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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설악산 12선녀탕 르포

by 혜강(惠江) 2008. 8. 25.

설악산 12선녀탕 르포

12선녀탕계곡~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 15km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 

 

 

 

▲ 12선녀탕계곡의 암반 계류 옆을 걸어보고 있는 취재진. 최근 며칠 내린 비 덕분에 물줄기가 굵다.

 

 

 “급류에 휩쓸린 나무들, 옆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떠내려갈 것 같지요? 천만에요. 급류 위에 벌떡 서서 곤두박질을 치더라구요. 이렇게, 이렇게, 재주넘듯이 말이죠. 그렇게 한 번 넘어갈 때마다 허리가 절반씩 뚝뚝 부러지더니만 종내는 토막들이 돼서 흙탕물에 휩쓸려 사라지더라니까.”

쇠리에 살다가 장수대산장을 인수해 운영중인 김광현씨는 2년 전 7월15일 100년만의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는 당시 한계천의 살풍경을 그렇게 떠올린다.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조약돌마냥 흙탕물 급류에 떼밀려 굴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쿵, 쿠궁 하며 그 바윗돌들이 하상의 암부에 부딪칠 때마다 천둥치는 것처럼 온 계곡이 울렸다고 한다.

 

  그렇듯 엄청난 급류가 휩쓸고 간 이후 처음 가본 설악산-. 그 참혹한 광경은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한계천 양쪽 남설악의 계곡들은 크건 작건 할 것 없이 모두 허옇게 게거품을 문 듯 산사태가 밀고 내려온 토사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기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자갈 평원에서 본 황량함이 여기 한반도의 절경 설악산 자락에서 재현될 줄은 꿈에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암반계류가 흐르던 한계천은 마구 되는대로 쏟아부은 공사 현장의 자갈밭 같이 변해 있었다. 장수대 아래 계곡의 아름다웠던 송림도 훌 몰아 뽑아내버린 것처럼 소나무들이 태반은 휩쓸려 내려갔고, 건너편의 지계곡은 대수술 후 꿰맨 듯한 제방공사로 흉물스러웠다. 

설악산 북사면쪽은 얼핏 보기엔 그나마 좀 나았지만 골병들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12선녀탕 계곡은 2006년 수해 이후 이태동안 출입금지되다가 올해 5월16일에야 등산로 보수작업이 끝나며 재개방되었다.

그간 이 절경 계곡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조바심 산행’은 다행히도 안도 속에 끝났다. 이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식구 교통사고로 다리 부러져도 ‘그나마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세월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솜씨 좋은 장인이 평생 두고 쓸고 다듬어도 저렇듯 매끈하고 매혹적인 굴곡면이 나올 수 있을까 싶게 감탄스러웠던, 12선녀탕계곡의 상징인 복숭아탕의 복숭아 모양 바위굴 속엔 미처 뱉어내지 못한 찌꺼기인양 돌덩이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하지만 큰 비가 몇 번 내리면 몇 해 가지 않아 깨끗이 청소될 것이다. 응봉폭 아래의, 대형 덤프트럭으로 실어와 쏟아버리고 간 것 같은 흙자갈 더미도 큰물이 몇 번 씻어내리면 원래의 희디흰 암반 풍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과 기대로 12선녀탕계곡을 걸었다. 

 

 

장맛비에 불어난 물줄기로 절정 풍광

 

12탕계곡이 난생 처음인 사람은 무엇이 어떻게 망가졌다는 것인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일부 구간이 산사태로 허물어지긴 했지만 다행히도 본바탕의 아름다움까지도 상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한즉, 초행자는 예상 밖의 감탄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행 중 사진기자가 12선녀탕계곡이 초행이어서 그로부터 첫경험자의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어땠을까. 천만다행히도 그는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며 이 계곡의 경치가 초행자의 눈에는 여전히 수승함을 증명했다. 

 

 

▲ 아기자기하고 깊은 산골짜기 분위기가 물씬한 12선녀탕계곡 상류부.

