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기념 수필>
피날레의 지점에서
- 사랑하는 젊은 R에게 -
글 · 남상학
R! 4년 전, 내가 1학년이 되던 해 봄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되지 않지만 그 프랑스 영화에는 ‘추억을 파는 노점(露店)’이 있어서 젊었을 때의 추억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흘러간 것들에 집착을 하지 않으면서 현재라는 상황만을 응시하며 현실의 장벽과 싸워가던 주인공, 그에게는 젊음의 용기와 투쟁과 모험만이 내일의 비전을 향해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고뇌의 역정(歷程)을 거친 뒤 노년에 이르러서는 센 강변에 자리 잡은 ‘추억을 파는 노점’에서 젊음의 추억을 고가(高價)로 매입하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Youth is beautiful it's not eternal; Nor is there another today, enjoy the present.」
R! 나는 그때 이 주인공이 지극히 향수적인 인물이라고 웃어넘겼지만, 난 오늘 며칠만 있으면 졸업증서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사양(斜陽)에 빗긴 교문을 걸어 나오면서 그때 노을이 사위어 가던 센 강변의 산책길을 조용히 거니는 그 주인공과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흡사 젊음을 다 보낸 노인과도 같이. 이것은 마치 풍랑을 잠시 피할 수 있었던 포구(浦口)를 빠져나와 어둠이 깃드는 대양을 향해 어디론지 가야하는 어린 선원의 마음일지 모릅니다. 캠퍼스 그것이 내 생의 여정을 통해 어쩌면 내 꿈이 마지막으로 안주할 수 있는 영원한 낭만의 포구라고 생각한 때문이겠지요. R! 정말 나는 지금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주어진 젊음의 기간이 다 가고 말았다는 단순한 느낌에서가 아니라 내가 ‘추억을 파는 노점’ 앞에 서있다 해도 고가를 지불하고 매입할만한 값진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보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세월을 허송했다는 느낌뿐입니다.
R! 돌이켜 볼 때, 지난 4년은 고독한 방황의 기간이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빈곤 속에서, 정치적인 불안정 속에서의 방황, 이것은 정열이 불타는 젊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새로운 가치체계의 창조를 위한 의욕으로서의 ‘죽느냐 사느냐’의 심각한 고뇌가 아니라, 허덕이는 자유의 획득에, 찌든 빈곤의 타개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으며 그나마 무력감, 패배감 속에 옴츠려 살았던 시간들 때문이지요. 노변에 넘치던 데모의 행렬, 구호, 유명을 달리한 친구에의 진혼곡(鎭魂曲) ⋯ 몇 발의 총성과 혁명공약의 낭독, 군정(軍政) ⋯ 그런 와중에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붙여질 엘리트라는 이름, 참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프란쓰․카프카는 그의 작품 「변신(變身)」에서 소외된 비참한 인간상을 징그러운 벌레로 상징했지만, 나는 4년간 기형아(畸形兒)로서의 변신을 창작했을 뿐입니다.
R! 부푼 꿈으로 가득 찼던 문과 1․2학년 부푼 기대로 주름잡던 허구한 날들은 이제 아무 흔적도 없이 망각의 수림 속으로 조락(凋落)해 버렸나 봅니다. 모두가 ‘아듀!’를 고하는 시간, 나는 다시 한 번 교정을 돌아보고야 말았습니다. 저 노을이 비쳐진 서창(西窓)의 묵중한 석조(石造) 건물 아래 잔디로 덮인 그라운드의 스탠드, 도서관 앞뜰의 잔디, 양광(陽光)이 조을던 동상 앞과 인촌묘(仁村墓) 주변⋯ 여기에 뿌려진 숱한 대화들을 희미한 기억 속에 되살려 봅니다.
니체와 보들레르에게서 강한 인간정신의 가능성을 찾으며, 칸트와 키에르케고르를 더듬어 제법 철학적 사고의 깊이를 심화해 가곤 하다가 으레 설익은 인생론과 미숙했던 여성론, 연애론으로 비약하여 자못 진지하게 (실은 흥분하여) 자기 학설에 핏대(?)를 세우던 에로티시즘의 세미나에 이르기까지. 몇 년 묵어 낡아빠진 교수의 강의 노트에 불만을 품고 권위의식에의 도전을 최대의 영광으로 자부하던 4년이었기에 지금은 그 스승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함께 자신이 쑥스럽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R! 나는 학교 앞 정류장에서 미련을 뒤에 남긴 채 버스를 탔습니다. 붐비는 버스의 앞자리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여학생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허지만 R! 황량한 가슴인 채 졸업이란 또 다른 의미에서 시발점(始發點)이란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발점, 저 무한이 이어진 ‘길’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하나의 시발점에서 방향을 설정해 봅니다. 오늘 막(幕)이 닫히는 아쉬움은 내일로 열리는 막의 보다 큰 기대로 변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R! 피날레의 지점에서 당신이 내게 준 호의(好意)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럼 안녕히.
- 高大新聞 졸업기념호 387호(1964.2.22자) -
<주> 같은 호에 두 개의 글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여, 고대신문에는 편집자의 권유에 따라 필명인 ‘池深’으로 게재하였음을 알립니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자전에세이 > 아름다운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의 날의 흑장미 (0) | 2011.06.29 |
---|---|
행복했던 군(軍) 생활 (0) | 2011.06.27 |
<평론> 한국적 허무주의(虛無主義)의 고찰 (0) | 2011.06.27 |
<평론> 현대적 징후(徵候)와 전환의식(轉換意識) (0) | 2011.06.27 |
대학시절 논문 당선, 조병화(趙炳華)의 시집 『밤의 이야기』를 분석한 평론으로 (0) | 2011.06.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