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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강원도 태백, 한해의 시작을 태백에서 맞다

by 혜강(惠江) 2009. 12. 23.

강원도 태백

한 해의 시작을 태백에서 맞다

 

박경일 기자

 

 

 

▲ 한강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 여기서 발원한 첫 물이 물줄기를 보태고 또 보태면서 한강이 돼서 서해로 흘러간다. 검룡소는 9도의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 아무리 추운 날에도 얼어붙지 않는다.

 

 

 한 해도 1주일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갑니다. 뒤돌아보면 참 춥고 시린 날들을 장하게 이겨왔습니다. 이제 묵은 해의 문을 닫고, 새로 한 해의 문을 여는 시간. 사실 새해가 시작된다 해도 생활이야 뭐 그리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럼에도 새로 맞이하게 될 새해한해 의;에는 좀 더 나은 날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소망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이지요.

한 해를 시작하는 ‘첫마음’이 가장 어울리는 여행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가득한 태백산 아래의 강원 태백. 한강과 낙동강의 유장한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곳입니다. 마침 수은주가 영하 20도 근처까지 내려가 온 세상이 쩡쩡 얼어붙은 날이었지만, 박하향이 풍기는 겨울숲을 걸어들어가 만난 검룡소에서는 새로 솟은 물들이 콸콸 힘찬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솟아난 물은 꽝꽝 얼어붙은 계곡의 얼음장 밑으로 흘러들어 숲을 지나고, 찬바람 몰아치는 들판과 마을을 지나 다른 물줄기들과 몸을 보태면서 한강이 돼서 흘러내리겠지요.

태백 시내의 황지연못에도 못 가운데서 솟아난 물이 흰 김을 뿜으며 찰랑찰랑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 물 속에서는 물고기들이 힘차게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못의 물들도 굽이굽이 계곡을 타고 가면서 낙동강이 돼서 남쪽의 바다로 가닿겠지요.

태백산 일출의 장엄함도 새 날을 맞는 데는 제격입니다. 손발이 곱을 정도로 매서운 추위에 일출을 보러 어둑한 새벽 산길을 왕복 4시간 동안 걷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함백산 자락을 넘어가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또 삼척으로 향하는 댓재와 귀네미마을에서 새로 돋는 해를 만나도 좋겠습니다. 구름이 척척 걸린 백두대간에서 장대하게 펼쳐지는 일출 풍경은 새해를 맞는 경건함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새해 첫날에 맞춰 물줄기의 발원지를 찾거나, 첫 해돋이를 만나러 가는 것은 다 ‘첫마음’을 기억하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어디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더라도 풍경이야 쉬이 잊어지는 법. 하지만 해돋이를 함께 지켜보며 손을 꼭잡은 가족들의 소중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질 겁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로 돋는 첫날의 해를 기다리던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손을 모으는 모습. 그 첫날의 따스함을 ‘첫마음’처럼 지켜나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새해를 맞이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함께 짐을 꾸리고, 함께 길에 서고, 함께 시린 손을 비비면서 첫날을 맞이하는 것. 우리에게 어쩌면 새해에 품는‘희망’이란 ‘가족’의 다른 이름이 아닐는지요.

새해 첫 일출을 보면서 비는 소망도 어디 그것이 자신만의 것이겠습니까. 서로의 희망을 다독이면서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재너머 솟는 ‘새 빛’… 힘차게 솟는 ‘새 물’

 

 

▲ 태백에서 함백산을 차고 오르는 길. 이 길에서는 어디든 차를 세우면 그곳이 특급 전망대다. 첩첩이 이어진 고산준령의 능선 사이로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쯤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 정암사 언덕 위의 수마노탑. 산자락에 우뚝 서서 인간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 겨울 강의 ‘첫마음’을 만나러

 

청량한 겨울 숲길을 걷는다. 이파리를 다 떨구고 시리게 서있는 겨울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숲길이다. 피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귀룽나무, 괴불나무, 황벽나무…. 저마다 다른 수형과 수피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겨울의 향기가 알싸하다. 마치 박하를 입에 물고 있는 듯하다.

이 길의 끝자락에 검룡소가 있다. 1300리를 굽이쳐 흘러가는 한강이 시작되는 곳. 강 끝을 거슬러 올라가 유장한 강의 ‘처음의 순간’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다. 마침 수은주가 영하 20도 근처를 오르내리는 날이었다. 길 옆으로 물길은 꽝꽝 얼어붙었다. 고개를 들면 겨울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웅웅거리고, 얼음장 아래로 귀를 기울이면 돌돌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따라온다.

