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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그 봄의 편지, 목련(木蓮) - 스승을 향한 제자의 편지

by 혜강(惠江) 2011. 7. 8.

 

그 봄의 편지, 목련(木蓮)

 

-  스승을  향한 제자의 편지 -

 

 

· 남상학 

 

 

 

 

 

  어느 해 봄, 나는 엽서 한 장을 받았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호된 시련을 겪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 보낸 것이었다. 엽서에는 단아한 글씨로 쓴 4행의 글이 전부였다.'교정 곳곳에/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제법 두툼한 편지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 불어오고,
 햇빛 빛나고,
 목련은,
 발끝으로 서서,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손을 흔들며
 춤추는, 춤을 추는 무희(舞姬)와도 같습니다.
 손짓을 할 때마다 흰 잎이 하나, 둘, 떨어져 쌓입니다. 
 가슴 미어지도록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선생님께 이 춤추는 목련의 참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그녀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지나 이른 봄철 피어난 소담스런 목련화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봄의 화신이 되기 위해 눈보라와 찬바람을 묵묵히 이겨낸 인고의 꽃, 그녀는 분명 아픔을 이기고 피어난 꽃이었다. 따뜻한 바람과 빛나는 햇살의 고마움은 혹독한 겨울을 겪은 사람만이 안다. 그 찬란한 봄의 대지에 '발끝으로 서서 손을 흔들며 춤추는 무희(舞姬)'와도 같이, 그녀는 이 봄에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외양이나 마음까지도 그녀는 목련화와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꿈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했다. 정감이 풍부하여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 정도로 심각했다. 친구가 외국으로 떠났다고 울고, 가족간의 문제로 울고,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이 서러워서 더 눈물을 흘렸다. 누굴 그리워하다 그냥 울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을 무척 가렸다.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그녀가 내게 처음 보낸 편지에는, '3학년 때 선생님이 저를 안 가르치시면 전 하루에 한 번도 선생님을 못 뵙게 되고, 그러면 또 얼마나 많은 나날을 방황하게 될까요. 전 허허벌판에 서게 될 거예요'라며 미리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시샘이 많은 그녀는 '눈물절임' 상태에서도 연약한 것 같으나 당당하고 강했다. 3학년 담임과 교과별 담당교사 배정이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나자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추스리는듯 무서운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국문과를 갈 것이며, 졸업 후에는 숭의여고 선생님으로 오겠다는 각오와 함께 편지를 보내왔다.  
   

  선생님과 영영 떨어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부만 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께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떨어지지 않도록 국어도 열심히 할 거예요. 
  하고 싶어 못 견딜 이야기들이 생기면 편지할래요. 
 

   하나의 오기(傲氣)였을까. 그녀는 편지에 밝힌 것처럼 입시준비에 몰두하는 모양이었다. 주변 환경으로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한가하게 고민에 빠져있을 겨를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욕과 집념이 대단했고, 또한 그 의욕과 집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누군가 옆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원고지를 내놓고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어느 때는 짧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에는 긴 편지를 썼다. 순수하고 정갈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는 문장은 어느 한 곳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다. 

 

 종일 전화해서 선생님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자꾸 생각나는 선생님의 냉랭한 목소리가 무서워, 
 그리고 이런 편지 후엔 몹시 애쓰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두려워, 전 이 커다란 공허 속에서 울어버렸습니다.
 속상할 때마다 선생님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울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  

               (중략)

 선생님께 아무런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진정이지만
 결국 또 이 문제스런 아이의 소행이 선생님의 마음에 부담을 드릴까 두렵습니다.
 선생님, 제게 무엇을 해주려고 하진 마세요.
 다만 거기 그 자리에 계셔 주세요.   
 저는 선생님께서 제가 언제나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공간만을 
 허락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저로 하여금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분이 있다는 위안을 얻도록 해 주세요.

