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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설악산&오대산 단풍맞이 산행, 불타는 능선, 짙푸른 하늘…

by 혜강(惠江) 2009. 10. 7.

 

 

설악산&오대산 단풍맞이 산행

 

불타는 능선, 짙푸른 하늘… 색(色에) 취하다

 

 

박경일 기자 

 

 

▲올해 설악의 단풍 전선(前線)은 유난히 폭이 넓다. 정상 부근의 단풍이 아직 지지 않았는데도 벌써 붉은 물결이 산 허리까지 내려왔다. 남설악 흘림골 탐방코스의 정점인 등선대에서 내려다본 만물상 풍경. 기암괴석의 암봉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 등선대 정상에서 만난 시린 가을 하늘.

 

 

설악 대청봉에서 출발한 단풍소식이  천불동의 깊은 골을 거쳐서 남설악의 점봉산 자락까지 당도했습니다. 아기 손바닥만한 당단풍의 선홍색과  느릅나무의 노란색이 내설악과 외설악의 깊은 산중을 다 물들이고,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남설악 자락까지 붉은 기운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큰 일교차와 따가운 가을 볕 덕택에 올해 단풍은 선명하고 곱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예외없이 가을가뭄이 극심해  붉게 물들기도 전에 오그라붙었던 단풍이 아쉬웠다면, 올해야말로 그런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겠습니다.  설악의 대청봉에서 시작한 첫 단풍이 천불동 계곡까지 밀려내려와 뜨겁게 불붙었다는 소식이야 진즉 들려온 것이지만, 이렇듯 깊은 산중의 단풍이란 적어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고된 등반을 하는 이른바 ‘베테랑 산꾼’들의 것입니다.


가파른 산길을 바람처럼 달릴 자신도 없거니와,  시간을 내기도 버거운 보통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의 풍경들입니다.  하지만 단풍은 지금 허벅지 근육이 팍팍해지는 그런 종주의 산길에서 내려와 유순하면서도 부드러운  계곡에도 황홀할 정도로 불붙어 있습니다.  고된 발품을 팔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설악 단풍의  최고 명소라면 단연 남설악의 흘림골입니다.


흘림골 정상의 등선대에 올라 굽어본 산자락의 풍경은 선홍색 물감이 뚝뚝 듣는 굵은 붓을  휘둘러서 그려낸 듯합니다. 느릿느릿 걸어들어가는 내설악 백담사 계곡의 단풍은  좀 이른 듯했지만, 물가쪽의 단풍나무들은 이미 짙은 선홍빛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좀 이르려니 했던 오대산 소금강에도  설악을 다 물들이고 내려온 단풍이 곧바로 옮겨붙어 볕이 좋은 쪽부터 울긋불긋 물들고 었습니다.  구룡폭포 주변의 활엽수들은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져 팔락팔락 날리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은 붉고 노란 나뭇잎만이 아니라 코발트색 하늘과 반짝이는 가을볕이 한데 어우러질 때라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침 흘림골 등산로를 타고 등선대의 암봉에 섰을 때, 폭 담그면 두 손이 시릴 정도의 짙은 코발트색 하늘이 펼쳐졌고 흰구름이 설악의 영봉 위를 천천히 타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굽어 내려다보면 붉고 노란 단풍이 물든 풍경. 가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눈부신 풍경입니다.

 

 

뭐가 그리 수줍은지… 설악의 속살은 벌써 ‘울긋불긋’

 

 

▲ 단풍은 맑은 계곡의 물과 어우러질 때 정취가 더하다. 설악산의 흘림골이나 백담계곡은 가을가뭄으로 물이 줄었지만, 오대산 소금강 계곡만큼은 여전히 맑은 물로 그득하다. 깊은 계곡의 맑은 물에 단풍이 비치는 풍경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 오대산에도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간다. 가을볕이 환하게 비추는 소금강 구룡폭포 부근에서 가을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남설악의 흘림골은 설악산 대청봉의 남쪽 골짜기이면서, 동시에 점봉산의 북쪽 골짜기를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이른바 골산(骨山)인 설악산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육산(肉山)인 점봉산의 부드러운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이 계곡에 물드는 단풍의 화려함은 외설악의 천불동이나 내설악의 가야동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흘림골의 최고 조망대인 등선대에서는 우람하게 솟은 암봉과 유장한 설악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곡의 아기자기한 단풍과 함께 기암괴석의 암봉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가히 ‘가을 단풍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흘림골이 매력적인 것은 탐방코스가 6.2㎞로 제법 길면서도, 전체 코스의 5분 4가 줄곧 내리막길이라 부담이 없다는 점. 이렇듯 쉽게 설악의 절경과 곱게 물든 단풍을 만난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다.

