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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스승의 날의 흑장미

by 혜강(惠江) 2011. 6. 29.

 

 

스승의 날의 흑장미

 

 

글 ˙ 남상학

 

 

 

 

       

  어느 해 스승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해 보니 흑장미 한 송이가 내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그 흑장미는 자태와 색깔과 향기에 있어서 다른 어느 것과 비교가 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매혹적이며 고혹적인 매력을 지녔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는 그처럼 탐스럽고 색깔과 향기가 뛰어난 장미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 동안 내가 보아온 장미는 흰색, 하얀색, 핑크색, 노란색 등 다양하지만, 이처럼 짙은 보라색깔의 장미는 본 적이 없다. 꽃잎이 붉은 장미보다는 검은 색을 띄기 때문에 적자색(赤紫色, Black Rose)을 띄는 흑장미는 품격과 향기면에서 대중적인 장미보다는 크게 돋보였다.

 이런 귀한 꽃을 어디서 구했으며, 누가 이 꽃을 갖다 놨을까? 순간, 기발한 행동을 하는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이 된 이후까지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는 등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 온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교무실 문을 열고 내게 가까이 다가온 학생은 내가 짐작한 학생이었고, 그 학생은 흑장미를 내 양복 호주머니에 꽂아주고 아무 말없이 총총 사라졌다.

 

  교사로서 학생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남다른 기쁨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학생으로부터 과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간혹 큰 부담으로 여겨지는 때도 없지 않다. 왜냐 하면 사람은 누구나 주는 것만큼 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기 마련인데, 선생으로서 어느 한 학생에게만 특별한 차별을 둘 수 없는 형편 때문이다. 주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고마워하는 마음을 알아서 그것으로 만족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당시, 우리학교 스승의 날에는 학생회 주관으로, 전교생이 1교시에 강당에 모여 스승의 날 기념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1교시 타종과 함께 학생회 임원들이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들에게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그 학생과 동행하여 기념식장에 입장하면 행사는 바로 시작되었다. 행사는 학생대표의 기도에 이어, 감사의 글 낭독, 학교장의 인사, 축도 등으로 간략하게 이어졌다.

 

   그날 나는 흑장미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학생회 임원이 꽂아준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기념식장에 참석하여 축하를 받았다. 다른 선생님과 다른 흑장미를 꽂은 채 입장할 만큼 용기도 없었을 뿐더러 공식행사에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2교시 수업을 기다리며 교무실 의자에 앉자있을 때였다. 흑장미의 주인공이 다가와 아무 말도 없이 주머니에 꽂혀있는 카네이션을 뽑아내고 책상 위에 놓인 흑장미를 다시 꽂아주고 나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불만과 노기에 가득찬 학생의 얼굴을 발견하고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쯤 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불러서 일일이 변명하거나 이해시키는 것도 부질없는 일인 것 같아 그날 일은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결혼한 지 3년이 채 안 되었고,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담임하고 있었다. 보통 같으면 아내는 집으로 날아드는 여학생들의 전화나 편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맘때의 여학생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아내는 내게 오는 편지는 개봉을 않고 전해 주곤 했다. 그런데 한번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여학생의 잦은 전화로 신경을 쓰던 아내가 그 날은 편지를 개봉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퇴근한 나에게 정색을 하고 다짜고짜 학생들이 쓸데없이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지 않도록 지도하라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편지는 그 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그 편지는 단락마다 서두에 ‘선생님에게 애정을 보내며’라는 글로 시작하고 있었고, 한 마디로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지대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어린 학생이 일시적으로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필요 이상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무랄 이유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경우 교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학생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누구에게나 청소년기의 격동이 있는 법이고, 그것은 시간과 함께 홍역처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며 이해를 구하고 넘어갔다.

  졸업을 하고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의젓한 모습으로 변해갔고, 가끔 찾아와 대학공부에 관한 일, 기숙사 생활, 미팅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 등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느 때는 학생 시절에 선생님을 너무 철없이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결혼을 하고 호주로 떠났다. 호주로 떠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틈틈이 편지나 메일,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학창시절의 추억을 평생 이어가고자 하는 태도가 분명했다. 그 당시 나는 여자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 시절은 물론 졸업한 후에라도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의미있는 교사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분 계셨으면

