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국토의 땅끝, 해남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전망대에 서다.

by 혜강(惠江) 2008. 4. 25.

해남 땅끝전망대

해남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전망대에 서다

글·사진 남상학

 

 

 

 

  대흥사에서 나와 땅끝마을 갈두리로 핸들을 돌린다. 여기저기 남도의 들판은 여느 곳보다 훨씬 먼저 봄을 맞고 있다. 파릇파릇 자란 보리가 제법 바람에 나부끼고 이곳의 마늘밭도 줄기가 제법 자랐다.

  해남에서 완도방면 13번 국도로 20 K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1번 군도를 따라 13Km 더 가면 송지면 소재지이고, 이곳에서 7㎞ 정도 가면 우측으로 송호리해수욕장이 나온다. 해변에는 오래된 노송이 가지를 늘어드린 채 바다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있다.

 

 

 


  모래사장에 내려서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저 수평선 너머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하다. 푸른빛 바다, 바다 내음 가득한 향, 그리고 어쩌다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정말 반갑고 여유롭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정을 바라보니 최근에 지은 호텔이 서있다. 호텔이 있는 고갯길을 넘어 내려오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이곳이 땅끝마을 갈두리(葛頭里). 해남 땅끝은 백두산의 맑은 정기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거쳐 땅끝 기맥으로 내려와 바다로 잦아드는 극적인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육지상으로 최남단에 있는 마을이다. 남해와 서해가 서로 잇닿아 있어 남쪽 물과 서쪽 물이 허물없이 서로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해남에서 땅끝마을까지는 총 40㎞ 정도이다.

 

  ‘땅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는 한낱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곳은 호텔이 들어서고, 민박촌이 형성되는가 하면 작은 해수욕 공간도 생겨났다. 그리고 포구에서는 보길도와 노화도로 가는 카페리가 뜨고 고깃배들이 드나든다.

 

 과거에는 이곳이 대륙문화가 유입되던 길목이었다. 그 좋은 예가 불교의 남방유입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금불상을 싣고 사자포(獅子浦)로 왔다는 땅끝마을 인근에 있는 미황사(美黃寺)의 창건설화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육지 끄트머리라는 상징성과 함께 재미난 이야기가 분분한 땅끝마을은 '갈두리 혹은 칡머리'로 불렸는데, 이곳에 칡이 많아 그렇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사자봉의 형세가 칡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칡머리’라는 뜻의 ‘갈두(葛頭)’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갈두는 예전부터 제주도로 통하는 중요한 뱃길이었는데 제주도에서 군마(軍馬)를 싣고와 육지로 보내는 통로였다고 한다. 이 같은 과거를 보내며 ‘땅끝’이 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 땅끝에서 바라보는 우리 국토와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높이 10m의 땅끝탑을 세우고, 노령산맥의 줄기가 내 뻗은 마지막 봉우리인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 있는 봉화대를 복원하면서부터였다.


 마을 뒤편으로 사자봉에 오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이다.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주차장까지는 1.4㎞ 정도다. 사자봉 전망대 주차장까지도 대형버스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이라 차량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승용차는 마을 주차장에 두고 걸어 올라야 한다.

 주차장에서 사자봉에 오르는 오솔길은 군데군데 인공 목조계단이 있는데, 우측으로 송호해수욕장과 짙푸른 해안, 점점이 섬들이 떠있는 바다를 나뭇가지 사이로 감상할 수 있다. 아니면 갈두리에서 땅끝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므로, 노약자들은 이것을 이용해도 좋다.

 

 

 

 

  주차장에서 호흡을 고르며 5-6분 거리를 올라가면 갈두산봉화대가 있고, 정상에 몸체를 용틀임하듯 우람한 땅끝전망대가 우뚝 서있다. 갈두산 사자봉(156.2m) 정상에 서있는 39.5m 높이의 땅끝전망대는 기존의 시멘트 구조물의 전망대를 헐고 2002년 1월 1일 지하 1층 지상 9층의 새로운 전망대를 걸립하고  "동방의 횃불"이라명명했다. 

 

 

 


 이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바다와 그 위에 펼쳐진 섬들이 시원한 전망과 함께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흑일도, 백일도, 어룡도, 장구도, 노화도, 소안도 그리고 고산 윤선도의 풍류가 숨 쉬는 보길도…. 날씨가 맑고 해무(海霧)가 없는 날에는 저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전망대까지는 계단이 있어 걸어 올라갈 수 있지만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전망대 앞에 있는 봉화대는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통신수단으로 조선시대에는 동쪽으로 강진의 좌고산 봉수와 서쪽으로는 해남군 화산면 관수봉 봉수와 연결하던 곳으로 새로 쌓아 만들었다.

 

 

 

 

 

 봉화대 옆에는 옛날의 통신수단 대신 현대식으로 소식을 전하는 빨간우체통이 있다. 편지를 쓰고 싶은 관광객들은 땅끝전망대 매표소에서 엽서(500원)를 구입해 사연을 적은 후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 또는 1년 후 원하는 주소로 발송해 준다. 이 우체통은 느린 우체통인 셈이다. 안부를 기다리듯 그리움을 담은 문효치 시인의 <아득하여라>를 떠올려 본다.

 

 

    세월의 너울 너머 / 사라져 버린 / 그대의 안부.

