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
흔들바위, 울산바위, 시린 속초바다
‘그 시절 흑백필름’ 속으로
박경일 기자
▲ 설악산 흔들바위 옆 계조암의 삼성각 처마 뒤편에 단단한 화강암을 뚫어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 빛바랜 동양화 같은 소나무의 모습에서 단단한 세상에 끈질기게 뿌리를 박고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시간을 본다.
설악산.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스테디셀러’ 여행지입니다. 그 깊은 산중에 들어 오색을 거쳐 대청봉까지 차고오르지 않았더라도, 공룡능선을 타거나 백담사에서 중청을 지나 천불동까지 다녀온 경험이 없다 해도, 설악산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압도적인 위용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입니다.
이즈음이야 등산 인구가 늘고, 등산장비도 발달하고, 종주등반이 보편화되면서 쉽게 설악산의 속살을 밟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 설악산 등반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간혹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객기를 부리면서 대청봉 정상까지 오르는 젊은이들도 있긴했지만, 설악산 종주등반이란 전문 등반가나 적어도 대학교 산악반 회원쯤은 돼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예전의 추억을 찾아 설악산을 찾아갑니다. 까까머리 교복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오르던 그 추억의 설악산을 찾아갑니다. 돌이켜보자면 그 무렵 설악산의 가장 대중적인 목적지는 흔들바위였습니다. 흔들바위는 명실상부한 ‘설악산의 아이콘’이었습니다. 흔들바위를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밟아서 당도하는 울산바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0대 이상이라면 한때 ‘설악산에 다녀왔다’는 말이 곧 ‘설악산 흔들바위를 다녀왔다’는 뜻이 되기도 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등산모자에 주렁주렁 달고다니던 배지 속에서 새겨진 흔들바위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설악산의 흔들바위는 이제 낡은 흑백사진처럼 쇠락하고 말았습니다. 울산바위 역시 설악산 등반의 목적지라기보다는 속처의 학사평 쪽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풍경으로만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흔들바위까지는 왕복 2시간 안쪽. 울산바위까지 다녀온다 해도 3시간 정도의 등산은 요즘 등산객들에게는 시시하기 이를 데 없어진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 손을 대고 한번쯤은 힘껏 밀어봤던 흔들바위와 난간을 잡고 후들거리던 울산바위의 추억들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다시 찾아간 흔들 바위 앞 계조암에서 삼성각 뒤편에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 한 그루와 딱 마주쳤습니다. 덩굴이 친친 휘감은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당차게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리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렸는지요. 오랜 시간을 버텨온 소나무에서, 단단한 세상에 끈질기게 뿌리 박고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시간을 봅니다.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 말끔한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여전히 운동화를 신은 행락객들도 심심찮게 보였고, 낡은 구두로 유람을 나선 촌로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전히 흔들바위나 울산바위에는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헐떡거리며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들 학생도 먼 뒷날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는 추억 속에 자리잡게 되겠지요.
오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지도, 그렇다고 가파르지도 않은 3㎞ 남짓의 산길. 길지도, 가파르지도 않다는 이유 때문에 이제는 외면당하고 있는 탐방로를 따라 흔들바위를 거쳐 울산바위로 향합니다. 설악을 처음 만났던 젊은 시절. 그 낡은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는 여정입니다.
# 설악산 관고아의 아이콘’ 흔들바위로
▲ 흔들바위 쪽에서 본 울산바위 모습. 암벽의 자체높이만 200m에 이른다. 노출암벽 아래 바위 틈 사이로 난 808개의 철제계단을 오르면 울산바위 정상에 가 닿는다. 강풍이 부는 날, 이 계단에 오르면 고도감으로 눈앞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의외였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해 신흥사를 거쳐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로 향하는 탐방로에서 외국인들과 자주 마주쳤다. 눈 내린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러 온 대만, 필리핀 국적의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었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은 “외국인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권금성을 주로 찾는다”고 했지만, 이날은 흔들바위 탐방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자주 마주쳤다. 때마침 강풍이 불면서 권금성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리라.