  

 

  20년쯤 전엔 거룻배를 타야 북천 건너 십이선녀탕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번듯한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대형 관광버스도 쉽게 드나든다. 멀리 도회지에서 온 듯, 맵시 좋은 단체 산행객들이 줄지어 버스에서 내린다. 그들을 따라 계곡 안으로 접어들었다. 12선녀탕계곡이 북천과 합류하는 물목 근처는 사태 후 도리 없었는지 사방공사를 했다. 계곡 양쪽에 가지런히 바윗돌로 축대를 쌓았다.  하류부를 지나자 곧 12선녀탕계곡 특유의 암반 풍치가 펼쳐진다. 비로소 우리는 안도했다. 마침 며칠간 이따금씩 비가 뿌린 덕에 12선녀탕계곡은 넉넉한 물줄기로 풍광이 절정이다.

 

 

▲ 긴 와폭이 흐르는 암반 지대에서 쉬고 있는 취재팀.

 

 

12선녀탕계곡은 탕수동(湯水洞)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역시 넓은 소와 탕이 많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계곡의 폭포와 그 물줄기에 암반이 패여 이루어진 소나 탕의 숫자는 일일이 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다. 노산 이은상은 8폭8탕이라 했고, 조선조의 어느 학자는 5폭10탕이라고 했다. 폭포의 길이나 탕의 크기에 대한 견해가 각각 다른 탓일 것이다. 어쨌든 거의 전 구간에서 크고 작은 폭포, 소와 탕을 연이어보게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십이선녀탕계곡은 그 아름다운 이름과 경치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 젊은이의 목숨이 사라져간 험곡이기도 하다. 폭우로 물이 급작스레 불어나는 바람에 카톨릭대학 산악부원 8명이 차례로 죽어갔다. 그러나 이미 20년도 더 된 일이다. 재작년 수해 이후 등산로 재정비를 하면서 물줄기를 건너는 곳마다 구름다리를 놓았음은 물론 과거 하상 가까이 지나야 했던 구간에도 모두 산중턱으로 높직하게 목재 데크를 설치해두었다. 1960년대에 나온 <설악산탐승인도지>란 책에 보면 ‘아차 실족하면 미끄러져 심담(深潭) 속으로 빠져 죽을 고비를 지날 때는 아실아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고 적기도 했다. 이런 표현이 지나친 엄살로 느껴질 만큼 지금의 탕수동계곡 길은 안전하다.

구름다리나 길을 따라서만 오르기가 아쉬워서 일행은 일부러 계류 옆 암반 지대로 내려서서 걸어보기도 한다. 중간의 급경사 폭포만 우회하면 거의 전 구간 이렇듯 암반만 따라 걷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계곡 여기저기엔 간혹 토막을 내서 가지런히 네모나게 쌓아올린 나무 더미들이 뵌다. 이는 이태 전 수해 때 뿌리가 상대적으로 얕아서 그만 쓰러져 누운 전나무들을 처리한 것으로, 이렇게 잘라 두지 않으면 폭우 때 댐처럼 물을 가두었다가 일시에 터져나가며 수해를 더 크게 입게 된다고 한다. 큰물이 다시 지면 이들은 모두 하류로 떠내려가거나, 아니면 썩어 거름이 될 것이다. 

 

 

탕수동계곡의 상징 응봉폭과 복숭아탕

 

 

  계곡 안으로 접어든 지 1시간10여 분 지나 남쪽으로 크게 굽돌아든 직후 저 앞으로 굵고 힘찬 폭포 줄기가 바라뵌다. 복숭아탕폭포와 더불어 12선녀탕계곡의 2대 상징이라 할 응봉폭포다. 만약 이름이 없었다면 누구든 당장 그럴듯한 이름 하나를 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높이나 폭이 그렇게 유다르다. 다만 이태 전 물난리 때 앞쪽에 쌓인 흙자갈 더미가 하반부를 가리고 있어 아쉽다. 길쭉하고 단단한 고무 발판을 덧댄 목재 데크가 하류쪽보다 한결 자주 나타나더니 종내는 아예 전 구간에 이런 데크를 설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어지간히 물이 불어나도 산행에 아무 위험이 없을 것 같다.

