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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고성 화암사(禾巖寺), 금강산 신선봉 아래 터잡은 고찰

by 혜강(惠江) 2008. 9. 1.

고성 화암사(禾巖寺)

금강산 신선봉 아래 터잡은 고찰 


-  산허리에 돌출한 왕관모양의 수바위(穗巖)의 위용 -



·사진 남상학

 

 


 

 * 화암사 옆의 수암에 올라 바라본 화암사 전경 *

 

 

  강원도 북단 고성에는 세 개의 절이 있다. 금강삼사(金剛三寺), 건봉사(乾鳳寺), 화암사(禾巖寺)기 그것이다. 금강삼사는 최북단 화진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고, 그보다 8㎞ 남쪽으로 건봉사가 있다. 옛날 766칸의 건봉사 가람은 6.25 전쟁 때 전소되었고, 그 동안 통제되었다가 1989년부터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그리고 건봉사의 말사(末寺)로서 창건된 화암사는 훨씬 남쪽으로 토성면 신포리 세계잼보리장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다.  

  화암사가 '금강산 화암사'로 표기되는 것은 화암사가 금강산의 남쪽 줄기에 닿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보면 화암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화암사의 기록을 전하는 사적기에도 화암사는 어김없이 '금강산 화암사'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화암사는 우리 민족의 통일기도 도량이다. 

  화암사가 창건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천 2백여 년 전 신라 혜공왕 때, 우리나라에 참회 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에 의해서이다. 진표율사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는 장안사를, 그리고 남쪽에 화암사를 창건해 금강산을 중심으로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고자 했다. 

  창건 당시의 위치는 설악산 북쪽 기슭이었다. 그 후 조선 인조 때 소실되었다가 같은 왕 때 중수, 옛 절터의 동쪽으로 이전했다. 이후로도 몇 차례의 화재를 만난 화암사는 고종 원년(1864년)에 다시 소실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위치인 수봉 옆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이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거친 화암사 경내에는 우리나라에 6그루밖에 없다는 보리수가 있으며,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 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平原深谷)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 놓은 것 같다. 

   또 절 주변에 수려한 계곡도 거느리고 있다. 설악산의 한 줄기인 신선봉(1,204m)에서 발원한 화암사 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청아한 분위기의 골짜기다.   

  화암사 입구에 신비스럽게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는 수바위, 즉 수암(穗巖)이다. 커다란 바위가 산꼭대기에 얹힌 모양은 아무리 봐도 낯설고 위대하다.  화암사 남쪽 3백m 지점, 신성봉 산허리에 돌출한 왕관모양의 바위 정상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웅덩이가 있어 신라 때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화암사(禾巖寺)라는 특이한 이름의 유래가 된 것도 이 수바위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그 전설은 이렇다. 

  “옛날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스님들이 시주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이 절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동시에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알려주면서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세 번을 흔들라고 했더니 두 사람 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객승이 이 이야기를 듣고 욕심을 내어 쌀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수없이 흔드는 바람에 쌀 보시는 끊어졌다. 그리하여 그 후부터 '벼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써서 화암사(禾巖寺)라 쓰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59년 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사 조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고 적었다.

  화암사는 정조 때 왕의 원당으로도 유명한 절이다. 도한 스님께서 정조 18년에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3.7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까지 이르러 그 경이함에 정조는 도한스님을 궁궐로 모셔와 정조의 친필 병풍을 하사 하였다 한다.

    경내에는 난야원(蘭若院)이란 전통찻집이 있다. 고풍스런 액자와 다기(茶器)로 가득찬 난야원은 먼곳에서 찾아온 사람이 숨을 돌리며 풍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창밖으로 산꼭대기에 얹인 거대한 수암의 모습이 선뜻 다가온다.  송화밀수라는 전통차를 권하여 청했더니, 삶은 감자와 함께 차가 나왔다.  송화가루에 벌꿀을 배합한 것이라 한 모금 마셨더니 송화가루 맛과 냄새가 확 풍긴다.  삶은 감자는 어찌 그리 맛 있던지~


  난야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수바위에 오르기로 했다. 수바위의 전설이 젓힌 낡은 표지판 뒤로 가파른 산길을 잠시 오르면 바로 암반이다. 이 산허리에 이토록 엄청난 암반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롭다. 이곳 수바위는 아들을 점지 해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신혼부부들의 중요한 참배처이기도 하다.


  올려다 보니 말 그대로 육중한 바위덩어리에서 샘물이 흐른다. 암반 사이로 정상에 오르고 싶었으나 강한 바람이 불어와 포기했다. 눈 아래 화암사 전경이 들어오고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울산바위와 고성 앞바다가 펼쳐진다.  화암사 인근의 신평벌은 91년 8월, 제17회 세계 잼버리 대회가 열린 곳으로서 여름철 야영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곳 화암사는 교통편이 없어 자가용만 가능하다. 신평리 세계잼보리장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다. 가는 길은 대명콘도 기점에서 잼버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바위가 보인다. 옛 미시령 길을 넘어서 만날 수 있거나 속초 시내에서 대명콘도 방향으로 들어가도 가능하다.

 

 

 

* 화암사에서 바라본 수암

 

 

*수암에 오르려면 암벽을 올라야 한다. 수암의 이모저모

 

* 수암에 올라  바라본 울산바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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