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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반세기 금단의 땅, 철원 - 철새들의 날갯짓엔 분단도 이념도 없더라

by 혜강(惠江) 2009. 1. 17.

 

반세기 금단의 땅, 철원 

 

철새들의 날갯짓엔 분단도 이념도 없더라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추위로 얼어붙은 한탄강 위를 두루미들이 날고 있다. 우아한 두루미의 모습이 마치 연하장 속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쇠둘레를 찾아갑니다. 쇠 철(鐵)에 둘레 원(圓). 쇠둘레란 강원 철원(鐵原)의 옛 이름입니다. 지금은 겨울, 철원평야는 춥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그 차가운 쇠의 땅을 찾아온 철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첩첩이 이어진 산들이 마치 쇠벽을 둘러친 듯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미륵의 나라’를 꿈꾸며 도읍을 옮겨 태봉국을 건설했던 곳. 그러나 지금은 반세기 이전 전쟁의 흔적으로 녹슨 쇠들만 가득한 곳입니다.

  그 차가운 쇠의 땅을 찾아온 철새들을 만납니다. 우리 땅을 찾아오는 철새들이 어디 이곳뿐이겠습니까. 금강하구와 태안의 부남호에는 하늘을 가득 가창오리떼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하고, 전남 해남의 고천암호나 강원 고성의 송지호에는 백조로 불리는 흰 깃털의 고니가 우아한 날갯짓을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철원에 찾아간 것은 그 철새가 너무도 쉽게 ‘금단의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철원평야의 철새들은 조국 분단의 현실을 일깨우는 무거운 땅에서 푸드득 깃털보다 가볍게 날아올랐습니다.

  이른 아침, 푸른 기운이 감도는 들판에서 머리 위로 높이 뜬 기러기들이 V자를 그리며 편대비행을 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만사형통한다는 길조 두루미도 우아하게 겨울 들판에 내려앉았습니다. 자못 위세가 당당한 독수리들의 거만한 모습은 이곳 아니면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철새를 만나러 떠난 길이긴 했지만 쇠둘레, 철원의 땅에서는 철새들의 행로보다는 녹슨 쇠들의 자취가 더 짙었습니다. 영하 18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간 혹독한 추위의 땅. 시린 손을 비비며 마주한 철원평야에는 봄까지 녹지 않을 잔설과 함께 전쟁의 상흔이 여전했습니다. 폐허가 된 노동당사며, 27만여발의 포탄이 떨어졌다는 백마고지며, 긴장이 감도는 전망대들에서는 무기의 비릿한 쇳내가 풍겼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을 이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도착한 승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북녘의 풍경은 더 쓸쓸하고 비장했습니다.

  철원은 참으로 여러가지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여행지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딛고 가는 금속성의 땅. 겨우내 그 땅에서 유연하게 철새들이 날아오릅니다. 철새들이 북쪽으로 머리를 돌려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습니다. 저 건너편 세상이 얼마나 더 먼 곳인지를 가늠해주는 지표가 되고 싶었을까요. 금세 새들의 뒷모습은 가물가물해졌고, 겨울 들판 위를 달리는 매운 바람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쇠기러기와 검독수리의 군무…이 땅의 주인은 ‘자연’

               

# 금단의 땅 위를 가볍게 날아가는 철새들

 

 

  ▲ 이즈음 철원평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두루미.

 

 

 쇳내음이 짙게 풍기는 철원에서 사람들을 위안하는 것은 철새들이다. 오랜 분단으로 ‘금단의 공간’이 되고 만 철원평야를 철새들이 차지했다. 철원평야 일대에서는 어디서건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빈 논에 내려서 낙곡을 주워 먹던 쇠기러기들이 하늘을 가르며 군무를 펼친다. 굳이 민통선 안으로 들지 않더라도 해가 뜨고 질 무렵 아무데나 차를 세워두고 벌판에 서서 고개를 꺾으면 어딘가로 날아가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들을 볼 수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새들을 만나려면 고석정 입구 한탄강관광사업소 앞에서 단체출발하는 철새탐조투어를 이용해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달 말까지 매주 수, 토, 일요일에 현지 여행사인 삼흥관광이 투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투어에 참석하려면 3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오후 1시30분에 한탄강관광사업소 앞에서 출발해 노동당사를 거쳐 토교저수지에서 탐조관광을 한 뒤 평화전망대와 아이스크림고지, 월정역사를 돌아보고 되돌아나오는 코스다. 예약 인원이 20명이 넘어야 투어가 실시되는데, 보통 수요일에는 인원 부족으로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지만 토, 일요일엔 참가자들이 많아 지금까지 취소된 적은 없다.

