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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강촌 검봉산, 소슬바람 부는 낙엽길… 가을과 겨울 사이를 오르다

by 혜강(惠江) 2009. 11. 29.

강촌 검봉산

 

소슬바람 부는 낙엽길… 가을과 겨울 사이를 오르다

 

 

글·사진 = 엄주엽기자

 

 

 

 

▲검봉산 정상

 

강선봉에서 검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 거대한 토성(土城) 위를 걷는 기분이다. 검봉산 능선길은 마치 사람들이 쌓은 듯 높고 가파른 토성 같은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이 능선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강선봉을 오르는 중간에 만나는 고사목. 춘천 방향의 전망이 좋다.
 
봉화산 아래 구곡폭포. 한 겨울에는 빙벽등반의 명소다.
 
 
  춘천 가는 열차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7080세대’들에게는 경춘선의 추억이 아련할 것이다. 당시에는 서울을 벗어난다는 게 경춘선으로 대성리와 강촌이 고작이었다. MT하면 으레 거기였고 그래서 ‘해방구’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옛 흑백 TV에서 경찰이 기타를 맨 대학생들을 장발단속하는 장면이 대개 경춘선의 출발역인 창량리역이다. 경춘선이 그런 서울과의 ‘경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로가 아니었을까. 쌀쌀했던 지난 24일 강촌의 검봉산(530M)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 경춘선에 올랐다. 주말이면 몹시 붐빌 테지만 평일이라 한가하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강촌역은 예전과 달라진 게, 승강장의 기둥과 벽면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한 그라피티(GRAFFITI)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전에는 좀 유치했지만 ‘♡’에다 ‘누가 누가 다녀가다’라는 낙서가 빼곡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라피티는 너무 이국적인 냄새가 나고 그림들도 모두 비슷해 그 모양이 그 모양이다. 오히려 더 어수선해진 느낌이다. 그냥 옛 낙서들이 더 젊은이들의 땅 강촌답고 편안해 보였던 것 같다.

  강촌역에서 300m 정도 2차선 도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사찰인 강선사로 오르는 푯말이 나오는데 이곳을 들입목으로 잡는 게 좋다. 강선사는 강선봉 아래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이 팬션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경관이 적지않이 훼손될 것 같다.

  검봉산은 그냥 ‘검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백양리 경계에 놓였고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역시 경관이 좋은 산악산의 등선봉과 마주하고 있다. 직접 등선봉을 마주한 봉우리는 강촌역 뒤편, 능선 초입의 강선봉(484m)이다. 이 봉우리는 제법 암벽으로 우뚝 솟아있는데 옛 적엔 ‘칼바위’라고 불렸던 것으로 미뤄 검봉산의 이름이 강선봉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검봉산 정상은 평범한 흙산이다.

  검봉산은 남쪽으로 구곡폭포로 유명한 봉화산(487m)과 이어져 있다. 강선봉 - 검봉산 - 봉화산이 구곡유원지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흔히 이 세 봉우리의 연계산행을 한다.

  강선사에서 강선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몹시 가파르고 큰 바위가 곳곳에 널린 너덜길이다. 30~40분 정도 걸려 일단 능선을 타고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암벽이고 그 너머에 북한강과 삼악산 줄기가 어우러진 멋진 경치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강선봉으로 오르는 중에 검봉산에서 가장 장엄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전망이야 좋지만 낭떠러지인 만큼 조심해야 한다. 정상 못 미쳐 지역산악회에서 세운 조그만 추모비가 놓인 것으로 보아 예전에 사고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추모비 곁이 가장 전망이 좋은 위치다.

  강선봉 정상에 서면 서쪽과 남쪽으로 검봉산과 봉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송전탑이 보이는 방향이 검봉산 쪽이다. 이 부근에는 검봉산 방향을 일러주는 등산표지판이 없어 길을 찾기 쉽지 않고 자칫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다. 여기서 정상능선을 타자면 남쪽 사면으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오른편으로 죽 돌아 서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편하다.

  편하다고 했지만 여기서 정상까지 2㎞ 정도, 다시 정상에서 문배마을까지 2㎞ 정도는 정상 부근 일부 구간을 빼고는 참 오묘한 길이 이어진다. 간단히 말해, 마치 가파르고 높게 싸놓은 토성의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능선이 암반길도 아니고 흙길이면서 등산로의 좌우가 가파르고 깊게 내려져 있다. 잠깐 이런 길이 이어지면 몰라도 3㎞ 이상 이 같은 길이 계속된다. 꼭 사람들이 쌓아 놓은 토성 같지만 그 규모로 봐서 너무 높고 가팔라 실제 인력으로 만든 토성이라면 세계적인 역사유적지로 벌써 지정이 됐을 텐데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다지 높낮이가 크지 않은 기분 좋은 능선길은 낙엽으로 소복이 쌓여 있어 ‘걷는 맛’이 일품이다. 검봉산을 말하건대 이 길이 ‘백미’(白眉)라고 추천하겠다. 늦가을과 겨울 사이의, 이름은 짓자면 ‘검봉능선길’은 명품이라 할 만하다.

  검봉 정상에 서면 화악산과 용문산 등 강원과 경기의 명산들이 잇따라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면서 헬기장이 있고 여기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서 북쪽 길은 백양리 방면으로 경춘선 백양역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하지만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를 보자면 남쪽 코스로 내려서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문배마을까지 가는 길도 더없이 좋다. 이곳에서 문배마을은 2㎞ 정도. 문배마을이라해서 무슨 전통주를 만들어온 마을인 줄 알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문배마을은 구곡폭포 위에 신비롭게 자리 잡은 2만여평의 분지에 있는 몇 가구 안되는 마을이다.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구곡폭포가 옛적에 문폭(文瀑)이라 불렸다는데, ‘문폭’의 ‘등 뒤’(背·배)에 있다 하여 ‘문배(文背)’마을이 됐다고 한다. 들려오는 얘기다. 어쨌든 옛적에는 무척 신비로운 마을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여느 유원지처럼 ‘토종닭 백숙’ 등을 파는 가게들로 모두 변해버려 신비감은 덜하다. 문배마을 직전에 봉화산으로 내쳐 가는 길과 구곡폭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구곡폭포는 춘천 부근에선 가장 높은 폭포다. 높이만 50m에 달한다. 바로 봉화산에서 문배마을을 거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이 같은 장관을 만들어 냈다. 봉화산 정상에서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른다 하여 ‘구곡’이다. 폭포 주변 거대한 암벽도 장관을 이룬다. 겨울에는 빙벽등반으로 유명하지만 아직 얼음이 두껍게 얼지는 않았다. 검봉산을 찾는다면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를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구곡폭포에서 내려와 구곡유원지에서 강촌역까지 버스가 다니지만 자주 있지는 않다. 여유 있게 걸어 30분 정도면 역에 닿을 수 있다.

 


<출처> 2009-11-2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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