검룡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길 옆의 물소리가 커진다. 상류로 올라가면서 검룡소에서 솟아난 맑고 푸른 물이 채 얼지않은 까닭이다. 이윽고 검룡소다. 직경이 10m쯤 될까. 맑은 물이 가득한 검룡소의 수면은 잔잔한데 물길을 따라 아래로 콰르르 물이 흘러내린다. 검룡소에서 솟는 물은 하루 2000t. 그러나 정작 물이 솟는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소를 넘친 물이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모습만으로 얼마나 많은 물이 솟는지 감지할 뿐이다. 넘쳐흐르는 물이 바위를 깎아내 마치 용이 온몸을 뒤틀듯이 바위를 굽이굽이 깎아 놓았다. 검룡소의 수온은 계절에 관계없이 평균 9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이 튄 바위에는 얼음이 버석거리지만, 정작 물길에는 살얼음조차 잡히지 않았다. 물살이 부딪치는 바위의 이끼들도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초록빛을 간직하고 있다.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지만, 사실 검룡소에 솟는 물은 금대봉 자락의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물골, 물구멍 석간수, 예터굼의 굴물 등에서 솟는 물이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아나는 것이다. 실핏줄같은 물길의 근원을 더 따져보자면 검룡소를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고 더 따져서 거슬러 올라가본들 뭐가 그리 달라질까. 그저 물길의 첫마음을 간직하면 될 일. 어쨌거나 검룡소에서 이제 막 솟아난 물은 514㎞의 길고 긴 여정을 느릿느릿 물의 속도로 한강을 이뤄 흘러내려가게 될 터이다.

새해를 앞두고 검룡소를 찾아가는 것은 이렇듯 ‘첫마음’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새해의 첫 일이 시간을 쪼개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기억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강물의 시원을 찾아가는 것은 유장한 시간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처음과 마주치는 일이다.

 

 

# 신화와 전설의 연못… 황지


태백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도 있지만, 낙동강이 시작되는 황지연못도 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물길의 힘찬 흐름을 느낄 수 있다면,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에서는 신화적이면서 무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황지연못은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있다. 공원으로 꾸며진 연못은 위치에 따라 상지(上池)와 중지(中池) 하지(下池)로 나뉜다. 황지연못은 검룡소의 2배가 넘는 하루 5000t의 새 물이 솟아오르지만, 외양만으로 본다면 황지연못은 검룡소처럼 극적이지 않다. 청신한 숲길도 없고 우르릉거리는 폭포도 없다. 대신 황지연못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검룡소에도 용이 되고자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이무기의 전설이 서려있긴 하지만, 이런 전설은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임이 공인된 1986년 이후에야 만들어진 것. 그러나 황지연못에는 누대를 거쳐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이 있다.

예부터 ‘천황(天潢)’으로 불렸던 황지는 신비하고 영험스러운 기운이 서린 연못으로 인정받아왔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택리지에 낙동강의 발원지로 기록돼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지도에도 황지를 그려넣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비바람이 크게 인다는 전설도 있었다. 연못 주위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해서 이름난 풍수가들이 일대를 헤매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황지는 원래 황동지라는 부자가 살았던 집터였다. 노승이 청한 시주를 심술로 물리친 황 부자에 대한 앙갚음으로 집터는 연못이 돼 버렸고, 황 부자는 이무기가 돼 연못 속에 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맑고 푸른 빛을 띠고 있는 황지에서는 한 눈에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못 한가운데 물이 솟아오르면서 흰 김이 수면에 떠있다. 푸른 물 속의 하늘거리는 물풀 사이를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황지의 기운을 느끼려면 낮에 찾아가는 것이 좋겠지만, 태백시에서 눈축제를 앞두고 황지 주위에 갖가지 모양의 불을 밝혀놓아 이즈음에는 밤에도 정취가 넘친다.

낙동강의 공식 발원지는 황지이지만, 그 물길의 근원을 더 따져본다면 은대봉(1442m) 8분 능선의 은대샘과 금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선에서 태백 쪽을 넘는 두문동재를 터널로 들지 않고 옛길을 넘다보면 은대샘과 금샘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있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은대봉 정상을 향해 300m쯤 오르면 금샘과 은대샘이 있다. 구태여 눈 쌓인 산길을 애써 오르지 않더라도 옛 두문동 고갯길에 조성된 공원의 너덜샘을 찾으면 은대샘과 금샘에서 호스로 받아낸 차고 맑은 물맛을 볼 수 있다.

