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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사은회(72년 졸업, 숭의여중 제자들과의 만남)

by 혜강(惠江) 2008. 10. 28.

 

아름다운 사은회


1972년 졸업,  숭의여자중학교 제자들과의 만남

 


글·사진 남상학

 

 

 


  

  지난 10월 23일 오후 7시, 신촌에 있는 음식점 <거구장>에서 미국에 이민 가셨던 김희렴 선생님의 일시 귀국을 계기로 금년 두 번째로 제자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50대에 접어든지 수년이 지났지만 50대의 제자들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이 제자들을  만난 것은 지금부터 38년 전,  중학교 평준화 첫해가 되는 1969년 숭의여자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때였습니다. 그 후 1학년, 3학년 시절 담임을 하며 국어(國語)교과를 맡아 지도했습니다. 3년의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들은 제각기 자기가 지원한 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지만, 교사인 저는 3년의 과정을 마친 제자들을 졸업 시킬 때마다 가르친 사람으로서 늘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교정에 서있는 은행나무의  그늘처럼 짙게 드리워지기 때문이었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한 편의 시를 되뇌곤 하였습니다.

                      
   눈이 내린 교정을

   가로 질러 너를 보낸다


   기적을 울리며

   장정(長征)에 오르는

   무한의 흐름


   시간의 강물에 손을 씻으며

   물 흐르듯 너는 가고

   나는 홀로 플랫폼에 남는다.


   네가 떠나고 난 자리

   세월의 생채기가 무성하고 
   내 무지와 무관심이 잿빛 하늘에 펄럭인다.


   더 머물 수 없는 시간

   네가 은하계(銀河系) 눈부신 언덕 위로 
   새롭게 출발할 때


   나는 말과 음악(音樂)이 실종(失踪)된

   빈 교실에서 보옥(寶玉)처럼 
   네가 떨어뜨린 미소를 줍는다.

 

 

    - 졸고 <졸업> 전문                                                            
 

  이 글은 어느 핸가 강당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쓸쓸한 교무실로 돌아와서  <졸업>이란 제목으로 쓴 시입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 그지없지만 저들이 "눈부신 은하계 언덕" 위로 새롭게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번 해가 바뀌면 그들의 이름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 속에서 아련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가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어느 5월 교장실 전화벨이 울리고, 1969년 중1 담임을 했던 김영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저 영주예요, 기억하시겠어요?"  

  "그래, 영주! 네가 웬 일이야.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영주는 제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적이 놀라는 듯했습니다. 그 동안의 안부를 나누면서 시작된 대화는 졸업한 지 30년 가까이 된 제자들이 선생님들을 뵙기로 하고 초청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찾는 선생님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며칠 후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된 장소에 나갔습니다. 이미 열 명쯤 되는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출신고등학교가 제각기 다르면서도 중학교 동기동창이란 인연으로 그 동안 서로 교류하며 지내던 친구도 있었고, 선생님을 뵙자는 제안을 받고서야 중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상면(相面)하는 친구도 있는 듯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은사와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에 달려온 것입니다.  

 

 오랜만의 만남은 음식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모임은 30년 가까이 한번도 해를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사은(師恩)’의 의미를 담아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은사모>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지요. 이름의 뜻은 '은사를 사모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자기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몇 차례 모임을 가진 어느 해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들과도 이런 모임을 갖느냐?”구요. 대부분의 경우 사은회라면 중학교는 제쳐두고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선생님들을 뵙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답은 개별적으로 찾아뵙기는 해도 공식적인 모임은 갖지늩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었느냐?”고.  그 때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한 마디로 고등학교 시절은 입시에 매달려 사제간에 인간적인 신뢰와 두터운 정을 쌓을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은 자신들에게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을뿐만 아니라 학생활동이 다양하여 중학교 시절의 학교생활이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짙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순환 보직으로 선생님들이 자주 전보되어 한 자리에 오랫동안 계시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되겠습니다만.   

