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奧地) 여행
'요강 바위'로 유명한 장군목과 하늘나리마을에서의 하룻밤
글·사진 남상학
곡성 지역을 여행한 우리는 순창으로 이동하여 요즘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순창의 장구목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순창의 장군목은 수만 년 동안 거센 물살이 다듬어 놓은 기묘한 바위들이 마치 용틀임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상으로 널브러진 강변의 모습으로 유명한 곳이다.
◎ ‘요강바위’로 유명한 장군목(장구목)
장군목은 섬진강이 품고 있는 샛강이다. 서북쪽으로는 용골산(645m), 남쪽으로는 무량산(586.4m) 사이의 산세가 장군 대좌형(將軍大坐形) 명당이어서 ‘장군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장구의 잘록한 허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장구목'으로도 부른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다.
장구목에는 맑고 깨끗한 강물 위로 수만 년 동안 거센 물살이 다듬어 놓은 기묘한 바위들이 마치 용틀임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상으로 약 3km에 걸쳐 드러나 있다. 물결이 다듬어 만든 독특한 모습이 신비함을 자아내고, 계절별로 독특한 모습이 연출되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랜 세월 물의 흐름에 깎여 둥글둥글한 바위 중에서 어떤 것은 깊숙이 구멍이 뚫린 것도 있는데, 강물 한가운데에 있는 한 바위가 마치 요강처럼 움푹 파였다 하여 요강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는 마을 주민들에게 수호신 같은 존재로 아주 유명하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때 이 바위에 몸을 숨겨 화를 모면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요강바위는 높이 2m, 폭 3m로 사람을 충분히 숨길 수 있다. 또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요강바위 안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한때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1993년에는 실제 중장비까지 동원한 도석꾼들에게 도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도난 후 1년 6개월 만에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장군목은 주변의 회문산 등지에서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늘 수량이 풍부하고, 소와 여울이 많아 물놀이는 물론 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아 지금은 장군목유원지로 개발되었다. 장군목으로부터 순창군 적성면 일대에 있는 섬진강은 적성강이라고 불린다.
◎곡성 오지마을 '하늘나리마을'에서의 숙박
순창 장구목을 구경한 우리는 전남 곡성군 죽곡면 하한리 산간오지에 자리를 튼 '하늘나리마을'로 이동했다. 전통 농촌테마마을인 하늘나리마을은 본래 이름은 상한마을이었으나 '하늘나리 마을'이라는 예쁜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섬진강에서 봉수산 쪽으로 4km쯤 들어간 곳. 고개를 바짝 젖혀야만 하늘이 보이는 심심산골 마을, 이곳이 바로 하늘나리마을이라 불리는 상한마을이다.
백합의 일종으로 여름철 높은 산지에서만 핀다는 하늘나리가 자생해 ‘하늘나리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마을을 둘러싼 주위 풍광으로서 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의 시골 풍경이 고스란히 간직된 마을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 하늘나리마을 전경, 모두 22가구가 산다.
이 마을은 임진란 당시 경주 정씨가 난을 피하여 다니던 중 골짜기가 깊고 산세가 높아 항상 맑은 물이 흘러 자연수 그대로 농사짓기에 알맞고 입구로부터 1.5㎞ 떨어져 있어 입구에서 보면 인가가 없는 것처럼 위장이 되어 전시나 도둑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내부에는 기름진 토지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 이 마을에 하늘나리가 많이 자생해 ‘하늘나리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엔 현재 22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다랑논에서 벼농사(저 농약 인증)를 짓고 집집마다 토종벌을 키우며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봄이면 고로쇠 물을 마시고 산나물을 뜯고, 가을이면 밤을 줍고 감을 따면서 순박하게 살아간다. 마을에서 나는 이런 특산물들은 100% 무공해 산물이라 도시민들의 주문이 쇄도하는 품목이기도 하다.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꿀이다. 주변의 히어리꽃, 아까꽃, 밤꽃 등에서 벌들이 채취한 꿀로, 집마다 울안에 벌통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토종벌을 치는 집이 많다. 집마다 널린 게 벌통이고 많은 게 벌이다 보니 마을 체험 행사에도 벌꿀을 주요 테마로 삼았다.
하늘나리 마을에선 19가구가 남도민박을 운영한다. 3년 전부터 마을 사무장 일을 하고 있는 홍수진 씨는 외지에서 민박 신청이 들어오면 이용자의 맞춤 요청에 따라 순서대로 배정하여 균형있는 소득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마을은 관광객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농특산물 판매와 농촌체험관광을 실시하여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다.
