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여행
영월의 강물은 알까 ‘비운의 임금’ 그 한(恨)을 …
단종의 자취 & 강변의 정취
박경일 기자
▲ 동강과 서강이 영월땅에서 몸을 합친 뒤 남한강이 돼서 흘러내리는 큰팔괴나루터 부근
강원도 영월을 여행하는 두가지 방법. 하나는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왔던 단종의 자취를 찾아가는 역사의 여정이고, 다른 하나는 초여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강변 풍광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영월에서 단종의 자취를 찾자면 청령포나 장릉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곳 말고도 단종의 비애를 전해주는,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더 많습니다.
사실 영월에서는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단종의 처연한 자취보다는, 끝내 죽음으로 그를 모셨던 신하들의 최후가 더 감동적입니다. 따지고 보면 단종을 청령포에 유배를 보낸 쪽이나, 죽음을 무릅쓰고 복위를 꾀했던 쪽 모두 어린 단종의 죽음에 가담했던 셈이지요. 나이 어린 단종을 권좌에 앉히고, 끌어내리고, 다시 복위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끝내 그를 유배와 무고한 죽음으로 몰고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시절이 바뀌면 당장 눈앞의 이득만을 쫓아 표변하는 이즈음의 풍토에 견주어 보면, 죽음과 살육의 위협 앞에서도 애처롭게 죽어간 단종의 주검을 수습하고, 울음을 보탰던 사람들의 따스함만큼은 감동적입니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기도 했고, 함께 목숨을 던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단종복위에 따른 권력이동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셈해서 결행한 일은 아니었을 터이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주군에 대한 충성이나 절의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듯합니다. 그저 처연하게 죽어간 단종의 영혼이 한없이 애처롭고, 애통해 그 슬픔에 무너졌던 까닭이겠지요.
단종이 죽음을 당한 뒤 그를 따르던 시녀와 시종들이 몸을 던진 ‘낙화암’, 그렇게 죽음을 택한 이들의 위패를 모신 ‘민충사’, 그리고 죽은 자의 넋이 두견새가 돼서 단종을 배알하러 찾아든다는 ‘배견정’, 또 단종의 비참한 최후를 애통해하며 죽음을 무릅쓴 사람들의 위패를 모신 ‘충절사’를 찾아갑니다. 단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 ‘영모전’에도 들렀다가 음습한 유배의 땅 청령포와 단종이 묻힌 장릉, 그리고 사약을 받았던 관풍헌도 돌아봅니다.
영월을 여행하는 두번째 방법은 초여름 정취로 가득한 강변을 만나는 것입니다. 영월은 유난히 강이 많습니다. 줄줄이 이어진 연봉의 계곡 사이로 흘러내린 물줄기는 영월 땅에서 서로 만나 몸을 섞으며 이름을 바꿔 흘러갑니다. 둔내, 횡성, 강림을 돌아 흘러내려온 주천강과 평창을 굽이쳐 흐르는 평창강이 영월의 신천리쯤에서 만나 서강을 이루고, 서강은 또 영월읍내에서 정선의 깊은 계곡을 감고 내려온 동강과 합쳐져 남한강이 됩니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때이른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함성과 빼어난 강변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주천강이 수주면으로 흘러드는 쪽에서 요선정은 빼놓지 말아야 할 곳 중의 하나입니다. 요선정 옆의 바위에 위태롭게 뿌리내린 노송 사이로 내려다보는 주천강의 풍경도 좋지만,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금시에라도 어깨를 빼고 나올 듯합니다.
혹시 시간이 남는다면 북면 마차리의 마차초등학교를 들러보시지요. 마차초등학교에는 교정 한쪽에 물이 콸콸 솟는 샘이 있는데, 샘에서 솟은 물은 개울이 돼서 운동장과 교실 건물 사이로 흘러내려갑니다. 학교가 파하고 나면 서둘러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져 운동장이 텅 비는 도회지 학교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직도 철벅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 속에서 개울을 따라 새끼손가락만한 송어 치어들이 꼬리를 흔들며 힘차게 헤엄치고 있답니다.
서글픈 님의 발길 따라 가거나…
정·군등치 등 지명마다 ‘유배의 흔적’
▲ 주천강가의 언덕에 세워진 요선정. 왼쪽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좌상은 상체의 돋을새김이 깊은 데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어 금시라도 바위에서 어깨를 빼고 나올 것만 같다. 마애좌불 뒤쪽에는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린 잘생긴 소나무들이 주천강의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 서울 청계천을 건너는 영도교에서 출발하는 영월 여행
영월을 찾아가는 첫번째 여행법. 왕위를 찬탈당하고 영월 땅으로 유배됐다가 끝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한 단종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영월에서 단종의 처연한 역사를 만나겠다면 고속도로에 오르기보다는, 차근차근 단종의 유배 행로를 따라가보면 어떨까.
경복궁에서 시작한 단종의 유배길은 화양리를 거쳐 광나루까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마을마다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유배의 행로를 잡을 수 있다.