흘림골의 들머리는 한계령 길의 7분 능선쯤에 있다. 한계령에서 양양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오른편으로 흘림골 탐방로 안내소가 있다. 탐방로에 들면 수백년 수령의 아름드리 전나무와 굴참나무, 단풍나무, 주목들이 뒤섞여 자라는 원시림이다. 바위마다 촉촉한 푸른 이끼들로 덮여 있다. 탐방로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흘림골의 최고 명소로 꼽히는 여심폭포까지는 30분 남짓. 오르막이라지만 유순한 길이다. 이 길에서는 등 뒤에서 우람한 칠형제봉이 이쪽을 굽어보고 있어 자꾸 뒤가 돌아봐진다. 여심폭포부터 길은 좀더 가팔라지는데 그래봐야 탐방로 입구부터 흘림골의 최고 고도인 등선대까지의 오르막을 다 합친다 해도 1.2㎞에 불과하다. 흘림골 탐방로가 전체구간중 오르막은 5분 1에 불과한 셈이다. 등선대에서 오색약수로 내려서는 길에서 한번 더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미처 숨이 차오르기 전에 넘어설 수 있을 정도다.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는 흘림골 산행의 백미다. 기암괴석의 암봉을 타고 올라 전망대에 서면 흘림골 계곡을 따라 솟아 있는 암봉들이 손에 잡힐 듯 눈앞으로 다가선다. 난간에서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면 울긋불긋 선명하게 불붙은 단풍의 물결 위로 불쑥 솟은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펼쳐져 있다. 고개를 들어 반대쪽을 돌아보면 설악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청명한 날이라 설악의 영봉 위로 눈이 시린 푸른 가을하늘이 펼쳐졌다. 설악에서 만나는 푸른 하늘은 도회지에서 보는 그것과는 채도와 깊이가 다르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음이 새삼스럽다.

등선대에서 내려서 오색약수까지는 5㎞남짓. 계곡을 따라 짙은 단풍이 물들어 있다.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의 굽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곱게 물든 단풍의 색감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난 2006년과 2007년의 연이은 수해로 계곡이 죄다 헝클어지면 물길이 흐릿해졌다는 것. 게다가 가을 가뭄으로 등선폭포와 십이폭포의 위용도 이름 값을 못한다. 선녀탕도 자취를 찾기 힘들고 계곡에 고인 물에는 물이끼까지 무성하다. 하지만 단풍의 고운 색감만으로도 이런 것쯤이야 쉽게 가려진다.

내설악의 백담사는 한계령에서 출발해 희운각을 지나 공룡능선과 마등령을 타고 오세암을 거쳐 내려서는 종주코스의 종점이자, 짧게 대청봉을 오르내리는 코스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백담사를 들머리나 종착지로 삼는 등산객들은 백담사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15분마다 한 대씩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휭하니 오간다. 그러나 가을단풍의 정취를 즐기겠다면 백담사입구에서 백담사까지 6.5㎞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백담사까지 닿는 편도 1시간 30분거리의 길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길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걷는 길이다. 이 길에 오르면 숨이 찰 일도 없이 저절로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왼편으로 따라오는 계곡은 어찌나 물이 맑은지 연청색 물의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내설악 짙은 원시림을 타고 내린 맑은 물은 소리도 청아하고 제법 힘이 있다. 계곡 건너편의 암벽 사이로는 단풍나무 잎들이 하나 둘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길은 셔틀버스와 경내 차량이 오가는 번잡스러운 낮보다는 이른 아침에 찾는 편이 낫겠다. 아직 좀 이른 듯하지만, 다음주쯤이면 단풍이 더욱 짙어질 터. 불같이 달궈진 단풍잎이 계곡의 얼음처럼 찬 물 위로 자결하듯 떨어지면 치직거리며 수증기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리라. 그 물안개 속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백담사 입구로 다가서면서 길은 잠깐 고도를 높인다. 이 길 끝에 서면 백담계곡의 물길이 유(U)자로 내려다보이는데, 백담계곡의 가을단풍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구간이다.

백담사는 이름난 다른 절집에 비해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고색창연한 맛도 없다. 대신 낮고 고즈넉하다. 절집에는 몇 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 중 고은의 시비를 읽는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고은 ‘그 꽃’ 전문). 중년을 넘은 삶이 그렇듯, 계절도 가을이면 ‘내려가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올라갈 때 미처 놓치고 못 본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백담사 앞 계곡 자갈 밭에는 흰 돌로 세워진 돌탑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무슨 소원이 이리도 많고 간절할까. 매번 큰 비에 자취도 없이 쓸려 내려가지만, 또 누군가가 다시 돌탑을 일으켜 세운다.