 

 저는 이 모임을 주선하는 제자들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족하지만 저 자신의 모습이 그들의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제자들의 정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입니다. 저는 그 정성을 높게 사고 있습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듯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제 스승님을 해마다 찾아뵙지 못하는 터에 제자들은 멋지게 이를 실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모임은 해를 거듭하면서 서울 시내에서 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이루어졌습니다.

 

  2001년에는 주요섭 선생님의 제안으로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선생님 댁에서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퇴직하여 자신이 직접 설계한 집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서 시골에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셨지만, 실제로 방문해 보니 전원생활의 멋과 맛을 온통 혼자 즐기는 듯한, 정말 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선생님댁으로 가는 남한강 길가엔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정원이 잘 갖추어진 선생님의 뜰에서  보낸 한나절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서 일기 속에 제자들의 모습을 아카시아 꽃에 비유하여 적었습니다. 아카시아꽃은 5월 남산 언저리에 만발하여 창문을 열어놓으면 교실 안으로 짙은 향기가 스며들곤 했으므로, 그 시절과 지금의 제자들을 대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록으로 단장한 골짜기

 치열(齒列)이 유난히 곱고 흰 너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짙푸른 숲 남산 언덕배기

 작은 바람결에 살랑거리던

 그 모습 간 데 없고

 세월의 몇 고비 넘어

 묻어나는 원숙한 향기

 

 오월 하늘 스치는 바람결에

 애써 손 흔들지 않아도

 코끝에 찡한 감동으로 풍겨오는

 순백(純白)의 사랑

 

 푸르디푸른 가슴에

 환한 꽃타래 한 아름 안고

 은은한 향기 뿌리며

 상긋한 미소로 오는구나.


  복잡한 서울 한복판을 훌쩍 떠나 풍광이 좋은 시골에서의 모임은 우리의 기분을 한결 들뜨게 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팔당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제자 장유훈의 별장에 두 차례나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조경이 잘 된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며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오찬을 나누었던 일은 아마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흔히 세상일은 처음에는 달아올랐다가 얼마 안 가서 쉽게 식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모임은 해를 거듭하며  점점 세(勢)를 불려가며 더욱 끈끈한 정으로 묶여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 모임에 대하여 남들에게 자랑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서로 만나 밥 한끼 나눌 수 있어서가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진정한 마음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숭의여자중학교가 대방동에 새 교사(校舍)를 짓고 이전했습니다만, 옛 교사가 있던 남산 기슭에는 봄철이면 유난히 노란 개나리꽃이 환하게 주변을 장식합니다. 아시는 대로 개나리꽃은 신입생이 들어오고 학년이 바뀌는 이른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지요. 저는 교직생활 36년을 이곳 남산에서 철마다 피어나는 개나리꽃을 보며 정성과 애정을 담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보람이 더 컸다고나 할까요?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꽃 되어  
 아지랑이 언덕에 이처럼 피었나니     
 그 날 한 소절로 꺾이던 내 젊은 절규는  
 불붙는 열정으로 뽑아낸 진액처럼
 해마다 이 남산에 
 노랗게 겹겹이 피기로
 그대 위해선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 졸고 <개나리> 전문

 

 정년이 가까워 퇴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저는 제자들과 함께 한 세월을 회상하며 새학기 시작 즈음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개나리꽃에서 시상(詩想)을 얻어 그간 교직 생활의 보람을 이렇게 적어놓았다가  <그리움 불꽃이 되어>란 시집에 수록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김춘수(金春洙) 시인이 쓴 <꽃>이란 시를 좋아합니다. 그분의 시적 상상과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無)로부터  존재를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누가 나의 이름을 명명해 줄 때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이 가슴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서로 존재 사이에「관계(關係)」를 형성할 때라야만 비로소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학생들에게 김춘수 시인의 이 시를 낭독해 주고 그 의미를 함께 되새기곤 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교사가 의미를 가지고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呼名)하는 일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교육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을 향기를 지닌  ‘꽃’으로 변형시키는 오묘한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인격과 인격의 상호 교감(交感)을 통해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인간관계가 성립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미국문학의 거성(巨星)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결말 부분에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인 조오단과 마리아,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마드리드에 갈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어느 곳이고 간에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갈 테야, 알지?  자, 어서 떠나. 하지만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진 않아. 둘 중 하나가 있는 한, 둘 다 거기 있는 것이 돼. 알겠어?”


