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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아내를 위한 소묘(素描)

by 혜강(惠江) 2011. 6. 27.

 

 

아내를 위한 소묘(素描)

 

  

글 · 남 상 학

 

 

"유난히 추운 이 겨울, 단 하루만이라도 아내의 손을 설거지통에서 빼내어

거품이 퐁퐁 올라오는 기포탕에 담가주어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다."


 

 

 

   결혼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세월은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60년대 끝자락에서 난 아내를 맞이했다. 객관적인 면에서 보면 도저히 내 아내가 될 수 없는 사람을 아내로 맞이했다. 큰 느티나무 그늘 같은 아내의 가정은 그 그늘에 많은 친척들을 불러 모을 만큼 넉넉했다. 그런 가정에서 곱게 성장한 처녀가 부모 없고 의지가지없는 나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요 축복이었다.

   장인어른 되시는 이석재(李奭載) 어른은 성경린 씨 등과 함께 1926년 4월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3기생으로 입학하여 1931년에 졸업한 후, 개인사업에 종사하면서도 국악분야의 친구들을 불러들여 교류하기를 좋아했고, 사업을 접은 인생 후반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작고하기 전까지 국악발전과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그분은 천품이 선하고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온후하셨다.

 

   한편 장모님은 넉넉한 집안의 어른답게 1남 5녀를 대학까지 교육시키고 베풀기를 좋아해서 집안의 많은 친척들을 그늘에 품어 안고 그 많은 식솔들에게 큰 사랑을 베푸셨다. 그 사랑과 넉넉함 때문에 장래를 보장할 수 없는 고아 청년에게 귀여운 둘째딸을 기꺼이 내 주셨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는 너무나도 귀한 분들이다.

   삼형제만 덩그렇게 남은 집, 허술한 응봉동 언덕 집이 내 아내가 선택한 첫 보금자리였다. 시집 올 때까지 손수 밥 한 끼도 지어보지 않은 아내는 신혼부터 고난의 길이었을 것이다. 부족하고 어설프고 생소한 환경에서 감당해야 할 그 많은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갔다. 그의 수고는 가사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가계를 돕기 위하여 아내는 뱃속에 어린 아기를 키우면서도 온종일 약국에서 근무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왔다. 입덧을 하는 동안 먹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철부지인 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사주지 못했다.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모른 채 지나쳤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해 겨울
   응봉동 비탈진 언덕에 둥지 틀고
   푸른 하늘 우러르며
   칼을 베는 바람 등지고 살았었네.

   참새가 떼 지어 날아와 기웃거리다 떠난
   가난한 빈 방
   창가에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언 몸 녹이는 불씨 하나 살아

   그 타오르는 불꽃으로 피워낸 우리들의 사랑
   긴 밤을 밝히는 정성으로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때 묻지 않은 하얀 손수건에
   겨울 햇살 받아
   하늘을 베개 삼고 살았었네
   전신주에 바람이 일고 있는데 ……


    - 졸고 <추억3-겨울 햇살> 전문

 

 

  겨울, 눈이 덮인 응봉동 언덕길은 스키장을 방불케 했다. 더구나 그 골목길은 바람통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그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아내는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그런데도 나는 철없이 사랑타령만을 했던 것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숨 가쁜 길을

   서로 손잡고 뜻을 모으는 재미

   해 뜨고 달 지는 꿈길에

   아, 가도가도 정겨운 물보라 빛 세월

   은혜의 텃밭에 꽃을 가꾸듯

   어진 눈빛으로 사랑을 하네.



   나는 가난하고 미천한 백제사람 서동(薯童)처럼 서동요(薯童謠)라는 노래를 퍼뜨려 신라의 선화공주와 혼인한 것처럼 달콤한 노래로 아내를 위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아내는 이미 내 속내를 알고 있으면서도 어진 마음(?)으로 모른 척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결혼 20주년 무렵, 나는 젊잖게 <아내를 위한 소묘(素描)>라는 글을 아내에게 바칠 수 있었다.



  초가지붕에 박꽃이 피듯
  달빛 어린 뜰에 별이 내렸다.

  어느 날 먼 곳에서 날아와
  하늘 보이는 곳 처마 끝에 둥지 틀고
  작은 가슴에 환한 햇살 받아
  두 아이의 눈을 띄우고
  어둠이 묻어 있는 거실에 예지의 불을 밝힌다.

  허구한 날 안으로 다스리는 아픔과 수고
  바람 찬 세월의 고비고비
  잔잔한 주름살이 늘어가도
  광주리에 그득 담아 온 상큼한 햇과일로
  양지쪽 결 고운 항아리에 진한 포도주를 빚었구나.