  
  편지는 일기처럼 자기표현이요, 자기고백이라 할 수 있다. 속상할 때마다 선생님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울 수 있는 자유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마음 속 고민과 하소연을 편지로 표현하여 선생님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기실 따지고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이고도 건전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무시로 편지를 받는다고 해서 귀찮아 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할 수 있는 한 도와주고 싶었다. 청소년 시절 소녀적인 감상에 젖어 일시적으로 선생님을 좋아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한 조언자요 후원자(멘토;mentor)로서 멘토링(Mentoring)을 원한다면, 그것은 가르치는 교사로서 당연한 일이요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지난 해와 올해, 전 지금까지와는 다른 운명을 만났습니다.
 올해 겨우 열여덟인 이 아이에겐 운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스스로 휘말린 돌풍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잔잔히 흐르던 혈류(血流)가 폭발하여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모든 기능을 절감시켰던 격렬한 감정 속에서
 알지 못할 열길 물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가슴들, 어두운 거리에서, 비 오는 날이면, 바람 불고
 낙엽 지던 순간순간의 격정들을.
 선생님,
 거기, 제가 항상 뵐 수 있는 그곳에
 그렇게 웃음 띠고 서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혈류가 폭발할 것 같다는 격정 앞에서 청량제가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그녀에게 제공해 줄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는 잔잔히 흐르던 혈류가 무엇 때문에 폭발했는지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심하게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청마 유치환이 안타까운 마음을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라고 토로했던 것처럼 그저 안타까은 마음뿐이었다. '다만 거기 그 자리에 계셔주세요'라니.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나의 상투적인 말은 허공에 맴도는 휴지처럼 펄럭이고,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알고 미안했던지 그녀는 졸업을 할 무렵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많이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나지는 것처럼
 전처럼 조그만 말로 제 가슴을 열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저는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척을 하더라도 
 멀지 않은 시간에 꼭 뵙고 싶다면 그리해 주시겠지요.


  그러나 결국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을 잘 버텨내고 원하는 대로 대학에 들어갔다. 다행이었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누구나 정서의 변화가 심하고 자신의 능력과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정서가 불안하기 마련인데, 홍역을 치르듯 긴 방황의 과정을 견디고 목표한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입학식을 끝내고 첫 번째로 보내온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봄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오후입니다.
 교내 방송에서는 구성진 피리가락이 느긋한 오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구요.
 일에 시달리는 선생님을 이 잔디밭에 모셔다가
 젊고, 밝고, 맑고, 깨끗한 이 풍경 속에서 쉬게 하고 싶어요. 
                    

(중략)

 언제나 현실보다는 이상이나 공상이 아름답지요.
 혼자 많이많이 생각하고 만나고 싶어 하다가, 그냥 그런 마음이 아닌,
 더욱 아름답고 좋은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후에 만난다면 
 그 기쁨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편지의 내용만으로도 고마웠다. 출가한 딸이 집에 남겨둔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라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여유롭고 느긋해진 모습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절제'와 '승화'를 말한다는 것은 격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절제할 수 있기에 꽃소식을 간단히 엽서에 적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목련의 사연을 담은 또 한편의 편지를 받고난 뒤, 답장의 형식으로 그간 그녀가 고통스러워했던 날들을 생각하며 <그날 남산에는>이란 제목의 시 한 편을 적어 보냈다.  


  그날 남산에는 비가 내렸지
  줄지어 선 은행나무 가로수엔
  날개 젖은 매미들이 지난 밤 꿈을 털고


  빗줄기 후드득 우산을 때릴 때마다
  너는 우산 밖에 서서 울고 있었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싱그러운 풀잎 사랑이 비에 젖고
  순수의 꽃잎은 떨어져 흩어지고 있었지.


  그래도 나는 너의 순한 눈망울을 보며
  꽃씨 하나  예쁜 꽃잎 되어

  고운 빛깔과 향기의 이름으로 피어나
  그늘진 하늘가 어둠 속에
  영롱한 별빛 무지개로 드리우리라 
  마음 속 굳게굳게 믿고 있었지.


 
가야 할 길은 하늘로 뻗은 무한계단

  어찌 안으로 다스려야 할 아픔과 고뇌가 없었을까.
  지금도 남산에는 비가 내리지만
  지우고 지워도 살아오는 이름처럼
  함께 가야 할 길, 소중한 길
  눈물 많던 너는 지금 울고 있느냐.
  

