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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다섯 손자 ·손녀 이야기

by 혜강(惠江) 2011. 6. 27.

 

다섯 손자 · 손녀 이야기 

 

 

글 · 남 상 학

 

 


  "언제까지 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고 삶은 그만큼 험난할 것이 분명한데,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지식에 급급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 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잠을 깨어 창밖을 보니 펑펑 눈이 쏟아진다. 순간 대치동 대현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 지연이와 같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가연이의 등교 길이 걱정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차의 왕래가 빈번한 대로를 건너 언덕길로 15분쯤 걸어 올라가야 하므로 길이 미끄러울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의 등굣길이 불안하여 나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날부터 매일 아침 승용차로 등교를 시켰는데 오늘은 무척 긴장이 된다. 나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승용차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내고 1㎞ 남짓한 거리에 있는 둘째아들집으로 아내와 함께 달렸다. 외할머니는 두 아이에게 털옷을 입히고 대기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둘째아들에게 귀여운 세 자매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둘째아들은 내외가 직장 때문에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자 처가 근처에 집을 얻어서 세 아이의 양육을 장모님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친엄마가 돌봐 주시는 것이 마음에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외할머니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와 같이 자고, 출근할 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옮겨졌고, 저녁 퇴근 때에 데려오는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그러니 지연이와 가연이 그리고 셋째 현지는 모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따라서 우리 내외는 사돈내외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연이가 초등학교의 취학을 앞두고 교육 특구라는 강남 대치동으로 과감하게(?) 이사를 해왔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은 세계최고라고 하듯이 아들 내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후로 두 손녀의 등교를 돕는 일은 우리 내외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언니 둘은 학교에 가지만 막내 현지는 돌보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동안 돌봐주셨던 외할머니가 대치동까지 차출(?)되어 오신 것이다. 외할머니는 서울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사모인데도 외손녀 셋을 돌보기 위하여 딸의 집에 와서 1년 가까이 함께 살고 계신다. 외할머니는 두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하루 종일 현지를 돌보시는 것이 일과였다. 우리 내외는 사돈 내외분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우리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면, 사돈 마님은 늘 ‘이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행복’이라며 미안해 할 것이 없다고 대답하신다.

   우리 내외는 손녀 둘을 태우고 큰길로 돌아 후문 쪽으로 차를 몰았다. 골목길은 좁고 경사가 커서 미끄러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발은 거세게 몰아쳤지만 손녀를 후문에 내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두 손녀가 차에서 내리면서 걱정이 되었던지 여느 때보다 큰 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두 아이는 학교에서 종일반까지 공부하면 저녁 때 퇴근하는 엄마가 학교에 들러 두 아이를 데려온다. 나는 거의 1년 동안 두 손녀를 등교시키면서 더욱 친해질 수 있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꽃밭에 핀 꽃들이 모양과 색채, 향기가 다른 것 같이 우리 아이들의 성격과 재능 역시 전혀 달랐다. 첫째 지연이는 재능이 있고, 명석하며, 자기 생각과 주장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잘 기른다면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어서 노래를 한번 들으면 음정, 박자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영어 발음도 아주 좋다. 두 동생의 언니로서 자상함과 포용력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연이는 온유하고 예의 바르고 순종적이며 말을 예쁘고 조리 있게 해서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언니와 동생 틈새에서 자라서인지 배려하는 마음이 돋보인다. 이런 성격을 잘 기르면 여성적인 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과 당당한 자세를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현지는 명랑하고 거침이 없는 성격을 가졌다. 언니들에게 지지 않고 자기 몫을 챙긴다. 그만큼 영리하다. 아마 두 언니 밑에서 자라면서 스스로 생존법칙을 체득(?)한 것 같은 아닐까. 이런 적극성을 잘 발휘하면 앞으로 큰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제각기 자신의 달란트를 잘 발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반면 큰아들은 딸 서연이를 낳아 이제 해가 바뀌면 중학교에 입학한다. 사촌동생 지연이에 비하면 왕언니인 셈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맨 먼저 주신 선물이었으므로 더욱 귀여움을 받았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울 때는 생활이 바빠서 귀여움을 별로 모르고 길렀던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웠다. 그것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태어난 서연이 백일을 맞아 <그 무엇이 되렴-서연(瑞娟)에게>라는 제목으로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글로 표현해 보았다.