    아득하여라 / 퍼질러 앉아 울고 있는 / 바다 저 끝 / 저 혼자 솟구치는

    은빛 파도만 / 발아래 땅끝으로 / 올라오는데

    가슴속, 동백꽃 다발로 / 붉게 터지는 / 벅찬 그리움 / 어찌하리야.

 

 

 

 
 문효치 시인의 <아득하여라>의 전문이다. 정상 전망대에서 약 50m 정도 내려오면 0.7m 높이의 '토말(土末)'이라 적은 비석이 있는데 우리 땅의 소중함과 존업성을 적어 놓았다. 여기서 계단을 따라 바닷쪽으로 내려가면 바닷가의 낭떠러지 같은 좁은 공간(바닥 면적 3.6㎡)에 높이 10m의 뾰족한 땅끝탑이 서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가파르고, 정상인은 약 15 정도 걸린다.

 

 



 땅끝탑이 서 있는 이곳이 바다와 마주한 진정한 땅끝인 셈이다. 1987년 7윌에 건립된 땅끝탑에는 <극남 북위 34도 17분 38초, 동경 126도 6분 01초>라 적혀 있다. 그리고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땅끝이다. 이런 국토의 상징성 때문일까, 땅끝탑 옆에는 높은 깃대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수천 년 지켜온 국토의 모습을 부듯한 가슴으로 지켜보듯이.



    이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葛頭里(갈두리) 獅子峰(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土末(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섬 자락에 아슬한 
    魚龍島(어룡도) 白日島(백일도) 黑日島(흑일도) 塘仁島(당인도)까지
    長久島(장구도) 莆吉島(보길도) 蘆花島(노화도) 漢拏山(한라산)까지
    水墨(수묵)처럼 스미는 情(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白頭(백두)에서 土末(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數千年(수천 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 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땅끝탑 하단부에 음각되어 있는 시가 마음에 닿는다.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河南鎬)의 글씨로 새긴 손광은(孫光殷)의 시를 읽노라면 온갖 시련을 겪으며 지켜온 날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그리고 함께 숨 쉬어 온 내 땅, 내 나라, 그리고 그 속에 살아온 내 피붙이들이 그립고 정답다. 땅끝은 더 이상 걸어 내려갈 수 없다는 절박감과 육지의 끝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국토대장정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발 아래 출렁이는 파도가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막힘없는 바다와 멀리 섬들이 펼처지는 파노라마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땅끝탑을 보고 갈두리로 나온다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사람을 제외하고는 굳이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올 필요가 없다.(운전자만 수고하면) 땅끝탑에서 조금 올라와서 땅끝마을 갈두리 선착장까지 이어진 해안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예전에 해안 경비병들이 순찰 다니면서 생긴 오솔길을 조금 넓혔는데,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라 노약자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특히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최고다.

 

 

 

 

 

   땅끝마을(갈두리)은 아담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앞에 있는 맴섬. 아주 작은 두 개의 바위섬이다. 썰물 때는 갯바위에 불과하지만 물이 들면 영락없는 섬이다. 바위섬 위에 몇 그루의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해변에 우뚝 솟은 바위. 서로 마주 고 있어 형제바위라고 불린다. 그런가 하면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들 앞으로 땅끝 바다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비롯하여 시비들이 즐비하다.

 

 

 

 

 해남 최고의 관광지 땅끝마을에 조성된 공원이지만 찾는 이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땅끝마을에서 조각공원까지는 줄곧 바다를 끼고 간다. 공원에는 26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등대가 길을 비추는 부두에는 노화도 보길도로 떠나는 카페리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어 평화롭게 보인다. 나는 몇일동안 계속된 여행을 땅끝마을에서 마무리하면서 문득 내 인생 여정의 끝을 이곳에서 마친다는 느낌으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이제는 마음을 놓아야지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왔는지
    구두끈에 달린 먼지 털어내고
    이제는 수평선 뒤로 숨어야지

    삶이란 결국

    돌아보면 잠시 잠깐
    떡갈나무 잎에 스치는
    바람 한 점 무게도 못 되는 것
    가벼운 흔적으로 남았다가
    이내 스러지는 한 줄기 포말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들
    모든 것 일체를

    일렁이는 물결에 띄워보내고
    구름을 탄 듯 가볍게
    미련의 닻줄을 풀고
    자유의 물살 가르며 떠나야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자리
    그 끝으로 이어지는 몇 개 섬을 건너

    누군가 부르는 손짓 따라
    영혼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
    편히 쉴 나라로 가고 싶어

    부푼 기대와 갈망으로
    경건히 두 손 모으고,
    마음으로 내닫는 영원의 바다로
    이제는 떠나야지.

   

  그리움의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일 뿐,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느낌을 정리하여 <땅끝마을에 서서>라는 시를 탄생시켰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달려 땅끝해양사박물관( 061-535-2110 )을 들러볼 수 있다. 2002년 폐교된 송호초등학교 통호분교 자리에 건립한 이 박물관은 각종 어패류, 박제된 바닷고기와 화석, 그리고 곤충류, 파충류, 척추동물 등 모두 2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갈두리에서 완도까지 이어지는 813번 지방도로를 타고 완도를 거쳐 서울로 향했다. 이 길은 해안을 끼고 도는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멀리 흩어진 섬들과 가까운 바다에 뜬 양식장 부표들이 꿈꾸는 바다 풍경처럼 눈에서 떠날 줄 모른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