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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태백 여행, 검용소→바람의 언덕→구문소→철암역 및 선탄장→황지

by 혜강(惠江) 2009. 10. 22.

 

박종인의 여행편지

 

태백 여행,"강이 산을 뚫었다고?"

 

 

<여행코스> 검용소→바람의 언덕→구문소→철암역 및 선탄장→황지

 

 

 

  한강이 이 도시에서 시작했다. 낙동강이 이 도시에서 시작했다. 도시에는 산을 뚫은 강이 흐른다. 그 옛날,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석탄을 캤다. 탄광은 대부분 사라지고, 거리를 뒤덮었던 탄가루도 사라졌다. 오전 10시, 태백 시내 곳곳에 서 있는 온도계는 섭씨 18도를 가리켰다. 한국에서 가장 서늘한 도시, 강원도 태백 이야기다.

 

 

 

▲강이 산을 뚫은 곳


 

  태백에 가면 두 가지에 감동을 받는다. 첫째는 자연. 1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기이한 지형 구문소가 있다. 강물이 석회암 절벽을 1억년 동안 깎아낸 끝에 굴이 뚫렸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명쾌한 자연법칙을 허망하게 파괴해버린 돌연변이의 신비를 목격할 수 있다.

 

   한반도 남쪽의 양대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도 태백에 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시라. 유유장장하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이 눈앞에 보이는 샘물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검용소와 황지는 그 엄청난 ‘첫걸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 철암역 선탄장.
 

  둘째는 사람, 우리네 민초들이 감내했던 고단한 인생의 흔적이다. 태백은 석탄 산지였다. 한때 지나가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벌이도 좋았다. 탄가루와 붕괴 위험에 몸은 늘 불안했지만 그래도 1미터라도 더 파면 가족을 먹여살릴 돈이 생겼다. 에너지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쇠락한 탄광촌은 과거의 흔적으로 채워져 있다. 그 흔적이 던지는 촉촉한 감동이 태백을 찾는 두 번째 이유다. 

 

 

                                  자연, 그 장엄함에 대하여

 

 

             

구문소.

 

 

#구문소(求門沼)


태백시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황지천이 산에 구멍을 냈다. 그 구멍 옆에는 사람이 찻길을 내기 위해 또 구멍을 뚫었다. 인간이 만든 구멍보다 자연이 만든 구멍이 훨씬 웅장하다. 구문(求門)은 구멍·굴의 옛말이며 ‘굴이 있는 늪’이라는 뜻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천천(穿川·구멍 뚫린 개천)이라고 기록돼 있다.

 

 

                 구문소와 사람이 뚫은 통로.

 

  구문소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리를 따라 걸으면, 딱 눈높이에 꽃들이 장식돼 있어서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쭈그려 앉는다. 난간 사이로 보이는 구문소의 모습은, 참으로 신비롭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구멍 너머 암반 아래쪽에 글이 새겨져 있다.

 

            ‘五福洞天子開門(오복동천자개문)’


  ‘낙동강 위에 올라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온다.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있다’는 정감록의 기록을 일곱자로 새겨넣은 글이다. 바로 태백이 그 오복을 갖춘 이상향이 아니었나.

  지질학적으로는 무르디 무른 석회암을 물이 침식시킨 거라지만, 사람들은 용 두 마리가 싸우다가 한 용이 절벽을 뚫고 쳐들어와 다른 용을 무찌르고 승천한 자리라고 믿고 있다.

 

 

#강이 이곳에서 시작하였으니 - 검용소

 

 

                  ▲ 검용소 가는 길.

 

 

수천 리 유장한 강물도 시작은 작은 샘이다. 한강, 정확하게 남한강은 이 작은 샘에서 발원해 서해로 흐른다. 강이 흐르는 곳에는 늘 마을이 있었고 들판이 있었고 그 위로 산들이 있었다. 그 장엄한 여정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검용소 물길.

 

   검용소는 태백 시내에서 삼수령을 지나면 나온다.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금대봉 아래에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그 혹독했던 영동지방 가뭄에도 검용소는 마르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느릿느릿 걸어서 30분이다. 개울 소리가 점점 커지고, 빗소리도 커진다. 나뭇가지들이 물방울을 잔뜩 머금고 고개를 숙인다. 태백시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다. 이 정도 관광지라면 이미 쓰레기며 채취행위며 기타 등등 웃기지도 않는 행위에 처참하게 파괴가 됐을 터인데 금방 곰이라도 나올 듯이 무공해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검용소 물길이 만든 폭포

 

 

  최장 둘레 20미터인 이 샘에서 하루에 물이 3000톤씩 뿜어나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수온은 섭씨 9도로 변치 않는다. 장구한 세월 끝에 샘물이 흐르는 바위는 물길을 따라 용처럼 깊게 패여 있다. 이름하여 와폭(臥瀑), 누운 폭포다. 그 끝에도 계단형으로 작은 폭포가 쏟아진다.

