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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꽃 피우지 못한 승마의 꿈

by 혜강(惠江) 2011. 6. 27.

 

꽃 피우지 못한 승마의 꿈  

                                                 

 

글 · 남상학 

 

 

 

 

 

  나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문교부(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가 운영하는 특수체육과정 의 하나인 승마훈련에 참가했다. 젊은이들의 체력을 증진시키고 능력과 취미를 습득시킨다는 취지에서 시행한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이 훈련에 지원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석양의 무법자’ ‘황야의 7인’ ‘OK목장의 결투’ 같은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영화의 주인공들은 허리춤에 총자루를 차고 말을 타고 바람 먼지를 가르며 황야를 질주했고, 나는 그런 장면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저렇게 말을 타고 달려보았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승마훈련장은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뚝섬경마장이었다. 오전반, 오후반 모두 50명의 지원자들은 승마복을 차려입은 교관들에 의하여 매일 1시간씩 5주 과정의 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훈련은 우선 승마의 일반론, 승마의 효과, 말의 성질과 습성 등 이론교육부터 시작되었다. ‘승마의 일반론’에서 승마는 사람이 생명 있는 말과 일심동체가 되어 호흡을 함께 하는 특별한 운동이란 점, 따라서 단지 사람을 태우는 도구로 인식하지 말고 고마운 친구처럼 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승마의 효과’에서는 승마는 전신 운동이므로 조화로운 신체 감각을 이룰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다. 즉 승마는 상체 교정은 물론 허리를 유연하게 하고, 소화기능을 강화시키고, 폐활량을 증가시키며 골반을 튼튼하게 하고, 관절염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집중력이 향상되고, 담력과 포용력이 생기며, 각종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고 했다.

   또 승마는 말과 함께 하는 운동이므로 우선 말의 성질과 습성을 잘 알아야 한다. 말은 감수성이 예민한 동물이어서 사람의 태도나 어조로 감정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말을 친구같이 생각하고 동작을 잘 관찰하여 말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령 말이 앞발로 바닥을 긁을 때는 물을 원하는 것이며, 배 쪽을 쳐다보고 긁을 때는 고통을 호소할 것이며, 한 발을 앞으로 내고 발굽을 들고 있는 행동은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의사 표시라고 한다. 그리고 귀를 뒤로 젖힐 때는 적의(敵意)를 가지고 있거나 물려고 할 때 보이는 행동이란다. 그 외에도 교관은 승마자가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라며 몇 가지를 덧붙였다.

 

  “처음 말과 친해지려면 말이 좋아하는 홍당무를 준비할 것, 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려면 목을 가볍게 쓸어줄 것, 접근할 때는 침착하게 반드시 앞쪽(말의 어깨부위 또는 목 부위)에서 접근하고 말에게 채이기 쉬우므로 말의 다리를 조심할 것, 또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므로 절대 큰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삼갈 것, 승마전에 말과 각종 장비를 반드시 점검하고 준비운동을 할 것” 등이었다.

   이론교육이 끝나고 기승술(騎乘術)과 하마술(下馬術) 단계는 제법 긴장이 되었다. 말을 잘못 다뤄 낙마하면 다치거나 밟힐 수 있고, 나아가서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관의 강의에 따라 조교들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말에 올라타는 기승술은 고삐를 쥐고 왼발을 등자쇠에 끼운 후, 서두르지 말고 오른발을 굴러 말안장 위로 오른다. 그리고 오른발을 천천히 등자쇠에 끼우면 된다. 지나치게 큰 몸동작이나 소음으로 말에게 긴장감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하마술은 말에서 내리는 자세로서 등자에서 오른발을 빼서 안장 뒤로 돌리면서 오른 손으로 안장 귀끝을 잡고 배를 안장에 안착시킨 후 왼발을 등자에서 빼 두 발을 모아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린다.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고나면 우리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실제로 기승과 하마 연습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생각보다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연습이 끝나면 ‘고삐잡기와 자세 익히기’의 단계로 접어든다. 고삐잡기에서 주의할 것은 말에는 금속으로 된 재갈이 물려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잡아야 한다. 고삐의 두 끈이 꼬이지 않도록 하고 양쪽 손에 한 쪽씩 나누어 잡는다. 고삐를 나란히 잡은 자세에서 팔꿈치를 살짝 내린다는 느낌으로 팔의 위치를 잡고, 양쪽 고삐는 손등 쪽에서 네 번째 손가락과 다섯 번째 손가락 사이로 손바닥을 가로질러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통과하도록 잡는다. 이때 엄지손가락이 검지를 눌러준다는 느낌으로 가볍지만 단호히 잡는다. 그 다음으로, 승마는 움직이는 말 위에서 평형을 유지해야 하므로 말과 사람이 일체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안장의 가장 깊숙한 부위에 앉고 허리를 펴고 엉덩이 양쪽 체중이 안장에 균등히 실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상체는 바로 세우고 허리가 굽지 않아야 하며, 허벅지는 안장에 살짝 얹어야 하고, 다리 체중이 아래로 실리도록 하면 가정 좋은 자세가 된다. 종아리는 말의 배에 붙이고 발뒤꿈치는 등자쇠보다 더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제부터는 정지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기술을 터득하는 단계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조종술과 보행술을 익히는 것이다. 조종술은 말의 심리를 지배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가리키는데, 살아 있는 생명체를 내 뜻대로 부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종술은 말과 승마자 사이에서 교환되는 약속이므로 말이 그 약속을 이해하지 못하면 말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약속은 주로 사람의 손과 종아리, 몸의 체중을 사용한다. 때때로 음성(혀 차는 소리)과 채찍, 박차를 사용하기도 한다. 즉 고삐를 늦추어 잡고, 박차가 달린 두 발로 신호하는 것은 출발 신호에 해당한다. 반대로 느슨한 고삐를 팽팽하게 잡는 것은 정지신호에 해당한다. 방향을 바꿀 때는 가려고 하는 방향의 고삐를 당기고 반대쪽은 고삐를 느슨하게 잡는 것이다. 이 조종술은 보행술 이전의 단계에 속한다.