설악산에 붙붙은 단풍은 곧 오대산으로 옮겨붙는다. 오대산에 단풍이 물드는 시기는 설악산보다 대략 2~3일 정도 늦다. 오대산 중에서도 서쪽의 상원사 쪽보다 동쪽 강릉 연곡쪽 노인봉 자락의 소금강 단풍이 좀 더 이른 편인데, 벌써 구룡폭포 부근에는 노랗고 빨간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오대산의 단풍이 빼어난 것은 깊은 골을 타고 내려온 계곡의 물 빛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설악의 계곡들이 최근 몇년동안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했지만, 오대산 소금강은 오랜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이뤄진 계곡과 그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여전하다.

소금강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십자소, 명경대, 식당암, 세심대, 구룡폭포, 만물상, 낙영폭포로 거슬러 올라가며 펼쳐지는 풍광은 가히 선경 중의 선경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파란 하늘과 함께 물에 비치면 탄성이 절로 터진다. 설악의 단풍이 붉은 색 위주라면 오대산의 단풍은 오색으로 물든다. 갖가지 색으로 물든 단풍에 힘차게 뻗은 금강송의 초록색까지 겹쳐지면 그야말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금강에서는 단풍을 가린다 해도 만물상 부근의 계곡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 만물상에는 거인의 옆얼굴을 닮았다는 귀면암, 촛불형상을 한 촛대석, 암봉 가운데 난 구멍이 낮이면 해 같고, 밤이면 달 같다는 일월봉 등의 절경이 펼쳐진다.

본격 등반코스는 진고개에서 출발해 노인봉을 올랐다가 소금강으로 하산하거나 반대로 소금강에서 노인봉을 거쳐 진고개 쪽으로 내려가는 게 보통. 해발고도가 높은 진고개에서 출발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계곡의 단풍 구경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5~6시간이 넘는 산행보다는 계곡만을 즐기는 것도 좋다. 소금강 매표소에서 시작해 백운대까지 왕복하면서 계곡과 단풍만 봐도 가을 단풍여정으로는 충분하다. 백운대까지 왕복하는 데 3시간 30분쯤 걸린다. 최고의 절경은 구룡폭포를 지나 백운대까지 이르는 코스. 학유대, 구곡담, 만물상을 지나 백운대가 가까워지면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물빛은 연푸른 옥빛이고 안반 양쪽으로는 기암절벽에는 노송과 단풍이 매달려 있다.


흘림골·백담사·소금강 가는 길

흘림골 가는 길은 간명하다.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6번 국도로 양평으로 가서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계속 달리면 한계령 휴게소에 가닿는다. 휴게소에서 양양방면으로 내려서서 2㎞쯤 가면 오른쪽에 흘림골 탐방로 안내소가 있다. 흘림골 코스는 원점회귀가 아닌 데다 차를 탐방로 앞에 세워놓을 수도 없다. 먼저 흘림골 등산로의 종착점인 오색약수로 내려가서 식사를 한 뒤, 식당 주인을 태우고 탐방로 입구까지 가서 키를 건네주고 식당 주차장에 세워놓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요령이다. 백담사계곡은 44번 국도를 타고가다 한계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북면 쪽으로 가면 백담사 안내판을 보고 들어가면 된다. 백담사 입구에서 절집까지는 6.5㎞. 일반차량은 통제되고 셔틀버스만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소금강을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와 6번국도로 갈아타고 진고개를 넘은 뒤 장천동에서 우회전하면 소금강 주차장에 닿는다.

 

어디서 묵고 뭘 먹을까

오색지구에 상가가 밀집해 있다. 대부분 산채백반이나 산채비빕밥 등을 내놓는데 맛이 묵직하면서도 깔끔하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괜찮다. 등선대식당(033-672-5252)이 음식 맛도 좋고, 주인도 친절하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색에서 양양가는 길의 ‘범부막국수’(033-671-0743)는 일부러 찾아가볼 만한 맛집이다. 속초, 양양, 강릉 일대에는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는 내로라하는 막국수집들이 많지만, 순서를 매긴다면 이곳의 막국수를 맨 앞으로 올려도 좋겠다. 거끌거끌한 메밀면 특유의 면발이 살아있다. 양양 동호리해수욕장의 오산횟집(033-672-4168)의 섭국도 좋다. 오색지구 인근에는 최근 몇년새 깔끔한 펜션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로젤리아펜션(033-672-8998)이 추천할 만하다. 양양읍내에는 몇곳의 모텔들이 있으나 모두 낡거나 허름한 편이다. 바닷가 쪽의 럭셔리한 숙소를 원한다면 양양의 쏠비치(1588-4888)가 단연 최고다.

 

 

<출처> 2009-10-0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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