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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대학시절 논문 당선, 조병화(趙炳華)의 시집 『밤의 이야기』를 분석한 평론으로

by 혜강(惠江) 2011. 6. 27.

 

대학시절, 신진 논문 당선

 

조병화(趙炳華)의 시집 『밤의 이야기』를 분석한 평론이 당선되다 

 

 

글 · 남상학

 

 

 

 

 

  내가 대학을 다니던 60년대는 실존주의 사상이 전 세계를 풍미하던 때였다. 그래서 대학생이라면 실존주의 작품 하나쯤은 겨드랑이에 끼고 다녀야만 행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실 실존주의가 어떤 것이며,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온 것이며, 인간의 생활을 특정짓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맹목적인 현상이었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허무하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 실존하고 있으며, 자기가 스스로를 정립하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보는 철학 또는 문학상의 입장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등장하게 된 데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허무감과 좌절감이 팽배해 있었다. 그 결과 인간의 이성, 역사의 발전, 신의 권위에 대하여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전쟁의 체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고발 및 증언 앞에서 허망과 절망을 철학적, 문학적 고찰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절망감을 지성으로 극복하고 논리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실존주의 철학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실존주의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로부터 시작하여 무신론적 사상가를 대표하는 하이데거에 이르러 현대 정신문명의 거대한 기반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 갔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발적이고 허망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로 자신의 자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에 있는 모순이 부조리인데, 이것을 논리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반항하며, 나아가서 허무감을 이겨내고 휴머니즘을 재건하자는 태도를 취했다.

   이런 사상과 태도를 바탕으로 태어난 것이 실존주의 문학이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대표적인 무신론 작가였다.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구토》, 《파리떼》,《자유에의 길》,《존재와 무》,《벽》, 카뮈의 《이방인》,《페스트》, 《전락》등이 그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은 주체성이다”라고 주장하며, 자유의 존재요, 실천의 주체인 인간은 이 사회 속에 내던져진 우연적인 존재로서 자기의 자유로운 행동과 노력으로서 이 사회를 초극하고 변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한 실존주의는 인간의 부조리를 직시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희랍 신화의 시지프의 모습(《시지프의 신화》참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가 하면 부조리의 철학, 반항의 철학자로 불리는 카뮈(Jean-Paul Sartre 1905∼1980)는 “살려면 생의 무의미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살리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조리를 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는 실존주의가 부조리에 대한 부정과 반항의 태도(앙가지망, 현실참여)를 보인다 해도 결국은 고독과 허무와 절망을 확대할 뿐이라는 사실과 종국적으로 인간의 허무감과 좌절감을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혼란과 무질서의 현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상은 과연 있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어떤 것인가?” 또 “지금까지 내가 신봉해 온 기독교 사상은 전혀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는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실존주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고 나름대로 고만한 끝에 인간에게 엄습하는 불안과 절망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는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휴머니즘의 기치를 내걸고 반항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긍정한다 해도 초월자 곧 신을 부정한 상태에서는 인간의 궁극적 자유와 행복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나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실존주의의 두 흐름 중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보다는 유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한결같이 기독교의 전통을 부정하는데 반하여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초월자(超越者) 없이는 실존을 지탱해 나가기 어려우므로 신은 그들 실존의 근거로서, 혹은 인류 구원의 유일한 힘이며 희망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키르케고르에 있어서 인간적 실존의 과제는 참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참된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는 것은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참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감성적 실존, 윤리적 실존을 넘어서서 종교적 실존의 단계에 이를 것을 제시했다.


   종교적 실존의 단계는 신앙을 가지고 사는 단계로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주장하는 기독교적 실존주의에 해당한다. 그런데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의 단계에서는 신앙은 한번 얻으면 절대로 잃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마다 새로이 획득되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현실적, 개인적, 독자적,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며, 나의 이 실존적 존재는 오직 자기 자신 혼자가 되어 신과 대면할 뿐 그 어떤 이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 진정한 주인공으로 그 몫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때 개인의 삶은 개인의 책임이며, 주체적인 자아발견이야말로 현대사회 속에서 나를 찾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불안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참된 실존의 회복을 강조하는 키르케고르는 특히 실존을 자기가 자신이 되려는 생성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독실한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을 십분 발휘하여 죽음 뒤 신과 대면하게 될 자신에게 있어서 당당히 주체성을 갖고 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을 미리 준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야스퍼스도‘실존’을 예로 들면서 실존이란‘내가 그것에 바탕을 두고 사유(思惟)하고 행동하는 근원’이며, ‘자기 자신에 관계되면서 또한 그 가운데 초월자와 관계되는 것’이고, 그러한 실존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의 진리는‘좌절하는 실존이 초월자의 다의적(多義的)인 언어를 지극히 간결한 존재확신으로 번역할 수 있을 때 존재하는’것이라고 하여 신의 존재를 뚜렷이 했다.

