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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강직과 청렴의 사표(師表), 장병환(張炳煥) 선생님

by 혜강(惠江) 2011. 7. 8.

 

나를 키워주신 스승님


강직과 청렴의 사표(師表),
장병환(張炳煥) 선생님

 

 


글 · 남상학



특히 선생님께서는

청렴결백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몸소 실천해 오셔서

청렴과 강직한 분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인간은 만남의 연속이다. 혈연에 의하여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고, 태어나서 형제와 만난다. 자라면서 친구와 만나고, 교육의 장에서 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성장한 다음에는 평생을 같이 할 동반자를 만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그 만남 중에서 ‘의미 있는 만남’이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공자와 안연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 괴테와 실러의 만남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나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 있어서도 인격과 인격의 깊은 만남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고 또 부러워한다. 왜냐 하면 이런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감화와 영향을 받아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기의 인격적인 만남은 더욱 중요하다, 이 때는 감성이 풍부하고 장래 비전을 꿈꾸는 시기이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시기이므로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장병환(張炳煥)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선배이면서도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셨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후진 양성을 위하여 고향의 모교에서 근무하실 때, 나는 선생님에게 역사를 배우게 되었다. 선생님은 역사의 대상은 ‘지나간 과거’이지만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서, 역사가는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보고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보면서 언제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라 역설하셨다. 아울러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시각에서 예리한 안목으로 분석하셨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을 짚어주셨다.

  그리고 ‘탐욕으로 점철된 역사는 쉽게 멸망한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세계사를 보라, 수많은 열강들이 세계를 제패했지만 그 열강들은 패망했다. 그 이유는 그칠 줄 모르는 패권주의적 야망이 자초한 멸망이었다" "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정치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는 누구보다도 욕심을 버리고 청렴결백을 신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특히 청렴결백에 관하여 선생님께서는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하여 몸소 실천해 오셔서 청렴과 강직한 분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청렴의 뜻이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고, 강직은 ‘마음이 꿋꿋하고 곧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선생님은 이미 그 자체로도 사표(師表)가 되시기에 충분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강의는 그만큼 힘이 있었고 생기 있는 도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강의는 시간시간마다 나에게 역사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눈과 정의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나는 그런 선생님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내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과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조금이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역사시간을 통하여, 그리고 선생님의 실천적인 삶을 통하여 나에게 끼쳐주신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의 사제관계로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선생님은 지방 고등학교(제천, 충주 등)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에 오신 뒤로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 계신 것만으로도 늘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께서 기대하시는 만큼의 그릇이 되지 못해서 가끔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서울시교육청에 근무하실 때였다. 선생님은 교육 현장에서 학교 교장의 경력을 쌓고 교육청에 발령을 받아 중등교육과 장학관으로 일하고 계셨다. 그 때 나는 숭의여자고등학고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 중에 교련과목이 필수로 설치되어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교련 검열을 받게 되어 있었다. 나는 교육청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이미 정해져 내려온 교련 검열 날짜를 학교 일정에 문제가 있어 날짜를 조정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청탁 아닌 청탁(?)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말을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이라면 공문으로 보낼 것이지 왜 직접 찾아왔냐고 다소 낸담하게 말씀하시면서도 참고해 보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마디로 내쳤을 것이지만 그래도 제자를 사랑하시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마침 점심시간에 접어들 때여서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려고 했으나 직장 동료들과 점심 선약이 있다며 거절하셨다. 나는 미리 약속을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점심 대접을 위해 준비해 간 돈을 봉투에 넣어 별 생각 없이 선생님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그런데 선생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건 청탁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느냐?” 며 호통을 치시는 것이 아닌가?  추상같은 말씀에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당당한 표정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좀 매정스럽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강직한 성격을 이해하는 나로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부터 선생님 앞에서 나는 더욱 주눅이 들고, 내 모습이 작아지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정말 청탁을 위해 선생님을 다시 찾아뵐 일이 생겼던 것이다. 1985년 3월 학교를 경영하는 재단에 재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송화 교장은 이미 2개월 전,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였던지 교감인 나를 교장 직무대리로 발령해 놓고, 사건이 터지자 밤사이 미국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학사 및 재정 운영 등 모든 일을 떠맡은 나는 긴급히 재정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서무과장(지금의 행정실장)의 보고에 의하면 당장 학교를 운영할 자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봉급 지불일이 가까워오는데 교직원의 봉급을 지급할 자금이 문제였다. 부도 사건이 신문에 대서특필 된 상황에서 긴급자금을 확보할 길이 없었다. 빚더미에 앉은 학교를 누가 도와주겠는가? 하는 수 없이 교육청에 호소해 보기로 하고, 먼저 선생님을 찾아가 사정의 다급함을 말씀드렸더니, 딱한 사정을 들으신 선생님께서 학무국장실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의론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부교육감실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들으신 부교육감께서는 재정 지원을 해 줄 테니 급한 불을 끄고, 교육의 현장이 동요하지 않도록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이 한 마디 말씀은 나를 수렁에서 건져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어찌 가능했겠는가.

  그 당시 중학교는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중학교에 지원하는 형식을 통해서 동일 학원 내 고등학교에서  차입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관선이사가 곧 파견될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관선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하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셨기에 문제가 쉽게 플린 것이다. 강직함과 청렴을 신조로 삼고 살아오신 선생님은 의외로 위기에 처한 제자의 사정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그 후로도 선생님은 교육계의 선배로서 오랜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신출내기 교장인 나에게 많은 조언과 교훈을 주셨다.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처지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바른 가르침으로, 교육의 현장에서는 바른 조언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 장병환 선생님, 선생님 감사를 드립니다.

 

 

* 츨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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