전나무 숲길을 거쳐 신흥사를 지나고 산길로 접어들자 곧 소나무와 참나무류, 당단풍나무, 서어나무들이 빼곡한 숲길이 시작됐다. 나뭇잎이 다 진 활엽수림을 걷는다. 이 길에서는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산의 속살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다. 흔들바위에 이르는 길은 해가 잘 드는 남쪽 자락이다. 계곡에는 벌써 얼음이 풀렸다. 너럭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산 아래 신흥사에서 출발해 흔들바위까지 이르는 길은 유순하다. 그러나 단체로 캠프여행을 온 학생들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탐방로에서도 숨을 헐떡거렸다. 흔들바위가 설악산관광의 아이콘이었던 20여년 전,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나선 수학여행 길에서도 그랬었다. 요즘 학생들보다는 더 튼튼했겠지만 등산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흔들바위까지의 등반은 숨이 턱에 차는 일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그나마 날렵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그때야 어디 그랬을까. 피부가 쓸리는 시커먼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고서 산길을 올랐다.
중년의 등산객들이 흔들바위로 이어진 산길에서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듯, 지금 캠프여행을 온 학생들도 훗날 어른이 돼서 이 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흔들바위를 향해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소리는 거세지고, 소나무들은 더 굵어졌다.겨울설악의 골짜기에서는 바람소리가 마치 짐승들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 요즘 학생들에게도 추억이 될 흔들바위
흔들바위는 방학캠프를 온 학생들의 최종목적지였다. 예까지 오르느라 발갛게 얼굴이 상기된 학생들은 흔들바위 앞에서 저마다 힘껏 미는 시늉을 하며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1명이 흔드나, 10명이 흔드나 똑같이 흔들린다 해서 흔들바위라지만 정작 학생들은 아무도 바위를 흔들지는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시절에도 흔들바위를 진짜 흔들어 본 기억이 없다.
한 등산객이 학생들에게 흔들바위를 미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등산객의 말대로 글씨가 새겨진 바위 쪽에 손을 대고 반동에 맞춰 밀어대더니 바위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는지,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흔들바위 뒤편 바위에 석굴에 앉힌 계조암은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 옆의 작은 암자는 과거의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번듯한 기와를 얹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주변의 풍광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암자 뒤편의 바위에는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흔들바위에서 길은 울산바위로 이어진다. 탐방로는 나무데크로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울산바위는 설악산 북쪽의 암봉으로 해발 873m. 노출암벽만 200m가 넘고 둘레는 4㎞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이다. 정상의 전망대까지는 808개의 아찔한 철제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울산바위 뿌리 아래에 서자 바람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바람이 떠미는 힘에 가만히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 거친 바람을 뚫고 등산객들이 철제계단을 타고 올랐다. 난간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갔다.
# 울산바위 험준한 계단의 오랜 내력은…
*흔들바위에사 바라본 울산바위의 모습
울산바위란 이름은 금강산의 봉우리가 되고자 울산에서 날아오른 바위가 그만 설악산에 주저앉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울타리처럼 생겼다 해서 울산했다고도 한다. 또 ‘우는 산’이란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옮긴 것이라는 얘기도 전한다. 안내판에는 “울산에서 날아오른 바위”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전설일 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기이한 봉우리가 구불구불하여 마치 울타리를 설치한 것과 같으므로 울산이라 이름하였다”는 이야기가 정설이겠다.
울산바위로 오르는 아찔한 계단은 누가 처음 놓은 것일까. 지금의 철제 계단은 1985년 놓은 좁은 철계단을 다 헐어내고 1998년 9월에 새로 놓은 것이다. 그 이전에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 시멘트로 만든 계단이 있었다. 지금도 철제계단 아래 시멘트 계단의 흔적이 보인다.