  검용소 주위에는 나무로 만든 통로가 설치돼 있다. 발원지에 인공구조물? 다 자연 파괴의 선두주자인 사진작가님들께서 자초한 일이다. 곱게 사진만 찍고 가면 될 일을 이끼가 예쁘다고 뜯어서 위치를 옮기질 않나, 삼각대로 팍팍 찍어서 죽여버리지 않나,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통로를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 내년에는 예약제로 방문객을 제한하고 해설사가 붙어서 자연생태 설명까지 한다니 통로도 그 김에 없앴으면 좋겠다. 아래 사진은 통로가 생기기 전 검용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 나무 통로 설치 전의 검용소.

 

  검용소 위쪽에는 제당굼샘, 고목나무샘, 그리고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이라는 샘이 더 있다. 이들 샘터에서 나온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검용소에 모여서 다시 솟구친다. 그래, 엄밀하게 말하면 한강 발원지는 따로 있구나! 안내소 직원이 말했다. “글쎄, 검용소는 발원지고 제당굼샘은 발원샘이라네!”

 

# 도시 한가운데에서 강이 발원하다 - 황지(黃池)


  태백 도심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다. 이름이 황지다. 그 옛날 황씨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탁발승에게 똥물을 줬다가 혼쭐이 났다. 며느리가 몰래 불러 밥을 주니 이 스님 왈, “밤에 뒤도 보지 말고 도망가시게.” 한밤 며느리가 아들을 업고 야반도주하는데, 뒤에서 벼락소리가 들려 무심코 돌아보니, 황씨 집은 물에 잠겨버렸고 며느리는 아들을 업은 채 바위가 됐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 낙동강의 발원, 황지.

 

  그 황지가 바로 낙동강의 발원지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 돌 구르는 것도 다 보인다. 누런 비단잉어 한 쌍을 다른 잉어들 사이에 풀어놓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빌딩숲에 에워싸인 신비의 연못 황지였다.



# 거인의 놀이터,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은 삼수령 부근 매봉산 능선에 있다. 풍력발전기들이 능선을 따라 돌고, 태백에서는 이곳에 작은 공원을 꾸며놓았다. 날이 흐리면 구름에 싸인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분위기가 근사하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과 고랭지 배추밭

 

  그 아래는 고랭지 배추밭이다. 나무 데크로 만든 전망대에 서면 확 트인 시야에 속이 후련하다. 아래는 녹색, 위는 푸른 하늘. 거기에 구름이 낮게 몰려오면 그 이국적인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다. 능선에 도열한 발전기들은 꼭 거인들 같다.

 

                         ▲ 풍력발전기.
                          
풍력발전기와 풍차.

 

  길은 교행이 쉽지 않는 좁은 포장길이다. 과속은 절대 금물. 발전기 아래에 차를 대고 발전기 사이를 연결한 산책로를 걸어본다. 문 열리지 않는 작은 풍차를 지나면 들꽃이 만발한 정원도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합작해 만든 하늘 공원이다.

 

 

                        안개에 뒤덮인 풍차.
 
 
 

# 삶은 고단했느니라 - 철암역


  그 화려하고 상쾌한 태백의 얼굴 뒤에 고단함이 숨어 있다. 그 고단함을 느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면 태백 여행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그래서 철암역으로 간다. 태백의 역사를 담은 석탄박물관도 있지만, 정제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삶의 흔적을 철암역에서 본다.

 

 

                철암역 선탄장. 벽에 있는 구멍에서 화차로 무연탄이 쏟아졌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장면. 철암역에서 찍었다.

 

  영화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착한 놈 박중훈과 나쁜 놈 안성기가 맞짱을 떴다. 영화 맨 끝장면이다. 비지스의 ‘holiday'가 흐르고, 폭우 속에서 두 사내가 주먹질을 한다. 사위는 온통 잿빛이다. 그 싸움의 현장이 바로 철암역이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권선징악을 다퉜지만, 현실에서 철암역은 생존의 문제였다.

  대한석탄공사의 장성탄광이 인근이다. 탄광에서 나온 무연탄은 모두 철암역으로 집하돼 열차에 실려 갔다. 지금도 운영 중인 이 선탄장은 그 애환이 깊고 깊다. 그 선탄장의 일부는 운영을 멈추고 역사가 됐다. 정부는 이 선탄장을 국가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했다.

