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
전통 순창고추장의 원류 만일사(萬日寺)
- 태조 이성계의 등극과 관련된 사찰 -
글·사진 남상학
임실의 옥정호를 둘러보고 나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위치한 만일사로 향했다. 구림면에서 회문산 만일사로 가는 길은 길안천을 연상케한다. 산은 우거진 숲위로 바위를 솟아 올리고 산을 따르던 계곡 또한 잔잔한 물살에 매끄러운 바위를 만들어 놓았다. 구림천의 반쯤에서 회문산으로 올라선다. 하늘과 가까운 산들이 눈높이에 펼쳐진다. 겹겹이 산이고 첩첩이 산이다.
언덕길을 올라 깊숙한 산중에서 만나는 안정리. 몇 채의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면 절 입구에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百年貪物日朝塵(백년탐물일조진)” 이라고 적어놓은 돌이 보인다. 삼일수심천재보요 백년탐물일조진이라.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 보물이요,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 아침 티끌이니라.” 라는 뜻일 게다.
만일사(萬日寺) 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고찰로 조선 건국 전 무학 자초(無學自超) 스님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등극을 위하여 중건한 절이다. 무학대사 이전에도 여러 가지 중건 과정이 있었을 것이지만 기록이 없어 그 내력을 알 수 없고, 정유대란으로 소실된 것을 6.25 전쟁 등 두 차례 소실 끝에 195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일주문,산신각 등이 남아 있다. 절 아래로 펼쳐진 산안 마을과 무직산,성미산 등 빼어난 연봉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는 조선 건국을 위해 만일동안 기도하였다는 내용을 기록한 만일사 유허비가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만일사(萬日寺)란 명칭 또한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일 동안 이 곳에서 기도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유허비에는 순창고추장이 대궐에 진상되게 된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만일사에는 예전부터 고추장과 관련해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무학대사를 찾아 만일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민가에 들러 먹던 밥에 고추장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왕이 된 후에도 순창 고추장을 진상토록 하였으며, 이때부터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무학대사와 만일사에서 기도할 때 하루는 산 안마을 김좌수댁의 초대를 받은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그 집에 가서 점심대접을 받게 되는데 산해진미가 다 올라와 있는 훌륭한 밥상이었으나 그중에서도 고추장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나서 수인사를 하면서 고추장 맛이 독특하였는데 거기에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좌수가 대답하기를 “우리 고장은 산과 물이 많고 토양이 비옥하며 풍향이 완만하여 사람이 나면 명인달사가 나고 산과 들에는 약초와 채마가 특이하여 보통으로 담가도 그 맛이 담백하고 감칠 맛이 난다고 대답하였다.
그로부터 이성계의 밥상에는 반드시 순창 고추장이 올랐으며, 개국후 아들 방원과의 불화로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궁궐을 떠나 외유할 때 무학대사와 함께 또 한번 만일사를 찾아와 며칠 쉬어간 일이 있었다. 그때 전에 천일향을 시주한 일이 마음에 걸려 구천일향을 더하여 만일향을 채우고 그 만일향을 시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 절 이름을 만일사로 고쳐 부르도록 해놓고 함흥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6.25당시 회문산에 북한의 남부군 총사령부가 자리했다. 만일사도 집중포화로 모든 것이 소실됐다. ‘이성계와 고추장’에 얽힌 사료도 사라지고, 훼손된 중수비만 남았다. 순창군은 비바람에 마모된 비문에서 ‘태조대왕’과 ‘무학’이란 단어를 찾았고, ‘순창고추장’ 설화의 근거로 내세웠다.
흔히 고추는 임진란 이후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순창에서는 ‘만일사 설화’를 근거로 고려 때부터 고추장을 담갔다고 주장한다. 최근 ‘만일사 중창 사적기’ 찾기에 나선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만일사 대웅전 앞 마당 담장 곁에 있는 장독대에는 고추장을 비롯한 많은 장이 들어 있다. 특히 고추장 맛을 보고 싶어했더니 스님께서 고추장을 좀 갔다 주시는데, 그야말로 순창의 토양과 물맛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 산사의 맑음과 깊음이 느껴진다. 만일사는 이렇게 만든 전통고추장을 관광객들에게 판매도 한다. 스님의 말로는 요즘은 고추장보다 장아찌가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이른바 전통고추장을 이용한 가공품이 먹기에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절 아래 신안 마을에선 ‘고추장 담그기 템플스테이’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 순창군은 장류 단지를 조성하고 장류 연구와 보급에 힘쓰고 있다. 본래 순창은 옥천(玉川)고을이었고, 이름만큼이나 물맛이 일품이다. 또한 서해안 염분과 지리산 바람이 만나는 지점으로 발효균이 활동하는 최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서울에서 순창사람이 고추장을 담가도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순창에서도 회문산 8부능선에 자리한 만일사에서 담근 고추장을 최상품으로 친다. 비법은 회문산의 물, 바람, 햇볕의 조화에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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