 

▲ 12선녀탕계곡의 계류를 건너는 곳마다 설치된 구름다리.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스무번 넘게 계곡을 건너야 하며 그런 곳마다엔 목교가 가설돼 있다.

 

 

 귀가 멍멍해지도록 세찬 굉음과 더불어 쏟아져내리는 폭포 줄기, 청동빛 소와 담, 넓고 흰 암반 위를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흐르는 와폭 등이 연이어 나타나며, 그때마다 발길은 족쇄를 채운 듯 지체되곤 한다. 수십 명이라도 앉을 수 있어 뵈는 넓고 평평한 암반지대 가운데로 청류가 흐르는 절경지에서 또한 일행은 도리 없이 걸음을 멈춘다. 물길을 따라 먹물을 들이기라도 한 듯 길고 검은 띠가 흰 화강암반 가운데를 따라 형성돼 있기도 하다. 탕수동계곡은 이를테면 물과 바위가 어울려 빚어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 농축돼 있는 계곡이다.

 

 

▲ 복숭아탕(용탕)폭포. 복숭아 모양의 굴과 그 위를 흐르는 물줄기로 기경을 이룬 폭포다. 이 폭포를 전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십이선녀탕계곡 약 3분의 2쯤 되는 곳의 명소 복숭아탕과 그 위로 쏟아지는 폭포에서 탕수동계곡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흡사 커다란 복숭아로 찍어낸 듯한 둥근 항아리 형상의 바위 구렁 위로 굵은 폭포 물줄기가 주렴처럼 펼쳐져 흐른다. 조물주의 의도적인 조탁을 가정하지 않고서야 저런 풍경의 탄생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새로이 설치한 목재 데크 길 중간엔 과거와 달리 절경 복숭아탕을 정면에서 빤히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시설까지 갖추어 두었다.

길은 복숭아탕을 오른쪽으로 두고 빙 돌아 오르며 그 위의 또다른 폭포인 두문폭포까지도 훤히 드러내 보여준다. 십이선녀탕의 승경은 사실상 이 두문폭포로 마감된다. 그 이후 갑자기 십이선녀탕 계곡은 얼굴을 바꾼다. 넓고 큰 암반, 굵은 폭포와 짙푸른 소로 연출되던 웅장미는 간곳없고, 갑자기 이름 없는 강원도 심산유곡의 한 귀퉁이인 듯 이끼 푸르른 바윗덩이들 사이의 맑은 계류 풍경으로 정겨워진다. 여기서부터는 계류를 건너는 목교도 하류쪽처럼 크고 길지 않다. 서너 토막 덧붙여 걸쳐둔 간이교다.  

 

▲ 12탕계곡 중간의 천정이 진 바위굴. 비가 올 때 잠시 비를 그을만하다.

 

 

 요란스럽던 폭포 소리도 이윽고 잦아들고 심산의 고요가 안개와 더불어 골짜기에 스민다. 그렇지. 이미 해발 900m. 대관령 고갯마루보다 더 높은 곳이다. 안개가 스멀거리고 계류에선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계류 옆을 따르다가 작은 목교로 훌쩍 계류를 타고 넘기를 열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계곡은 점차 좁고 깊어져, 이윽고 조용히 물소리가 잦아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명확히, 우리가 계곡을 떠나고 있음을 알았다. 골 상류부엔 엄청난 주목도 엄청난 주목이 안개 속에서 다가선다. 이미 산이 깊은데, 바윗돌들을 평평한 면이 위로 가게끔 정성들여 다듬은 등산로는 여전하다. 그 길을 따라,  물소리 대신 능선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다가온다. 흡사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 같기도 하다. 계곡에서 물소리를 듣고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바람소리를 물소리로 착각했을지 모른다.