  보라, 그 모습을. 검은 탄가루들이 기둥마다 붙어 있고, 유채색은 무채색으로 지배당했다. 아직 뒤쪽 선탄장은 분주하게 기계가 돌아가는데, 선로와 맞붙은 이곳은 고요하다. 이곳에서 소위 ‘광부’들의 삶이 규정됐다. 목숨을 걸고 채굴해낸 탄 덩이들이 이곳에서 화차에 실렸고, 한 가족의 가장은 지폐를 손에 쥐었다.

철암역 담벼락에 적힌 추억들.
                           ▲ 또 다른 추억

 

  월급날, 역 앞은 소란스러웠다. 너무나도 탄가루가 날리는 바람에 역사에서는 거리에 물을 뿌렸다. “태백에서 여자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그 때 그 시절에 대한 증언과 추억이 신 역사 담벼락에 남아 있다.

 

  좁은 도로 건너편 상가들은 쇠락했다. 탄광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흥청하던 탄광촌 유흥가, 식당가는 사라졌다. 국번 바뀐 지 여러 해가 됐지만 여전히 두 단위짜리 옛 전화번호가 붙어 있는 간판들, 업종이 여러번 바뀌었지만 옛 간판을 떼지 못하고 새로 간판을 내건 가게들, 허리를 90로 꺾고서 고단한 걸음을 떼는 파파할머니들…. 휴가철이 다가온다. 대자연이 기다리고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과 즐길 시간이 바야흐로 근접했다. 태백에 가거들랑 이 고단한 삶의 흔적까지 꼭 담아오시라.

 

 

                         ▲ 철암역에 전시된 삶.

 

<여행수첩>
1.가는길(서울 기준) :
중부내륙고속도로 신림IC→영월→태백. 혹은 제천IC→제천→영월→태백. 이 경우 제천 시내를 통과해야 하는데, 헷갈리기 십상이다. ‘의림지’ 방면 이정표를 보고 영월로 갈 것. 두 경우 다 38번 국도를 만나면 태백으로 가게 된다.

 

2.검용소와 ‘바람의 언덕’
- 38번국도에서 태백으로 진입한 후 이정표 있음. ‘검용소’ ‘삼수령’ 방면 35번 국도를 탈 것. 38번-35번 국도 교차로는 굉장히 작아서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
- 삼수령 직전에 왼쪽으로 ‘풍력발전소 가는 길’ 작은 이정표. 중앙선 너머로 시멘트포장길로 들어갈 것. 외길을 끝까지 가다보면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 나오고 그 뒤 능선에 풍력발전기와 ‘작은’ 풍차.
- 검용소는 삼수령 지나 5km 정도 가면 왼편으로 진입로.

* 검용소는 카메라 삼각대 절대 반입 금지. 차에 두거나 안내소에 맡길 것. 왜? 검용소 바위에 곱게 붙은 이끼들 짓밟고 사진 찍고 뜯어내가는 파렴치한들이 워낙 많으니까 아예 금지했다.

 

3.황지:태백 시내 한가운데에 있다. 태백역을 찾을 것. 역 주변에 주차장 많이 있음.


4.구문소:황지 혹은 검용소에서 나와 35번국도 봉화 방면. 태백경찰서 지나고 두 번째 터널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할 것. 터널 입구에 ‘출구 절대 서행’이라고 적혀 있다. 좌회전하면 눈앞에 절벽이 나타나고 오른쪽 다리를 건너서 길 건너에 주차장. 거기가 구문소다.  구문소를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싶다면 다리 아래로 걸어서 내려가면 된다. 신발, 양말 벗고 다리 아래까지 걸어갈 수 있다.


5.철암역과 선탄장: 구문소에서 423번 지방도로 철암 방면. 역 주변에 주차.
- 신역사 담벼락에 있는 작품들을 감상한다. 그 진솔한 표현에 가슴이 짠해진다.
- 철암역 선로 건너편이 선탄장. 지금은 일부 시설이 국가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돼 있다.
- 역사 주변 상가들도 의미가 있다. 간판에 간판을 덧씌우고, 그나마 문을 닫은 가게들. 옛날의 영화와 지금의 쇠락을 동시에 보여준다.

 

* 덤, 만항재 드라이브
- 태백시내에 있는 O2리조트 골프장 옆으로 만항재 가는 414번지방도가 있다. 정선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도로. 들꽃으로 유명한 함백산도 이 길에 있다. 함백산 정상까지도 도로가 연결돼 있다. 조망이 근사하다. 

                                    

               

 

<출처> 2009. 7. 20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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