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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상처 위에 피어난 설악, 계곡길 새로 놓인 흘림골·주전골

by 혜강(惠江) 2008. 5. 7.

남설악 주전골

상처 위에 피어난 설악

계곡길 새로 놓인 흘림골·주전골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흘림골 탐방로가 복구되면서 새로 놓인 등선대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곳에 서면 설악산의 서북주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점봉산자락의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저 아래로 암봉들 사이에 새로놓인 나무테크 탐방로가 내려다보인다.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단풍나무는 붉게 물드는 가을이 단연 최고겠지요. 하지만 연초록 새 잎이 달릴 때의 단풍나무도 그에 못지 않답니다. 화려하기로 따지자면 가을만큼은 못하겠지만, 빛을 마주보고 바라보는 봄날의 단풍잎 신록은 한 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봄날 연초록 등불을 환하게 켜놓은 것 같은 황홀한 단풍잎의 신록. 그건 아는 사람만 알지요.

  이 땅에서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남설악의 주전골. 그러나 단풍 신록만큼은 이 땅을 통틀어 이곳이 으뜸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골짜기에 들어 뾰로롱거리는 새소리와 물소리를 따라 새로 돋은 잎 무성한 단풍나무 숲을 걷다보면 온몸에 연초록 빛깔이 묻어날 것 같답니다. 주전골 위쪽으로 이어진 흘림골은 또 어떻구요. 등선대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우뚝 솟은 기암괴석의 만물상과 칠형제봉을 둘러친 흘림골의 비경은, 그 앞에 절로 무릎을 꿇고 싶게 만든답니다. 자연이 빚은 장대한 아름다움에 압도돼 그만 ‘항복선언’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한계령길에서 빠져나와 흘림골과 주전골을 거쳐서 오색약수 쪽으로 내려서는 길. 봄이 꽉 찬 이즈음에 그 길을 찾았던 것은, 보석같이 빛나는 단풍나무 신록을 만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지난 2006년과 2007년, 무지막지한 폭우로 만신창이가 됐던 남설악의 계곡길이 다시 놓아졌다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6년 남설악의 계곡을 휩쓸고 지나갔던 수해는 참으로 끔찍했지요. 시간당 강우량이 100㎜가 넘는 기록적인 비가 며칠동안 퍼부었고, 계곡에는 집채보다 더 큰 바위들이 으르렁거리며 굴러 내려왔습니다. 굴러 내려온 바위 쪽 아름다운 소(沼)들을 다 메워버려 물길까지 다 바꿔버리고 말았습니다. 흘림골과 주전골 등산로의 쇠난간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나뒹굴었고, 뿌리째 뽑혀 떠내려온 나무들이 계곡 이곳저곳에 흉물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자연휴식년제로 지난 1985년 이래 무려 20년동안 출입이 통제됐다가, 2004년 가을에야 문을 열었던 흘림골은 그날의 수해로 다시 문을 닫아 걸고 말았습니다. 어디 흘림골 뿐이었겠습니까. 한계령 길이 곳곳에서 끊기고, 밀어닥친 물폭탄에 마을까지 깜쪽같이 쓸려간 마당에 주전골이라고 무사할 리는 없었지요.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흘러 다 흐트러졌던 흘림골과 주전골의 길들이 새로 놓였습니다. 떠내려온 나무를 걷어내고, 무너진 철계단을 다시 세워서 번듯한 탐방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2년전 수해 직후 주전골을 찾았을 때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온통 망가졌던 계곡과 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마치 마술과도 같은 일입니다. 비록 오르막 구간은 죄다 나무와 철제로 된 데크 계단길이 돼버렸고, 나머지 길도 전체 구간 중 80%이상이 잘라낸 폐타이어를 나무 테크에 붙인 그런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요.

  길이 새로 났다고는 해도, 아직 그 골짜기에서는 수해의 생채기가 남아있고, 물길도 아직 제자리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상처를 놀라울만큼 빨리 치유해가고 있었습니다. 숲은 더욱 짙어가고 있고, 수해 때 굴러온 돌들도 이제 이끼가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흘림골 암봉의 빼어난 모습이나 주전골 단풍숲의 신록의 여전함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렇게 자연은 햇살과 바람, 그리고 나무들로 상처를 너끈히 치유해내고 있습니다.

  아 참! 대청봉과 소청봉, 끝청은 물론이고 설악의 서북주릉과 남설악의 암봉들을 내려다보는 명소로 꼽히던 등선대에 특급 전망대가 생겼다는 사실도 전해야겠네요. 주전골이 끝나는 오색마을 초입 작은 절집 성국사의 복숭아나무에 붉고 흰 꽃이 한 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덧붙입니다.