  객지의 어느 쓸쓸한 길모퉁이 돌다가
  생업에, 낯선 사람들에 시달리다가

  문득 가슴 넘치는 안온함으로
  떠올 수 있는 선생님

  내게 그런 선생님 한분 계셨으면

  여류시인 조향미가 쓴 <고향 같은 선생님> 중의 한 대목이다. 비단 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학창시절의 추억을 돌이켜 보며 잊을 수 없는 스승이나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스승이 있다는 건 큰 행복일 것이다. 특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나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마크 테커리(Mark Thackeray)처럼 필요한 때 격려와 조언,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관계가 유지될 때 인연의 끈은 더욱 깊어지고 사람 사는 세상은 풍요롭고 행복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월, 특별한 일로 그녀를 호주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해외연수가 호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년퇴임을 6개월 정도 앞두고 아내와 함께 호주 여행에 참여했던 것이다. 본래 우리의 여행은 여행지 선택, 일정짜기, 진행 등을 국내여행사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인 계획하고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 그녀는 호주에 살면서 우리의 호주 여행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보내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었다. 남은 문제는 현지 가이드를 물색하는 것이어서 좋은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며칠 후 답변이 왔다. 그녀는 학국어를 잘 하는 사람도 없으니, 경험은 없지만 자신이 선생님들을 모시고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나 사람을 다루는 수완이 탁월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녀의 자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14박 15일에 걸친 숭의 가족 29명의 호주 여행은 그녀의 안내로 진행되었다.

 

  시드니 공항에서 우리 일행과 합류한 그녀는 긴 일정을 무리 없이 진행했다. 브리스베인을 시작으로 골드코스트, 멜버른, 그레이트오션로드, 필립섬, 타즈매니아 호바트, 포트아서, 캔버라, 블루마운틴, 포트스테판, 시드니 등을 거치며 눙숙한 언어로 버스 기사와 협의하며 여행지와 이미 예약된 숙소, 식당 등을 확인하고 안내했다. 모교의 스승들이라 각별히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리고 먼 거리를 버스로 이동할 때는 우리 일행이 무료하지 않도록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등 여러 모로 정성을 다했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주로 60~70년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트했던 팝송들로서 정감어린 그녀의 노래는 우리의 지루함을 달래 주기에 충분했다.



  "We shall overcome some day~~

  Oh! deep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그녀는 노래 중간 중간에 멘트를 통하여 이들 사랑 노래의 대상은 바로 ‘우리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토로하기도 했다. 본래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성격을 지닌 그녀는 행복해 보였고, 가슴 속에 묻은 그리움을 노래로 말했다. 너무도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들은 모두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이 말을 들어야 하는 내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옛적 전화나 편지 사건을 떠올리며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와의 첫 번째 여행에서 본의 아니게 아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결과가 되었으니 어쩌랴.

  그녀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여행팀 전원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한끼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빠듯한 일정을 핑계삼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공부할 당시 자기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세분만이라도 꼭 자기 집에 초청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단체여행에서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듭 사양했던 것이다. 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그녀는 남편에게 불고기를 준비시켜 야외공원에서 우리 팀 전원에게 불고기 파티를 열게 해 주었다. 아마도 블루마운틴에 가는 날 점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호의로 모처럼 호주불고기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양이 차지 않았던지 호주 여행의 마지막 날 시드니에서 나 혼자만이라도 자기 집에 초대해 집도 보여줄 겸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겠다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라 나는 간곡한 그녀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늦은 밤 그녀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비가 내리는 길을 30여분쯤 달려 그녀의 도착했다. 집은 시드니 교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 한 잔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도 남편은 정중하게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 선생님들을 위하여 와인 한 상자를 선물했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이를 집에 두고 보름간에 걸친 우리의 여행을 위하여 정성을 쏟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호주 여행의 즐거움 이상으로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과 정성을 잊을 길이 없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 <리나의 호주 30년 이야기>의 ‘시드니 이야기(31)’에서 나를 가리켜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 혹은 ‘나의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사람은 ‘만남’ 속에 살아간다. 모든 교육 행위도 크고 작은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고, 거기서 인격적인 만남은 성숙되기 마련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말랑말랑한 초와 같은 감성의 시기요, 인간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많은 시간을 교육의 장에서 선생님과 만나고 대면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만일 그 기간이 의미 없는 만남으로 끝나는 시간이라면 그저 스쳐가는 한 오라기의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의미 있는 내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면 나는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곤 했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의미 있는 만남을 위하여 무엇을 했던가? 그들의 지치고 처진 어깨를 따스한 손길로 쓸어준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가망 없어 보이는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 희망과 격려의 말을 한 적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금년 5월 스승의 날에도 그녀는 예외 없이 국제 전화로 감사의 말을 전해 왔다. 카드 한 장 보내드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며. 전화 속의 이 말 한마디는 그 옛날 내게 꽂아준 흑장미 한 송이와 다를 것이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

 

 

그 해 스승의 날, 그녀가 전해준 흑장미 한 송이는 내가 그를 호명(呼名)함으로써 소담스런 꽃을 피웠다는 징표였을까. 이제 그 '스승의 날 흑장미'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지만, 때로 적적할 때 우리의 마음 속에 아름답게 피어 진한 향기를 풍겨줄 것이 분명하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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