* 하늘나리 작은도서관(상)과 공동정미소(하), 그리고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하)
그런데 놀라운 일은 첩첩산중 마을인데도 3년 전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마을회관을 이용하여 개관한 작은 도서관은 800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주민들의 문화 욕구, 정보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마을 이장 겸 테마운영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강병조 씨를 필두로 전 주민들이 합심하여 하늘나리 농사체험, 과수체험, 계곡 생태체험, 밤꿀. 벌밀랍초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벌멍덕 짚풀공예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마을 알리기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어물어 어둠이 짙은 시간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된 분수대 민박집(곡성군 죽곡면 성한리 673번지, 061-362-8496 , 010-45...) 허영 주인장이 어둠 속에서 반갑게 마중했다. 배정된 방은 오지답지 않게 실내 화장실, TV, 보일러실을 갖춘 깨끗한 방이었다. 난방은 나무를 때는 나무보일러를 쓴다고 했다.
이 동네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집마다 집을 개량하도록 지원을 받아 모두 새로 꾸몄다고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아주머니가 집에서 직접 만든 한과와 곶감을 내놓고 먹으라고 권한다. 훈훈한 산골 인심이 아직도 그대로였다. 모양은 제 멋 대로였지만 맛은 구수하고 달큰했다.
민박집에서 차려낸 저녁밥상은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민물매운탕과 19가지의 반찬이 상에 올라왔다. 매운탕은 주인장이 장군목에서 직접 잡은 것이라로 했다. 매운탕을 제외하고는 다래순 무침·염장두릅 무침·매실 장아찌·능이버섯무침·감장아찌·더덕무침·고들빼기무침·고춧잎·우엉·머웃대·호박말랭이 등, 모두가 땀을 흘리며 가꾸고 채취한 자연식품이 아닌가. 요즘 즐겨쓰는 말로 웰빙식단의 가격은 단돈 5,000원이다.
* 우리에게 숙식을 제공한 분수대 민박과 주인장 허영 씨 내외 *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3월 하순이지만 산골의 밤은 냉기가 돌았으나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전개되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본 하늘은 황홀할 정도로 별이 총총하게 빛났다. 도시의 스모그와 매연에 찌든 내게 이런 산골의 정취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했다.
* 집 안팎 어딜 가나 벌통 천지다.
뜨거운 방에서 곤한 잠을 자고나서 새벽이 되어 마을 구경을 나갔다. 여기저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모처럼 코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의 특징은 집집마다 뜰 안팎이나 비탈진 언덕까지 온통 벌통으로 가득하다. 엊저녁 어두워서 보지 못한 마을 정경이 다정스럽다.
한타까운 일은 이곳도 여느 오지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분교로 사용하던 교사는 이미 10여년 전에 폐교되어 건물은 퇴색한 채 남아있고 운동장엔 마른 잡초가 어지럽다. 지금 이 마을의 주민 유아 1명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1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60을 훨씬 넘긴 노인들이다. 유아는 얼마전 하늘나리 마을에서 23년만에 태어난 아기라고 한다. 또 곡성의 어린이집에 다니는 취학 전 어린이는 홍수진 씨의 아들로 매일 4km 떨어진 큰 길까지 데리고 나갔다가 데려와야 하는 처지여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 분수대민박에서 차린 하늘나리 저녁밥상과 아침밥상, 아침밥상은 국이 들어오기 전에 찍은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늘나리 마을을 떠나면서 우리는 한 마디씩 소감을 피력했다.
"공기가 정말 좋고 밤엔 별이 쏟아져 내려서 좋았습니다.”
“나는 나무 타는 냄새가 제일 좋았어요.”
“시골 밥상에 오른 반찬들이 다 보약 같아요.”
“무엇보다도 훈훈한 고향 냄새가 최고야!”
"주민들의 자활 의지가 크게 엿보였어요".
3월 하순의 하늘나리 마을은 복숭아꽃이 봄을 알려준다. 훈훈하고 정감어린 들녘엔 쑥부쟁이 등 파란싹들이 고개를 내미었다. 그 들길을 걷다보면 '산 너머 남촌' 만큼 딱 들어맞는 노래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하늘나리 마을에서의 하룻밤은 농촌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무엇보다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네 훈훈한 인심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여행정보
* 하늘나리마을 : 전북 곡성군 죽곡면 하한리(문의 061-363-8546)
* 객실정보 : 분수대 민박, 문쇠네민박, 가풍 민박, 개량 민박, 고향민박 등 다수
* 찾아가는 길 : 곡성IC → 오곡 → 압록 → 상한(민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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