 1시간 남짓 소요. 세미원은 양수역에서 700m 거리. 두물머리는 세미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승용차로는 서울외곽순환도로 남양주나들목에서 나가 6번 국도 따라 양평 쪽으로 직진, 팔당·능내·조안 지나 세미원 팻말 보고 내려서 양서면으로 가면 왼쪽에 세미원 입구가 있고, 좀더 가면 왼쪽에 양서문화체육공원 주차장이 있다. 주차료 무료.
◎ 주변 볼거리 | 서종면 수능리에 소설가 황순원의 유품 등을 전시한 ‘소나기 마을’이 있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조안면 능내리)도 가깝다. 부용산(365m) 산행도 해볼 만하다.
◎ 먹을 곳 | 양서면사무소 앞에 연음식 전문점 ‘연밭’(031-772-6200)에서 연잎찰밥·연자녹두전·순두부 등을 낸다. 세미원 주변에 유기농쌈밥과 순두부를 내는 식당이 많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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