   나는 이들 철학자들의 사상에 경도되면서 기독교 사상을 옹호하는 글들을 찾아 읽고 점차 사상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 (荒蕪地 The Waste Land)》를 비롯하여 유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을 전개한 마르셀의 《존재와 소유》, 가톨릭적인 시각으로 죄의식을 그린 모리아크(Gabriel Marcel 1889∼1973)의 《테레즈 데케이루(1927)》, 문학평론서에 C.H. 윌슨의 문학평론서《아웃사이더(1956)》등을 즐겨 읽으며 나름대로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그리고 어딘가에 나의 주장을 글로 펼쳐보고 싶었다.

   그런데 1962년 10월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박우사(博友社)에서 지성인들을 독자층으로 한 야심작 『현대인강좌(現代人講座)』전7권을 간행하면서 완간 기념으로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현상논문을 모집했다. 나는 그간의 독서를 바탕으로 《현대 지성(現代知性)과 전환의식(轉換意識)》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작성하여 응모했다. 많은 사상가들의 글을 논거로 하여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밖에 없음을 역설한 내용이었다. 내 작품은 응모작 200여 편 중에서 가작에 입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심사위원은 한국 지성의 최고 수준에 있는 김태길, 백철, 신사훈, 이항녕, 홍이섭 등 네 분이었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백철(평론가) 교수는 선후평에서 “우리들이 10위까지 골라낸 논문은 예상한 것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근래 모(某) 일간지의 신춘문예 논문을 읽어본 인상과 대조해 볼 때, 차라리 이쪽 논문들이 더 질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고 했다. 최초의 응모에서 가작 입선이라는 결과는 얻게 된 것도 중요하지만,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이어 박우사는 『현대인강좌』간행이 한국 지성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자 뒤이어, 한국 지성들이 현대의 예지를 집대성하여 『이십세기강좌(二十世紀講座』(전7권)를 발행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1963년 6월 이를 기념하여 신진논문(新進論文)을 모집하는 계획을 또 다시 발표한 것이다. 가작 입선에 고무되었던 나는 다시 도전했다. 내킨 김에 한 편의 글을 더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조병화(趙炳華) 시인의 시집 『밤의 이야기』를 분석하여 이 시집의 중심을 이루는 ‘어둠’ 과 ‘죽음’의 단어가 한국적인 허무주의 소산으로 보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허무와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전환의식)을 밝히기로 하고, 《한국적(韓國的) 허무주의(虛無主義)의 고찰(考察)》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조병화의 시집 『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를 붙였다.

 

   나의 이런 태도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풍토 위에서 보여준 이단아적 행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총 응모 작품 90여 편 중에서 다른 세 편과 함께 당선작으로 결정되었고,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들의 글과 함께 『이십세기강좌』제5권『이십세기의 한국』(309쪽)에 당당히 수록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바쁜 대학생활에서 귀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는 생각에 부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내게는 학교 안에서 발행되는 학회지와 신문으로부터 원고 청탁이 쏟아졌다. 국문과에서 발행하는 『국문학』, 문리과대학에서 발행하는 『문리대학보』, 총학생회가 발행하는 『고대문화』와 주간신문인 『고대신문』 졸업 기념호에 골고루 글을 발표할 수 있었다.

   평론 당선으로 나는 굳이 신인의 문단 등용문격인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추천을 받을 필요는 없었으나 그 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했다. 내 글의 수준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최종 심사에 오른 5편의 글 속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하고 만족했다.

   어찌 보면 내 대학생활은 불행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겪은 4․19 학생의거, 그 이듬해 발생한 5․16 군사혁명의 와중에서 제1․ 2공화국이 무너지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모두가 실존을 외치고 있을 때 나는 생계를 걱정하는 생존의 현장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를 풍미했던 거대한 흐름-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물결을 거슬러 기독교적인 진리로 현대의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 자세로 글을 썼다. 신앙인만이 할 수 있는 역발상(逆發想)이었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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