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부연동 오대산 숲길을 갇다
사람 없는 숲길 이름 없는 폭포 돌아가기 싫구나
평창·강릉 = 글·사진 박경일기자
▲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부연동에서 출발해 물길을 따라 상류 쪽으로 2시간쯤 올라가다 만난 쌍폭포. 짙고 어두운 숲에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야말로 적요한 산길입니다. 숲길을 따라오는 것은 그저 청아한 물소리뿐입니다. 가끔 길섶의 야생화 꽃잎 사이로 토종 꿀벌들이 잉잉거리는 소리만 뒤섞입니다. 오지 중의 오지라는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부연동. 오대산 북쪽 두로봉 골짜기에 자리잡은 그 마을에서 깊은 계곡으로 더 들어선 길입니다. 이즈음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지만, 그래봐야 한여름에 잠깐 몰려드는 피서객들뿐. 부연동만 해도 첩첩산중의 오지마을로 꼽히는 판이니, 그곳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선 이 길에 사람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부연동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다보면 최고의 트레킹 코스가 있습니다. 인적 없는 그 계곡길은 마치 ‘비밀의 정원’과도 같습니다. 아름드리 낙엽송이 앞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구간이 있는가 하면, 45도 경사면의 허리에 한 뼘 정도 다져놓은 길을 따라 계곡을 내려다보며 가는 길도 있습니다. 지난 가을의 낙엽이 남아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계곡도 있고, 축축한 밀림처럼 양치식물인 관중이 둥글고 화려하게 잎을 펼치고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이 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습니다. 제법 길 모양새가 뚜렷한 코스도 있지만, 길은 자주 끊깁니다. 멀쩡하던 길이 한순간 사라져버리면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끊긴 길에 서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자면 어디엔가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길은 계곡물 건너편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끊어진 길 위쪽에 다른 길이 나있기도 합니다.
그 길을 따라 두 시간쯤 들어갔을까요. 깊은 골에서 쌍폭포를 만났습니다. 숲사이에 비밀처럼 묻혀있는 폭포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쏟아지는 물소리가 어찌나 시원하던지 탄산수 같은 청량감이 온몸에 번졌습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폭포가 이름조차 갖지 못한 것은 이곳이 얼마나 오지이며, 그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아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 길에 이렇듯 아름다운 폭포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길을 되돌아 나와 만난 마을 주민들도 숲길에서 만난 폭포 얘기를 하자 그제서야 생각난 듯이 쌍폭포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민 이해운(57)씨는 “마을 주민들도 거기까지는 가본 이가 별로 없다”며 “폭포에 이름이 없으니 마땅한 이름이나 지어주고 가라”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5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이렇게 또 보냅니다. 돌아보니 이 달은 짙은 숲과 아름다운 꽃을 찾아다닌 날들이었습니다. 사실 5월만큼 자연이 생명으로 가득차 아름다운 때가 또 있겠습니까. 부연동 계곡길도 그랬습니다. 떡갈나무며 물푸레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연초록 잎을 틔워올리며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그 그늘 아래는 야생화들이 화려한 꽃을 피어냈습니다.
번잡스러운 도회의 생활에서 오지마을 부연동의 숲길만큼 위안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그 비밀스러운 숲에 들어 서둘 것 없이 계곡을 따라 내킬 때까지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숲에 피어난 야생화를 들여다보고, 밤이면 개구리 소리로 가득한 산골마을에서 5월의 밤하늘 가득 쏟아질 듯 떠있는 별자리를 바라보는 경험. 이 정도만으로도 온몸을 싱싱한 기운으로 가득 채울 수 있으실 겁니다.
오르내리는 흙길 지나
가장 깊은 계곡을 거쳐 ‘비밀의 정원’을 만나다
▲ 강릉 부연동 오대산 마지막 계곡에 숨어있는 ‘비밀의 정원’. 길 옆의 벌깨덩굴이며 애기똥풀 등이 지천(사진 위)이고, 우뚝우뚝 솟은 낙엽송이 울창하다(사진 아래).
# 앞도 뒤도 같은 길 ‘전후치’
북적거리던 행락객과 차량들이 사라진 것은, 영동고속도로에서 내려서 오대산 월정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꺾어져 진고개 쪽으로 접어들 때부터였다. 진고개를 오르는 길에서 마주친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고개 정상의 휴게소도 문을 닫아 걸었고, 그 넓은 주차장은 황량하게 비어 있었다. 평일인 탓도 있었겠지만, 그 긴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마주친 차량이래야 고작 다섯대에 불과했다.
