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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이효석과 봉평, 향수가 안개처럼 퍼지는 메밀꽃밭에 서서…

by 혜강(惠江) 2009. 9. 21.

 

이효석과 봉평

향수가 안개처럼 퍼지는 메밀꽃밭에 서서…

                                   

 글·사진 | 김신환 여행작가

 

 

 

이효석이 쓴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보름달이 환하게 밝았다. 

 

 

 

  여름은 꽃의 계절? 우리가 아는 꽃의 계절은 봄이다. 가을도 국화나 코스모스가 있어 꽃의 계절이라 불러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이 꽃의 계절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여름에는 무슨 꽃이 필까 되묻게 된다. 그러나 여름도 꽃의 계절이 맞다.

 

  여름의 첫 장을 여는 것은 연꽃이다. 장맛비가 굵어질 때부터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연꽃은 삼복더위 내내 연못과 호수를 장식한다. 연꽃이 피워낸 여름 꽃의 바통은 해바라기가 이어받는다. 요즘은 해바라기축제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땅에서 수십만 개의 샛노란 해가 솟아 일렁이는 모습은 장관이다. 지리산이나 덕유산처럼 높은 산에는 원추리가 소담스럽게 피어난 운해에 젖는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다.

 

  여름 꽃의 마무리는 메밀꽃이 장식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것처럼 강원도의 산골을 뒤덮는다. 메밀꽃의 꽃송이 하나하나는 별 볼일이 없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꽃송이가 뭉치고 힘을 합쳐 밭 하나를 가득 채우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꽃밭이 되는 것이다. 

 

  메밀꽃을 우리에게 선사한 이가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이다. 일제 치하에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토속적 향기가 물씬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썼다. 이 소설은 장을 찾아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애환과 젊은 날의 풋사랑을 아늑한 산골의 정취와 함께 녹여 낸, 우리 문학의 백미로 불린다.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오지이지만 경성 제1고보(현 경기고)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34년에는 평양 숭실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며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효석이 시골뜨기에서 최고 학벌의 엘리트가 된 굴곡 많은 성장기처럼 그의 문학도 부침이 많았다. 초기에는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정치성이 짙은 작품을 썼다. <도시와 유령>, <행진곡>, <기우> 등이 그 때 쓴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해 2년 여간 직장생활을 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그에게 친일의 그림자가 씌워진다. 그 후 경성고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메밀꽃 필 무렵>, <산>, <들>과 같은 서정성 짙은 작품을 썼다. 이때가 이효석의 전성기로 후대에도 이효석 문학세계의 방점은 늘 여기에 찍혔다.

 

 

만주일대 떠돌다 36세에 요절

 

  그러나 후반기로 갈수록 그의 소설은 서구적인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허무주의에 빠지는 등 부침을 거듭한다. 서구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장미 병들다>와 동성애를 다룬 <화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1940년 부인과 둘째딸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 만주 일원을 떠돌다 36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그는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1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해 박태준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불린다.

 

 

                            

 

 

  이효석의 생애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토속적인 소설과 달리 그의 삶은 도시 지향적이고, 서구적이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평가는 2007년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월간 현대문학>이 2월호에 실은 특집기사에 잘 나와 있다.

 

  특집기사에서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효석이 에나멜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고, 원두커피를 즐겼던 ‘모던 보이’라고 소개했다. 또 일본인 가게의 잘 구운 빵 한 덩이를 사기 위해 십 리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원두모카커피를 퍼컬레이터로 달여 마셨다. 레몬 스카치의 향내를 맡으며 서양 고전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서양 영화를 즐겨 보았다. 서양에서 온 가수나 무용단의 공연을 보며 넋을 잃기도 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모던 보이’ 이효석에 대한 평가는 문학계가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밀꽃 필 무렵>은 그의 생애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선사해 준 커다란 선물이란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이다. 그곳은 이효석의 고향이기도 하려니와 대관령이 있는 백두대간 서쪽의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고장이기도 하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이 유년시절 봉평에서 만났던 실존인물에 허구를 가미해 쓴 작품이다. 봉평 장날이면 무명필을 팔던 곰보 영감, 그 영감과 한패인 기골이 장대한 장돌뱅이 조봉근, 이효석이 점심밥을 맡겨두었다 먹곤 했던 주막집, 이효석과 한마을에 살다가 가세가 기울어 충북 제천으로 이사를 갔던, 봉평에서 손꼽던 미모의 성옥분이란 현존 인물을 가공하여 우리나라 자연주의 문학의 백미인 <메밀꽃 필 무렵>으로 승화시켰다.

 

 

소설 무대됐던 현장들 고스란히 보전

 

 

                       

가산문학공원에 있는 이효석 흉상  

 

 

  소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봉평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장돌뱅이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동이는 대화장을 보러 밤길을 짚어 떠난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날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이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쩌면 이게 전부일 것이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물레방앗간에서 나눴던 풋사랑도, 허생원이 동이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너며 물레방앗간에서 하룻밤 맺은 인연으로 얻은 핏줄이 동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도 다 부질 없다. 푸른 달빛 아래 숨 막히도록 펼쳐진 메밀밭에 대한 위의 묘사만으로도 강원도 산골의 정취를 다 보여주고도 남는다.