 

 

▲ 12선녀탕계곡 하류부의 절경지인 응봉폭포. 놀며 쉬며 가다보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버리는 절경 계곡이다.

 

 

  이윽고 우리는 ‘능선 끝 쉼터’에 올라섰다. 안산과 응봉, 그리고 대승령쪽의 서북릉까지 큰 능선 세 가닥이 갈라지는 갈림점이다. 달리 말하면 12선녀탕계곡의 동쪽 울타리 끝이다. 한겨울엔 간혹 허리가 넘게 깊은 눈이 쌓이는 곳이다. 그러나 여기가 대승령은 아니다. 이미 해발 1,300m가 넘은 곳이다. 안개바람이 습하고 차가워서 우리는 얇은 재킷을 입었다. 12선녀탕계곡 동쪽 울타리 능선을 따라 300m쯤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비로소 길은 서북릉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 있지만 줄을 띄우고 ‘출입금지’팻말을 매달아두었다(좌표 N 38 08 20.3 E 128 20 11.9).

  간혹 급격히 꺾이기도 하는 내리막 능선길을 따라 1km 남짓 걸은 뒤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드는가 싶으면 이내 훤한 봉우리 위에 선다. 여기가 대승령. 영마루는 잘록이어야 하는데 이곳 산정을 대승‘령’이라 했으니 잘못 쓴 말이다. 장수대~흑선동계곡 간의 중간 고갯마루와 같은 지점이라 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흑선동쪽 길은 ‘천연보호구역’간판이 가로막고 있으니 오후 2시를 넘긴 시각에 선택 가능한 길은 장수대쪽 길뿐이다. 이 장수대쪽 길 중간에 대승폭포라는 천하절승이 없었다면 하산길은 한없이 지루할 뻔했다. 지능선을 따르던 길은 곧 완경사의 평평하고 아늑한 분지 같은 골짜기 안으로 접어든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여러 그루 선 계류가 쉼터는 시원스런 공간에 고요함이 감도는 멋진 휴식처다. 구름다리로 골짜기를 건너, 역시 이태 전의 폭우로 흉해진 계곡 옆을 따라 내려가노라니 오른쪽 숲 저편으로부터 세찬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대승폭포다.

 

 

▲ 전망대에서 대승폭포를 바라보는 취재팀.

 

 

  사람 없는 탐방안내소 앞을 지나자마자 곧 대승폭포의 정면으로 돌출한 바위능선 위 조망대다. 둥글고 깊은 확의 저편에 대승폭이 있다면 조망대는 그 맞은편 조금 낮은 울에 위치했다. 일부러 만들려 해도 불가능했을 천연의 명승 조망대에 서자 희고 기나긴 대승폭포 물줄기가 맨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전신을 드러낸다. 검은 바위벽 앞 허공을 대승폭포는 물줄기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풀어 내리고 있다. 요 며칠 새 내린 비로 물줄기는 90m 아래 바닥까지, 한 뼘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이렇듯 완전한 모습을 갖춘 대승폭을 보기는 처음이다.

 

 

 

 

  대승폭포 조망대에서 보면 저 아래 장수대까지 사람이 비집고 내려갈 틈이나 있을까 싶게 가파르다. 그래서 조망도 그만큼 좋은 목재 데크가 급경사로 장수대 직전 계곡에 내려설 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장수대분소 앞 널찍한 도로변으로 나서서 뒤돌아보니 붉은 기암벽이 서넛 산록 중턱을 장식하고 섰다. 제아무리 큰 비가 내린들 저 아름답고도 거대한 암벽이 스러질 리는 없을 것이다.