                               
  아픔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인 것이고, 그 성장통은 그녀와 내가 공유했던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었음을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지향점이 있고, 그 지향점에 이르는 과정에는 비비람, 천둥을 만나기 마련인데 이쯤에서 아픔의 과정을 끝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이 편지를 받고 나서 그녀가 보내온 편지는 내 의도를 알아채고 화답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는 선생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미지는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오늘은 선생님게 편지 쓰는 것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선생님은 고맙고 편안하신 분이십니다.
  그저께 밤엔 선생님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선생님이 보내신 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를 많이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열심히 살도록 채찍질해 주세요.
  선생님의 작은 말씀도 제겐 큰 힘이 됩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접어든 무렵에는 더욱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격정을 안으로 삭이고, 자신을 추스르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앓기 시작한 열병은 대학 1학년을 마칠 무렵에서야 겨우 진정되는 것 같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많이 가볍게 살아가는 저를 봅니다.
 예전처럼 작은 가슴으로 깊이 살지 않고 단지 피부로 느끼는 
 감각적인 생활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모든 진실한 이야기는 오래 전에 끝나버린 느낌입니다.
 한 때 그리도 진실했던 것들이 다 사라져버린 가슴으로 살아갑니다.
 그 속에 선생님은 아직 최후의 보루입니다.
 진정, 힘을 주시고, 막다른 골목, 그곳에 계셔서 용기를 주시는 선생님
 어려울 때 생각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분이 계신 것은 
 세상 사는데 큰 축복입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스승으로서 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도 “최후의 보루”라니. 가슴앓이 제자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따뜻한 위로나 격려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인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보다는 길고 긴 방황을 끝내고 차분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기독교 신자가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며 선생님의 권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 오기도 했다. 그 후에도 편지는 계속되었다.  '제게 항상 최후의 보루로, 어려운 것을 궁상스럽게 늘어놓을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그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시고 감싸주시는 선생님의 위치에 계신 분이라는 것이 용기와 솔직함을 주고 언제든지 이렇게 편지를 쓰게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싫다고 하시지만 않는다면 계속 이런 특전을 누리고 싶습니다.' 


 서울 어느 곳에서도 
 남산은 보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면 
 선생님 웃음처럼 
 맑게 다가오는 산
 내 생의 ‘기준시(基準時)’와도 같은 
 그 때를, 선생님을           
 늘 잊고 사는 것은 아니면서도, 
 일년에 겨우 한두 번 소식 전하는 
 제 게으름이 부끄러워집니다.  


  해가 바뀜에 따라 내게 보내오는 편지는 다소 뜸해졌지만, 나는 그치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는 것만으로 반가워했고, 그녀의 인생관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 한가운데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 힘들었던 결혼 문제가 잘 풀려서 곧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 학과의 조교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 낭보가 잇달아 들리더니 드디어 결혼식을 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왔다. 결혼행진곡이 울리는 날, 나는 결혼하는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어서 단숨에 달려갔다. 그토록 눈물 많던 시절의 긴 방황을 끝내고 한 가정의 책임 있는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고 기뻤던 것이다.    

  그 후에도 편지는 심심치 않게 이어졌고, 한번 이어진 인연의 끈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런데 꿈 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제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제가 저의 꿈을 이뤄 숭의에 오게 되는 날까지 선생님이 계실지 궁급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좁은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제 꿈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꿈이 내가 재직하는 동안에 성취된 것이다. 그 해 스승의 날 그녀는 예쁜 카드와 함께 목련꽃으로 장식한 꽃바구니를 안고 왔다. 카드에 적은 내용은,


 선생님이 제게 주신 귀한 인연, 
 선생님 그 뒤로 늘 푸른 남산과 눈물 많던 그 시절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와서야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 볼 수도 있게 되었고, 
 선생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명철(明哲)과 온유(溫柔), 
 앞으로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어디서, 누구와, 어떤 관계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편지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간 그녀는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목련이 핀 언덕에서 나는 카드에 적힌 글을 읽으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던 것이다. 드디어 정년퇴임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추억의 실타래 속에서 꺼낸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목련>이라는 한 편의 시로 써 내려갔다. 
  

 어느 해 봄,  
 하얀 목련이 피었다는 
 엽서 한 장 받은 날부터 
 내 마음에 활짝 핀 목련은 
 쉽게 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넘치지 않게 젖어드는 
 결코 만만치 않은 품새와 빛깔로 
 내 곁에 조용히 다가와서 가슴 가득 
 출렁이며, 은은한 눈빛으로 
 나를 떠받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워하면서도 그립다 선뜻
 말하지 않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 전혀
 내색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그대는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세월이 까마득히 흐른 뒤에도 
 내 마음 봄 언덕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피어날 
 하얀 목련꽃.

 목련꽃 한 아름 안고 돌아가는 
 내 발길은 큰 축복입니다.


  나는 주어진 나의 길을 마치고 퇴장하는 날, 벅찬 가슴으로 목련꽃을 한 아름 안고 가는 기분이었다. 긴 방황의 길에서 보내온 눈물 어린 그 숱한 사연들. 그 사연들은 해마다 봄철이면 하얀 목련 꽃송이가 되어 무희(舞姬)처럼 두 팔을 벌리고 손을 흔들며 높은 하늘 향해 춤 출 것이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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