 

 

깊은 산중… 때늦게 핀 노루귀·진달래 ‘방긋’

흘림골·주전골 2년만에 만난 길

 

 

# 한계령의 구비구비 고갯길을 잊지않은 사람들

 

 



  남설악의 점봉산 깊은 계곡인 흘림골. 워낙 숲이 짙고 또 깊어서, 그곳에 들면 늘 날씨가 흐린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흘림골의 짙은 숲으로 드는 탐방로의 입구는 한계령의 7분 능선쯤에 있다. 그래서 흘림골을 찾으려면 강원도 인제 쪽이든, 양양 쪽에서 한계령 길을 찾아들어야 한다.

 영동고속도로에 대관령 터널이 놓이고 미시령에도 설악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리면서 한때 한계령에는 차들의 행렬이 끊겼다. 굳이 구불구불한 한계령을 넘지 않아도, 새로 놓인 터널만 통과하면 태백산맥 이쪽 저쪽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된 때문이다. 거기다가 지난 2006년과 2007년의 잇단 수해 때 길이 유실되면서, 한동안 복구공사로 도로가 전면 통제되면서 한계령 길이 잊어졌던 탓도 있겠다.

 그렇게 한적했던 한계령이 최근 다시 붐빈다. 휴일이면 한계령 휴게소 주차장은 차 댈 곳이 없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미시령과 대관령에 터널이 뚫렸어도, 사람들이 굳이 한계령 길을 택하는 이유는, ‘추억’때문이기도 하겠다. 아닌게 아니라, 중년층들이라면 한계령을 넘는 구불구불 길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강원도에 왔다는, 혹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만나러 간다는 실감이 나리라.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설악산을 타고 넘는 길의 웅장한 풍광 때문이다. 한계령 길에서 만나는 설악의 주능선과 남설악의 풍광만으로도, 굽이길 피로한 운전으로 인한 노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국토 이곳저곳에 곡선의 길을 질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나고 산 허리춤에 터널이 뚫리면서, 오랜 세월 다져졌던 길이 하루 아침에 쉽게 버려지곤 했다. 그러나 한계령 길만큼은 아직까지 예외다. 둘러가는 길이 된 한계령 길은 아직도 성성하게 살아서 그 길을 가는 이들의 정서와 미감, 혹은 추억까지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 한계령 길의 어깨쯤에서 흘림골의 숲으로 접어들다

 



  한계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내다본 남설악의 풍광이 아름다웠다면, 그 아름다움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 바로 흘림골 탐방로다. 한계령 휴게소의 탁월한 전망의 절정을 꼽으라면,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기기묘묘한 암봉들의 경연장인 칠형제봉과 만물상이 단연 첫손이다. 그 칠형제봉과 만물상의 한가운데 바로 흘림골이 있다.

 흘림골 탐방로는 한계령 정상에서 양양 쪽으로 2㎞쯤 내려간 지점에서 시작한다. 자연휴식년제로 20년동안 닫았던 문을 열었다가 수해로 만신창이가 돼 다시 2년동안 ‘등산로 아님’이란 표지판을 걸고 있었던 곳. 오랜 복구 작업 끝에 지난해 연말에 다시 길이 열렸다. 그 깊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됐을까. 깊은 산중에 신록이 우거지길 손꼽아 기다렸다가 그 곳을 찾아가는 길이다.

 탐방로 입구부터 곧바로 나무와 쇠로 짠 데크 계단길이 시작된다. 규칙적으로 발걸음을 탁 탁 짚어 오르는 길이 그리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 길에서 만나는 야생화와 작은 야생동물, 그리고 자꾸 등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칠형제봉의 우람한 위용 덕이다.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곳곳에서 만개했다. 워낙 깊은 산중이라 꽃이 늦어 다른 곳에서는 이미 다 지고 만 꿩의바람꽃이며 노루귀도 지금이 한창이다. 벼랑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진달래들도 이제서야 붉은 꽃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깊섶에서 만나는 다람쥐들은 겁도 없이 길을 막고 사람들을 빤히 바라본다. 여기다가 등 뒤쪽의 장쾌하고 우람한 칠형제봉은 탐방로를 걸으면서도 자꾸 멈춰서 뒤를 볼아보게 한다. 봉우리들이 잇닿은 칠형제봉은 거리와 높이,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 등선대 에 새로 생긴 전망대.

