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민속마을
옛 전통이 숨쉬는 소중한 문화유산
글·사진 남상학
낙안읍성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의 평탄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낙안읍성은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낙안읍성은 한국의 몇 안 되는 읍성 중 하나이다. 읍성이란 성벽 안에 조성된 옛 도시를 일컫는다.
읍성에는 일반적으로 객사(사신이 머무는 곳)와 동헌(지방행정관서) 같은 공공시설이 중앙부에 자리 잡는다. 223,108 ㎡의 면적에 관아를 제외한 142호의 낙안읍성 주택들은 모두 초가집이다. 초가들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벽은 15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 군수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이설이 있다.
그 동안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특히 6.25사변 이후 많은 훼손을 가져왔으나, 1983년 6월 14일 성과 마을(동내리, 남내리, 서내리)이 국내 최초로 함께 사적지(사적 제302호)로 지정이 되면서 1984년부터 3∼4년에 걸쳐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보호구역의 총면적은 성내 41,018평(135,597㎡)평과 성밖 50m까지의 26,472평(87,511㎡)평을 포함하여 67,490평(223,108㎡)평에 달한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虎患)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樂豊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樂秋門)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이 성문을 외워 감싸고 있다.
1983년 6월 14일 사적지로 지정된 이후 1984~2005년까지 성곽 보수 1410m, 문루(門樓-동문(樂豊樓), 서문(樂秋門), 남문(雙淸樓) 복원 3동, 동헌(東軒) 내아(內衙) 복원 5동, 평석교 석구(平石橋 石拘) 복원 1개소, 객사 복원 1동, 해자 복원 1식(式), 장터 난전(亂廛) 조성 8동, 공개전시가실(公開展示家室) 3호(戶), 민가 보수 94호, 민가철거보상 98호,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 보수 1동. 향토미술관 설치 1식, 전통민가 신축 4동, 전통음식 판매점4동, 옥사복원1동, 주도로포장 3.7km 등 보수 복원사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객사(客舍), 동헌(東軒), 내아(內衙), 옥사 등 관아(官衙) 4동과 낙민루(樂民樓), 낙풍루(樂豊樓), 쌍청루(雙淸樓), 임경업(林慶業) 장군 비각 등 누각 4동, 초가 208호, 와가(瓦家) 3호, 스레트 15호, 함석 5호등 민가 231동의 규모이고 관리사무소, 미술관, 자료관, 민속실이 각 1동씩 있으며, 난전 및 음식점, 기념품점 토산품점 : 11동, 기타매표소, 공중화장실, 전시가실 등 : 27동, 민가: 231동(초가208, 스레트 15, 함석5, 와가3) 이 있다.
동내리의 박의준가옥(지정번호제92호) 외 8가옥이 중요민속자료(重要民俗資料) 가옥으로 지정되어 있고, 객사 낙안지관(客舍 樂安之館)은 전라남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임경업 장군 비각은 문화재 자료(文化財 資料)로 관리되고 있다.
읍성 안에는 3백년~6백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老巨樹) 32그루가 있으며 그 중 15그루(은행나무 3, 느티나무 1, 팽나무 6, 푸조나무 3, 개서나무 2)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특히 곽의 축(軸) 즉 돛대 역할을 한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객사 뒤편의 팽나무는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낙안읍성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
성문을 들어서면 큰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기와집이 왼쪽에는 초가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기와집들은 높은 담 속에 감추어져 있는 반면, 초가집들은 나지막한 돌담과 고샅을 구획삼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용인, 제주민속마을같이 전시용이나 안동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다. 작은 학교였던 곳이 전통혼례 체험장으로 변모한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가 하면 시뻘건 쇠를 두르려대는 대장간이 현재도 칼과 호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
낙안읍성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읍성 내에는 허준을 비롯한 영화 촬영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보여준 '아름다운 시절'의 로케로 사용되어서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도 수시로 사극들이 촬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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