 

   환한 아침 뜨락에
   함초롬히 이슬 먹은
   백목련(白木蓮) 꽃봉오리

   보오얀 얼굴에
   상그레 웃음 벙글면
   꽃사태처럼 쏟아지는
   고운 햇살

   초롱초롱한 눈 맞추어
   구슬을 굴리듯
   입가에 옹알옹알 열리는
   천상의 말

   출렁이는 요람(搖籃)은
   사랑으로 넘실거리는
   평화의 꽃자리
 
   새근새근 숨 고르다
   고운 눈썹 살포시 감고
   꿈길에서도 웃음 짓는
   고운 아가야

   단아(端雅)한 모습의
   하늘 향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온 누리 밝히는
   그 무엇이 되렴

 

   아이의 모습은 자라면서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했다. 때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천사 같은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져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쏟아내고,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예쁘기만 했다 .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희로애락을 연출하는 특기가 있나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저것 좀 봐-아가야>라는 글을 썼다.

   저것 좀 봐
   아침 마당에 부챗살로 퍼지는 
   질 고운 햇살
   천상의 문을 열어 제치고
   까르르 건반 위를 굴러오는
   맨발의 옥피리 소리

   저것 좀 봐
   어느 새 거센 바람이
   검은 구름 몰고 와
   고갯마루에서 헐떡이고,
   인정사정없이 자진모리 지나
   휘모리로 꺾이는
   수천 년 묵은 장대비 슬픔

   저것 좀 봐
   순간 궂은 비 그치고
   구름이 몰려가는 하늘
   다시 말갛게 씻은 화사한 얼굴에
   오색 빛깔의 무지개가 걸리고
   온 누리 꽃씨를 뿌리는
   빛나는 하늘

   귀여운 아가야
   아가야

 

  이렇게 자라난 모습은 어디 서연이 뿐이었겠는가. 지연이, 가연이, 현지 그리고 막내 기찬이가 다 그랬다. 영어 유  치원을 다닌 서연이는 초등학교 시절에도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고, 여름방학에는 미국에 건너가 유명 대학에서 개설한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학은 선행학습을 통하여 꽤 높은 실력을 쌓고 있다. 어제는 강남구 관내 각 초등학교에서 뽑힌 우수학생 570명이 응시하여 30명을 뽑는 영재학교 시험에 합격했다며 좋아라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 그것은 본인이 재능도 있었지만 평소에 열심히 공부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서연이는 공부하는 것도 남에게 지기 싫어했고,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었다. 나는 서연이가 공부에 열심을 기울이는 것만큼 넉넉한 인간미를 갖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지와 덕을 겸비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기찬이는 손자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누나와는 9살 차이, 어렵게 얻은 손자다. 큰아들 내외가 둘째를 보고 싶어 애를 쓰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손녀 넷을 주시더니 마지막으로 손자를 주셨다. 엊그제 세 돌을 맞은 날, 나는 막내 기찬이와 단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각종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어린 기찬이는 ‘와!’ 탄생을 지르기도 하고, ‘할아버지, 저것 좀 봐요, 참 신기하지요!’라는 말을 연방 쏟아 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찬이는 운전하는 내 옆에 앉아서 “할아버지, 오늘 재미있었어요!”라고 제법 어른처럼 인사를 했다. 이제 세 돌인데, 그놈이 벌써 다 컸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뭔가 큰일을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문을 빛내고 국가와 사회,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인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린이 찬미’로 유명한 어린이의 친구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면서 창간사에서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두 같은 입술로 부르는 천진난만한 노래, 그것은 그대로 한울(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어노는 모양 그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그대로가 한울의 그림자입니다."라고 노래했다. 정말 아이들은 순수 그 자체요, 하늘의 아들들이다. 또 시편127편 3-5절에는 “보라 자식들은 하나님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 하리로다”라고 말했다. 자식은 역시 든든한 버팀목과 같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고 삶은 그만큼 험난할 것이 분명한데,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지식에 급급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 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의 앞날을 축복하고 싶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 : 15) 귀엽고 사랑스런 손자손녀들아,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 있든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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