   보행술(步行術)은 조종술에 비하면 한층 난이도가 높다. 승마가 전신 수직운동이라 생각보다 힘들게 마련이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말 탄 사람의 몸은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요동친다. 누구나 말을 처음 타게 되면 내장이 출렁거리고 머리가 들썩거린다. 그러므로 양쪽 종아리는 말의 양쪽 배를 늘 조여야 한다. 말이 움직일 때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천천히 걸을 때에는 ‘왼쪽 뒷발-왼쪽 앞발-오른쪽 뒷발-오른쪽 앞발’ 순서로 움직인다. 달릴 땐 2박자 리듬으로 대각선 두 발이 동시에 움직인다. 말은 직선으로 똑바로 걷는다. 뒷발은 앞발이 지나갔던 부분을 곧게 뒤따라간다. 이런 원칙에 따라 말의 보행은 평보, 속보, 경속보, 구보 등으로 구별한다.

   평보는 자연스러운 걸음이며 4절도로 움직인다. 걷는 방법 중 가장 느린 것으로 속도는 보통 시속 6km 내외다. 속보는 규칙적인 2절도의 보법으로서 대각선상의 앞다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으로, 속도는 시속 15km 내외다. 안장에 앉아서 평보 때와 비슷하게 말의 반동을 자연스럽게 받아야 한다. 경속보는 속보의 반동에 맞춰 1회 간격으로 상체를 들어 반동을 받는다. 박자에 맞춰 처음 반동시 등자를 밟고 반절만 앉았다가 두 번째 반동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한다. 글자 그대로 가벼운 걸음에 속하는 것으로 인마(人馬)의 피로를 덜어주는데 좋다. 구보는 불균형한 3절도의 보법으로서 속도는 시간당 약 24km를 갈수 있으며 이 속도는 훈련을 통해서 늘이고 줄일 수가 있다. 구보시 승자자는 안장에 앉은 채 상체를 말의 반동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되 허리는 굽히지 말아야 한다. 이 훈련은 3주까지 설명과 실습을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교관의 설명에 따라 조교가 그때그때 동작으로 시범으로 보여주고, 그 다음에는 교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교육생이 서로 짝을 지어 시행하고 지도를 받았다.

   보행술 익히기가 끝나면 4주부터는 실제 말을 타고 마장(馬場)을 도는 본격적인 훈련이 계속되는데, 승마의 쾌감은 평보로부터 시작하여 경속보, 속보, 구보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달리는 마지막 단계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재미 때문이랄까 이 때의 두 주간은 어찌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잠깐처럼 느껴졌다. 이 단계에 이르면 훈련생의 관심은 외승(外乘)에 맞춰져 있었다. 외승이란 ‘야외 승마(野外乘馬)’를 가리키는데, 울타리와 트랙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답답한 마장 안에서 배우고 익힌 기량을 대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말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고, 남에게 자랑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교관은 훈련과정에서 마지막 단계로 외승을 약속한 바 있고, 적어도 뚝섬 마사회 마장에서 출발하여 왕십리 역 구간까지는 시행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므로 우리는 마음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그런데 교관은 훈련이 종반에 가까워질수록 외승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발을 빼기 시작했다. 외승은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들을 끼고 있는 초장이어야 하는데 인파와 자동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상황에서 말을 타고 시가지를 통과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놓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 일시에 여러 사람이 외승을 나가려면 승마복을 비롯하여 여러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우리는 적이 실망했다. 꿈이 무산되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외승은 본래 훈련 일정에는 없었고, 교관이 훈련을 독려하고, 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자극제로 발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격론 끝에 외승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아쉬움을 안고 우리는 마장에서 공개시범에 이어 수료식을 거행했다. 수료식 날, 나는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했다. 안전모 대신 교표가 달린 검정 대학 교모를 쓰고, 승마복 대신 상의로 두껍게 짠 흰색 스웨터를 입었다. 5주 과정을 통하여 익힌 평보, 경속보, 속보, 구보의 실력을 친구들 앞에서 마음껏 발휘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취미로 승마를 꼭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트레킹과 말타기가 결합된 형태의 외승이야말로 아웃도어 레저로 얼마나 근사한가.

 

   그러나 나는 그 꿈을 지금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승마가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레저스포츠라고 믿으면서도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현실이 아쉽다. 그러므로 승마는 내게 앞으로도 귀족스포츠라는 인식과 함께 그림의 떡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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