 

  12선녀탕계곡을 거슬러 대승령에 오른 다음 대승폭포로 하여 장수대로 내려서는 길은 설악산 서부 지역의 대표적 탐승로다. 남교리~12선녀탕계곡~대승령 약 11km(공단 안내판엔 8.6km라 표기했으나 도상 거리만도 10km쯤 된다), 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 4km 합하여 약 15km쯤 된다. 길이 자연상태 그대로였던 과거엔 하루로 빠듯했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서 5~6시간만에 넘기도 한다. 거의 전구간이 목재 데크와 잘 정비된 돌길로 이어진다. 경치 좋은 데마다 쉬며 한껏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 싶다면 7~8시간 정도 잡도록 한다.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다만 대승령에서 자칫 서북릉으로 잘못 들어서지 않도록 조심한다.

 

  산행은 남교리→장수대, 혹은 장수대→남교리 어느 방향으로 해도 좋다. 실제 산행도 취향에 따라 반반 정도 나뉘는 것 같다. 다만 장수대→대승령 오름길은 급경사로 다리 힘이 많이 들어, 산행 초심자는 하산길로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복숭아탕의 폭포 밑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행. 이태 전 폭우로 탕 속에 자갈이 쓸려와 가득 쌓여버렸다.

 

 

  과거엔 능선에 올라선 다음 서쪽의 안산으로 하여 다시 12선녀탕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길은 공단이 현재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 지역의 등산로는 여러 점에서 기형적이다. 12탕 입구에서 대승령~귀청을 거쳐 중청까지 가야만 비로소 백담사쪽 하산이 가능하다. 한편, 산악 마라톤 선수쯤 되는 체력이 아니면 12탕 입구에서 중청 근처 대피소까지는 도저히 하루만에 가기 어려운 먼 거리다. 결국 12탕과 백담계곡을 아우르는 산행은 사실상 막아버렸다는 뜻이다.

과거엔 흑선동계곡 길이 열려 있어서 대승령에서 백담대피소까지 곧장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흑선동계곡 길을 열어두면 백담사나 수렴동대피소를 기점으로 삼은 다양한 등산로 구성이 또한 가능하다. 이렇듯 고효율인 흑선동계곡 길을 공단은 이미 10년 이상 틀어막고 있다. 등산객 분산효과를 감안해서라도 열어둘 만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설악산관리소는 통제를 계속하고 있다.

 

교통

자가용 차량을 가져갈 경우 장수대로 하산한 이후 남교리에 세워둔 차를 가지러 가려면 원통의 택시를 불러야 한다. 원통택시부  033-462-5442 . 원통콜택시  033-461-7879 , 0479. 그외 개인택시도 많다.


아니면 투숙할 예정인 숙박업소에 미리 도움을 청해둔다. 장수대산장의 경우는 연료비조로 10,000원 정도 받고 남교리~장수대 간을 승용차로 태워다준다(4명 한도).


차량 문제를 감안, 소수인 경우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동서울이나 상봉터미널에서 남교리로 가 산행 후 장수대에서 서울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남교리  동서울터미널에서 남교리 경유, 간성ㆍ속초행 버스가 1일 7회(06:15, 07:30, 09:40, 12:00, 14:30, 15:40, 18:40) 운행 / 상봉터미널에서 1일 4회(06:05, 10:10, 11:30, 14:10) 운행. 3시간40분 소요
이외에 동서울에서 백담사 입구행 버스가 1일 4회(08:20, 10:30, 13:30, 16:30) 더 있다.

남교리→서울  1일 6회 운행. 동서울터미널행 07:10, 상봉터미널행 10:00, 13:30, 14:25, 15:25, 17:30. 요금 16,000원. 금강고속 남교리 영업소 전화  033-462-1800 .
백담사 입구 외가평(남교리에서 4km)에서 동서울ㆍ상봉동행 1일 14회(07:10~19:30) 운행. 이중 5회는 상봉터미널행. 백담사 입구 시외버스 매표소 전화  033-462-5817 .

 

 

▲ 최근 리모델링한 장수대가든·산장. 아래 계곡의 송림 분위기도 좋다.

