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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내 탓이오’를 실천한 교육자, 전상운(全相運) 선생님

by 혜강(惠江) 2011. 7. 8.

 

나를 키워주신 스승님

 

‘내 탓이오’를 실천한 교육자, 전상운(全相運) 선생님 

 

 

글 · 남상학

 

 


  선생님은 일찍이 투철한 신앙을 가진 양심가로서

교육현장에서 ‘내 탓이오’ 정신을 실천한 선구적 교육자였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가치관을 형성할 나이에

내게는 큰 사건과도 같았다.


 

 * 최근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에서 따온 전상운 선생님 사진 *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전상운 선생님으로부터 화학과 독일어를 배웠다. 192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충주고등학교를 거쳐 제천고등학교에 부임하셨던 것이다. 그 당시 지방학교는 교사 수급에 문제가 많아서 선생님은 본래 과학(화학) 교사였지만, 독일어 교과까지 맡으셨던 것이었다.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은 총각 선생님이셨고,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용모와 맑고 경쾌하고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로 수업 시간을 사로잡곤 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화학 수업과 독일어 수업은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었다. 문과 성향의 기질을 가졌던 나는 화학 시간보다는 독일어 시간이 더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은 독일어 공부는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우선 흥미를 갖도록 독일의 명시를 소개하고 외우게 하셨다. 그 예로 내가 처음 배운 시는 독일의 낭만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Eine Blume(그대 한 송이 꽃과도 같이)’였다. 

 

   Du bist wie eine Blume                           
   So hold und schon und rein;    
   Ich schau dich an, und Wehmut  
   Schleicht mir ins Herz hinein.    

   Mir ist, als ob ich die Hande     
   Aufs Haupt dir legen sollt',       
   Betend, dass Gott dich erhalte    
   So rein und schon und hold. 

       

  그대 한 송이 꽃과도 같이

  귀엽고 맑고 아름다운

  내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러움은 절로 가슴 속에 스미네.

 

  그대의 머리 위에 내 손을 얹어

  빌고 픈 마음 간절하여라

  하나님이 그대를 도와주시길

  맑고 귀엽고 아름다운 그대를.

 

   괴테와 더불어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하이네의 이 시는 그의 낭만적인 작품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작품으로 시적 자아의 섬세한 감정과 애틋한 정서적인 상황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처럼 아름답고, 순수하고, 가슴 저미는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이 시는 고등학생인 우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시를 통하여 학습하는 독일어 공부는 여전히 영어와 다르게 처음부터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명사를 외울 때는 성(性, Genus)도 같이 외워야 하고, 동사는 분리전철과 비분리전철을 구분해야 하고, 격(格, Kasus)과 성에 맞춰 관사가 달라진다는 등의 혼란스러움은 이런 시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지금 나의 독일어 실력은  'der des dem den die der……'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하이네의 시는 지금까지도 원시(原詩)로 흥얼거릴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선생님에 대한 나의 특별한 기억은 수업시간이 아닌, 전교생 조회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있었다. 당시 우리학교는 매주 월요일 1교시 운동장에서 전교생 애국조례를 열었다. 조회는 의례적으로 대대장의 구령에 의해 단장에 대한 거수경례가 끝나면 애국가를 부르고 이어 학교장의 훈화, 주번교사의 주훈 발표와 실천사항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교가제창으로 끝났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진 어느 날, 그 날도 운동장에서 조회가 있었다. 그 날은 운동장에 집합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3열 종대로 정렬하는 줄도 삐뚤삐뚤했다. 특히 교장 선생님의 훈화시간에는 몸을 흔들어대고 잡담을 계속하는 등 훈화를 듣는 태도가 엉망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훈화가 끝난 시간, 주번교사인 선생님이 등단하는 순간 사건이 벌어졌다. 몹시 화가 난 선생님은 학생들의 불량스런 태도를 꾸짖고 나서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탓이다.”라고 선언하시고 선생님 스스로 교단 위에서 무릎을 꿇으신 것이다. 교사로서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한 자책과 책임을 통감한다는 생각과 함께 학생 모두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극단적인 처방이었을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은 2교시가 시작된 후까지 계속되었지만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말문을 닫고 그대로 선 채 시간이 지루하게 흘렀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마치 선생님의 모습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제천제일감리교회)에서 고등부 회장이었고, 선생님은 같은 교회에서 우리 고등학생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계셨던 처지였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신앙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3학년 학급 반장으로서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던 나는 운동장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들의 잘못을 교사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선생님 앞에서 그냥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게 어찌 우리들 잘못이지 선생님의 잘못이란 말인가? 송구스럽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나의 행동에 뒤이어 반장들이 먼저 하나 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도미노처럼 번져 나중에는 전교생이 무릎을 꿇었다. 이런 학생들의 태도는 학생들 스스로 사태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행동의 표시였고 아울러 사죄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생 대표가 조회대 위에 올라가 선생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가르침을 받는 학생에게는 언제나 학생다운 행동이 있어야 하고,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오늘과 같은 태도는 앞으로 없어야 한다”는 단호한 말씀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예기치 않는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의 생활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졌다.                 

  우리 사회에 '내 탓이오' 운동이 제법 뜨거웠던 적이 있다. 80년대 한국 천주교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이기주의와 불신이 팽배한 것이 남의 탓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고 자각하자는 것이었다. 겸허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한 이 운동은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이 운동은 한 종교 단체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하여 한 나라, 아니 전 세계적인 정신으로 확산돼 나가기도 했다. 교회가 외쳐온 ‘내 탓이오’의 절정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일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신 갚기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덕과 양심의 회복은 종교적 역량으로만 가능하다며 종교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내 탓이오’는 학문도 이론도 아닌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생활신조여야 한다.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신뢰의 바탕이 된다. 

  선생님은 일찍이 투철한 신앙을 가진 양심가로서 교육현장에서 ‘내 탓이오’ 정신을 실천한 선구적 교육자였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가치관을 형성할 나이에 내게는 큰 사건과도 같았다.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는 반성과 회개, 그리고 다짐이라는 신앙생활의 한 규범도 선생님이 몸소 보여주신 행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선생님은 학문적인 연구에서도 나의 희망이 되었다. 일본 교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선생님은 한국과학사 연구에 전념하여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탁월함을 저술한 책 '한국과학기술사'를 출판했다. 이 책은 1974년 미국 MIT대학에서 출판되어 세계에 한국 과학기술의 우수함을 알리는 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생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셨던 선생님은 성신여자대학교 총장으로서 높은 행정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이런 모습은 신앙의 길, 교사의 길을 걸어온 나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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