 본격적인 탐조투어가 시작되는 토교저수지 인근에서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흔하다. 토교저수지 제방에서는 먹이를 뜯어 먹는 검독수리의 위용도 감상할 수 있다. 한껏 날개를 편 채 제방과 인근 산 주위를 빙빙 도는 검독수리의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철원평야의 논바닥에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날아온 두루미들이 고고한 모습으로 서있다. 특히 전 세계에 5000여마리에 불과하다는 재두루미 중 2000마리 이상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탐조관광에 나선 버스는 2시간30분 만에 출발지인 한탄강관광사업소로 되돌아온다. 살아있는 자연을 만나는 탐조관광의 감동은 기대 이상이다.

 

 

# 어디가 진짜 철원일까… 지명이 얽히고 설키는 곳

 

 

▲ 북한땅과 가장 가까운 승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북녘의 풍경. 북쪽의 땅은 시야 확보 등을 위해 큰나무들이 다 베어진 평원 위로 남대천이 사행한다. 군사분계선 안은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원 땅에서는 수많은 지명들이 엇갈린다. 본철원과 신철원(갈말읍), 원철원(동송읍) 혹은 구철원…. 철원 땅에서는 이렇듯 지명들이 얽히고 설킨다. 과연 어디가 진짜 철원이라는 것일까. 1987년 발표한 김주영의 단편소설 ‘쇠둘레를 찾아서’의 주인공 중년 사내도 그랬다. 주인공이 당도한 철원은 이름만 철원일 뿐 기억 속의 장소가 아니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자신이 기억하는 진짜 철원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채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앞에서 망연해 하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철원에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6·25전쟁 전에 철원은 서울에서 원산과 금강산, 춘천, 사리원 등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강원 북부 교통의 중심지였지만, 전쟁후 새로 휴전선이 그어지며 철원 땅은 남북으로 갈렸다.

 한때 3만여명이 살았다던 철원시가지는 전쟁통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채 남측 민간인통제선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새로운 시가지가 동송읍과 갈말읍에 세워졌다.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갈말읍은 군청과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신철원’이 됐고, 이전의 철원 땅과 가까웠던 동송은 ‘원철원’으로 불렸다. 하지만 진짜 철원은 지금도 동송에서 더 북쪽으로 들어간 민통선 너머의 폐허가 된 땅을 이른다.

겨울, 철원평야는 춥다. 지난 2001년 1월 영하 29.2도의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철원이 추운 것은 단지 기온이 낮기 때문만은 아닐 터. 도로 곳곳에서 만나는 대전차 방어벽과 중무장한 전차, 긴장한 군인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서 더 혹독한 추위를 느끼게 된다. 아무런 설명 없이 승용차 내비게이터의 지도와 도로가 한순간에 다 뭉그러지고, 텅 빈 공간에 차량 표시만 덜렁 남게 되면 비로소 역사와 이데올로기가 헝클어진 복잡한 미로에 당도했다는 긴장이 엄습하게 된다.

 

# 오래됐어도 깊고 쓰라린 전쟁의 상흔들

 

 

▲ 노동당사는 별도의 방문 절차 없이 가볼 수 있다.

 

▲ ‘피안에 이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도피안사.

 

 

 철원에는 안보관광지가 산재해 있다. 안보관광지는 곧 전쟁의 상흔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상처는 깊고 쓰리다. 그 중 가장 깊은 상흔은 백마고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의 해발 395m 야산. 철원평야의 너른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백마고지가 바로 그곳에 있다. 6·25전쟁의 와중이던 1952년 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이곳에서는 12번의 전투가 벌어졌다.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처절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이 벌어졌다. 열흘 동안 모두 12번의 전투가 펼쳐졌고, 무려 27만4000여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국군과 적군 사상자만 1만3000여명에 달했다. 지금은 기념비와 충혼비, 위령비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녘 땅을 내다볼 수 있는 민통선 내의 전망대에 오르면 독특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코앞에 북한군의 선명한 선전문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는 접적 지역이란 긴장감과 함께, 훼손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땅이라는 경외감이 겹쳐진다. 하루 6번 정해진 시간에 승용차로 오를 수 있는 승리전망대는 북한 지역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 육안으로도 북한 지역의 오성산과 저격능선, 초소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의 망원경에 눈을 대면 아침리협동농장 주민들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지난 2007년 10월 새로 지은 철원평야전망대도 안보관광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전망대에 오르면 이른바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가 도읍을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면서 태봉국으로 국호를 옮긴 옛 성터가 내려다보인다. 성터의 자취는 간데없고 너른 평야만이 펼쳐져 있다. 군막사와 검문소 등을 재현한 전시물과 함께 모노레일이 설치돼 쉽게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이 밖에 민통선 내에는 월정리역사, 군청사터, 도립의료원터, 제사공장터 등 기둥만 남은 철원의 흔적도 남아있다.