 

 

서울→장수대  동서울터미널에서 장수대·오색 경유 속초행 버스 1일 7회(06:30, 08:30, 09:20, 10:00, 11:30, 14:00, 18:05) 운행 / 상봉터미널에서 1일 6회(06:25, 08:20, 10:00, 12:40, 16:20, 18:00) 운행. 4시간 소요, 요금 17,300원.

장수대→서울  동서울·상봉터미널행 1일 13회(07:40, 08:45, 09:10, 09:45, 11:25, 12:30, 13:45, 15:30, 17:05, 17:20, 17:35, 19:05, 19:15) 운행. 금강고속 속초터미널 전화  033-633-2328 .

 

 

숙박 (지역번호 033)

12선녀탕계곡 입구의 남교리 민박촌엔 민박집과 음식점이 여럿 있다. 강풍경파크는 콘도식 민박으로 북천 조망이 좋은 방들을 가지고 있다(462-9225). 다리 건너 12선녀탕계곡 입구 바로 앞에는 등나무그늘이 시원한 탁자를 갖춘 음식점인 12선녀탕쉼터가 있다(462-7135). 이 집에서 관리하는 바로 옆의 송림야영장이 분위기가 괜찮다. 야영비 5,000원, 주차비 2,000원. 화장실과 샤워실 사용이 가능하다.


그외 12선녀탕민박 462-5836, 산골가든민박 462-5838, 큰곰산장 462-3350, 오동나무토종닭집 462-5901 등이 있다.  남교리에서 백담사쪽으로 2km쯤 가서 우회전, 다리를 건너면 구만동 마을로서, 이 마을의 강변을 따라 사설 야영장들이 있다. 차량 바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인 한편 바로 앞은 맑은 물이 흐르는 북천 개울이어서 한여름엔 인기다. 이용료 하루 20,000원.  7월20일~8월 15일 약 한 달간만 운영한다. 구만동쉼터야영장 462-5832, 백담야영장 462-2772.

구만동 다리 건너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백담오토캠프촌이 있다(전화 462-9957). 차에 달고 다니는 캠퍼밴(에어컨 구비)을 수십 대 송림 속에 배치, 대여한다. 하루 10만 원.

백담오토캠프촌 들어가는 길목에 말끔한 펜션들이 있다. 강 바로 옆이고 국도는 강 건너라 조용한 편이다. 선녀랑백담이랑펜션  01..., 맑은내펜션 462-6640, 솔방울펜션 463-6114. 12선녀탕계곡 산행을 할 경우는 4km 거리인 백담사 입구 용대리 외가평의 민박집과 음식점을 이용하는 것이 외려 나을지 모른다. 이 일대엔 민박집과 음식점, 매점 등이 밀집해 있다. 인제군청 홈페이지의 관광문화>관광안내정보(용대2리)를 클릭하면 업소들의 정보를 볼 수 있다.

 

▲ 한계 삼거리에 있는 24시 찜질방. 한여름에 이곳서 머물며 주변 계곡을 오가는 알뜰파도 많다.

 

 

  한계천변 쇠리 민박촌은 7월 초순 현재 마을로 드는 교량 공사 중으로, 피서철 이전에 완공할 예정이다. 이 전통 깊은 민박촌은 수해로 옛집들의 옛맛은 사라졌지만 대신 새로이 지은 깔끔한 펜션형 민박집으로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한계령(장수대)쪽 44번 국도와 진부령(12선녀탕)쪽 46번 국도가 만나는 곳인 한계 삼거리에 이태 전 24시간 찜질방이 새로 생겼다. 약한 탄산천온천이며 모텔을 겸하고 있다.

 장수대가든ㆍ산장  장수대에 유일한 숙박업소로 석 달 전 이 지역 주민인 김광현씨가 인수, 말끔히 새 단장을 했다. 지상층의 경우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바비큐 틀을 갖춘 한편 전망도 좋은 널찍한 베란다가 매력적이다. 처마가 길게 내뻗어서 비가 내릴 때도 이용 가능하다. 전화 463-5292. 

 

 

 

<출처> 2008. 8 / 월간산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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