그곳에서 굽어본 만물상과 칠형제봉의 절경

 

 



  흘림골 탐방로에 올라서면 등선대를 첫 목적지로 삼게 된다. 흘림골의 명물인 여심폭포를 지나 깔딱고개로 1시간쯤 등선대까지만 오르면, 그 뒤부터 3시간은 쭉 내리막이다. 잠깐 오르막 구간이 있긴 하지만 아주 가벼운 정도. 신선(仙)이 오른다(登)고 해서 등선대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는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남설악 만물상의 정상이다. 신선들만 오른다는 그곳에 오르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절로 든다.

 수해가 나기 전까지 등선대는 웬만한 산행경험이나 담력이 없다면 오르기가 꺼려지는 곳이었다. 오르는 길은 2명이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고, 정상에 오르려면 바위 끝에 매달아 놓은 낡은 밧줄 하나에 의지해야 했다. 그렇게 힘겹게 오른 정상이래야 서너명이 서면 꽉 차버릴 정도로 좁았다.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였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굳이 등선대에 오르려 한 것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설악의 전망이 그야말로 ‘끝내 줬기’ 때문이다.

 새로 탐방로가 조성되면서 등선대로 오르는 나무데크가 놓이고, 정상에는 널찍한 전망대가 들어섰다. 거친 암봉의 허리를 다듬어 돌계단을 만들고 난간을 세웠다, 등선대 정상의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풍광은 단번에 사람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기암괴석의 칠형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고 서남쪽 남설악 안쪽에는 바위봉우리들이 첩첩이 펼쳐진다. 멀리 동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대청봉이며 귀때기청봉, 끝청까지 설악의 서북주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저 멀리 가야할 흘림골과 주전골 골짜기 너머로는 가물가물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든 이 곳에서 감탄을 토해놓지 않을 도리는 없다. 고작 한 시간여의 등반 끝에 이런 풍경을 만난다는 것이 황송해질 지경이다.

 등선대에서 내려서면 이제는 암봉들 사이로 난 내리막이다. 기묘한 암봉들의 호위 아래 자란 쪽동백, 물참대, 박달나무, 서어나무, 피나무, 단풍나무에 새로 돋은 잎들이 마치 연초록 등을 켠 듯 환하다. 초록빛이 얼마나 밝은지 눈이 다 부실 지경이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만, 이런 길이 곧 끝이 날까 조바심까지 날 정도다.

 

# 이런 비경에 선녀가 왜 없으랴…십이폭포

 



  등선대에서 내려서면 물소리가 커지고 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몇번의 수해로 물길은 다 흐트러졌지만, 십이폭포부터는 제법 굵은 물줄기와 진청색의 소(沼)가 나타난다. 경사면의 바위를 타고 부드럽게 내리는 물길이 이곳 저곳에 작은 폭포를 만들어 놓고 있다. 수해로 굴러내린 바위들이 이곳 저곳을 가로막는 바람에, 몇번을 헤아려보아도 셀 때마다 폭포의 숫자가 달라진다.

 물길을 이쪽 저쪽으로 건너는 다리에 서서 깊은 골짜기를 바라보면 초록의 숲들이 다가선다. 십이폭포 아래의 숲은 연초록 작은 손바닥을 매단 단풍나무 일색이다. 아마도 가을이 오면, 이곳의 단풍은 몇번의 수해로 입은 깊은 상처보다 더 붉게 불타오르리라.

 십이폭포를 내려온 물은, 용소폭포에서 내린 물과 Y자로 만나서 몸집을 불린다. 이곳이 흘림골이 끝나고 주전골과 만나는 구간이다. 흘림골은 등선대를 넘어 십이폭포 아래까지를 말하고, 용소폭포에서 오색마을까지의 계곡길은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주전골이다. 주전(鑄錢)이란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흘림골이 외설악의 웅장함을 연상케한다면, 주전골은 내설악의 포근함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주전골을 다 둘러보려면 계곡아래로 내려서지말고 용소폭포쪽으로 다시 500m쯤 접어들었다가 되돌아 나와야 한다. 용소폭포는 몇번의 끔찍한 수해에도 용케 크게 다치지 않은 모습이다. 폭포의 물소리는 힘찼고, 맑은 물도 여전했다.