진고개를 넘는 길이 이럴진대, 이 길에서 또다시 비포장 국도의 고갯길 전후치를 넘어야 도착하는 부연동은 얼마나 더 오지일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청정한 자연을 찾아나선 도회지 사람들에게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던 부연동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였다. 산비탈에 옥수수며 감자를 심어서 가끔씩 민가로 내려오는 산짐승들과 나눠 먹었던 곳. 그러나 최근 2~3년 동안 펜션이 들어서고, 농촌체험마을이 조성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 산중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여름 피서철의 1~2주뿐.
부연동의 나머지 시간들은 여전히 정적 속에 잠겨 있다. 부연동이 오지로 꼽혔던 것은 비포장 고갯길인 전후치 때문이다. 전후치(前後峙)란 우뚝 선 고개를 오르고 내리는, 앞뒤의 길이 똑같은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군데군데 시멘트포장이 되긴 했지만 까마득한 벼랑의 흙길을 따라 급경사를 오르고, 또 그 만큼의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 고개를 다 내려서면 온통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은 마을, 부연동이다. 펜션과 통나무집이 들어서면서 옛 산간마을의 정취를 대부분 잃고 말았지만,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곳은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멧돼지가 어슬렁거렸다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 가장 깊은 계곡 안골로
부연동 마을 앞에는 맑은 계류가 흘러간다. 두로봉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들이 이쪽으로 모여들어 남대천으로 이어진다. 대개 여름 휴가철에 부연동을 찾는 사람들은 부연동에서 하류쪽 가마소까지의 계곡 근처에 여장을 푼다. 그러나 아름다운 숲과 꽃들이 만발해 이른바 ‘비밀의 정원’으로 불리는 숲길은 물길을 따라 더 올라가야 하는 상류 쪽에 있다. 오지마을에서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다.
부연동 상류 쪽에서 계곡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부연동 주민 이해운(57)씨에게 길을 물었다. 이씨는 물길의 첫째 갈림길이 신배령으로 가는 ‘연골’이고, 두번째 갈림길은 칙소폭포와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물푸레골’이라고 했다. 이 두 곳의 계곡길은 두로봉 쪽을 오르려는 모험적인 등산객들이 가끔씩 찾아드는 곳이다. 이 두 곳의 계곡길도 아름답긴 하지만, 짧은 물길을 지나서 이내 산 능선으로 숨가쁘게 치고 올라가는 등산로라 산책을 하듯 가볍게 다녀오는 트레킹으로는 적합지 않다.
‘비밀의 정원’은 마지막 계곡길에 숨어 있다. 누구는‘안골’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느무골’이라고 했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부연동 사람들조차 잘 발을 들이지 않은 깊은 골짜기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인 곳이다. 나뭇가지를 쥐고 흙마당에 계곡의 지도를 솜씨있게 그려내던 이씨는 “그 계곡의 끝에 멋진 쌍폭포가 있다”고 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폭포에는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을 끝에서 계곡위의 징검다리를 건너 낙엽송 숲으로 들자 그 길이 시작됐다. 우뚝 솟아오른 낙엽송들은 앞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낙엽송은 위압적인 크기뿐만 아니라 더할 나위없이 건강한 모습이어서 더 감동적이다. 길 옆으로는 벌깨덩굴이며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마치 종처럼 분홍색 꽃이 줄줄이 매달리는 금낭화도 곳곳에서 환하게 피어있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겠다.
# 길의 끝에서 만난 폭포
길은 제법 뚜렷하다가도 곧 흐려졌고, 그때마다 두리번거리며 길의 자취를 찾아야 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길을 찾다가 계곡을 건너면 거짓말처럼 그곳에 길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초행에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어차피 계곡의 상류로 이어진 길이니 물길만 따라가면 됐다. 쉴새없이 내려오는 청정한 물이 길을 가르쳐주는 셈이었다. 물길만 따라가면 되니, 길을 잃을 일도 아예 없었다. 계곡 물은 맑고 찼다. 계곡으로 내려서 땀을 식히려 손에 물을 담아 이마를 두드렸다가 차가운 기운에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계곡을 따라가는 숲길은 촉촉했다. 군데군데 진초록 이끼가 핀 습지들도 있었다. 그런 곳마다 야생화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이듯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꽃잎에는 또르르 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계곡을 들어선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낙엽이 푹푹 빠지는 숲길을 가는데, 별안간 물소리가 커진다. 폭포다. 오른쪽 숲 사이로 두 개의 물줄기로 갈라진 쌍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둑어둑한 숲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는 가히 비경이라 할 만했다. 쌍폭포 중 하나는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내고, 다른 한쪽은 부챗살처럼 물살을 유려하게 펼쳐내고 있었다. 폭포가 만들어낸 습기가 숲을 적시면서 주위는 진녹색 이끼들로 가득했다. 바위에 오래 걸터앉아서 물줄기와 그 물줄기를 쏟아내는 상류 쪽의 더 깊은 숲을 바라보았다.