단종은 청계천 영도교를 건너 화양리를 거쳐서 광나루까지 간 뒤 배를 타고 여주의 이포나루를 지나 원주 흥호나루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다시 도보로 남한강을 따라 단강리를 거쳐 원주시 귀래면 운담리,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원주시 신림면 신림리를 지나 솔치고개를 넘어서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에 당도했을 터. 주천에서는 강물을 따라 유배지인 청령포까지 갔으리라.
그렇다면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에 당도하기 이전으로 태엽처럼 길을 감아보자. 서울 청계천 황학동의 동묘 앞에는 청계천 복원으로 다시 놓여진 다리 ‘영도교’가 있다. ‘영원히(永) 건너간다(渡)’는 다리 이름처럼 이곳은 열여섯 나이의 단종이 부인인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했던 곳이다.
정순왕후는 영도교에서 남편과 마지막 이별을 한 뒤, 이 다리와 가까운 곳에 ‘정업원’이라 이름 붙인 초라한 움막을 짓고 기거했다. 지금도 정업원 집터가 남아있으니,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 아래 청룡사 안에 비각으로 세워져있다. 영월로의 여정의 목적이 단종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그 출발은 영도교와 청룡사의 정업원터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춤하겠다.
# 마을마다 남겨진 이야기를 따라 단종의 유배길을 찾아가는 길
단종의 유배길은 백성들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유배의 행렬이 경기도 광주 땅을 지날 때 호송군졸의 눈을 피해 백성들은 행렬이 마을을 지난 뒤에야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알(拜謁)했으니, 그곳이 지금의 경기 하남시 배알미동이다.
이처럼 단종이 유배길에 쉬어가거나 물을 마신 곳마다 지명으로 흔적이 뚜렷히 남아있다. 유배길의 단종이 물을 마셨다는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 마을의 샘물에는 ‘어수정(御水井)’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단종이 쉬어간 원성군 부론면 단강리의 단강초등학교의 느티나무 정자는 ‘단정지(端亭址)’로 불린다. 부론면 운남리 고개에는 백성들이 절을 했다고 해서 ‘뱃재(拜峙)’란 이름이 붙었다.
단종의 유배행렬은 서울을 떠난 지 닷새 만에 황둔에서 솔치고개를 넘어 영월땅 주천에 당도했다. 고갯길을 넘은 단종은 주천에 있는 물미마을에 도착해 이곳 샘터에서 목을 축였는데, 물미마을의 표지석에는 ‘어음정(御飮井)’이라 새겨져있다.
주천에서 잠시 머문 유배행렬은 청령포로 향하는 길에 거칠고 높은 고갯길을 넘었다. 지금은 영월읍내와 주천을 잇는 88번 지방도로가 고도를 높이면서 넘어가는 이 고개의 이름은 임금이 넘었다고 해서 ‘군등치(君登峙)’라고 붙여졌다. 이렇게 배를 타고 고개를 넘어 유배행렬이 청령포에 당도한 것은 경복궁을 떠난 지 꼭 7일 만이었다.
청령포는 서강이 휘어져 도는 물도리를 끼고 있는 땅이다. 삼면이 물로 막혀 있고, 뒤편은 험한 산봉우리들로 막혀 배가 아니면 오갈 수 없는 곳이다. 청령포는 단종의 묘인 장릉과 함께 영월을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든 들러가는 곳. 굳이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상세한 표지판이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 영월 땅에서 발길이 드문 곳들을 찾아나서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았던 영월의 객사인 관풍헌 곁에는 자그마한 누각인 자규루가 서있다. ‘자규(子規)’란 두견새(소쩍새)를 일컫는 것인데, 단종의 자취가 서린 곳에는 유독 두견새와 관련한 이름이 많다. 아마도 단종의 비애를 피를 토하는 두견새의 울음에 자주 견주기 때문이겠다. 장릉에도 ‘배견정(拜鵑亭)’이란 작은 정자가 있다. ‘두견새가 배알한다’는 뜻인데, 단종의 뒤를 따라 동강에 몸을 던진 시종과 시녀의 넋이 두견새가 돼서 능을 찾아와 문안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화암’이라면 누구든 부여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곳 영월에도 낙화암이 있다. 두견새가 됐다는 단종의 시종과 시녀가 몸을 던진 곳이 바로 덕포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벼랑인 ‘낙화암’이다. 한낱 시중을 들던 시종과 시녀까지도 푸른 강물에 몸을 던지게 했던 것은 충절이나 의리 같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가엾은 어린 임금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가눌 길 없는 슬픔이었으리라.
영월공고 뒤편 산기슭에는 단종의 영정을 모신 영모전이 있다.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탄 모습의 영정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 영정 속에는 한 촌로가 말 위의 새하얀 얼굴의 단종에게 머루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바치며 절을 하고 있다. 그 촌로가 바로 단종의 유배소식을 듣곤 몰래 과일과 먹을거리를 장만해 배를 띄워 청령포로 단종을 찾아들었다던 추익한이다.