 

# 청록색 물길을 따라가는 내려가는 길

 

 

▲ 오색지구로 내려서 성국사에서 만난 만개한 복숭아꽃. 신기하게도 한 나무에 붉은 꽃과 흰 꽃이 함께 피었다. 심지어 한 가지에도 붉은 꽃과 흰 꽃이 달려있다. 절집의 스님은 “매년 복숭아 씨를 받아서 심고 있지만, 이렇듯 두 색깔의 꽃이 피지 않더라”고 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주전골 탐방로는 줄곧 물길과 벼랑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길이 워낙 쉬워 어린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인데, 수해 복구가 되면서 데크 길은 더 평탄하고 부드러워졌다. 바위 벼랑에 낮게 붙인 데크에 올라 오색지구 방향으로 향하자면 왼쪽으로는 벼랑을 끼고 오른편으로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려가게 된다.

 주전골로 내려서는 길에서는 물 건너쪽으로 동굴이 눈에 띈다. 2006년 집중호우 때 폭우로 동굴 앞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쓸려나가면서 드러난 동굴이다. 주전골에는 승려를 가장한 도둑들이 동굴에 숨어 몰래 가짜엽전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던 터라, 오색마을 주민들은 ‘전설로 전해 내려오던 동굴을 찾았다’며 흥분했다. 급기야 부근에서 상평통보 모양 엽전 29개가 발견되면서 주민들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사주전(위조 주화)일 것이라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엽전은 중국에서 만든 조악한 관광상품이며, 무속인들이 이를 계곡에 뿌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감정결과가 나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주전골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쯤에는 아담한 절집 성국사가 있다. 절집에는 다섯가지 색깔의 꽃을 피우는 신비한 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이곳 지명이 ‘오색리’가 됐고, 약수에도 오색약수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저 아득한 전설일 것이란 생각에 절집을 돌아 나오는데, 절집 마당의 복숭아 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복숭아 나무가 붉은색 꽃과 흰색 꽃을 함께 피워냈다. 선명한 붉은 꽃과 순백의 흰 꽃이 교차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심지어 붉은 꽃에 꽃잎 몇장만 흰 꽃도 있고, 흰 꽃에 붉은 꽃잎이 한 두장씩 붙은 것도 있다.

 설악산 대청봉의 남쪽 비탈과 점봉산의 북쪽 비탈 사이를 감고 돌아가는 흘림골과 주전골. 한때 폭우로 초토화됐던 이 계곡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을 되찾고 있었다. 골짜기마다 깃든 신비한 전설의 여운도 여전했다. 물폭탄이 지난지 이태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렇듯 자연은 빠르게 스스로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 흘림골 가는 길 = 설악산은 흔히 내설악과 외설악, 남설악과 북설악으로 구분한다. 내설악이라면 한계령과 미시령의 서쪽지역을 말하고 외설악은 한계령과 미시령의 동쪽을 일컫는다. 내륙 쪽이 내설악이 되고 동해 쪽이 외설악이 되는 셈이다. 또 한계령 이남을 남설악이라고 하고, 이북을 북설악으로 부르기도 한다. 설악산 남쪽의 점봉산의 골짜기인 흘림골은 오색약수터 일대와 함께 남설악에 속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에서 44번 국도로 갈아타면 한계령까지 닿는다. 한계령 정상을 넘어 양양 쪽으로 2km쯤 내려가면 흘림골 탐방로 입구를 만난다. 대부분 흘림골 탐방은 이곳에서 시작해 주전골을 지나 오색지구 쪽으로 내려가는 4시간짜리 코스를 택하게 된다. 따라서 오색지구에 차를 세워둔 뒤, 인근 주민들의 차를 빌려타고 흘림골 탐방로 입구까지 올라가서 탐방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오색지구에서 흘림골 탐방로 입구까지 차량운송비로 대략 1만∼2만원을 받는데, 오색지구에서 미리 식당을 예약하고, 식당주인에게 부탁하면 보다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까 = 오색지구에 상가가 밀집해있다. 대부분 산채백반이나 비빔밥 등 나물을 주로 내놓는다. 음식의 종류나 맛은 비슷비슷하지만, 그중 대청마루( 033-672-3020 )의 산채정식(1만원)을 추천할 만하다. 각종 나물과 함께 더덕구이와 황태구이, 된장찌개가 곁들여진다.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한 잔 내놓는 달큰한 오디술도 별미다.

오색지구에는 모텔과 여관, 펜션들이 즐비하다. 아직 흘림골 등산객들이 많지않은 편이어서 객실은 여유가 있는 편. 수해로 문을 닫았다가 오는 10일 재개관하는 오색그린야드호텔( 033-672-9882 )이 추천할 만한 숙소. 정상가는 2인 기준 15만원선으로 책정됐지만, 재개관을 기념해 일정기간동안 객실료 할인행사를 할 예정이므로 문의해보자.


 

 

<출처> 2008-05-0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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