 


# 태백의 준령서 맞이하는 해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추앙받았다. 태백산은 신이 기거하는 영역이었고 외경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신라 일성왕 때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제사를 올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남아있다. 고려 때는 태조 왕건이 태백산의 오금잠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조선시대에는 세조의 왕위찬탈로 죽임을 당한 단종이 태백산에 들어 산신이 됐다는 속설도 전한다.

태백 일원을 둘러친 함백산(1573m)의 높이가 태백산(1567m)보다 오히려 6m 더 높지만, 태백시 일원의 산지는 예외없이 태백산으로 대표된다. 태백산이 해돋이의 명소가 되고, 비장한 느낌의 겨울산행 목적지로 첫손에 꼽히는 것도 다 이런 신령스러운 기운 때문이 아닐까.

대기 중의 수분이 나무에 얼어붙어 만들어낸 상고대와 군락을 지어 자라는 늙은 주목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태백산 일출은 감격적이다. 하지만 유일사 입구나 백단사 입구, 또는 당골광장에서 캄캄한 어둠 속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백단사를 거쳐 정상까지 오르는 가장 빠른 코스를 택한다 해도 정상까지는 1시간30분 이상을 잡아야 한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어둠 속의 등반은 만만찮다. 하기야 태백산 일출의 감동은 이런 수고스러움을 바쳤을 때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이런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좀 더 편하게 일출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첫번째로 꼽는 일출 명소는 태백에서 오투리조트를 지나 함백산을 넘어가는 만항재를 함백산 소공원 쪽으로 차고 오르는 도로다. 태백선수촌을 지나가는 이 도로는 해발 1330m를 오르내리는 그야말로 ‘구름 속의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코스다. 이른 새벽 이쪽 도로에 올라서면 꿈틀거리는 지맥들과 웅장한 산세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구름이 걸린 산능선을 발갛게 달구며 떠오르는 해는 더 할 수 없이 장쾌하다.

정선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38번 국도에 오르면 두문동재터널을 통과하는데, 터널 위로 옛길이 남아있다. 이 옛길에 올라 두문동재 정상에 오르면 차 안에서 일출을 마주할 수 있다. 태백에서 도계 쪽으로 넘어가는 댓재 역시 최고의 일출포인트로 꼽히는 곳이다.

태백에서 유장한 강의 시작을 보았다면, 혹은 새해의 첫 일출을 만났다면 태백과 정선의 경계쯤에 자리잡은 정암사에 들어 여정을 마무리짓는 것이 맞춤하겠다. 풍경소리 그윽한 겨울 산사 뒤편의 산자락에 올라 흰 빛의 수마노탑 앞에서 두 손을 모아보면 어떨까. 그곳에서의 기원은 한 해 동안 늘 ‘첫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족하겠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태백까지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를 받는다면 십중팔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으로 나와서 38번 국도를 타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감곡나들목으로 나와 좌회전해 38번 국도를 타고 가는 편이 낫다. 국도지만 차량통행이 적어 스키장 행락객들로 붐비는 영동고속도로보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38번 국도는 전 구간이 4차선 도로로 시원하게 뚫려있어 수도권에서 태백까지는 4시간이 채 안 걸린다.

묵을 곳·먹을 것

태백 일대로 여정을 정했다면 숙소로는 하이원리조트가 첫손으로 꼽힌다. 하이원리조트는 시설과 설질 면에서 최고의 스키장으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스키를 즐기지 않더라도 즐길 것들이 많다. 내년 2월 둘째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는 상설 불꽃놀이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과 올해 마지막날인 31일에는 특별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하이원리조트는 또 31일 24시간 곤돌라를 가동할 예정이어서 스키장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함백산 자락의 오투리조트도 추천할 만하다. 함백산 능선의 불쑥 솟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어 리조트에서 바로 일출을 마주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는 호텔과 모텔들이 최근 곳곳에 들어섰다. 황지를 끼고 있는 메르디앙호텔(033-553-1266)이 깔끔하고 서비스가 좋다.

태백의 먹을거리로는 단연 한우가 꼽힌다. 태성실비식당식육점(033-552-5287)과 경성실비식당(033-552-9356)은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는 고깃집이다. 한정식집으로는 너와집(033-533-4669)과 초가(033-581-4114) 등이 유명하다. 고등어·갈치조림과 두부조림을 내놓는 초막손칼국수(033-553-7388)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출처> 2009-12-2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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