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기도로 얻은 선물, 남기찬

by 혜강(惠江) 2011. 6. 27.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선물, 남기찬

 

 

글 · 남 상 학

 

 

  “아버지, 그 이름은 태어날 우리 아들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믿고, 저의 부부가 이름을 지어놓고

그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30일(주일) 저녁 18시, 삼성동 소재 호텔 뷔페에서 손자 기찬이의 돌잔치가 열렸다. 친가, 외가 친척들과 아빠․엄마의 친구들이 모였다. 태어난 날에 맞춰 돌잔치를 하려면 12월 10일에 맞춰야 하는데, 송년회 등 각종 연말모임이 몰려 장소를 구하기가 어렵고, 주중에는 모두 일에 매달리는 형편이어서 부득이 날짜를 앞당긴 것이다.

   우리는 기찬이가 태어나서 1년 동안 찍은 사진으로 장식된 복도를 지나 별실로 들어갔다. 어찌 보면 아이의 돌을 축하하는 모임이 요란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날의 돌잔치는 단순한 호사(好事)라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자리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 모두가 기찬이의 출생은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특별히 선물로 주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아들 부부는 결혼한 그 이듬해 서연이를 낳고 둘째아기를 무척 갖고 싶어 했다. 요즘 저출산 문제를 크게 우려하는 때에 우리 아이들은 특별했다. 아들 내외는 양육비와 교육 문제로 아이를 적게 낳으려는 요즘 사람답지 않게 둘째아이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형제 없이 외동딸 혼자 자라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적어도 두 명은 되어야 든든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네 관습대로 장자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딸만 셋 낳았으니까.

 

   그런데 첫째 서연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여러 해가 되어도 둘째아이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서연이를 낳고 동생을 기다리던 아들 내외는 임신이 되지 않자 의학적인 방법을 강구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부담을 줄 것 같아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큰 어멈에게 태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온 가족은 머잖아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뱃속에서 잘 자라던 아기가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아이를 품었던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슬퍼하는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위로의 말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비록 잘못되었지만 앞으로도 수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태어날 아이를 위하여 더욱 큰 배려와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며, 앞으로 좋은 아이를 예비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다행히 큰아들 내외는 신앙으로 아픈 상처를 훌훌 털어내고 평상심을 되찾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우리 내외는 아이 문제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금요심야기도회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아들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들은 치과의사로 고된 일을 하면서도 금요일에는 심야기도회의 찬양멤버로서 기쁘게 봉사하고 있었다.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매주 발행하는 교회주보의 감사헌금자 명단에 남씨(南氏) 성을 가진 낯선 이름 ‘남기찬’에 대하여 혹시 아는 사람인지를 물어 보았다. 몇 안 되는 남씨 성을 가진 교인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이름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던 터였다. 아들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버지, 그 이름은 태어날 우리 아들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믿고, 저의 부부가 이름을 지어놓고 그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딸 서연이를 낳았으니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나 그 어느 누구도 아들 낳기를 강요한 것도 아닌데 항렬자(行列字)인 ‘기(基)’자를 넣어 ‘기찬’이라 이름을 지어놓고 작정 기도를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 왔다. 큰아들 내외는 서연이가 태어난 지 7년 가까이 되도록 둘째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 7~8)라는 말씀을 믿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편 50:23)라는 말에 의지하여 정해 놓고 감사의 예물을 드렸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아들 내외는 1년 전 부흥회에 오셨던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작정기도를 해왔던 것이다. 순간 나는 아들부부의 믿음이 애비 된 내 믿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사람은 이미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으로 감사생활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감사하는 생활은 신앙에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아들 내외의 기도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날도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승용차를 같이 타고 돌아오는 길에 차중에서 아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내외가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며 어멈이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의학적인 기술로도 불가능했던 일이 기도한지 1년도 못 되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8년 만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어미 뱃속에 새생명의 태를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빌립보서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대로 새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요 은혜임을 안 자부는 그날부터 의사의 말대로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힘든 일을 가급적 줄이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면서 뱃속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한 번 실패한 경험도 있어서 우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때까지 감사의 기도와 함께 산모에 대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

   뱃속 아이가 잘 자라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둔 무렵의 금요일 밤이었다. 그날은 아들과 함께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들이 넌즈시 말했다. “뱃속 아기가 아들인가 봐요!” 의사의 말이라고 했다. 지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아들로서는 건강하게 태어날 때까지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조심스러웠던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당분간 함구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후 시간이 흘렀다.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둔 날, 그날도 우리 내외는 아들의 차를 타고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는 태어날 아기가 남아인지 여아인지 몹시 궁금했던지 그제서야 아들에게 물었다. 아내는 그 동안 아들 내외가 아무 말이 없자 여아가 분명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머니, 아직 모르고 계셨어요?” 아들은 어머니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에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아들은 나와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해 놓고도 내가 이미 얘기 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화들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아내는 남편이 알고 있으면서도 말해 주지 않은 서운함도 개의치 않았다. 며칠 후 아이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들 내외는 아들의 이름을 할아버지인 나에게 작명(作名)해 달라고 했다. 나는 부모인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이름이므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행히 ‘기찬’의 ‘기(基:터-기)’는 항렬자이므로 여기에 ‘찬(燦:빛날-찬)’자를 붙여 ‘기찬(基燦)’이라는 한자 이름을 정해주었다. 혹시 자라면서 짖궂은 아이들이 '기찬'이를 '기똥찬'이라고 놀려대면 어떻게 할까 염려도 되었지만 그 말은 '예사롭지 않은 특별한 아이'라는 뜻이 되므로 그리 개의할 것이 못 되었다. 여기에 대고모할아버지(김호형 권사)가 화답했다. ‘기찬’이의 이름은 ‘기뻐하며 찬양한다’는 뜻이라며 기도로 낳은 아들로서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거들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날 기찬이의 탄생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자리에서 기찬이 아빠는 축하객에게 아이를 기다렸던 과정과 기찬이가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밝혔다. 정말 그랬다. 남기찬은 부모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먼저 우리 기찬이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우리 부부는 둘째 아기를 무척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는 수태가 불가능한 나이에 '이삭의 출생'이라는 축복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생각하면서, 아기의 이름까지 미리 지어놓고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기도에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기찬이는 분명히 기도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저희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1년간 우리 가정에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출생으로 인하여 더욱더 삶이 부산스러워졌고, 모든 일상이 아기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지난 1년 기찬이로 인해서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몹시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렸었던 아기였기에 사랑스럽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흐뭇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가정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고, 기도로 후원해주셨던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이 아이를 건강하고 지혜롭고 믿음의 아이로 성장시키는 것이 여러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찬이는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도구로 사용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이 사회,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큰 그릇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찬이와 서연이가 잘 클 수 있도록 우리 부부 열심히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기찬이, 서연이 아빠 엄마 올림


   아들부부는 물론, 가족들,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셨던 모든 교우들까지 기찬이의 출생과 첫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다. 본 교회 김성철 목사님은 이 아이를 <복 있는 아이>로 가르칠 것을 부모에게 권면해 주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편 1~6절)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사는 백성들에게 형통함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기찬이가 성장하면서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기찬이의 앞길을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사랑스런 우리 기찬이가 주님 은혜 안에서 복 있는 아이로 곧고 바르게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이것이 부모를 포함하여 기찬이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 남기찬의 첫돌 축하 자리에서 *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