  고운 빛깔과 향기로 함께 걷는 길
  어느 때고 부르면 이내 달려와
  방울소리 앞세우고 내 곁에 서는 여자
  '나는 언제나 당신을 위한 종이에요'
  묻기도 전에 대답하는 여자

  그대는 영원한 나의 리베
  무상으로 나누는 웃음소리에
  우리들의 정원엔 사시사철 목련이 핀다.

 

 

   위에 등장하는 ‘박꽃’ ‘별’ ‘종(鐘)’들의 시어는 아내의 표상에 다름 없었다. 그만큼 순박하면서도 지혜롭고, 나를 깨우치는 존재였다. 진한 포도주를 빚듯 행복을 공급하는 원천이요, 영원한 나의 ‘리베(liebe)’였다. 내가 아내를 가리켜 ‘리베(liebe)’라는 애칭을 쓴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리베’는 K.F.헤로세의 글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노래 “Ich liebe dich(그대를 사랑해)”의 내용이 우리 부부의 삶과 닮아 있다는 이유에서 중간 단어인 'Liebe'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이 곡은 '아델라이데'와 함께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가곡으로 통속적인 사랑의 감정을 극히 단순한 선율로 표현한 정감 있는 노래였다.

 


  사랑이여, 우리들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서로서로 근심 걱정 나누며 살아 왔지.
  너는 내가 걱정할 때 나를 위로해 주고,
  네가 슬플 때 나는 울었지.
  너 나의 삶의 기쁨이여, 하나님 그를 보호하시고,
  그가 늘 내게 있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 둘을 항상 함께하게 하여 주소서



  단순 소박한 선율에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두 사람의 사랑이 부드러운 서정으로 녹아 있는 노래였다. 그런가 하면 ‘리베(liebe)’는 또 아내의 이름 석자를 가리키는 음성 및 의미를 조합한 것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lie(이)+be('종'을 가키는 bell의 약자) → liebe(임)의 공식에서 보듯 ‘이종임’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30주년 기념일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내조자로서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큰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해 온 아내를 소재로 하여 <포도원의 노래>를 지어 아내에게 바쳤다.



  햇빛 따사로운 은혜의 텃밭에서
  척박한 땅 일궈
  포도나무를 가꾸는 여인아

  상큼한 바람으로 맑은 눈을 가꾸고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퍼 올린
  정한 샘물로 진액(津液)을 빚어
  우리들 뜨락에 초롱초롱 푸른 별눈을 키웠구나.

  심장의 힘찬 박동(搏動)
  날마다의 기도는 생명의 젖줄이어니
  그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귀여운 것들아
  하늘의 푸른 정기, 해맑은 미소를

  가슴 가득 안아라.


  쏟아지는 빗줄기 천둥치는 여름을 지나
  영근 포도송이 단맛을 풍길 때
  그대 고운 손으로
  깊은 잠에 혼곤히 취해도 좋을
  진한 포도주를 빚어라

 

  그 빛깔과 향기를

  빈 항아리에 가득 담아
  가나 혼인 잔치에서 기쁨을 퍼내듯
  길어도길어도 마르지 않을 행복을 길어
  언제나 우리들 즐거운 향연에
  포도나무 무성한 잎새로
  그늘을 드리우는 넉넉한 손길

  내 작은 포도원을
  평생 풍요롭게 가꾸는
  나의 사랑, 나의 여인아


   - 졸고 <포도원의 노래> 전문

 


  ‘나의 사랑, 나의 여인’이란 부제를 붙인 이 시는 고달프고 험난한 세월을 이기고 행복한 가정을 일궈낸 아내의 노고에 대한 헌시(獻詩)였다. 아내는 두 아이를 의젓하게 키워낸 장한 어머니요, 무시로 나를 격려하고 일깨워준 동반자요 멘토였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포도나무의 비유’가 언급되어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이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만이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항상 삶을 통하여 믿음 안에 거하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 새벽기도는 물론 성경쓰기와 묵상하기, CBS, CTS 방송듣기, 등 가사를 돌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말씀과 함께 살았다. 잘 익은 포도송이, 그것으로 빚은 진한 단맛의 포도주로 표현되는 행복을 가꾸는 일에 열중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뜨락에는 두 아들과 자부, 다섯 명의 귀여운 손자손녀들이 생겼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아내도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손을 놓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다소곳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보내도 될 듯한데 아내는 오늘도 여전히 바쁘다.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음악회에 가고, 첨단 기계가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세상이 되어도 ‘젖은 손이 애처로운’ 아내의 일상은 왜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유난히 추운 이 겨울, 단 하루만이라도 아내의 손을 설거지통에서 빼내어 거품이 퐁퐁 올라오는 기포탕에 담가주어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다. ‘아내’라고 불리는 여자의 고왔던 피부, 첫 데이트의 설레던 기억이 뽀얀 물빛으로 피어나는 기적은 아무래도 내 손에 달려 있을 테니까.

 

 

 

 

* 출처 : 졸고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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