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치악산과 구룡사
전설 깃든 원주 치악산과 구룡사
글·사진 남상학
치악산이 속해 있는 원주는 지리상 사통팔달의 요충지로써 '지역이 개활되어 넓은 들판'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서지방의 명산이자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은 태백산맥의 허리에서 뻗어 나와 차령산맥의 남쪽 끝에 치악산맥을 떨구며 형성되었다. 가을철 단풍이 특히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었으나 꿩의 보은(報恩) 전설에 연유되어 '꿩치(雉)'의 치악산이 되었다 하고 이인직의 신소설 ‘치악산’의 본향으로 더욱 유명하다. 본래 도립공원이었으나 198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옛 무사가 구렁이에게 희생되려는 꿩을 구해준 데서 생겨난 설화를 담고 있는 치악산은 넓고 험하여 주봉인 비로봉(1,228m)에서 남북으로 뻗은 능선에는 향로봉, 남대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위용을 다투며 뽐내고 있으며, 큰골·영원골·입석골·삼원골·사다리병창 등 각 산행코스별 수많은 골짜기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치악산은 우리나라의 여러 명산 중 하나로 그 계곡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온 산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나무숲이 일품이다. 치악산으로 드는 숲 중에서는 북쪽 구룡사쪽으로 드는 부드러운 숲길이 백미다. 이 길에는 아름드리 황장목이 늘어서있다. 황장목이란 흔히 금강소나무라고 부르는 토종 소나무. 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이라고도 불리고, 아름다운 자태 덕에 미인송이라고도 일컫는다. 이 나무들은 오래전부터 유명해 나라에서 함부로 벌채를 금지하는 '황장금표(黃腸禁標 :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채를 금하는 표시로 설치된 것)'가 세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황장금표는 전국 60여곳에 세웠는데, 이곳 구룡사쪽으로 접어드는 길의 황장금표도 그중 하나다. 일종의 보호림 표식이라고 할 수 있는 금표 제도는 조선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치악산을 질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강원감영이 가까워 관리에 유리하며, 한강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한양까지의 운반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조선초기에는 전국 60개소의 황장목 봉산 가운데서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황장목은 나무의 중심부가 누런 색깔을 띠며, 나무질이 단단하여 질이 좋은 소나무로 그 용도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된다.
치악산 숲길 여행은 이 길을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치악산으로 드는 숲 중에서는 북쪽 구룡사쪽으로 드는 부드러운 숲길이 백미다. 이 길에는 아름드리 황장목이 늘어서있다. 치악산의 산봉들 사이로 형성된 계곡들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만큼 깊고도 험준하며 울창한 수목이 계곡과 어우러져 수려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빚어내고 있다. 특히 가을을 맞은 치악산은 찾아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색으로 물든 계곡의 단풍으로 유명하다.
그윽한 풍정 외에도 여러 산성과 수많은 불교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치악산은 창건연대와 폐사의 사연을 알 수 없는 많은 절터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온전히 남아 있는 절은 많지 않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절이 남대산 기슭에 있는 상원사와 최고봉인 비로봉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구룡사를 꼽을 수 있다.
신라 시대의 고찰 구룡사
구룡사는 666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구룡사(九龍寺)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 온다.
현 구룡사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그 연못이 있는 자리가 길지임을 알아보고 이곳에 절을 짓고자 했다. 이에 용들과 내기를 했는데 이기는 쪽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먼저 용들은 연못에서 솟구쳐 뇌성벽력과 함께 큰 비를 내려 온 산을 물로 채웠다. 용들은 기뻐하며 대사가 물에 빠져 죽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대사는 비로봉과 천지봉에 배를 건너 매놓고 배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이후 대사는 부적을 한 장 그려 이것을 연못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연못의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이 끓자 이를 견디지 못한 용들은 연못을 뛰쳐나와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동해로 달아났다. 그 중 한 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달아나지 못하고 근처의 작은 연못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찰의 자리를 두고 의상대사와 아홉 마리 용이 내기를 벌였다는 내용이 매우 재미있고 해학적이다. 그런데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후기 대표적 지리서인 「여지도서」강원도 원주 사찰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龜龍寺 八十五間 在雉岳山北 寺前有龍淵每當水旱有禱輒應”(사찰 전면에 용연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 한 마리 용이 살았는데 가뭄이 들었을 때 이 우물에 기도하면 응험이 있었다)는 설화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아무튼 사찰이 위치하기에 딱 좋은 명당이다. 영서지방의 으뜸가는 사찰답게 나말의 도선국사, 여초의 무학대사, 조선중기의 사명대사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구룡사를 거치며 사세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구룡사 입구에는 치악산 일대 송림의 무단벌채를 금하는 '황장금표'(黃腸禁標)가 서 있는데 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절 초입에 서 있는 원통문을 지나 구룡사까지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구룡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멍석이 깔린 보광루(지방문화재 제 145호)인 보광루를 비롯하여 범종각, 심건당·설선당, 삼성각, 사천왕문, 종무원 겸 요사, 원통문, 국사단 등의 많은 건축물이 있다.
이 많은 불전들 있으나 번잡하지 않다. 주위가 모두 푸르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찰의 분위기가 밝고 양명하다. 여러 불전 중 대웅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것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 개축된 낡은 건물이지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각별한 건물이다. 법당 안으로는 목조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삼존불 위 닫집은 조선시대의 조각 솜씨가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보광루의 짚으로 만든 멍석은 세 사람이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는 국내 최대의 멍석으로 구룡사의 명물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보광루는 건물이 노후되어 해체하고 지금 원형을 복원 중이라 공사 중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리고 구룡사 삼장탱화 및 복장유물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었고, 용다사 동종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 등정
구룡산의 등산코스는 다양하다. 산행기점이 구룡사, 성남리, 국형사, 금대리 등이 있으나 주봉인 비로봉은 구룡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구룡사로 하산하는 것이 대표적인 코스이다.
구룡사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지나 300m 정도 걸으면 구룡교.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구룡사계곡은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가을이면 곱게 드리운 돌길을 따라 일주문을 지나면 때 맞춰 물들기 시작한 고운 빛깔의 단풍잎들이 계곡을 장식하고, 철다리가 걸린 구룡소 부근에 이르면 풍광은 절정을 이룬다. 계곡은 선녀탕과 세렴폭포, 그리고 능선길로 이어져 다소 험하긴 해도 비로봉 정상으로 헤쳐 가는 산행의 즐거움을 열어준다.
여기서 직선으로 가면 사다리병창코스이다. 비로봉 정상까지 2시간여 동안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 오른다. 산행이 그리 만만치 않다. 수림에 파묻혀 정겹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바위가 많아 험하고 웅대하여 주봉인 비로봉까지 오르기엔 쉽지 않은 산이다.
비로봉 정상에 오르면 3m 가량의 높이로 쌓아올린 미륵불탑이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미륵석탑은 원주시 봉산동의 용진수라는 사람이 1962년부터 10여년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라고 전한다.
정성에 서면 남대봉으로 길에 이어지는 산맥의 등줄기 꿈틀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과 비단 폭 같이 반짝이는 남한강 줄기를 볼 수 있다. 또 넓은 들판 너머로 원주시를 내려다 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신갈 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호법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 다음, 새말 I.C를 지나 안흥, 횡성(치악산 국립공원) 방면으로 빠져나오거나 원주 I.C에서 원주시내로 빠져나온다. 원주 시내를 거쳐 학곡 삼거리에서 구룡사 방향으로 4.5km 들어가면 구룡사 입구 주차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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