이 계단이 언제 놓여진 것인지는 기록이 전무하다. 울산바위 정상을 거의 매일 오르내리며 20년째 메달을 새겨서 팔고 있다는 고광웅(48)씨는 “48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48년 전이라면 1962년이다. 그 당시에 어찌 이리 험한 암봉 사이로 계단을 낼 수 있었을까.
계단을 밟고 올라 바위 틈 사이로 빠져나와 울산바위 정상에 오르면 대청·중청봉을 비롯해 천불동계곡, 화채능선 등 설악의 능선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그뿐이랴. 동쪽으로는 속초의 동해바다와 달마봉, 학사평저수지 일대가 발아래로 깔린다. 우뚝 솟은 암봉답게 거칠 것 없는 최고의 전망이다.
# 미시령, 그리고 속초에서 만나는 추억들
흔들바위는 쉽게 잊혔지만, 그에 비해 울산바위의 명성이 아직도 성성하게 살아있는 것은, 울산바위로 향하는 발길은 줄어들었으되 속초의 미시령 쪽에서 올려다보이는 우람한 모습은 여전히 당당하기 때문이리라. 1989년 놓인 미시령도로가 남쪽으로 구부러질 때마다 건너다보이는 울산바위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미시령 관통 터널이 놓인 뒤에도 단숨에 터널을 나와 속초 땅에 처음 발을 들일 때, 남쪽 사면에 펼쳐지는 울산바위의 전경은 극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설악산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로의 추억의 여정에서는 속초를 빼놓을 수 없다. 이즈음에는 닳고 닳은 관광지가 되고 말았지만, 예전의 대포항은 어민들이 손수 잡은 고기들을 내다 파는 소박한 포구였다. 이른 아침 어선이 들어오는 시간을 맞춰가면 펄펄 뛰는 생선들을 싼 값에 사다가 회를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지금 대포항은 상인들로 포화상태여서 일렬 종대로 횟집이며 시장을 들이기 위해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죄다 없어지고 말았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속초 중앙시장 인근에는 회국숫집이 즐비했다. 가자미회를 뼈째 숭숭 썰어넣고 국수와 함께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는 회국수의 맛은 한때 속초를 대표하던 것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에게는 한 끼 식사값으로 회맛을 볼 수 있는 메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문화회관 근처에서 공설운동장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마지막까지 버텨왔던 ‘속초회국수’집도 주인이 세상을 떠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수산 회국수’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속초의 동명항 부근의 영금정은, 한때 속초의 명소 중의 명소였다. 지금은 작은 언덕 위에 같은 이름의 정자가 놓여 다들 영금정을 정자로 생각하지만, 사실 영금정은 동명항의 갯바위를 일컫는 말이었다. 둥글둥글 갯바위들을 타고 넘는 파도 소리가 가야금 소리와 같다고 해서 정자 같은 풍류가 느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서울~춘천 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와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한계삼거리까지 가서 46번 진부령로에 오른다. 진부령로에서 속초 방면으로 56번 미시령로를 타고 미시령터널을 지나 7번 국도를 따라 양양을 거쳐 설악산국립공원으로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설악동이다. 설악소공원은 주차비 5000원. 문화재관람료 2500원을 받는다. 소공원에서 신흥사를 왼쪽으로 끼고 가면 흔들바위·울산바위로 향하는 탐방로에 올라선다.
먹을 것
울산바위의 전경을 마주보겠다면 한화리조트 설악이 최고의 숙소다. 한화리조트 설악은 이즈음 본관 리모델링 중이라 별관만 운영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의 전경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대포항 일대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즉석에서 횟감을 골라 흥정을 한 뒤 썰어낸 회를 맛볼 수 있는 포장마차식 횟집들도 늘어서 있다. 기존에 유명세를 누리던 오징어순대, 새우튀김은 물론이고, 감자송편, 옥수수, 조개구이, 도루묵구이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다. 속초 일대의 회국숫집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는데, 동명동 공설운동장 부근의 ‘수산 회국수’(033-631-2535)가 명맥을 잇고 있다.
<출처> 2010-02-0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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