폭포 옆으로 난 길은 흐려지고 너덜바위가 앞을 막았다. 지도를 펼쳐보니 이쪽에서 더 차고 올라가면 두로봉과 동대산 사이의 능선인 신선목이에 가 닿으리라. 그러나 길은 험하다. 가벼운 차림의 트레킹이라면 이쯤에서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 울창한 숲사이로 손바닥만한 하늘에는 서서히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부연동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봉우리에 걸쳐서 넘어가는 해가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만들었다. 오후 나절의 황금빛 햇살에 숲길은 더 황홀하게 빛났다. 계곡을 다 내려와 등산화를 벗고 차디찬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수면 위에 짙게 드리워진 신록. 더 할 수 없이 평화로운 오후다.
# 부연동서 가볼만한 곳들
부연동은 펜션과 통나무집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옛 산골마을의 정취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저잣거리가 된 것도 아니다. 이국적인 펜션과 통나무집이 들어서긴 했지만, 여름철에나 사람들이 몰려들 뿐 이즈음에는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다. 과거에 부연동이 ‘소담한 정취의 오지’였다면, 지금은 ‘빈 집의 황량한 오지’가 됐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전히 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부연동을 더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담한 분교다. 비록 지난해 가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1명의 학생이 도회지로 떠나면서 폐교가 되긴 했지만, 분교는 잘 관리되고 있다. 뛰노는 아이들은 사라졌고, 주인 잃은 철봉이며 미끄럼틀만이 운동장을 지키고 있지만, 금시라도 종을 치면 아이들이 몰려올 것 같다.
부연동 마을 앞 계곡의 하류쪽 폭포 아래 가마솥(釜) 모양의 움푹 팬 연못(淵)인 가마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소에서 부연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가마소로 가는 반대쪽 골짜기의 부연약수터도 찾아가볼 만하다. 약수터에는 쇳맛이 도는 탄산수가 나는데, 방동약수나 오색약수만큼 맛이 강하진 않지만, 청량한 맛이 일품이다. 부연동에는 또 수령 500년이 넘는 거대한 금강송이 있다. 이름하여 ‘제왕송’이다.
붉은 색 수피에다 25m가 넘는 키의 소나무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부연동에서는 하루쯤 묵으면서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쏟아질 듯 떠있는 별을 안아보는 것도 좋겠다. 밤이 깊어지면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는 더욱 커지고, 그 물소리에 유순한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겹쳐져서 봄 밤을 정취로 가득 메운다. 청정한 숲길을 걷는 일로 몸을 씻고,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에 눈을 씻고, 맑은 계곡물 소리로 귀를 청량하게 씻어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오지마을, 부연동이다.
■ 어떻게 가나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평창 진부나들목에서 나가서 오대산 월정사로 향하는 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선다. 월정사 못가서 삼거리에서 진고개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진고개를 넘어 송천약수 지나 내려가 59번 국도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한다. 부연동이란 표지판이 뚜렷하지만, 좌회전해 들어서는 길이 워낙 좁아서 도저히 국도로 믿기 어려울 정도. 이런 연유로 자칫 들어서는 길을 놓치기 쉬우니 잘 살펴야 한다. 이곳에서 부연동까지는 6㎞ 남짓. 시멘트길은 곧 끝나고 가파른 비포장길을 따라 전후치를 넘는다.
정상까지는 비포장도로가 많지만, 정상을 넘어서면 마을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깔렸다. 전후치를 넘는 길은 깎아지른 벼랑인 데다 가드레일도 없어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쌍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들어서려면 전후치를 다 내려와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넘어 왼쪽 길로 접어든 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물길을 따라 진입해야 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까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까=최근 부연동에는 펜션과 콘도형 민박집들이 새로 들어섰다. 통나무집 부연펜션(033-662-9293)은 근래에 새로 지은 것이어서 깔끔하다. 숙박비는 평일이나 주말 모두 5만원선. 여러 가족이 함께 묵을 수 있는 독채는 30만원.
부연 휴양촌 민박(033-661-2730)은 마을에서 유일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토종닭 백숙이나 산채백반 등의 음식도 주문할 수 있다. 황토펜션(033-661-9949)에서는 전통된장 맛을 볼 수 있다. 민박집에서는 음식을 내오기도 하지만, 마을 안에 음식만 내오는 식당은 없다. 강릉 쪽으로 나가거나 전후치를 넘어 되돌아 나오면 국도변에 다양한 음식을 내오는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있다. 강릉 쪽으로 나섰다면 경포호 부근 서지초가뜰(033-646-4430)의 강릉식 전통한정식을 권할 만하다.
<출처> 2008-05-2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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