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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아내의 빨래

by 혜강(惠江) 2011. 6. 27.

 

 아내의 빨래

 

 

글 · 남 상 학

 

 

"아내는 우리 가족 모두가 바른 심성과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일깨워주는 일에 누구보다도 예민했다."

 

 

                                  
 

   어느 날 아내가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갔다 돌아와서 “창피해서 혼났다”며 투덜거렸다. 한 친구가 자기를 가리켜 “너는 빨래를 잘 한다며?” “네가 얼마나 빨래를 열심히 하면 네 남편이 ‘아내의 빨래’라는 글을 썼겠느냐”고 놀리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내 시집에서 <아내의 빨래>라는 글을 읽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말은 바로 했네.’ 라고 말하고 피식 웃은 적이 있었다.

   내 아내는 천성이 부지런했다.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뒤로 미루거나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완벽에 가깝도록 노력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학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12년간 개근했고, 남들이 등교하는 시간보다 훨씬 앞서서 학교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처녀 시절부터 약국 근무를 시작한 아내는 결혼하여 두 아들을 연년생으로 낳아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육십이 넘도록 남의 약국에서 관리 약사로 근무했다.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하는 힘든 직장 생활 속에서도 집안일을 귀찮게 여기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억척스럽게 해냈다. 평생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하여 새벽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출근했다가 퇴근하여 저녁밥을 짓고, 식구들이 벗어놓은 빨래까지 마치면 언제나 밤 9시가 넘었다.

   빨래만 해도 그랬다. 내 생각으로는 한두 가지 빨래거리는 다음날 모아서 해도 될 것인데 하루를 넘기는 법이 없었다. 땀이 나는 계절도 아닌데 내복은 이틀 넘게 입히지 않았다. 그리고 행주와 걸레, 내복 빨래는 삶아야 직성이 풀렸다. 청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주부치고 그만한 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엔 내 아내는 분명 남과 달랐다.

   80년대 중반 우리 집에 초대받은 내 동료는 그 때까지 우리 집에 세탁기가 없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1970년대 초 금성사의 세탁기가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세탁기를 생활필수품으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우리 집은 세탁기를 사지 않았다. 교사의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아가는 아내의 입장에서 고가의 세탁기를 구입하는 것은 그리 급한 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아내는 시대에 한참 뒤쳐진 사람처럼 보였지만 남다른 철학이 있었다. 내 육신이 멀쩡하므로 세탁기가 필요하지 않다며 오래도록 손빨래를 고집했던 것이다. 나는 아내의 이런 행동을 뭐라 탓할 수도 없었고 한편으론 매우 고맙기도 했지만, 아내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고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아내의 빨래>는 이 무렵에 쓴 작품이었다.

   아내의 빨래 솜씨는
   늘 익숙하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다 돌아오면
   어둠을 묻혀 왔을까 조바심하는 눈치

   어쩌다 밤늦게라도 내가 돌아오는 날에는
   한숨을 숨겨왔을까 안절부절하면서

   우리 집 네 식구의 옷은 유난히도
   더러움을 잘 타는 물빛이어서 그렇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밤늦도록 빨래를 한다

   세상에서 묻혀 온 어둠과 한숨은
   재빠른 아내의 손끝에서
   곧바로 시커먼 땟국으로 빠지고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름과 얼룩들은
   밤새도록 뜨겁게 흐르는 눈물에 삶아낸다
   작은 몸집에 어디서
   그리 큰 힘이 나오는지

   아내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하얗게 표백되는 우리들의 하루
   아내의 빨래는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서툴지 않다.

      -  졸고 <아내의 빨래> 전문

 

   실제로 아내는 빨래를 좋아했다. 삶아야 하는 빨래를 그냥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빨래는 아내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상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며 평생을 검소하면서도 욕심 없이 살았다. 뒷날 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도 미리 명품 같은 고가의 물품이나 옷은 안 된다고 장래의 며느리들에게 못 박았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그 흔한 밍크코트나 명품에 속하는 가방이나 장신구가 하나도 없다. 집안의 살림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교회의 나와 같은 부서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려고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 개인택시를 하는 분이 우리 집에 와 보고 적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분은 내가 교장이라고 하여 꽤나 기대했던 모양인데, 아파트 크기도 작고 가구와 비품이 너무나 하찮은 것들이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자기 집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을 모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나에게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경우, 식사비를 다른 사람이 지불하기 전에 먼저 지불하라고 내게 늘 당부하곤 했다.

   이런 아내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아내의 빨래 행위가 단순히 식구들의 옷을 깨끗하게 입히려는 의도만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는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아이들이 혼탁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혹 더러운 것에 오염되었을지라도 바로 깨끗하게 정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런 아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나는 아내의 세탁 행위에 비유하여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내는 우리 가족 모두가 바른 심성과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일깨워주는 일에 누구보다도 예민했다. 아이들에게 자율적인 생활을 허용하면서도 밖에 나가 놀다가 혹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날에는 불호령을 떨어졌다. 그것은 남의 물건을 탐내는 마음이며, 마음속에 탐욕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거짓말은 더더욱 용서되지 않았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결국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선생님의 자식이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무례한 말버릇이나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늘 바른 예절,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을 주문했다. 사치와 허영이 넘치는 세상일수록 명품이라는 것에 눈독을 들이기보다는 검소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과다한 욕심과 거짓이나 사치와 허영이 아니오, 부정한 생각을 품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킨다는 것이며, 바른 예절과 진실한 태도, 성실한 생활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열심히 가르쳤던 것이다. 마치 빨래를 삶아 땟국을 빨아내듯이, ‘세상에서 묻혀 온 어둠과 한숨’을 지워내고, ‘더러운 기름과 얼룩’들을 눈물로 닦아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이런 아내가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이런 아내의 태도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 예로, 난처한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아서 전화가 오면 ‘집에 없다’고 말해 달라고 아내에게 주문한 때가 있었다. 아내는 나의 말을 받아서 “집에 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단호히 거절했다. 귀찮고 거북한 이야기일지라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성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는 것이었다. 한번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결국은 신용도 잃게 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새로 임용된 교사의 아버지가 우리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며 잠시 밖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거절할 수도 없어서 차 한 잔 하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감사의 표시라며 흰 봉투를 내밀었다. 받을 수 없다고 해도 그 분은 막무가내로 내 주머니에 넣어주고 서둘러 떠났다. 집에 돌아와 보니 상품권 10장이 들어있었다. 아내는 나보다 앞장서서 단호하게 당장 되돌려주라고 했다. 아무리 감사의 표시라 할지라도 공직자의 윤리에 어긋나며, 한번 받기 시작하면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고, 언젠가는 자신을 묶는 올무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나는 다음날 몇 줄로 사유를 적어 봉투를 선생님 편에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아내는 우리 가족 모두가 깨끗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기를 기대했다. 이런 아내의 생각과 교훈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크게 탈선하지 않고 나름대로 ‘품위’와 ‘인격’을 갖추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이런 태도는 나로 하여금 허영과 사치를 배격하고, 부정과 부패에 물들지 않고, 청렴과 결백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8절)

 

 

 

<출처> : 졸저 <아름다운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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