  조오단이 왼쪽 다리에 명중탄(命中彈)을 맞고 쓰러지면서, 그의 애인 마리아에게 위험한 이곳을 떠나라고 호소하는 최후의 애정 어린 말입니다. “나도 남겨줘요!” 하는 마리아의 애원과 절규가 처절한 가운데 조오단은 기어이 마리아를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교량을 폭파하는 최후의 임무를 마치고 숨을 거둡니다. 좀 역설적인 대화처럼 보이지만 이 속에는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대화이지만, 저는 이 대화에서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단순한 혼자만의 <나>가 아니고,  그 <나>는 <너>와의 관계로 이어지면서 양자 사이에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사랑의 영원성이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둘 중 하나가 있는 한, 둘 다 거기 있는 것이 돼. 알겠어?”

 

 인간은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것에 행복해 합니다.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어디 있든지 말입니다. 이 모임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혹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단된다 할지라도 교육의 현장에서 사제지간으로 맺어진 끊어질 수 없는 관계는 영원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이들이 제각기 삶의 자리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 질 큰 재목들로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행복과 보람은 영원할 것입니다.

 

 

 

 

1. <은사모>에 참석한 제자들(1969년~1972,숭의여중)

구혜정, 김경희, 김나미, 김미원, 김영주, 김은경, 배은경, 백수경, 심랑주, 오미경, 윤경원, 윤영상, 윤정희, 윤향순, 윤혜숙, 이문희, 이영란, 이원영, 이인상, 이정화, 이현주, 장유훈, 장혜숙, 정선희, 주은희, 최미숙, 홍석미 

 

2. 모임에 참석한 선생님들

김용학, 김진섭, 김희렴, 남상학, 박진자, 이만열, 이신희, 이해동,  전용흥, 주요섭, 지승일, 황칠영  

    

3. 모인 장소 

1993년 : 한남club 
1994년 : 한남club         
1995~6년 : 동보성    
1997년 : 한남club  1998~9년 : 동보성
2000년 : 설악면 주요섭님댁  전원주택   
2001년 : 설악면 주요섭님댁  전원주택     
2002년 6월 1일(토) : 한남 club    
2003년 5월 17일(토) :  양수리 별장(장유훈)
2004년 5월 25일(토) : 한독약품 지하 1층 락고
2005년 5월 21일(토) : 양수리 별장(장유훈)  / 달개비                
2006년 5월 13일(토) : 라꾸 /  청담동 용수산
2007년 6월 9일(토) : 한우리2007년 9월 21(금) : 대림정(김희렴 선생 귀국으로 번개팅)  
2008년 5월 31일(토) : 한우리2008년 10월 23 : 거구장(김희렴 선생 귀국으로 인한 번개)                            
2009년 5월 13일(수) : 압구정 오미가 

2009년 8월  6일(목) : 압구정 오미가(김희렴 선생 귀국으로 인한 번개팅)
2010년 5월 20일(목) 압구정 오미가 
2011년 4월 28일(목) : 압구정 오미가
2012년 5월 17일(목) : 압구정 오미가
2013년 5월 29일(화) : 청담동 한정식 '랑' 
2014년 5월 19일(월) : 청담동 한정식 '랑'
2015년 5월 4월 28일(화): 압구정 오미가
2016년 5월 17일(화) : 압구정 오미가

2017년 5월 23일(화) : 압구정 오미가

2018년 5월 24일(수) : 압구정 오미가

2019년 5월 31일(금) : 김영주 자택 초청

2020~21년 코로나감염병으로 모이지 못함

2022년 5월 11일(수) : 압구정 오미가

2022년 10월 14일(금) : 압구정 오미가

2023년 5월 20일(토) : 압구정 오미가


 

▲모임 사진 중에서 몇 컷
2022. 5. 11(박진자 선생님, 이영란이 빠져 있음)
2022. 5. 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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