영모전 아래 충절사에는 추익한과 죽음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 그리고 단종 승하 후 자식들에게 벼슬길에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하며 서강에 몸을 던져 자결한 정사종 등 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렇듯 차근차근 영월 땅의 숨겨진 곳들을 돌아보노라면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대한 안쓰러움만큼이나 이들이 느꼈을 슬픔과 애통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 강의 정취를 따라 나서는 여정
영월 땅에는 유난히 강이 많다. 물이 합쳐지며 몸을 불릴 때마다 주천강, 평창강, 서강, 동강,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흘러내려간다. 강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딱 이즈음이다.
영월에서 강을 만나기로 했다면, 그 여정 역시 바로 영월 땅으로 질러가는 것보다는 단양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휘돌아 거슬러 올라가는 편이 더 낫다.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으로 나와서 59번 국도로 길을 잡아 남한강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이야말로 강변의 풍광을 만끽하면서 달릴 수 있는 코스다.
이렇게 물길을 따라 오르면 물길은 갈라지는 곳마다 동강과 서강, 주천강과 평창강으로 나뉘어진다. 어라연으로 대표되는 영월쪽 동강의 풍경이야 익히 알려져있는 곳. 우뚝 솟은 선돌과 한반도 모양의 선암마을을 빚어낸 서강의 풍광도 빼어나다. 그에 비해서 평창강과 주천강은 정취는 못잖지만 덜 알려졌다. ‘주천(酒泉)’이란 강의 이름은 인근에 ‘술이 솟는 샘’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천강변의 언덕에 세워진 요선정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다. 정자는 1915년에 지어진 것이라 내력이 깊진 않지만, 정자 곁 무릉리 마애좌상 뒤편의 바위에 올라 뿌리를 내린 옹골찬 소나무 아래로 굽어보이는 강물의 정취가 빼어나다.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좌상은 앞으로 기울어진 바위에 새겨진데다 머리와 어깨는 높이 돋을새김돼 있고, 그 아래로는 새김이 얕다. 그래서일까. 신경림 시인은 ‘주천강가의 마애불’이란 시에서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 차디찬 강물에 /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 천년의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고 썼다.
# 영월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들
영월의 절집이라면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가 첫손으로 꼽히지만, 영월읍 영흥리의 보덕사도 들를 만하다. 다른 건 몰라도 해우소가 문화재로 등록돼있는 재미있는 절집이다. 문화재로 지정됐으나 보덕사의 해우소는 아직도 제 일을 해내고 있으니, 문화재에다가 용변을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북면 마차리의 마차초등학교도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가보자. 이 학교에는 교정 한쪽에서 맑은 샘이 콸콸 솟아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흘러내려간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울 하나가 어찌 이렇듯 학교를 경쾌하게 만드는지, 마치 마술과도 같다. 쉬는 시간이나 하교 후 아이들은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종이배를 띄우거나 첨벙거리며 작은 새끼 송어떼를 쫓기도 했다.
여기다가 장릉에서 소나기재를 넘는 쪽에 들어선 엄흥도의 기념관 안쪽으로는 최근 조성한 ‘물무리골 전통생태학습장’이 있는데, 울창한 자작나무와 소나무, 보리수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가 나무데크로 조성돼있다. 산책로는 청정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산작약 같은 야생화들이 화려하게 피어있고, 그 위를 파랑 나비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산책로는 평지와 다름없는데다, 느릿느릿 돌아본다 해도 1시간이 채 안걸린다. 짙은 숲의 향긋한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이어서 꼭 들러가라고 소매를 붙잡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으로 나와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곧 영월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감곡나들목으로 나와 일찌감치 38번 국도에 오르는 방법도 있다. 영월에서는 장릉과 청령포는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찾아가기 편하다. 그러나 낙화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를 찾아가려면 관광안내지도는 필수다.
묵을 곳& 먹을 것
영월읍내에 몇 곳의 모텔들이 있긴 하지만, 가족 단위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들이다.
남한강이나 동강 등 래프팅이 성한 곳에는 어김없이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황토구들장을 앉힌 황토민박( 0...)이나 콘도형 펜션 동강힐하우스( 03...), 통나무로 지은 별빛좋은펜션( 0...) 등이 인기를 누리는 곳들이다.
영월의 맛집이라면 단연 주천면의 다하누마을(1577-5330)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정육코너에서 당일 도축한 1등급 쇠고기(모둠 300g 1만4000원)를 구입해 근처 식당에서 상차림비를 내고 구워먹을 수 있다.
20여곳의 식당들 중 행복점과 청운점, 주천점, 동강점, 구봉대산점 등 5곳에서 숯불을 쓰고, 나머지는 식당에서는 불판에 고기를 구워낸다. 최근 내부시설을 개보수한 행복점과 청운점이 깔끔한 편이다. 이들 식당은 육회도 잘 무쳐내니 구이용과 함께 육회용 고기(300g 8000원)도 함께 곁들이면 좋다. 저렴하게 질 좋은 한우를 맛볼 수 있어 아예 이곳을 목적지 삼아 여행을 오는 이들도 있다.
이밖에 청산회관( 033-374-3030 )의 곤드레나물밥과 천묵집( 033-372-3800 )의 메밀묵밥 등도 영월 여행에서 빼놓으면 서운한 별미다.
<출처> 2009. 6. 10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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