 

철새탐조건 안보관광이건 민통선 안을 출입해야 하므로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탐조관광을 하려면 멀리서 철새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하므로 망원경은 필수품이다. 전망대 등 안보관광지에는 동전을 넣고 이용하는 대형 망원경이 있어 따로 망원경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큰기러기 등 철원 지역에 출몰하는 철새의 이름과 습성 등을 다룬 조류도감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카메라는 줌 기능이 충실한 것을 챙겨 가야 한다. 자동카메라는 겨울 흐린날에 플래시가 터져 마치 한밤중처럼 사진이 나오거나 새들이 놀라는 경우가 있으므로 수동모드로 전환한 뒤 사용해야 한다.

철원의 전방지구는 체감온도가 뚝 떨어지므로 방한복과 장갑 등도 잘 챙겨 가야 한다. 다만 붉은색 등 원색 계통의 옷은 철새들에게 들키기 쉬우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따뜻한 물이나 차를 보온병에 담아 가면 요긴하다.

 

 

가는 길, 포첨 방면 43번 국도 타야 

 

 

 

 서울에서 출발하자면 동부간선도로나 43번 국도를 이용해 의정부, 포천 방면으로 향하다 운천을 지나고 검문소를 거쳐 신철원으로 가닿는다.

서울 강남쪽에서 출발하려면 올림픽대로를 이용해서 구리톨게이트로 나온 뒤 47번 국도를 타고 퇴계원, 일동 방면으로 향하다 포천, 운천 방면으로 가는 43번 국도로 갈아타고 신철원까지 가면 된다.

철원에서 탐조관광이나 안보관광을 하려면 고석정 입구의 한탄강관광사업소( 03...)가 출발지가 된다. 탐조관광에는 승용차를 이용할 수 없고, 관광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수, 토, 일요일 오후 1시30분에 출발하는 탐조관광에 참가하려면 3일 전까지 관광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하는 삼흥관광( 033-452-3030 )에 연락해야 한다. 20인 이상이 모일 때만 출발하므로 신청 뒤 출발 가능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탐조관광프로그램은 탐조뿐만 아니라 안보관광프로그램까지 더해져 있다. 노동당사~토교저수지~평화전망대~삽슬봉 아이스크림고지~월정역사의 코스를 돌아보게 된다. 안보관광은 한탄강관광사업소에서 당일 출입 신청이 가능하다. 제2땅굴~월정리역~평화전망대~백마고지~노동당사 등을 돌아보게 된다. 승리전망대는 신분증을 제시해 민통선을 통과한 뒤 전망대 입구의 안내소에서 지정된 시각에 안내자와 동승해서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묵을 곳, 먹을 것

 

메밀향 짙은 ‘막국수’ 별미

 

 

 

 

 고석정을 내려다보는 ‘한탄리버스파호텔’( 033-455-1234 )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고석정의 그림 같은 풍광을 내려다보면서 노천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를 사용한 워터파크는 실내수영장 규모지만, 깔끔하게 꾸며놓아 가족단위로 찾아가도 만족도가 높다. 스파와 사우나, 수영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 1만5000원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 역시 강점. 호텔 숙박비는 2인 1실 기준 13만원선이다.

 최근 들어 철원 일대에는 펜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이그린펜션’( 033-452-6294 ), ‘별비 내리는 마을’( 033-45...), ‘디퍼펜션’( 033-...) 등이 시설이 깔끔한 편. 철새탐조를 위한 여행이라면 양지리의 ‘철새 보는 집’( 033...)이나 대마리의 ‘두루미평화마을’( 03...)이 좋다. 특히 두루미평화마을은 탐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겨울체험거리들이 풍성하다.

 맛집으로는 신철원 버스터미널 뒤편의 ‘철원막국수’(033-452-2589 )가 첫손으로 꼽힌다. 추운 계절에 웬 막국수냐 싶지만, 막국수는 가을에 수확한 메밀 향을 짙게 느낄 수 있는 겨울이 제철이다. 무려 50년의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철원막국수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큰손막국수’(033-458-4242)도 좋다. 고석정 부근 ‘궁예도성’( 033-455-1944 )의 생등심과 떡갈비도 괜찮다. 직탕폭포 부근의 ‘폭포가든’( 033-45...)은 메기매운탕을 얼큰하게 끓여낸다.

 

 

 

<출처> 2009-01-14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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