 

  봉평에는 그의 소설에 무대가 됐던 현장들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다. 물론 요즘도 늦여름이면 두루뭉술한 산자락을 따라 무명천을 펼쳐놓은 것처럼 메밀꽃이 물결친다.

 

  봉평면소재지에서 이효석 생가로 방향을 틀면 우선 가산문학공원이 반긴다. 귀공자풍의 이효석 동상 뒤로 충주집이 보인다. 장돌뱅이들이 술추렴을 하던 주막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충주집은 실제로 이효석이 학창시절에 도시락을 맡겨놓았다가 점심을 먹곤 했던 곳이다.

 

  가산문학공원에서 이효석 생가로 가려면 흥정천을 건넌다. 흥정천에는 섶다리가 놓여 있다. 섶다리는 솔가지와 흙을 이용해 만든 다리로 여름 홍수에 떠내려가면 그 해 가을에 다시 놓곤 했던 것이다. 지금은 남안교 위로 차가 오가지만 이전까지는 이 섶다리가 큰 구실을 했다.

 

  남안교를 건너면 물레방앗간이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하룻밤 몰래 사랑을 나눈 곳이다. 물레방앗간 좌우로 메밀밭이다. 19만8000㎡(6만 평)쯤 되는 메밀밭이 산허리까지 들어찼다. 메밀밭 가운데는 초가로 지붕을 얹은 원두막이 들어섰다. 메밀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다보면 마음속까지 메밀꽃 향기에 취하게 된다.

 

 

  1. 메밀꽃이 활짝 핀 들녘을 찾은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 우리나라 최초의 허브농장인 허브나라농원 3.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

 

  물레방앗간을 지나 2㎞ 쯤 가면 이효석 생가다. 이효석이 떠난 후 성씨가 다른 이가 살았는데, 최근 평창군에서 매입해 본래 모습으로 복원했다. 생가에는 이효석이 소장했던 피아노와 타자기도 전시돼 있다.

 

  생가는 지금도 산골살림의 정취가 여전하다. 툇마루 처마 위에 걸린 ‘`이효석 생가’ 팻말을 빼면 지금도 땅 파먹고 사는 그저 그런 농투성이의 집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이 모습 잃지 않고, 산골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tip

봉평의 볼거리

 

| 이효석문학관 |

  생가 곁의 언덕에 지어졌다. 이효석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꾸몄다. 육필 원고와 유품이 전시돼 이효석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또 이효석과 평창과의 인연을 별도로 소개하고, 과거 봉평 장터를 고스란히 재현해 놔 <메밀꽃 필 무렵>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033-330-2700        

 

)

 

| 허브나라농원 |

  흥정계곡을 따라 3㎞ 들어간 태기산의 깊은 계곡에 있다. 이곳은 이효석의 소설 <산>의 무대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15년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허브농장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허브 전시공간은 물론, 숙박과 식사 등도 함께 즐길 수 있어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는다. (

             

   033-332-2902        

 

)

 

| 무이예술관 |

  이효석 생가에서 5분 거리에 있다. 폐교를 활용한 예술촌으로 누구나 쉽게 미술과 친해질 수 있게 했다. 야외 전시장에는 70여 점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다. 교실을 개조해 만든 전시실에는 1년 내내 메밀꽃이 활짝 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압화와 도예 체험실, 기념품 판매점도 있다. (033-335-6700)

 

 

 

| 효석문화제 |

평창군은 매년 초가을에 효석문화제를 연다. 올해 축제는 9월4일부터 14일까지다. 그러나 시차를 두고 메밀을 심기 때문에 축제 전후로 한 달간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축제보다는 미리 앞당겨서 메밀꽃을 즐기는 게 좋다. 축제에 맞춰 간다면 다양한 체험과 토속적인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다. 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399)

 

 

여행길라잡이

 

 

                              

 

  

 

  봉평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장평IC에서 봉평읍까지는 6번 국도를 따라 6㎞ 거리. 이효석 생가, 무이예술관, 가산문학공원, 이효석문학관, 허브나라농원 등이 봉평면소재지에서 10분 거리이므로 찾아가기 쉽다.

 

  봉평은 메밀의 고장답게 메밀음식 전문점이 많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메밀국수. 시원한 육수에 쫄깃쫄깃한 면발, 매콤한 양념 맛이 어울려 항상 식사의 마무리를 책임진다. 메밀막국수는 진미식당(033-335-0242)이 20년 이상 된 손맛을 보여준다.

 

  봉평에는 흥정계곡 주변을 비롯해 펜션이 많다. 또 10분 거리에 휘닉스파크가 있어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출처> 2009. 9. 8 / 이코노미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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